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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임당 빛의 일기>.
 <사임당 빛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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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에는 16세기 조선과 21세기 대한민국이 번갈아 나온다. '16세기 조선'에서는 신사임당(이영애 분)이 주인공이고,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사임당의 화신이랄 수 있는 서지윤(이영애 분)이 주인공이다.

이 드라마에서는 사임당의 가족관계가 많이 묘사된다. 16세기 조선에서는 친정부모와의 관계가 이미 소개됐고 남편 및 자녀들과의 관계는 지금 소개되고 있다. 시어머니와의 관계는 아직 소개되지 않았다. 사임당의 고부관계는 현재까지 나오지 않았다.

이에 비해 21세기 대한민국의 경우, 드라마 초반부터 고부관계가 비교적 자세히 묘사되고 있다. 시어머니 김정희(김해숙 분)가 '갑'의 입장에서 며느리 서지윤을 심적으로 압박하는 구도가 현재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 이 드라마의 16세기 부분에서 신사임당의 고부관계를 어떻게 묘사할지 아직 알 수 없지만 21세기 부분에 나오는 고부관계는 실제의 신사임당과는 거리가 멀었다. 멀어도, 확실히 멀다. 결코 '을'이라 할 수 없는 사임당이 시어머니에게 심적 부담을 주는 구도가 실제 상황에서 존재했다.

교과서에도 소개되는 사임당의 시 중에 <사친>이란 작품이 있다. '어버이를 생각하다' 혹은 '어버이를 그리워하다'라는 시다. 결혼 뒤에 지은 시였다. 이 시에 "돌아가고픈 마음, 언제나 꿈속에 있다"란 대목이 나온다. 고향집과 어버이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부분이다. 

그 같은 그리움의 정서를 접하다 보면, 사임당이 친정 부모와 꽤 오랫동안 떨어져 산 것 같은 느낌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는 시집살이를 오래 하지 않았다.

아들인 율곡 이이가 지은 <선비 행장> 즉 <돌아가신 어머니의 일대기>에 따르면, 열아홉 살에 결혼한 사임당은 강릉 친정에서 생활하다가 2년 뒤인 스물한 살 때 한양 시댁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곳에 오래 있지 않는다. 곧바로 강원도로 돌아갔던 것이다. 그 뒤 그는 주로 강릉 친정집이나 평창(봉평) 집에 살았다. 평창은 강릉 서남쪽이다. 

이렇게 강릉과 평창에서 주로 생활한 덕분에 사임당은 예술 활동에 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었다. 만약 스물한 살 때부터 시집에 눌러살았다면, 그의 예술은 현저히 위축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시부모에게 바치는 시간을 줄이고 예술적 성과들을 지속적으로 축적하는 쪽으로 과감하게 인생을 설계했다.

사임당이 다시 시집살이를 한 것은 결혼 19년 뒤인 서른여덟 때였다. 진정한 시집살이가 시작된 것은 이때였다. 그러고 나서 10년 뒤에 세상과 이별을 했다.

16세기의 시어머니와 21세기의 시어머니는 어떻게 달랐을까

 ‘21세기 대한민국’ 부분의 시어머니(김해숙 분).
 ‘21세기 대한민국’ 부분의 시어머니(김해숙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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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 홍씨 입장에서 볼 때, 사임당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며느리였다. 강릉의 명문가 출신에다가 선비들의 극찬을 받는 저명한 화가였다. 거기다가 자기 아들 이원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성실성과 꼼꼼함을 겸비한 사람이었다. 

안 그래도 사임당은 대하기 어려운 며느리였다. 그런 며느리가 결혼 후 19년간 따로 살았으니, 홍씨한테는 사임당이 항상 어려웠을 것이다. 사임당이 시집에 다시 들어갔을 때, 홍씨는 너무 연로해서 기력이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시어머니 행세를 할 수도 없었다. 어쩌면 그로 인해 며느리 대하기가 더욱더 어려웠을 수도 있다. 

홍씨가 사임당을 얼마나 의식했을지를 보여주는 일화들이 있다. 이런 일화는 스물한 살 때 시집에 잠깐 머물렀을 때도 생산됐고, 시집에 완전히 들어간 서른여덟 살 이후에도 생산됐다.

스물한 살, 잠깐 머물렀을 시절이다. <선비 행장>에 나오는 이야기다. 시댁의 문중 여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다들 웃고 떠들었다. 그런데 유독 사임당만 입을 꾹 다문 채 침묵을 유지했다. 예의를 지키느라 그랬을 수도 있고, 대화가 재미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그림에 대한 생각에 빠져서 그랬을 수도 있다.

어떤 생각에서 침묵을 유지했건 간에, 아직 새댁이랄 수 있는 며느리가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과묵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예의에 어긋난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좀 심했던 모양이다. 한마디 해야 할 상황에서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던 모양이다.

보다 못한 시어머니 홍씨가 "며느리는 왜 말이 없느냐?"라고 물어봤다. 말 좀 해보라는 신호였을 것이다. 그런데 사임당의 반응이 좌중을 무겁게 만들었다. 웃고 떠들던 분위기가 일순간에 가라앉았다.

<선비 행장>에 따르면, 사임당은 무릎을 꿇더니 "여자는 문밖을 나가지 않아서 보는 게 없는데,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라고 점잖게 대답했다. 겸손의 표시로도 볼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그때까지 웃고 떠들던 친척 여성들을 무안케 하는 말일 수도 있었다. 문밖을 나가지 않아서 보는 것도 없었을 여인들이 뭔 말이 이리 많으냐는 뜻으로 들릴 수도 있었다.

친척 여성들은 사임당의 한마디에 입을 꾹 다물었다. 다들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자신들이 웃고 떠든 행위를 반성하는 의미는 아니었을 것이다. 젊은 새댁의 정중하면서도 당돌한 발언이 자신들을 겨냥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적잖이 당황했을 수도 있다. 그런 모습이 부끄러움 같은 것으로 표현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집 대문을 나서면서 친척 여성들이 뭐라고 수군댔을지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어린 게 당돌해!"라는 식의 반응이 나왔을 수도 있다. 

'현모양처'라는 틀에서 벗어나면 다른 모습이 보인다

 '21세기 대한민국‘ 부분의 며느리(이영애 분).
 '21세기 대한민국‘ 부분의 며느리(이영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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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일화가 있다. <선비 행장>에는 시어머니 및 남편 첩과 함께 있는 사임당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시어머니와 본처와 첩이 한 자리에 있는 모습은 상당히 불편한 그림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임당이 어떤 태도를 유지했는지가 글에 묘사되어 있다.

남편 이원수는 사임당한테 부담감을 느끼며 살았다. 이원수의 느낌은 일종의 열등감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집 밖에서 아내와 정반대의 여성을 찾았다. 주막집을 경영하는 권씨였다. 권씨는 사임당과 정반대였다. 성격은 물론이고 음주 습관도 그랬다. 밤새 술을 마시고 아침엔 해장술까지 마셨다. 

<선비 행장>에는 그 첩이 누구인지 기록되지 않았지만, 권씨였을 가능성이 있다. 사임당은 그 권씨가 불편했다. 그래서 죽기 전에 권씨 문제로 남편과 언쟁한 적도 있다. 내가 죽더라도 재혼만큼은 하지 말라고 사임당은 경고했다. 그만큼 사임당은 권씨도 싫고, 첩이란 존재도 싫었다. 그런 사임당이 시어머니 및 첩과 함께 있는 상황이 편했을 리는 만무하다.

그런 자리였는데도, 사임당은 안색 하나 바뀌지 않고 온화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켰다. 이 장면은 사임당이 고도의 품성과 인내심을 가진 인격자라는 증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임당의 성격을 익히 알고 있는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그 상황이 무척 불편했을 것이다. 며느리가 권씨를 견제할 목적으로 동석했을 것이라고 시어머니는 느꼈을 수도 있다.

시어머니 홍씨와 사임당이 있는 자리에 권씨가 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권씨가 홍씨를 찾아뵙고 인사하는 자리에 사임당이 끼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 결혼 19년 뒤에 뒤늦게 들어와 주도권을 잡은 며느리가 안 그래도 어려웠을 텐데, 자신이 아들의 첩과 대화하는 자리에까지 며느리가 일부러 나타나서 억지로 침착함을 유지하며 온화한 말까지 했으니 홍씨는 속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내가 없는 자리에서 단둘이 만나든가 아니면 이 자리에 동석하지 말든가 해야지'라고 속으로 불평했을 수도 있다.

사임당은 항상 홍씨에게 예의를 다했다. 또 어떤 일에서건 홍씨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그렇지만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마음을 툭 터놓지는 않았다. 훌륭한 인격자이기는 했지만, 주변 사람들은 불편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 며느리가 동석하는 게 편치 않았을 것이다.

학교에서 배운 신사임당은 주변 사람들을 마음으로 감동시키고 훌륭한 길로 인도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실제의 그는 예술 활동을 하면서 자녀교육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벅찬 사람이었다. 남편이나 시어머니에게 예의를 다하는 차원을 넘어 그들을 온 마음으로 끌어안는 노력까지 하기에는 여력이 부족했을 것이다. 

신사임당을 거룩한 현모양처로 인식해온 사람들한테는 그의 인간적인 면들이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의 신사임당처럼 예술 활동과 자녀교육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가운데, 시어머니 및 남편에게 극진하지는 않아도 평균 이상의 정성을 바치는 화가를 우리 주변에서 발견하게 된다면, 우리는 분명히 그 화가에게 찬사를 보내게 될 것이다. 신사임당에 대해서도 '현모양처'라는 이미지를 벗어나 접근한다면, 그의 인간적인 모습이 오히려 친숙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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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 노비들,왕의 여자,철의 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