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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급대원 박윤택 소방교(왼쪽)가 동료 구급대원과 함께 저혈당 쇼크로 쓰러진 환자를 응급처치하고 있다.
 구급대원 박윤택 소방교(왼쪽)가 동료 구급대원과 함께 저혈당 쇼크로 쓰러진 환자를 응급처치하고 있다.
ⓒ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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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서에서 가장 바쁜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구급대원이란 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구급대원이 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하며, 국가 자격시험에도 합격해야 비로소 구급차에 몸을 싣고 시민 곁으로 달려갈 수 있다. 1분 1초를 아끼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리는 그들은 현장의 최일선에서 사람을 살리는 전문가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출동 소리에 식사를 거르는 일은 다반사고, 심지어 현장에서는 개념 없는 사람들로부터 심한 욕설과 폭행을 당하는 경우도 많아 "내가 이러려고 구급대원이 되었나?" 하는 자괴감이 들 때도 많다.

그래서 119 구급대원은 아무나 할 수도 없고, 또 아무나 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그만큼 고도의 전문성과 높은 수준의 헌신이 요구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소방에 입문한 지 올해로 11년 차가 된 '구급덕후' 박윤택 소방관을 지난 15일 경기도 오산소방서에서 만났다. 그를 통해 구급대원으로서의 보람, 사람을 살리기 위해 1초마저도 아껴가며 살아가는 그의 꿈과 비전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어보았다.

구급과의 운명적 만남

구급대원 박윤택 소방교가 소방서를 방문한 어린이들에게 구급장비를 소개하고 있다.
 구급대원 박윤택 소방교가 소방서를 방문한 어린이들에게 구급장비를 소개하고 있다.
ⓒ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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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나서 반갑다. 맨 처음 소방에 입문한 것은 언제인가?
"2006년 12월부터 소방과 인연을 맺게 됐다."

- 그동안의 경력에 대해 간단한 소개 부탁드린다.
"소방에 입문한 뒤 처음 8년 동안은 구급대원으로 현장에서 근무했고, 3년 전부터는 구급 행정 업무를 맡아서 근무하고 있다."

- 구급대원으로서 현장과 행정을 두루 거쳤다. 현장과 행정 간의 괴리감은 없는가?
"구급 행정 업무를 보면서도 현장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틈틈이 구급차를 타고 구급대원들과 함께 출동하고 있다. 현장을 자주 나가봐야 현장에서의 문제점을 알 수 있고, 향후 개선해야 할 부분들을 정책에 효과적으로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외래교관으로도 활동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디서 누구를 가르치는 건가?
"2011년부터 경기도소방학교에서 신임 소방공무원들과 2급 응급구조사 양성반에서 구급 분야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 마산대학교에서 응급구조학과 물리치료학을 전공한 뒤 병원에서 5년 동안 응급구조사로 근무했다고 들었다. 어떤 계기로 소방관이 된 건가?
"학교에서 공부할 때도 그랬고, 또 졸업 후 병원에서 응급구조사로 근무할 때도 느낀 점이지만 환자를 위한 진정한 골든 타임은 병원에 도착하기 전 단계라고 생각했다. 119 구급대원이 이런 상황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판단돼 소방관으로 이직하게 됐다."

'구급덕후'의 사람 살리는 이야기

지난 해 5월 박윤택 소방관이 '한국형 병원 전 시나리오' 출판 기념회에서 12명의 공동저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 해 5월 박윤택 소방관이 '한국형 병원 전 시나리오' 출판 기념회에서 12명의 공동저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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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급 업무는 다른 분야에 비해 힘들고 스트레스도 많은 업무다. 어떤 애로사항이 있는가?
"우선 낮과 밤이 불규칙한 교대근무를 1순위로 꼽을 수 있겠다. 또 대부분의 구급대원들이 느끼는 거지만 술에 취한 사람들로부터의 욕설과 폭행, 장난 전화, 그리고 소방차가 지나가도 길을 비켜주지 않는 상황들이 애로사항이다." 

- 지난해 의미 있는 책이 출간되었다고 들었다. 책에 대한 간단한 설명 부탁드린다.
"지난 해 5월 20일 '한국형 병원 전 시나리오'(외상편, 비외상편)라는 책이 출간됐다. 총 2년 2개월이 소요되는 길고 고된 작업이었다. 그동안 외국의 사례를 소개한 책들은 많았으나 국내 구급현장의 사례를 소개한 책이 없어 힘들게 작업했다. 이 책을 집필한 12명의 공동저자들은 대부분 현직 소방관들로 그동안 그들이 실제 현장에서 다루었던 사례와 자료들을 우리나라 현장여건에 맞게 시나리오 형식으로 묶어 출간하게 됐다."

지난 해 5월 출간된 '한국형 병원 전 시나리오' 현직 소방관들이 대거 참여해 공동집필한 이 책은 한국 특성에 맞는 시나리오 제공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 해 5월 출간된 '한국형 병원 전 시나리오' 현직 소방관들이 대거 참여해 공동집필한 이 책은 한국 특성에 맞는 시나리오 제공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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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 나오고 주변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페이스북을 제외하고 따로 홍보 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책이 나오고 입소문을 타면서 처음에 목표했던 800부를 훨씬 상회하는 판매가 이뤄졌다. 꼭 필요한 책을 출간해 줘서 고맙다는 주위 분들의 격려도 있었다. 이 책은 현재 6개 대학교에서 교재로 채택돼 사용되고 있다."

- 인세 일부를 부상당한 구급대원에게 기부했다는데 어떤 사연이 있었나?
"책을 출간하기 전부터 공동저자들과 약속한 일이 하나 있다. 책을 판매해서 수익이 발생하면 사회에 기부하거나 이 분야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전달하자고 말이다. 이번에 지원하게 된 구급대원의 경우 예전에 함께 구급 사례 연구모임에서 같이 활동했던 동료다. 그런데 불의의 사고로 힘든 치료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인세의 일부를 기부하게 되었다."

- 그동안 여러 사고현장에 출동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출동이 있다면?
"현장은 항상 기쁨과 슬픔이 교차되는 곳이다. 구급대원이라면 누구나 그런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불치병을 앓고 있던 4살 어린아이의 심장이 멈춘 것을 그 아이의 부모와 함께 살리고자 몸부림쳤던 기억이 지금도 가슴 속 깊이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 2013년 죽어가는 생명을 심폐소생술로 살려 '하트세이버' 인증도 받았다. '하트세이버'란 무엇이며 어떤 의미가 있는가?
"심장이 멈춘 환자를 구급대원이 심폐소생술을 통해서 살렸을 때 받는 일종의 훈장이다. 구급대원들에게는 자부심과 실력의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2009년 박윤택 소방관이 신종플루 현장에서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
 2009년 박윤택 소방관이 신종플루 현장에서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
ⓒ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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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메르스 당시 박윤택 소방관이 구급대원 감염방지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2015년 메르스 당시 박윤택 소방관이 구급대원 감염방지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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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과 2015년에 신종플루와 메르스 현장에서도 활약했다. 그 당시 구급대원의 보건과 안전이 염려된다는 우려가 컸다. 현장활동을 할 때 어떤 부분들이 지원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구급대원으로 근무하는 동안 두 차례의 감염병 사태를 겪었다. 그 당시 소방과 보건복지부 간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현장에서 고충이 많았다. 신속하지 못한 상황 전파와 지역 보건소와의 사무분장에서도 다소 혼선이 있었다. 다행히 지난해 구조구급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지역병원, 보건소와의 정보전달 체계가 구축돼 현장대응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는 구급대원들이 개인보호장구를 포함해 철저한 출동대비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중요한 요소다."

구급대원은 사람을 살리는 전문가

지난 해 8월 박윤택 소방관이 서울에서 개최된 'EMS ASIA 2016'에 참석해 동료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 해 8월 박윤택 소방관이 서울에서 개최된 'EMS ASIA 2016'에 참석해 동료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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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아시아 응급구조사 학회 및 다양한 세미나에 참여하는 등 연구에 열정이 많은 것 같다. 언제까지 공부할 계획인가?
"아마도 퇴직하는 그 날까지 계속되어야 하지 않을까?" (웃음)

- 구급대원을 가르치면서 후배에게 정맥주사 연습을 하라며 자신의 팔을 내밀었다는 에피소드도 들었다. 무슨 내용인가?
"소방학교에 입교했던 한 신임소방관과의 이야기다. 구급대원에게 있어서 중증환자를 만났을 때 정맥로 확보는 필요한 처치 중 하나인데, 유독 그 후배는 정맥주사를 놓는 데 많이 힘들어했다. 그래서 충분히 숙달될 때까지 연습하라며 내 팔을 제공했던 적이 있다. 지금은 하트세이버를 두 차례나 받은 유능한 구급대원으로 성장했다."

- 구급 업무 향상을 위해 구급대원들이 노력해야 하는 부분과 정부의 역할에 대해 조언을 해 주신다면?
"구급대원 스스로도 업무의 질을 높이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 사실 구급분야는 연구해야 할 부분이 무궁무진하다. 국가 차원에서는 구급대원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평상시 구급대원과 병원(특히 의사)과의 협업이라든지 의사소통은 어떤 편인가?
"스마트 의료지도를 통해 꾸준히 협업하고 소통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영상통화 기능을 이용해 의사로부터 의료지도를 받으면서 현장에서 선제적으로 응급처치를 하고 있다. 그 결과, 소생률이 상승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소생률이 높다는 미국의 애리조나에 버금가는 수준이 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것이다."

- 구급차를 '무료택시'로 생각하는 사람들, 구급대원에게 욕설하고 폭행하는 사람들 때문에 많은 구급대원들이 지쳐가고 있다. 시민들에게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길거리에 지나가는 구급차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다. 구급대원은 누군가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욕설과 폭행보다는 격려와 응원이 필요하다."

- 'P-EMS(병원 전 사례연구 모임)'란 연구회 활동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어떤 모임인지 소개해 달라.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구급현장에서 있었던 사례들을 발표하고 같이 고민하는 연구모임이다.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참석해서 조언을 아끼지 않는 응급의학과 최덕수 선생님과 회원들이 지난 2011년부터 모임을 계속해서 이어오고 있고, 매년 사례집도 발간하고 있다."

- 이 시간 수고하고 있을 전국의 구급대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면 119 구급대는 비약적인 발전을 해 왔고 또 앞으로도 더 많은 발전을 해나갈 것이라 생각한다. 전문소생술을 위한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 확대와 역할을 앞두고 여러 가지로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앞으로도 구급대원들 간에 많은 연구와 정보공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 마지막으로 박윤택 소방관의 계획이나 목표를 들어보자.
"공부를 더 많이 해 보고 싶다. (미소) 우리나라에는 아직 현장에서 구급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연구학회가 없다. 향후 이런 학회가 만들어진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해 구급대원의 수준을 상향 평준화 시키고 최적화된 현장활동을 만들어 가고 싶은 것이 꿈이다."

- 오늘 바쁜 시간을 쪼개서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하다. 앞으로도 박윤택 소방관의 건승을 기원한다.

박윤택 소방교는 올해로 11년 차 소방관이다. 구급 분야 전문가로 관련 분야에 대한 강의와 저술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현장에 답이 있다고 믿는 그는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에 더 많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믿는 진정한 '현장덕후'다.


태그:#박윤택 소방관, #이건이 만난 사람, #이건 선임소방검열관, #이건 소방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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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출생. Columbia Southern Univ. 산업안전보건학 석사.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소방칼럼니스트. <미국소방 연구보고서>, <이건의 재미있는 미국소방이야기> 저자.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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