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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전,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일본어로 완역한 우에노 미야코(上野 都, 70)씨 집을 찾아가기 위해 오사카 히라카타공원역(枚方公園驛)에서 내렸다. 미리 알려준 주소를 들고 찾아가는 길은 제법 경사진 언덕길이었다. 역에서 십여 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까지는 말끔한 단독 주택들이 줄지어져 있었고 2차선 도로에는 이따금 차들이 지날 뿐 비교적 한산하고 조용한 동네였다.  

"어서 오세요. 많이 춥죠?"

초인종을 누르자 유창한 한국어로 고향에서 반가운 동생이라도 온 듯 활짝 미소 띤 얼굴로 기자를 맞이해주는 우에노 시인 집에 들어서자 겨울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었고 거실 너머 탁 트인 창으론 건너편에 빼곡하게 들어찬 주택들이 보였다. 4층짜리 아파트 단지 가운데 전망이 좋은 4층에 자리한 집안은 밝고 환했다. 책장과 탁자, 크고 작은 화분들이 간소하면서도 깔끔한 모습으로 제자리에 알맞게 놓여 있어 시인의 조용한 성품이 느껴졌다.

칠순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앳된 모습의 우에노 미야코 시인
▲ 우에노 미야코 1 칠순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앳된 모습의 우에노 미야코 시인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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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한 우지차를 끓여 내온 우에노 시인과 마주 앉은 기자는 이틀 전 (13일, 오후 3시~5시) 교토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윤동주 시비 앞에서 함께 했던 <일본ㆍ한국ㆍ재일코리언 시인 공동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가볍게 나눴다. 일본 시인들이 주축이 된 이날 추모회에서 우에노 시인은 윤동주의 '뚜르게네프의 언덕'을 낭송했고 기자는 우에노 시인이 쓴 '손쉽게 쓰인 시 - 때를 이어 응답하는 노래-'를 낭송했다.   

"…창문을 열면
언제나 바람은 북간도로 불고
흰 구름은 당신의 언어를 태우고 서쪽으로…"  

우에노 시인과 두 시간여 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기자의 가슴 속에는 내내 이 시구(詩句)가 떠올랐다. 윤동주 시인의 시를 사랑하고, 윤동주 시인의 삶과 사상을 흠모하여 윤동주의 한글 시 117편을 완벽한 일본어로 번역한 우에노 시인 마음의 고향은 '북간도이며 바람이며, 별이고, 언어(한국어)였음을 대담 내내 느꼈다.  

우에노 미야코 씨가 윤동주 전작시를 일본어로 번역하여 《空と風と星と詩(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도쿄 콜삭사(コ-ルサック社)에서 펴낸 것은 2015년 7월이었다. 그간 윤동주 시인의 단편적인 작품 번역과 논문이나 연구서 등은 일본에서 많이 나왔지만 문학성이 뛰어난 중견시인이 뒤친(번역) 완역집은 우에노 시인의 책이 처음이다.

일본의 대표 시인 중 하나인 이시카와 이츠코(石川逸子, 83)씨는 "우에노 시인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윤동주 시인의 섬세한 마음과 영혼까지 느끼게 해주는 뛰어난 번역가"라고 평가한 바 있다. 

우에노 미야코 시인이 번역한 일본어 완역판 윤동주 시집 표지
▲ 윤동주 시집 우에노 미야코 시인이 번역한 일본어 완역판 윤동주 시집 표지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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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우에노 시인의 완역본이 나오기 전에 완역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윤동주의 전 작품이 처음으로 완역된 것은 27년 전으로 이부키 고우(伊吹 鄕)씨에 의해 일본에 소개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부키 씨의 번역은 시어(詩語)가 품고 있는 섬세하고도 미묘한 것들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는 평이 있어 왔다.   

그 한 예로 '서시(序詩)' 가운데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부분을 들 수 있다. 문제의 부분을 보면 이부키 고우 씨의 번역은 "生きとし生けるものをいとおしまねば(모든 살아있는 것을 가엾게 여기지 않으면)"으로 돼 있고, 또 다른 번역으로 아이자와 카쿠 씨는 "すべての死にゆくものを愛さねば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하지 않으면)이라고 되어있다.  

그런데 우에노 미야코 씨의 번역본에서는 그보다 더 깊은 내용이 함축된 "すべて滅びゆくものを慈しまねば"[모든 죽어가는(단순한 죽음이 아닌 소멸해가는 것을 포함) 사랑해야지(같은 사랑이라도 자비심을 포함한 사랑)]으로 번역돼 있다.

이 점은 올해 <윤동주탄생100주년> 기념으로 따끈따끈하게 막 출판된(2017년 2월 16일) 《生命の詩人·尹東柱(空と風と星と詩 誕生の秘蹟(생명의 시인 윤동주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탄생의 비적)》을 쓴 타고 기치로(多胡 吉郞) 씨도 지적하고 있다.  

윤동주가 일본에서 마지막 사진을 찍은 장소로 알려진 우지시의 다리를 찾은 우에노 미야코 시인
▲ 우지시의 달인 윤동주가 일본에서 마지막 사진을 찍은 장소로 알려진 우지시의 다리를 찾은 우에노 미야코 시인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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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에 나오는 죽다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시인에게 있어 죽어가는 것이란 대관절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를 풀어내는 것이 서시에 있어서 최대 난관이다.(p25)"라고 말할 정도로 시어(詩語) 하나하나가 품고 있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타고 기치로 씨는 NHK 피디 출신 작가로 1995년 한국의 KBS와 공동으로 NHK스페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ㆍ일본 통치하의 청춘과 죽음>을 제작한 베테랑 윤동주 연구자이다.   

그는 윤동주 서시에 나오는 '죽는 날'과 '모든 죽어 가는 것'의 의미를 찾기 위해 10년을 영국에서 살면서 전전긍긍했다고 그의 신간에서 고백했다. 그 이야기는 《英國で出會ったmortalと序詩の眞義(영국에서 만난 mortal과 서시의 진의, p20~27)》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다.  

그만큼 번역이 중요한 것이며 원작자의 의도를  완벽하게 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우에노 미야코 씨의 번역은 윤동주의 시 세계를 잘 표현한 뛰어난 완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본어 전공자인 기자 역시 우에노 미야코 씨의 번역은 '윤동주가 추구하는 시 세계를 잘 이해하고 있는 번역'이라는 생각이다.   

죽어가는 것이란 말이 단순한 '껍데기의 소멸'인지 아니면 껍데기 속에 담고 있는 '본질'까지를 포함하는 것인지는 매우 심오한 철학적인 문제인지라 번역어의 낱말 선택은 매우 신중할 수밖에 없다. 시누(死ぬ, 죽다)라고 할 것인지 호로비루(滅びる, 죽음을 포함한 멸하다)를 쓸 것인지의 문제를 포함하여 윤동주의 시 번역은 녹녹한 일이 아니었다고 우에노 씨는 기자에게 말했다.   

사실 한국어 공부 올해로 만 40년째인 우에노 씨에게 있어서 고민은 번역 그 자체보다도 하나하나의 시어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괴로움과 고통이 아니라 윤동주와 하나 되어가는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러한 산고(産苦) 끝에 나온 것이라서 우에노 미야코 시인의 윤동주 시집 완역이 갖는 의미가 큰 것이며 일본 문학계가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윤동주 완역본의 재판을 찍는다고 출판사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시집이 읽히지 않는 일본에서 좀 특이한 일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도 기쁜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일본인들이 윤동주를 통해 침략과 식민통치의 역사적 사실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아 기쁩니다."

중학생 때부터 한국어를 배워 윤동주의 시를 번역해보겠다는 당찬 꿈을 꾸었던 시업(詩業) 50년을 헤아리는 중견시인 우에노 씨는 올해로 칠순을 맞았지만 영혼이 맑아서인지 여전히 앳된 모습이다.

윤동주의 두번째 시비가 세워진 다카하라의 옛 하숙집 자리 앞에선 우에노 미야코 시인
▲ 윤동주 시비 윤동주의 두번째 시비가 세워진 다카하라의 옛 하숙집 자리 앞에선 우에노 미야코 시인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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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헤는 밤에 나오는 프란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등은 내 젊은 날의 애독시이기도 해서 윤동주의 시어들이 더욱 공감이 갑니다. 윤동주의 시는 한국과 일본을 넘어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을 겁니다. 윤동주 시인의 시 뿐 아니라 앞으로 한국인의 정체성을 듬뿍 담은 주옥같은 시를 번역하는 것이 남은 생의 과제입니다."  

조용한 목소리로 우에노 시인은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기자에게 그렇게 말했다. 우에노 미야코 시인이 가진 윤동주에 대한 사랑은 시를 뛰어넘은 윤동주에 대한 사랑이요, 그의 조국에 대한 사랑임을 알 수 있었다.

절간처럼 고요한 동네에서 마음속에 북간도를 품고 조용한 시상(詩想)으로 묵상하듯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에노 시인의 배웅을 받으며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는 길 모퉁이에 핀 붉은 매화는 벌써 봄을 품고 있었다.
 
오늘(2월 16일)은 스물일곱의 꽃다운 나이로 윤동주 시인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한 날이다. 또한 2017년은 윤동주 탄생(1917년 태어남)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로 국내외에서 많은 추모행사가 열린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윤동주의 주옥같은 시를 완벽한 일본어로 번역하여 '시인 윤동주'를 일본에 널리 알리는 새로운 지평을 연 우에노 미야코 씨에게 한국인으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우에노 미야코 (上野 都) 시인>

1947 일본 도쿄 출생
1970년 후쿠오카현립 기타큐슈대학 영미(英美)학과 졸업
1973년 후쿠오카 시잡지 '아루메' 동인
1974년 재일한국문인협회 정회원
1992~1994 오사카시 히라타타시교육위원회 조선어교실에서 한국어 수학
2015 현재 일본현대시인협회 회원
대표시집으로는 《훼어리 링스, 1968》, 《여기에, 1998》, 《바다를 잇는 밀물, 2002》, 《지구를 도는 것, 2013》 등이 있으며 번역시집으론 김리박 시인의 《견직비가, 1996》, 《삼도의 비가, 2013》 등 다수  

* 일본어 문장 속의 한자가 구자체로 된 것은 지원되지 않는 한자 때문임을 양해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신한국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태그:#우에노 미야코,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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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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