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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이 죽고, 17명이 중상을 입었던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 참사가 지난 11일자로 10년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보호소 시설은 변한 게 없고,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는 사회의 시선 역시 변한 게 없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이주노동자와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그간 가까이서 지켜봤던 피해자들 이야기를 정리하고자 한다. 국내에서 사망한 이주노동자들과 그 친구들의 이야기다. - 기자 말

화재 현장
 화재 현장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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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1명, 부상 60명.

2007년 3월 17일(토),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에서 발생했던 화재 사고 인명 피해 상황이다. 사고 현장은 지상 30층, 지하 5층으로 된 주상복합 건물 신축공사장이었다. 화재는 신축공사장 2층 에어컨 동배관 연결을 위한 용접작업 중에 발생한 불티가 주변 우레탄폼에 떨어지며 발생했다. 오전 8시 18분경에 발생한 화재는 24여 분 만에 진압됐지만, 인명 피해를 막을 수는 없었다.

우레탄폼과 마감재들은 순식간에 불에 타면서 짙은 연기를 만들어냈고, 계단을 따라 위층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막 작업을 시작하려던 작업 인부들은 1층이 막힌 걸 알고 어디로 피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다 옥상으로 뛰기 시작했다. 몇몇이 연기와 유독가스에 하릴없이 쓰러졌지만, 쓰러진 사람들을 뒤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30층 옥상에서 철골 구조물 해체 작업을 하던 몽골인들 귀에 '살려주세요!'라는 다급한 목소리가 아래층에서 들려왔다. 몽골에서 소방관으로 일했던 한 명을 포함한 네 명은 남들은 위로 올라가는데 29층으로 내려갔다. 그들은 연기를 피해 뛰어오다 지쳐 쓰러진 3명을 업고 옥상으로 옮겼다. 이어 23층까지 내려가서 유독가스에 쓰러진 사람 8명을 업고 뛰었다. 네 명의 몽골인들은 쓰러진 사람들을 업고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온몸이 흠뻑 젖었고, 시커먼 유독가스에 가슴이 아려오는 통증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전직 소방관 출신 몽골인과 친구들은 사람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는 사실을 알고 온몸을 던졌다.

그렇게 옥상으로 옮겨진 사람들은 소방헬기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모두 11명이었다. 그 밖에 십여 명이 네 명의 인도를 받고 옥상까지 올라가는데 힘을 얻었다. 현장 진화에 나섰던 소방대원들은 몽골인들이 아니었으면 20명이 넘는 사망사고가 있었을 거라고 입을 모았다. 언론은 그들의 활약에 주목하며 찬사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네 명은 사고 이후 잠적해 버렸다. 체류자격 때문이었다. 네 명 모두 체류기한을 넘긴 미등록 이주노동자였다. 그들은 혹시나 강제 추방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구조 과정 중 유독가스를 흡입하여 치료가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행방을 감춰 버렸다.

그러자 언론과 국회가 나서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몽골 친선협회장이던 정장선 의원 등이 법무부에 선처를 요청하고 나섰고, 관련단체들 역시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인들의 목숨을 구한 네 명에게 '몽골인 의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 결과 사고 발생 보름이 지난 4월 5일 법무부는 4명에게 특별체류를 허가했다. 외국인의 특별한 공로를 인정하여 체류를 허가한 최초 사례였다. 법무부는 "화재 등 긴급재난상황에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위급한 상황에 처한 11명을 구조한 용기와 희생정신을 감안하여 결정하였다"고 발표했다. 

특별 체류허가는 법무부장관이 불법체류 외국인에게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허가하는 것이다. 네 명의 몽골인은 단순히 체류자격만이 아니라 취업도 가능한 전문취업비자(E7)를 발급받았다. 그 중 몽골외국어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했던 삼보드노드는 서강대에서 4년간 장학금과 기숙사비, 한국어교육원 수강 등의 지원을 약속받아 대학생이 되었다.

(과천=연합뉴스) 전수영 기자 = 지난 2007년 3월 17일 발생한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D주상복합건물 신축 공사장 화재 현장에서 11명의 인명을 구조한 불법체류 몽골인 4명이 2007년 4월 11일 오전 과천 정부종합청사 법무부장관실에서 김성호 장관으로부터 합법적인 국내 체류를 허가하는 1년 만기의 '특별체류허가증'을 받은뒤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좌로부터 바트델거, 곰보수레, 삼부, 바타 씨.
 (과천=연합뉴스) 전수영 기자 = 지난 2007년 3월 17일 발생한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D주상복합건물 신축 공사장 화재 현장에서 11명의 인명을 구조한 불법체류 몽골인 4명이 2007년 4월 11일 오전 과천 정부종합청사 법무부장관실에서 김성호 장관으로부터 합법적인 국내 체류를 허가하는 1년 만기의 '특별체류허가증'을 받은뒤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좌로부터 바트델거, 곰보수레, 삼부, 바타 씨.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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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 빠진 사람 구하려던 사람들, 죄인 취급받다

화재현장에서 사람을 구한 몽골인 의인들이 특별체류자격을 받은 지 만 9년째 되던 날, 용인 모 저수지에서 익사 사고가 발생한다. 희생자는 모처럼 회사 동료들과 함께 낚시를 갔던 중국동포였다. 술을 마시고 전화하던 한국인 관리자가 동료들이 낚은 고기를 모으려고 왔다갔다하던 피해자에게 '옆에 서 있지 말라'면서 밀쳐 발생한 사고였다. 가해자는 피해자보다 스무 살이나 어린 사람이었다. '풍덩' 하고 피해자가 물에 빠졌지만, 그는 전화를 하며 그 자리를 피해 버렸다.

마침 두 사람 바로 옆에서 그 광경을 본 사람이 있었다. 인도네시아인 하담(가명)이었다. 담배를 피우던 하담은 영문을 모른 채 물에 빠진 사람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가해자가 밀치면서 뒤로 쓰러졌기 때문에 의식을 잃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수영을 할 줄 모르는 하담은 무조건 소리쳤다.

"아저씨가 물에 빠졌어요! 도와주세요!"

소리를 듣자마자 인도네시아인 동료 두 명이 달려왔다. 둘은 곧바로 물속에 뛰어들었다. 그 사이 하담은 사장과 십여 명의 한국인들에게 중국 사람이 물에 빠졌다고 알렸다. 물에 뛰어든 두 사람은 여러 차례 자맥질을 하며 물에 빠진 사람을 찾아보려고 시도했다. 한 번은 축 늘어진 사고 당사자를 물 밖으로 거의 끌어내기도 했다. 누군가 손만 내밀어 주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자맥질을 하며 기운이 빠진 그들을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결국 체력이 고갈된 두 사람은 저수지 바닥에서 겨우 끌어올렸던 피해자를 뭍으로 끌어올리지 못하고 놓치고 말았다. 기운이 다한 것을 알면서도 두 사람은 몇 차례 자맥질을 더했다. 그러다가 앰뷸런스 경고음을 듣고 포기했다. 수색을 포기하고 지친 두 사람은 저수지에 있던 낚시터 좌대로 올라오려고 했다. 그때 부실한 용접으로 좌대를 지지하고 있던 철봉이 두 번씩이나 떨어져 나가는데도 역시 그들에게 손 내미는 사람이 없었다. 사고 피해자는 119 구급대에 의해 밤 11시가 넘어서야 차가운 시신으로 뭍에 올라왔다.

시신이 수습되고 경찰 조사가 시작되었다. 익사자를 한국인 관리자가 떠밀었다는 명확한 증인과 자백이 있었지만, 사건 조사는 열흘 넘게 진행되었다.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회사 관계자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흔히 말하는 불법체류자라는 신분 때문이었다. 사고를 목격한 하담과 물속에 뛰어들었던 사람 모두 체류 자격이 없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였다. 회사에서는 '불법체류자 주제에' 괜히 나섰다가 번거로운 일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사고는 한국인 관리자가 내고, 사고 수습은 이주노동자가 하려 했는데도 회사는 이주노동자들로 인해 피해를 보지 않을까만 걱정하고 있었다. 그들은 회사 동료가 물에 빠져 죽을 수 있는 상황을 보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손 한 번만 내밀었어도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상황에서 단지 구경꾼 노릇만 했다. 사고 피해자인 중국동포를 동료로 여기지 않았다.

시신이 수습되고 중국으로 송환될 줄 알았던 유해는 한국에 묻혔다. 하담은 중국인 아저씨가 조상들과 함께 선산에 묻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중국 국적자가 한국에 묻힌 이유가 궁금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사람들은 물론이고 물속에 뛰어들었던 친구들도 더 이상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담은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었다. 자기가 수영만 할 줄 알았어도 아저씨가 살 수 있었을 거라며 자책했다. 가슴이 두근거려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괴로워했다.

타일이나 스테인리스 접착을 위해 실리콘 작업을 할 때마다 하얀 면이 어른거리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치 저수지 물결이 이는 것처럼 어른거릴 때면 머리가 지끈거려서 눈을 질끈 감아야 했다. 그럴 때마다 새로 작업해야 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인도네시아 동료들은 어깨를 툭툭 치며 웃고 넘어갔지만, 작업반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사고 후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하담은 뇌 표면의 동맥이 손상되어 발생한다는 지주막하출혈로 입원해야 했다. 의사는 과로나 극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이 될 수 있다며 후유증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퇴원 후 말이 약간 어눌해졌음을 느꼈지만 비용 때문에 치료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담은 이미 세상을 떠난 중국아저씨를 잊는 방법은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둔다고 죽음을 목격했던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낚시를 할 수 있는 저수지에서 한국인 관리자에 의해 중국동포가 익사했다.
▲ 저수지 낚시를 할 수 있는 저수지에서 한국인 관리자에 의해 중국동포가 익사했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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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의인들, 전혀 다른 대접

정부는 외국인 체류질서 확립을 위한 불법체류자 단속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연초에 발표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5년 21만4000명이던 외국인 미등록자는 지난해 말 20만9000명으로 5000명 감소했다. 법무부는 올해 역시 5000명 줄인 20만4000명으로, 내년에는 19만9000명으로 줄일 계획이다. 정부는 '불법체류자 단속은 주권국가의 고유 업무로, 목표를 채우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강력한 단속과 추방 정책을 이어나가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이들을 범법자나 부랑자인 양 내몰아서는 안 되는 이유를 몽골과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들은 온몸으로 보여줬다. 몽골인들은 '한국인'을 구했다는 이유에서 사면을 받았다. 특별체류 허가를 받으며 온 국민으로부터 '의인'이라는 칭찬을 들었다. 반면, 인도네시아인들은 중국동포, '외국인'을 구하려고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들 눈앞에서 사람이 죽었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사고 후유증으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지원도 없었다.

이처럼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아직까지 이중적이다. 한국인에게 어떻게 했느냐를 놓고 사람을 평가할 뿐, 그들을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하고 점검하는 데는 소홀하다. 게다가 정부는 미등록이주노동자를 위한 해법을 찾음에 있어서 가시적 성과만 바라며 전시행정으로 일관하고 있다. 외국인력 정책의 모순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미등록자 발생 원인에 대한 해법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비록 사람 목숨을 구하지는 못해도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들은 진정한 우리 이웃이었고, 의인이었다.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그들이었다. 똑같은 의인들을 대하는 두 가지 태도가 지금 우리 사회 현실이다. 이주노동자들의 인권 현실은 점점 더 열악해지고 있고, 특별히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시선은 점점 더 차가워지고 있다. 내국인 일자리 잠식이라는 의심 때문에 내국인 노동조합들조차 적대시하는 현장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역지사지라고 했다. 미국 내 23만 명의 한인들이 강제추방의 위협 앞에 떨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트럼프를 욕한다면 이율배반일 수밖에 없다. 한인들 중에는 추방을 면하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 지금은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한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고민, 죽음에 대한 사회적 사유가 필요한 때다. 사회적 약자의 죽음을 개별적인 것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공유해야 할 때다.

이어집니다: [죽음을 기억하는 방법 ③] -이주노동자들은 왜 베르테르 효과를 겪었나



태그:#미등록이주노동자, #불법체류자, #죽음, #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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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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