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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의 변신, 이렇게까지

평일인데도 고속도로 초입은 답답합니다. 이젠 고속도로는 시도 때도 없이 막히는 모양입니다. 차간거리를 좁히며 운전하다 장수나들목을 지나면서 정상속도를 되찾습니다. 차량속도가 빨라지니 마음까지 뚫리는 것 같습니다.

서해안고속도로 하행선에 있는 화성휴게소입니다.
 서해안고속도로 하행선에 있는 화성휴게소입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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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고속도에 진입하면서 첫 번째 만나는 화성휴게소. 아내와 나는 서둘러 화장실부터 찾았습니다.

화장실 입구에 생뚱맞은 글귀 하나가 눈에 띕니다.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은 누구나 왕이다.'

보통 '손님은 왕이다'라는 말은 많이 들어보았지만, 화장실에서 누구나를 왕으로 대접한다는 문구가 좀 이색적입니다.

서해안고속도로 하행선 화성휴게소의 남자 화장실 출입구에 있는 문구가 이색적입니다.
 서해안고속도로 하행선 화성휴게소의 남자 화장실 출입구에 있는 문구가 이색적입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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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유로 저런 문구를 달아놓았을까? 궁금합니다. 의미를 찾으러 이곳저곳을 살펴봅니다.

화성휴게소 화장실은 깨끗함을 넘어 우리나라 전통미를 살린 분위기가 예사스럽지가 않습니다. 여느 화장실과는 달리 예스러움이 있는 사진들로 전시 화랑을 방불케 합니다.

화장실 벽면에 귀면와당(鬼面瓦當)의 고풍스런 전통문양 액자가 많이 걸려 있습니다. 귀면와당은 귀신의 얼굴을 형상화한 기와의 마구리입니다. 귀면와당에는 잡귀나 재앙을 막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웃음을 가득 머금고 있는 와당의 모습이 익살스럽고 정겹습니다.

볼 일을 보고 손을 씻는데, 세면기가 좀 남다릅니다. 항아리 모양의 특이한 세면기 그릇이 고급스러워 보입니다.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이 따뜻합니다. 따스한 물로 비누거품을  내어 손을 닦으니 개운합니다.

왕이 출입하는 화장실이라?

화장실 밖으로 나왔습니다. 출입문 위쪽에 '화성행궁(華城行宮)'을 형상화 상징물이 보입니다. 아까 본 문구가 이제 확실히 이해가 갑니다.

'아! 행궁을 출입하는 것이니까 왕처럼 대접한다는 표현을 한 것이구나!'

어찌되었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니 화장실을 다녀온 느낌이 매우 좋습니다.

화성(華城)은 경기도 수원시에 있는 조선조 말 축조된 성곽(城郭)입니다. 사적 제3호이며, 199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경기도 수원화성의 야경을 담은 사진이 걸려있습니다.
 경기도 수원화성의 야경을 담은 사진이 걸려있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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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은 정조임금께서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으로 축성이 되었다고 합니다. 당쟁의 근절과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정조의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것이기도 하구요.

역사적 사실을 옮겨 놓으려는 화성휴게소의 착안이 신선합니다.

그런데, 화성휴게소 남녀 화장실 출입구가 문구는 다릅니다. 여자 화장실에는 남자화장실과는 달리 큰 문자로 '해우소(解憂所)'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이곳을 찾으시는 분은 누구나 왕비가 된다'라고 했으면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 쪽을 왕이라 했으면, 다른 쪽은 왕비로 추어주면 여성들도 좋아하지 않을까요?

화장실 출입구. 여느 출입문과 달리 태극 문양의 대문에다 전광판이 있습니다. 전광판에는 화장실 이용 알림 현황이 있어 편리합니다.
 화장실 출입구. 여느 출입문과 달리 태극 문양의 대문에다 전광판이 있습니다. 전광판에는 화장실 이용 알림 현황이 있어 편리합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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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출입구에는 화장실 이용 현황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친절한 전광판이 있습니다. 급한 나머지 무턱대고 화장실 문을 두드려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대기술이 낳은 배려가 느껴집니다.

출입구 한편에 휴지통 없는 화장실이라는 입간판도 눈길을 끕니다.

'화장지는 변기에, 생리대는 위생용품 수거함에!'

휴지로 인해 변기가 막히는 일이 없고, 자주 청소를 한다는 소리인 것 같습니다. 휴지통 없는 화장실, 좋은 발상입니다. 여러 사람이 쓰는 화장실에서 더러운 오물이 묻어 있는 수북한 휴지통의 휴지를 보면 기분이 별로일 때가 많습니다. 악취에다 눈에도 거슬립니다.

상 받을 만하네!

화장실 문화 품질 인증 획득과 국민행복 화장실 우수상을 받은 모양입니다.
 화장실 문화 품질 인증 획득과 국민행복 화장실 우수상을 받은 모양입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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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 나와 요모조모를 둘러보는 데, 뒤이어 나온 아내가 말을 꺼냅니다.

"여기 화장실 정갈해서 너무 좋아요! 분위기도 좋고."
"여긴 국민행복 우수 화장실이래! 화장실 문화 인증도 받았네!"
"어쩐지!"

우리는 상 받을 만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집니다. 상은 아무한테나 주는 것이 아닌 모양입니다.

화장실에는 휴지통이 없음을 알리는 입간판. 위생적인 면을 많이 고려한 것 같습니다.
 화장실에는 휴지통이 없음을 알리는 입간판. 위생적인 면을 많이 고려한 것 같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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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르면 나름 마케팅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주말에는 열린 공간에서 음악회도 열고, 아이디어 공모전을 열기도 합니다. 지역 특산물도 싼 가격에 팔기도 합니다. 휴게소 지명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로 공원처럼 가꿔놓은 곳이 많습니다.

휴게소는 운전자는 물론 여행객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장소입니다. 용변을 보고, 음식으로 허기를 달래고, 휴식을 취하는 시설입니다. 또 주유를 위해 들르기도 하는 곳입니다. 휴게소가 주는 편안함, 안전운전에 큰 보탬을 줄 것입니다.

나는 아내에게 말하였습니다.

"이곳은 왕의 쉼터라는 생각이 들었네! 내가 마치 정조 임금처럼 말이야!"

뭔가 색다르고 정갈함이 있는 화성휴게소. 다음 기회에도 또 들리고 싶은 참 좋은 휴게소입니다.


태그:#화성휴게소, #화장실 문화, #수원화성,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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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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