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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의 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일흔여섯 개의 호수가 있는 곳으로 잘츠(Salz)는 ‘소금’을, 감머(Kammer)는 ‘창고’를, 그리고 굿(Gut)는 ‘좋다’는 듯이니, 풀이하면 ‘좋은 소금 창고’라는 의미를 지니는 지역이 바로 ‘잘츠캄머굿’이다.
▲ 할슈타트 호수와 볼프강 호수 알프스의 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일흔여섯 개의 호수가 있는 곳으로 잘츠(Salz)는 ‘소금’을, 감머(Kammer)는 ‘창고’를, 그리고 굿(Gut)는 ‘좋다’는 듯이니, 풀이하면 ‘좋은 소금 창고’라는 의미를 지니는 지역이 바로 ‘잘츠캄머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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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주의 잘츠캄머굿(Salzkammergut, '소금창고'라는 의미) 지역은 고산지대 빙하가 녹아서 생긴 76개 호수로 이뤄진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그 중에서도 옛 소금광산 마을인 할슈타트(Hallstatt)는 세계 곳곳에서 온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볼프강(Wolfgang) 호수의 유람선을 타고 가야 만날 수 있는 슈트로블(Strobl)에서 모차르트의 어머니가 살았던 장크트 길겐(St. Gilgen)까지의 풍경은 가히 환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잘크트 길겐은 작곡가 모차르트의 어머니의 고향으로 '모차르트 음악의 자궁'과도 같은 곳이다. 이번 여행은 처음부터 아름다운 선율 속에서 보내게 되었다. 모차르트 교향곡부터 <사운드 오브 뮤직>까지 잔잔하고 아늑한 멜로디들이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

볼프강(Wolfgang)호수의 유람선을 타고 만나게 되는, 슈트로블(Strobl)에서 모차르트의 어머니가 살았던 장크트 길겐(St. Gilgen)까지의 풍경은 가히 환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 슈트로블(Strobl) 선착장 볼프강(Wolfgang)호수의 유람선을 타고 만나게 되는, 슈트로블(Strobl)에서 모차르트의 어머니가 살았던 장크트 길겐(St. Gilgen)까지의 풍경은 가히 환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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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크트 길겐은 볼프강 호수를 끼고 있는 해발 542m 지역으로 인구가 3850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호수마을이다. 이곳이 유명해진 것은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의 외가라는 점 때문이다. 장크트 길겐은 모차르트 외할아버지가 시장을 지냈으며, 모차르트 어머니의 생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둘째는 유명한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무대라는 점 때문이다. 셋째, 슈트로블에서 유람선을 타고 장크트 길겐까지 오는 할슈타트 지역의 풍광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유럽 신혼부부들의 신혼여행지로도 각광을 받는 곳이다.

장크트 길겐에는 모차르트 어머니의 생가가 보존되어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사실 모차르트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아버지 레오폴트는 아우구스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소질이 있어서 잘츠부르크 대학 법과에 입학하기 위해 잘츠부르크에 왔다가 전공을 바꿔 음악공부를 했다. 1743년 대사교 궁정악단의 바이올린주자가 되어 44년간 근무를 했다.

어머니 안나 마리아는 4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잘츠부르크로 와서 살다가 1747년 레오폴트와 결혼해 7명의 자녀를 낳았으나 모두 죽고 모차르트와 누나만이 살아남았다. 아버지 레오폴트는 꼼꼼하고 적극적인 성격이었으나 어머니는 정숙한 여자로서 환상을 가진 낙천적인 여성으로 알려져 있다. 모차르트는 1756년 1월 잘츠부르크에서 출생했는데 어머니 안나 마리아의 성격을 많이 이어받았다고 전해진다.

모차르트 엄마인 안나 마리아가 태어나서 자라난 집이다.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나서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어릴 때부터 유럽각국으로 연주여행을 다녔기 때문에 막상 외가를 방문한 적이 없다고 한다. 모차르트가 장크트 길겐을 방문해서 어머니와 누나를 만난 적이 있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 모차르트 외가 모차르트 엄마인 안나 마리아가 태어나서 자라난 집이다.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나서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어릴 때부터 유럽각국으로 연주여행을 다녔기 때문에 막상 외가를 방문한 적이 없다고 한다. 모차르트가 장크트 길겐을 방문해서 어머니와 누나를 만난 적이 있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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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크트 길겐에는 모차르트의 누나 '난네를'의 흔적도 남아 있다. 모차르트의 누나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는 피아노 연주자이자 하프시코트 연주자이기도 했다. 그녀는 어릴 때 '난네를(Nannerl)'이란 애칭으로 불렸다. 난네를은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 레오폴드 모차르트는 난네를의 재능을 보여주기 위해 아들 모차르트와 함께 그녀를 연주 여행에 데리고 다녔다.

누나 난네를은 결혼 후 외가인 장크트 길겐에 정착을 했다. 재혼인 남편이 데리고 온 5명의 아이와 새로 출산한 아이 3명, 모두 8명의 아이를 그곳에서 키우게 된다. 장크트 길겐에는 '카페 난네를(Café Nannerl)'이 있어 모차르트 누나에 대한 회상에 젖게 한다. 장크트길겐 마을에는 해발 1522m 쯔뵐페호른(Zwolferhorn)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서 볼프강 호수를 내려다보는 멋진 풍광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이용한다.

모차르트는 누나와 태어난 집에서 살다가 모차르트 부자가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뒤 1772년에 이사를 한다. 이곳에서 잘츠부르크 시대의 작품들 대다수가 작곡되었으며 콘스탄체를 데리고 아버지를 만나러 온 곳도 이 집이었다. 지금은 모차르트기념관이 되었다.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공주다.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의 손자 루이 오귀스트, 이후 루이 16세가 될 왕세자는 마리 앙투아네트와 정략결혼을 했다. 식료품 가격 폭등, 거듭된 자연 재해, 국가 재정 파탄으로 사회 불안과 불만이 고조되었고, 마리 앙투아네트를 둘러 싼 악의적인 소문이 날로 증폭되어갔다. 파리 시민들은 10월에 베르사이유를 습격했고 왕실 가족은 튈르리 궁에 유폐되었다. 루이 16세가 1793년 1월 21일에 처형되었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10월 15일 사형 판결을 받았다.
▲ 마리 앙투아네트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공주다.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의 손자 루이 오귀스트, 이후 루이 16세가 될 왕세자는 마리 앙투아네트와 정략결혼을 했다. 식료품 가격 폭등, 거듭된 자연 재해, 국가 재정 파탄으로 사회 불안과 불만이 고조되었고, 마리 앙투아네트를 둘러 싼 악의적인 소문이 날로 증폭되어갔다. 파리 시민들은 10월에 베르사이유를 습격했고 왕실 가족은 튈르리 궁에 유폐되었다. 루이 16세가 1793년 1월 21일에 처형되었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10월 15일 사형 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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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는 1762년 1월에 뮌헨으로 첫 여행을 한데 이어서, 9월에는 가족 4명이 빈을 방문했다. 10월 13일에 교외 쇤브른 이궁의 마리 테레제 여황제의 부름을 받아 어전 연주를 했다.

마리아 테레지아에게는 모차르트보다 1살 위인 공주가 있었다. 모차르트가 마룻바닥에 넘어졌을 때 함께 놀고 있던 왕녀가 부축해서 일으켜 주었다. 이 때 기뻐한 모차르트는 '나와 결혼해 달라'고 말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인구에 회자된다. 그녀는 후에 프랑스의 루이 16세의 왕비가 된 마리 앙투아네트 공주였다.

잘츠부르크는 온통 모차르트 마켓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모차르트 초콜릿이 유명하고, 그것을 파는 상점들도 도처에 있다. 모차르트 초콜릿은 미라벨에서 만든 빨강색 초콜릿과 쿠겔에서 만든 파랑색 초콜릿이 있다고 한다.
▲ 모차르트 초콜릿 잘츠부르크는 온통 모차르트 마켓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모차르트 초콜릿이 유명하고, 그것을 파는 상점들도 도처에 있다. 모차르트 초콜릿은 미라벨에서 만든 빨강색 초콜릿과 쿠겔에서 만든 파랑색 초콜릿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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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천재성을 알아본 아버지와 함께 런던, 파리, 이탈리아 등지의 유럽을 돌면서 연주생활을 했으나 금전적인 수익은 크게 없었고 다만 음악적 명성은 얻게 된다. 아버지에 의한 과도한 연주여행은 몸이 약했던 모차르트를 힘들게 했다. 이 시절에 얻은 병은 결국 모차르트가 젊은 나이인 36세에 갑작스럽게 사망하게 되는 주요 원인이 된다.

아버지의 집착과도 같은 욕심은 병적인 것이었다. 심지어 아버지는 아들이 성장한 후에는 육체적으로 이성을 그리워하는 것마저도 두려워했다. 그가 결혼하는 것조차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모차르트는 '사랑'에 목말라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항상 사랑을 찾아다녔고 음악으로 갈증을 메워나갔다.

츠부르크 중앙역에서 남쪽으로 약 2km 지점, 구시가지의 유명한 쇼핑상점들이 모여 있는 게트라이데 가세 9번지에 있는 적황색의 6층 건물이 모차르트의 생가이다. 1747년 모차르트의 일가가 집 4층에 세 들어왔고, 1756년 막내아들 볼프강이 태어났다.
▲ 모차르트 생가 츠부르크 중앙역에서 남쪽으로 약 2km 지점, 구시가지의 유명한 쇼핑상점들이 모여 있는 게트라이데 가세 9번지에 있는 적황색의 6층 건물이 모차르트의 생가이다. 1747년 모차르트의 일가가 집 4층에 세 들어왔고, 1756년 막내아들 볼프강이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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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되었든지 모차르트는 이 당시 유럽여행을 통해 결국 음악사상 최고의 작곡가로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여러 나라의 음악 중심지를 여행하고 그곳에서 머물면서 각 나라의 음악양식을 고스란히 섭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감수성이 빼어난 그는 프랑스 양식, 이탈리아 양식, 독일 양식을 혼합하여 모차르트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언어로 새롭게 태어나게 만들었다.

모차르트는 빈 시대의 음악을 열었고 개척했다. 이전의 유럽 음악의 중심지가 파리에서 디종(부르고뉴 대공국의 수도)으로, 그리고 로마 또는 베니스로 옮겨왔다면, 모차르트가 활동하던 18세기 후반기에는 음악 중심지로서 빈이 급부상하여, 약 1830년까지 그 명성을 유지하게 된다. 당시 이곳에는 역사상 최고 음악가라고 일컬어지는 네 명의 작곡가가 동시에 살고 있었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그리고 슈베르트가 그들이다.

잘츠부르크 중앙역에서 남쪽으로 미라벨 정원을 지나 약 1.5km를 가면 마카르트 광장이 있고, 광장 한쪽에 삼위일체 교회가 있으며, 그 좌측에 모차르트가 1773년부터 1780년까지 거주했던 집이 있는데, 현재는 기념관으로 공개되고 있다.
▲ 모차르트기념관 잘츠부르크 중앙역에서 남쪽으로 미라벨 정원을 지나 약 1.5km를 가면 마카르트 광장이 있고, 광장 한쪽에 삼위일체 교회가 있으며, 그 좌측에 모차르트가 1773년부터 1780년까지 거주했던 집이 있는데, 현재는 기념관으로 공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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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는 교향곡 41번 <주피터>를 비롯하여 67곡의 교향곡을 작곡했고, 피아노 소나타도 18곡을 작곡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중에서 특히 중요한 곡은, 앞서 언급했듯이 파리 시절에 작곡한 가단조 피아노 소나타와 다단조 작품(KV.457)이다. 피아노 소나타 외에 모차르트는 많은 수의 변주곡, 춤곡, 론도 등의 작품을 남겼다. 그중에서 론도(라단조, KV.511)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작품 중에서 가장 심원한 내용을 지닌 작품의 하나로 평가된다.

모차르트와 콘스탄체는 9년 동안 여섯 명의 아이를 출산하지만, 5명만이 성장한다. 모차르트는 가족과 음악을 위해 열심히 작곡하고 연주를 한다. 모차르트와 아내 콘스탄체는 경제적 관념이 없어서 삶이 점점 더 궁핍해진다. 모차르트가 오페라 작곡을 하면 성악가였던 콘스탄체는 옆에서 오페라의 소프라노 파트를 시범 삼아 불렀다고 한다.
▲ 모차르트의 아들 프란츠와 칼 모차르트와 콘스탄체는 9년 동안 여섯 명의 아이를 출산하지만, 5명만이 성장한다. 모차르트는 가족과 음악을 위해 열심히 작곡하고 연주를 한다. 모차르트와 아내 콘스탄체는 경제적 관념이 없어서 삶이 점점 더 궁핍해진다. 모차르트가 오페라 작곡을 하면 성악가였던 콘스탄체는 옆에서 오페라의 소프라노 파트를 시범 삼아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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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의 현악용 세레나데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은 물론 <소야곡(Eine kleine Nachtmusik)>(KV.525)이다. 이 곡은 매우 흥겨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으며, 그 예술적 가치도 매우 높게 평가되고 있다. 모차르트 교향곡의 진수로는 빈 시절에 작곡한 마지막 세 편의 교향곡(KV.543, KV.550, KV.551)을 들 수 있으며, 이 작품들은 교향곡 <프라하><하프너>와 더불어 오늘날에도 자주 연주된다. 5세부터 작곡을 하여 36세의 젊은 나이에 무려 627곡을 작곡한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는 '불멸의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생가 4층 전시실에는 가족 등의 초상화, 부자간의 편지 원본, 모차르트가 어릴 때 사용하던 바이올린과 비올라, 만년에  10년 동안 애용하던 콘서트용 그랜드 피아노 등의 개인적인 유품들이 유리 진열장에 보관되어 있다.
▲ 모차르트 생가의 그랜드 피아노 생가 4층 전시실에는 가족 등의 초상화, 부자간의 편지 원본, 모차르트가 어릴 때 사용하던 바이올린과 비올라, 만년에 10년 동안 애용하던 콘서트용 그랜드 피아노 등의 개인적인 유품들이 유리 진열장에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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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체험한 이탈리아식 오페라를 녹여 자신만의 창의성으로 만들어낸 <후궁으로부터의 도주 K.384>,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K.527>, <마적> 등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1791년 여름, 모차르트를 찾은 한 방문객이 모차르트에게 레퀴엠 작곡을 의뢰한다. 익명의 후원자가 신분을 감춘 채 비밀스럽게 제안한 것이다. 그런데 그해 겨울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고 만다. 죽어가는 뮤즈에게 장송곡인 '레퀴엠'을 의뢰했다는 매우 시적이고 드라마틱한 사건이 모차르트의 삶을 더욱 신비롭게 만든다. 

당대 최고의 부와 명예를 누리고 살았던 궁정 음악가 살리에르가 그의 재능을 질투하여 벌인 일이라는 음모설이 그것이고, 이러한 음모설을 근거로 만들어진 유명한 영화가 바로 <아마데우스>이다.

모차르트는 베버 가문의 큰딸 알로이지아와 사랑에 빠졌는데, 파리로부터의 귀로에 베버 가정을 방문하였으나 알로이지아의 마음은 변해 있었고, 실연한 모차르트의 눈에 비친 것은 알로이지아의 여동생 콘스탄체였다. 모차르트는 언니 대신 여동생과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실연의 아픔은 죽는 날까지 모차르트에게 정신적 외상을 남겼던 것으로 보인다.(특히 아버지와 누나의 결혼 반대가 심했다.)
▲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 모차르트는 베버 가문의 큰딸 알로이지아와 사랑에 빠졌는데, 파리로부터의 귀로에 베버 가정을 방문하였으나 알로이지아의 마음은 변해 있었고, 실연한 모차르트의 눈에 비친 것은 알로이지아의 여동생 콘스탄체였다. 모차르트는 언니 대신 여동생과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실연의 아픔은 죽는 날까지 모차르트에게 정신적 외상을 남겼던 것으로 보인다.(특히 아버지와 누나의 결혼 반대가 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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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근원적 고독과 그것을 메우기 위한 사랑에 대한 갈증이다. 그것은 첫째, 파리 연주여행 중에 날아온 어머니의 죽음에 연결되고, 둘째, 1777년 10월에 어머니와 함께 파리로 향하는 도중에 아우구스부르크를 거쳐 만하임에 5개월간 체류하다가 만난 소프라노 알로이지아 베버와의 미완성 사랑이 계기가 된다.

모차르트는 베버 가문의 큰딸 알로이지아와 사랑에 빠졌는데, 파리로 돌아가다 베버 가정을 방문하였으나 알로이지아의 마음은 변해 있었다. 실연한 모차르트의 눈에 비친 것은 알로이지아의 여동생 콘스탄체의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모차르트는 언니 대신 여동생과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실연의 아픔은 평생 모차르트의 가슴 속에 애잔하게 남아 있었으며, 그것은 창작의 원동력이 되었다.

장크트 길겐 마을 선착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모차르트 엄마 안나 마리아의 생가는 생각보다 덩그렇게 컸지만, 도처에 모차르트의 모성애와 사랑의 갈증이 배어있는 듯 보여 마음이 아팠다. 
할슈타트 호수의 남서쪽 다흐슈타인 산자락에 자리한 할슈타트는 인구 800명의 작은 마을이다. 1997년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을 정도로 오랜 역사와 빼어난 경관을 지니고 있다.
▲ 할슈타트 마을 할슈타트 호수의 남서쪽 다흐슈타인 산자락에 자리한 할슈타트는 인구 800명의 작은 마을이다. 1997년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을 정도로 오랜 역사와 빼어난 경관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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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강 호수는 서북쪽에서 동남쪽으로 11킬로미터, 깊이는 114미터이다. 호수 서북쪽에는 인구 3850명의 아름다운 마을 장크트 길겐이 있다. 여름철이면 피서객들이 몰려오는 곳으로, 독일 통일 당시의 총리 헬무트 콜이 라인란트 팔츠 주지사 때부터 해마다 여름 휴가를 보내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장크트 길겐에서 북쪽 고속도로를 향해 가면 몬트 호수가 있고, 호수 북단 마을이 몬트제이다. 이곳에는 〈사운드 오브 뮤직〉 결혼식 장면에 나오는 유명한 미하엘 교회가 있다.
▲ 장크트 길겐 마을 볼프강 호수는 서북쪽에서 동남쪽으로 11킬로미터, 깊이는 114미터이다. 호수 서북쪽에는 인구 3850명의 아름다운 마을 장크트 길겐이 있다. 여름철이면 피서객들이 몰려오는 곳으로, 독일 통일 당시의 총리 헬무트 콜이 라인란트 팔츠 주지사 때부터 해마다 여름 휴가를 보내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장크트 길겐에서 북쪽 고속도로를 향해 가면 몬트 호수가 있고, 호수 북단 마을이 몬트제이다. 이곳에는 〈사운드 오브 뮤직〉 결혼식 장면에 나오는 유명한 미하엘 교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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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과 잘츠부르크 사이에 위치한 잘츠캄머굿은 알프스의 산자락과 70여 개의 호수를 품은 오스트리아의 대표 휴양지인데,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무대배경으로도 명성을 얻었다. 영화의 무대가 됐던 대저택, 성당 역시 화제를 몰고 다닌다. 장크트 길겐, 장크트 볼프강, 볼프강 호수 등이 대표적인 명소인데, 그중에서도 '잘츠캄머굿의 진주'로 꼽히는 곳이 할슈타트 호수다.

할슈타트 호수의 남서쪽 다흐슈타인 산자락에 자리한 할슈타트는 인구 800명의 작은 마을이다. 1997년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을 정도로 오랜 역사와 빼어난 경관을 지니고 있다. 볼프강 호수 서북쪽에는 인구 3850명의 아름다운 마을 장크트 길겐이 있다. 여름철이면 피서객들이 몰려오는 곳으로, 독일 통일 당시의 총리 헬무트 콜이 라인란트 팔츠 주지사 때부터 해마다 여름 휴가를 보내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예전에는 소금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요즈음은 소금보다도 볼프강 호수와 할슈타트 호수를 끼고 형성된 앙증맞고 예쁜 작은 마을의 낭만적인 풍경 때문이다. 푸르고 투명한 호수의 물빛, 호밀밭은 초록빛 그리고 고성과 성당의 파스텔톤의 정감어린 색채는 부조화속의 조화로움을 연출하고 있다.
▲ 장크트 길겐 마을의 동화 속에 나올법한 ‘중세풍의 집들’ 예전에는 소금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요즈음은 소금보다도 볼프강 호수와 할슈타트 호수를 끼고 형성된 앙증맞고 예쁜 작은 마을의 낭만적인 풍경 때문이다. 푸르고 투명한 호수의 물빛, 호밀밭은 초록빛 그리고 고성과 성당의 파스텔톤의 정감어린 색채는 부조화속의 조화로움을 연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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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츠부르크 주변은 한때 바다였다가 융기한 땅이라 산에서도 소금이 난다. 이른바 '암염(岩鹽)'이다. 유렵에서도 예로부터 소금은 보석처럼 귀한 것이었으므로 잘츠감머굿 지역은 중요한 곳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요즈음은 소금보다도 볼프강 호수와 할슈타트 호수를 끼고 형성된 앙증맞고 예쁜 작은 마을의 낭만적인 풍경이 눈길을 끈다.

푸르고 투명한 호수의 물빛, 초록빛의 호밀밭 그리고 고성과 파스텔톤 성당의 정감어린 색채는 부조화 속 조화로움을 연출하고 있다. 할슈타트 마을과 장크트 볼프강 마을, 그리고 장크트 길겐 마을은 <사운드 오브 뮤직>의 무대배경으로도 유명하다. 장크트 길겐 마을에서 '미라벨 정원' 다음으로 많은 촬영을 했다.

잘츠부르크 중앙역에서 남쪽으로 1km 남짓 되는 거리에 있는 미라벨 정원은 마리아가 대령의 아이들과 함께 분수대 주위를 돌며 ‘도레미 송’을 불렀던 작품무대로서, 분수, 장미원을 비롯한 화단, 석상 등이 아름답게 배치된 바로크식의 유럽정원이다.
▲ <사운드 오브 뮤직>의 무대 ‘미라벨 정원’ 잘츠부르크 중앙역에서 남쪽으로 1km 남짓 되는 거리에 있는 미라벨 정원은 마리아가 대령의 아이들과 함께 분수대 주위를 돌며 ‘도레미 송’을 불렀던 작품무대로서, 분수, 장미원을 비롯한 화단, 석상 등이 아름답게 배치된 바로크식의 유럽정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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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 오브 뮤직>은 1938년이 시간배경이다. 오스트리아 알프스 지방에서 말괄량이 견습 수녀인 마리아 수녀가 어머니를 잃은 해군 트랩 대령의 일곱 아이들의 가정교사가 되어 모성을 초월하는 애정과 열정, 그리고 음악을 활용하여 가정의 단란함과 활기를 되찾아 주는 이야기이다.

그녀는 처음에는 마음의 문을 열지 않던 아이들과 음악공부를 통해 교감을 나눈다. 결국 마리아수녀는 트랩 대령과 사랑의 결실을 맺어 결혼에 이르고 트랩싱어즈라는 가족 합창단을 꾸려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기 직전 미국으로 망명에 성공한다. 로맨틱 코메디형 드라마로서 영화 OST <에델바이스>가 전 세계에서 공전의 히트를 했다.

사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원작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브로드웨이 황금기를 이끈 콤비 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가 마지막으로 만든 뮤지컬 명작이 <사운드 오브 뮤직>이다.

황금콤비는 <왕과 나>, <남태평양>, <오클라호마> 등 전성기 브로드웨이를 대표하는 많은 명작들을 내놓았지만, 역시 가장 크게 성공한 작품은 <사운드 오브 뮤직>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브로드웨이에서 첫 공연을 한 지 채 1년이 지나지 않은 1960년 8월 23일, 해머스타인 2세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서 슬픔의 공연이 이어졌다.

로저스와 해머스타인 2세의 전성기가 끝나자, 브로드웨이 황금기도 막을 내렸다. 영화는 원래 <로마의 휴일>과 <벤허>의 윌리엄 와일러가 거론되었지만 최종적으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61)로 뮤지컬을 무대에서 스크린으로 옮기는 일에 탁월한 능력을 검증해준 '로버트 와이즈'가 최종 낙점되었다.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가 개봉된 지가 벌써 반세기가 지났다. 20세기 폭스 영화사는 이 영화 사운드트랙의 50주년 기념판을 2015년 3월 5일 발매했다. 오랫동안 인기를 끌었던 “Sixteen Going on Seventeen,” “My Favorite Things,” “Do-Re-Mi” 그리고 “So Long, Farewell” 등의 곡들이 포함됐다.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는 1965년 3월에 개봉되었고, 최고의 작품상을 포함해 5개의 오스카상들을 받았다.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1965년 11월 빌보드 200 차트에서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 <사운드 오브 뮤직>의 한 장면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가 개봉된 지가 벌써 반세기가 지났다. 20세기 폭스 영화사는 이 영화 사운드트랙의 50주년 기념판을 2015년 3월 5일 발매했다. 오랫동안 인기를 끌었던 “Sixteen Going on Seventeen,” “My Favorite Things,” “Do-Re-Mi” 그리고 “So Long, Farewell” 등의 곡들이 포함됐다.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는 1965년 3월에 개봉되었고, 최고의 작품상을 포함해 5개의 오스카상들을 받았다.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1965년 11월 빌보드 200 차트에서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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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 오브 뮤직>은 1965년에 제작된 할리우드 영화이므로 주인공 줄리 앤드루스는 90대 노인이 되어있을 것이고 대령의 막내 딸 그래들마저 58세 나이의 중년부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할슈타트 마을과 장크트 볼프강 마을, 그리고 미라벨 공원을 산책하다보면 이들이 꼬마와 20대 후반 가정교사의 모습으로 어디선가 뛰어나올 것만 같다.

할슈타트 호수의 투명한 물빛을 응시하다 보면 '도레미송'을 부르며 대령과 가정교사 그리고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있는 듯한 착각에 젖는다. 여러 영화 신(scene)들을 추억의 한 페이지로 여백을 놓아둔 채 선착장 근처의 벤치에 앉았다. 알프스의 빙하가 녹은 호수의 투명하고 맑은 물빛은 인간의 번뇌로 가득한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준다.

최근 하버드 대학 출신의 젊은 신예 영화감독 다미엔 차젤레(Damien Chazelle, 33세)가 화제를 몰고 다닌다. <위플래쉬(Whiplash)>, <라라랜드(Lalaland)>로 뮤지컬영화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라라랜드>가 2017년 2월 27일에 개막하는 제 89회 아카데미 영화상의 14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있다. 하지만 <사운드 오브 뮤직>의 전통과 토대가 없었다면, 과연 <라라랜드>가 나올 수 있었을까 회의감이 든다. 

유람선은 들어오고 장크트 길겐 마을의 아름다운 풍광은 발을 붙들고 마음이 산란한 순간이다.
▲ 장크트 길겐(St. Gilgen)과 슈트로블(Strobl) 운행 유람선 유람선은 들어오고 장크트 길겐 마을의 아름다운 풍광은 발을 붙들고 마음이 산란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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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 어느 방향에서나 바라보아도 탁 트인 풍광이 정말로 아름답다. 남성적인 아드리아 해의 바다빛깔도 아름답지만, 맑은 호수의 물빛이 주는 여성의 섬세한 손길 같은 아기자기함도 흥겨운 묘미가 있었다.

호반의 벤치에 앉아서 유럽관광객들의 움직임을 살펴보다가,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와서 유람선에 올랐다. 모차르트의 감미로운 교향곡과 <사운드 오브 뮤직>의 아름다운 선율이 귓가에 맴돌았다. 음악의 멜로디와  호수 물빛의 환상적인 조화는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 칼리오페, 그리고 아폴론의 조화이런가?

덧붙이는 글 | 유람선을 타고 오스트리아 맥주를 한잔 마시면서 ‘잘츠캄머굿’ 주변의 할슈타트 호수와 볼프강 호수의 경관을 살펴보았다. 미국의 미시건 호수처럼 바다 같은 호수를 둘러보는 것은 아름다운 풍광때문에도 유쾌했지만, 모차르트와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요람이었으므로 더욱 기분이 상쾌했다. 역시 유럽 여행은 예술적인 마법이 있어 좋았다. 유람선에서 듣는 모차르트의 〈소야곡(Eine kleine Nachtmusik)〉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태그:#장크트 길겐(ST. GILGEN), #모차르트, #미라벨 정원, #<사운드 오브 뮤직>, #잘츠캄머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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