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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규 의사가 사이토 총독을 죽이고자 폭탄을 던진 현장인 서울역 광장에 세워진 왈우 강우규 의사 동상. 2015년 11월에 찍었다.
 강우규 의사가 사이토 총독을 죽이고자 폭탄을 던진 현장인 서울역 광장에 세워진 왈우 강우규 의사 동상. 2015년 11월에 찍었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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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서울역광장에 있는 왈우 강우규 의사(1855년~1920, 11월 29일) 동상이다. 강우규 의사는 1919년 9월 2일 동상이 세워진 그 자리에서 사이토 총독을 향해 폭탄을 던졌다. 의사의 나이 65세로 백발이 성성했다고 한다.

일제침탈의 상징이자 원흉인 조선총독은 모두 9명, 이중 3대와 5대를 지낸 사이토 마코토(재등실)는 '문화통치'라는 미명하에 매우 악랄하고 지능적으로 조선을 침탈한 총독으로, 가장 많은 친일파들을 생산해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런 총독을 죽이고자 한 것이다.

아쉽게도 사이토 총독을 죽이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사망자 3명을 비롯하여 일본의 고위직 간부들과 친일파 등 수십 명의 사상자를 냈다. 이로써 3·1운동을 빌미로 조선인들을 더욱 악랄하게 압박하던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독립운동의 새로운 불씨가 되었다고 한다.

동상은 2011년 9월 2일, 의사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자 건립되었다. 서울에는 이처럼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곳임을 알리는 동상이나 표석 등이 곳곳에 있다. <표석을 따라 경성을 거닐다>(유씨북스 펴냄)는 이런 표석들을 통해 알아가는 우리의 지난 역사다.

서울 옛 이름 중 하나인 경성은 강제 병합한 일본이 한성(한양)을 격하해 개칭해 부른 것이다. 이런 경성을 책 제목에 넣은 이유는 서울에 있는 300여 개의 표석 중 일제강점기의 사건 및 인물과 관련된 표석 39개를 통해 100년 전 우리의 실상을 들려주기 때문이다.

'경성의 모던걸과 모던보이는 영화관에서 사랑을 나누며 유행을 공유했다. 그렇다고 나란히 앉아서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부인석'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부인석은 극장이 생긴 초기에는 한산했으나 점차 관객이 늘기 시작하여 1920년대 말에는 노부인, 여염집 부녀, 기생, 여학생 등으로 만원을 이루었고, 그중 '성(性)에 갓 눈 뜬 여학생이 부인석의 과반수를 차지했다. (…)대부분의 극장들은 무대와 객석을 구분하는 액자 건축 구조인 프로시니엄 아치 형태를 갖추었으나 객석 의자도 없었고, 전등으로 조명할 정도였다. 음향시설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심지어 화장실도 있지 않아서, 믿기지 않겠지만 작은 요강을 갖고 입장하는 여성도 있었다.' - 20~25쪽 부분 정리 인용.

<표석을 따라 경성을 걷다> 책표지.
 <표석을 따라 경성을 걷다> 책표지.
ⓒ 유씨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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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개항과 함께 유입된 우리의 극장 초기 풍경과 흥망성쇠 등을 알 수 있는 ▲극장길-영화에서 근대 교양을 배우다를 시작으로 ▲기생길-연예인 스타가 된 기생들 ▲공원길-공공의 사회 공간을 만들다 ▲문인길-억압당한 예술인의 자의식 ▲애국지사길-투사가 된 선비들 등 12개 주제로 나눠 들려준다.

강우규 의사의 남대문역 폭탄 의거는 열 번째 ▲의열투쟁길-목숨을 건 항일투쟁길 편에서 다룬다. 김익상, 나석주, 송학선 등과 같은 의열단들의 의거와 함께 일제강점기 조선의 경제를 착취하고 붕괴하는 온상이었던 식산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 독립 운동가들을 모질게 고문한 것으로 악명 높은 옛 종로경찰서(옛문서생활사박물관) 등을 만날 수 있다.

내용에 앞서 표석을 따라 여행 할 수 있는 지도를 넣은 것도 이 책의 돋보이는 점이다. 함께 둘러보면 좋을 관련 유적지까지 넣어 활용도에 따라 훨씬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게 했다.

서울역의 전신인 당시의 남대문 정거장 모습이나 개관 당시의 국도극장이나 우미관, 나석주 의사의 의거 보도 등 당시와 관련된 사진들과 근래의 사진 등이 풍성해 볼 거리가 많은 것도 책을 읽는 재미 중 하나. 이런 책을 읽으며 독자로서 기대, 그런 것이 생겼다.

이 책에서 다룬 표석, 그 나머지를 이 책처럼 어떤 테마를 정해 들려준다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 역사를 훨씬 흥미롭고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것이었다. 이런 기대로 물었다. 아래는 전국역사지도사모임 대표 집필진 한사람인 김태휘씨가 들려준 답이다.

-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인데 표석조차 없어서 아쉬운 곳도 있을 것 같다.
"남산의 조선신궁을 지었던 자리를 비롯하여 왜성대가 있던 자리다. 조선신궁이 있던 자리는 조선 건국 후 국가의 태평성대를 기원하고자 남산에 지은 국사당 터다. 일제는 남산의 국사당 격을 낮춰 인왕산으로 옮긴 후, 여의도 공원 면적 2배에 달하는 대지에 조선신궁을 지어 강제 참배토록 했다.

어린 학생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도 참배하도록 강요했는데, 전차가 남산이 보이는 부근을 지날 때면 차장이 차를 세우고 승객들에게 조선신궁을 향해 묵념하게 했을 정도였다. 하필 남산에 조선신궁을 지어 참배를 강요한 것은 우리의 민족성을 짓밟는 동시에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고자 함이었다. 그런데 이런 현장에 이렇다 할 표석조차 없어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질까 우려 된다.

남산은 서울의 중심에 위치하면서 역사의 많은 질곡을 담고 있는 곳이다. 그런 굴곡의 흔적들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간다. 국권 피탈의 현장이었던 왜성대의 일제 흔적은 정확이 언제인지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암울했던 역사의 흔적을 기억하고 들춰내는 일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하지만 한 나라의 역사에 영광만 있을 수도 없고, 아픔과 부끄러움도 기억해야 할 우리의 역사다. 잊지 말아야 할 역사와 그 현장을 찾아 사실을 담은 안내판이나 표석 하나 정도는 마땅히 남겨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종대왕 나신 곳 표지석.
 세종대왕 나신 곳 표지석.
ⓒ 전국역사지도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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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통인시장 가는 길에서 만날 수 있는 서촌 '세종대왕 나신 곳' 표지석.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통인시장 가는 길에서 만날 수 있는 서촌 '세종대왕 나신 곳' 표지석.
ⓒ 전국역사지도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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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석은 있으나 사람들의 관심이 적어 아쉬운 곳도 있을 것 같다.
"경복궁역 2번 출구로 나와 세종마을(현재는 서촌으로 더 알려져 있음) 통인시장 방향으로 가다보면 '세종대왕 태어나신 곳'이란 표석 하나를 좁은 보도에서 만나게 된다. 세종대왕은 한글창제를 비롯하여 과학, 문화,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식견으로 나라를 이끈 위대한 지도자이다. 그런데 이런 분의 탄생지도 정확하지 않은 데다가, 길가 변에 표석하나 덩그러니 있는 것이 고작이다. '세종대왕 태어나신 곳' 표석과의 첫 만남은 충격이었고, 두고두고 씁쓸했다. 그런데 표석이 있어도 관심 두고 읽는 사람조차 거의 볼 수 없다. 세종대왕 나신 곳만이 아니다. 이런 게 우리 현실이라는 것이 씁쓸하고 슬프다."

- 저자 '전국역사지도사모임', 어떤 단체인가?
"문화유산연구모임이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했었다. 어느 날, '전국적인 모임으로 확장해 서로 교류하면서 배우고 그러면 보다 좋은 결과가 있겠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만큼 훨씬 다양한 시각의 연구와 객관적인 자료가 가능 하겠다' 싶더라. 그래서 2015년에 결성하게 됐다.

역사 문화가 살아 숨 쉬는 현장에서 활동하는 역사지도사들의 모임이다. 생활 속에서 우리 역사와 문화를 경험하고 향유할 수 있는 살아있는 역사 교육, 역사 문화의 대중화를 위해 다양한 학습 자료를 개발하려 노력하고 있다. 단편적인 역사 지식보다는 문화와 결합하여 시공간을 넘나들며 역사의 맥락과 당대의 문화상을 이해할 수 있는데 초점을 맞춰서 활동하고 있다.

현재 200여 명이 활동 중이다. 매월 주제를 정해 강연 또는 답사를 진행한다. 초보자에게는 우리 역사문화에 대한 기초지식을 전달함과 동시에 우리문화에 대한 가치를 인식시켜 줌으로써 소중한 자원으로서의 역사를 알게 하고, 전문가들에게는 심화학습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1898년 9월 1일의 ‘여권통문' 참여자들.
 1898년 9월 1일의 ‘여권통문' 참여자들.
ⓒ 사단법인 역사.여성.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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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에 비해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아 아쉬운 역사 한 컷'도 만났을 것 같다.
"1898년 9월 1일의 '여권통문(女權通文)'이다. 당시 여성들 대부분은 가부장적 전제주의와 조혼제도, 축첩제도, 과부재가금지제 등과 같은 악법과 악습의 굴레 속에 있었다. 여권통문은 여성들의 교육받을 권리와 직업권, 정치참여권을 사회와 국가를 향해 요구함과 동시에 표방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인권선언이다.

다양한 신분의 여성들이 참여했다. 처음에는 300여 명이 참여했는데, 나중에는 500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열흘 후인 9월 12일에 조선 최초의 여성단체 '찬양회'가 설립되었고, 이듬해 4월에 순수민간 자본에 의해 순성여학교가 설립되었다.

119년 전 당시 독립신문 등 여러 신문들이 연일 보도할 정도로 중요한 사건이었다. 여성들의 인권을 전면에 내세운 선언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편이다. 게다가 1898년이다. 우리나라 여성들의 자주적 의지가 여실한 여권통문의 정신과 취지를 널리 알려, 9월 1일이 '한국 여성의 날'이 된다면 그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지 싶다."

- 아마도 책속 내용으로 봐서 국정교과서 반대 입장일 듯한데 우리의 교과서 아쉬운 점은?
"지면상 일일이, 그리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못함이 좀 아쉽다. 근·현대 친일, 냉전과 반공, 근대화 정책, 정경유착 부분이 왜곡되거나, 중요한 부분이 소홀히 다뤄져 아쉬움이 많다. 양극화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개인주의가 강해졌다. 이런 만큼 소외되고 핍박받는 대중을 위한 정의로운 사회구현 관련 내용이 추가되었으면 좋겠다. 북한과의 관계 등 자주평화통일에 대한 내용도 최근의 현실을 반영, 좀 더 적극적 의지로 작성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 책속 옛 사진들, 귀한 사진들도 많더라.
"올 9월에 서울도서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본 책과 관련, 서울시 역사문화재과, 서울도서관, 전국역사지도사모임 공동주최로 약 한 달간 표석관련 자료, 사진, 영상 등을 전시할 예정이다."

서울시 역사문화재과에서 표석 관련 회의중. 왼쪽에서 두 번째가 김태휘씨.
시계방향으로 팀장, 공동집필자 김미숙 씨와 정순희 씨, 그리고 김용수표석 담당 주무관이다.
 서울시 역사문화재과에서 표석 관련 회의중. 왼쪽에서 두 번째가 김태휘씨. 시계방향으로 팀장, 공동집필자 김미숙 씨와 정순희 씨, 그리고 김용수표석 담당 주무관이다.
ⓒ 전국역사지도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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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설날 연휴를 이용해 정릉과 흥천사 답사 중인 전국역사지도사모임 회원들.
 2017년 설날 연휴를 이용해 정릉과 흥천사 답사 중인 전국역사지도사모임 회원들.
ⓒ 전국역사지도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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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답사와 성실한 자료보충'이 느껴지는 고마운 책이다. 취지가 궁금하다.
"회원들의 숱한 답사와 자료 연구로 나온 첫 결과물이다. 현재의 우리 서울은 2천년 역사를 함께한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역사도시이다. 일제강점기와 대한제국, 조선시대 등의 많은 자료와 함께 그 역사적, 장소적 특징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문화재보존 방법과 보존에 대한 인식 결여로 최근까지도 중요한 건물들이 헐리거나 묻히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역사현장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함께 아쉽게나마 표석이라도 세웠다는 것이다.

시대의 발전과 변화로 역사 현장들이 그대로 보존되기는 사실상 힘들다. 하지만 그 곳에 얽힌 사건이나 관련 인물까지 잊혀선 안 될 것이다. 답사를 하며 종종 느끼는 것인데, 서울 시내 곳곳에 중요한 표석들이 세워져 있음에도 지나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렇게라도 부각시킴으로써 기억해야 할 그 장소의 역사를 알리고 싶었다.

표석은 잊혀 가는 역사의 한 페이지에 다시 그어진 밑줄과도 같다. 그 흔적을 들여다보면서 사라진 것들을 상상해보고, 그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 또한 역사를 옳은 방향으로 이끄는 하나의 태도가 아닐까. 표석에 관심 두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 서울에만 표석이 300개가 넘는다. 여러 주제의 이런 책이 몇 권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시대별 표석이야기를 기획 중이다. 현재는 조선시대 표석을 준비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전기, 중기, 후기의 장소성과 인물위주의 스토리텔링도 가능하겠는데, 시대에 따른 왕과 신하 등 다양한 전개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광복 후의 현대인물과 사건 관련 표석에도 관심이 많다. 공간적으로도 지역별, 장소별 시간 순 역사전개 등 역사인식 및 역사 서술방법을 다각화 하려는 시도도 하고 있다.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이 책처럼 <표석을 따라 OO을 거닐다>, 그러니까 '경성' 대신  다른 주제어를 넣은 시리즈로 발간할 생각이다.

전국역사지도사모임의 별도 프로그램으로 <조선 왕릉을 따라 홀로 거닐다>(가제)를 공동으로 쓰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속담과 설화 속에 나오는 우리나무 이야기>(가제), <옛 그림 속에 나오는 화훼영모의 속 깊은 이야기>(가제)를 쓰고 있다."

덧붙이는 글 | <표석을 따라 경성을 거닐다>(전국역사지도사모임) | 유씨북스 | 2016.11.30 ㅣ정가;13800원.



표석을 따라 경성을 거닐다 - 잃어버린 역사의 현장에서 100년 전 서울을 만나다

전국역사지도사모임 지음, 유씨북스(2016)


태그:#표석(표지석), #조선신궁(남산), #전국역사지도사모임, #강우규 의사, #유씨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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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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