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3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모아나>는 한국에선 230만명 정도로 다소 아쉬운 성적으로 마무리 될 것으로 보이지만 관람한 관객들은 호평을 쏟아내고 있다. 비록 2013년 개봉한 <겨울왕국>의 천만 신화나 2016년 400만이 넘은 <주토피아>의 흥행 정도는 아니지만, <모아나> 역시 디즈니의 발전된 기술과 캐릭터를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모아나>가 있기까지 디즈니 공주들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며 능력있는 '리더'로서 그려진 모아나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며 능력있는 '리더'로서 그려진 모아나 ⓒ 디즈니


모투아나 섬 족장의 딸로 차기 족장의 운명으로 자라난 주인공 모아나는 디즈니의 '혈통' 중심 세계관을 답습하는 캐릭터다. 주인공은 이미 운명적으로 고귀할 수밖에 없는 혈통을 타고난다. 모아나는 결국, 높은 지위를 타고난 공주 캐릭터의 또 다른 모습이다.

그러나 모아나는 그저 가만히 앉아서 리더가 되는 '금수저'가 아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의문을 품고 전통을 지키면서도 더 발전된 방향으로 섬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진정한 '리더'로서 그려진다. 안락한 생활을 거부하고 자신을 찾고 섬을 구하기 위한 모험을 떠나는 모아나는, 그 흔한 왕자님이나 러브라인 없이도 스스로 충분히 매력적으로 빛날 줄 아는 캐릭터다. 그러나 이런 진취적인 캐릭터가 있기까지 디즈니의 공주들은 변화에 변화를 거듭해왔다.

백설공주,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공주....예쁘고 착한 지고지순한 여성상

 디즈니 최초의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

디즈니 최초의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 ⓒ 디즈니


눈처럼 하얀 피부에 흑단같이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디즈니 만화영화 속 백설공주는 순하고 착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순수한 아이처럼 묘사된다. 아무 이유 없이 괴롭히는 계모의 행동에도 반항 한 번 하지 않고, 자신을 죽이려고까지 하는 상황에서도 원망조차 하지 않는다. 숲속에서 처음 만난 난장이들과 빠르게 친해지는 친화력을 무기로 살아남은 백설공주는 결국 영화 내내 집안일만 하다가 독사과를 먹고 쓰러지지만 왕자의 키스 한 번에 깨어나 해피엔딩을 맞는 수동적 캐릭터다.

이는 <신데렐라>와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서도 그대로 답습된다. 왕자님을 기다리며 구박받는 신데렐라나 왕자가 깨워주어야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오로라 공주는 모두 '구해줘요, 왕자님'을 외치며 수동적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캐릭터였다.  

인어공주, 디즈니 최초의 주체적 공주 캐릭터

 디즈니 최초의 능동적 캐릭터 인어공주

디즈니 최초의 능동적 캐릭터 인어공주 ⓒ 디즈니


그에 반해 <인어공주> 속 아리엘은 자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캐릭터로 묘사된다. 첫눈에 반한 왕자를 만나기 위해 목소리를 포기하고 다리를 얻고, 그에게 직접 다가가는 모습은 그동안 착한 성품으로 지고지순히 기다리기만 했던 공주들과 차별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일단 현실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는 것 자체로 획기적이었다. 물속 생활 보다 육지의 생활을 동경하며 새로운 세상으로의 진출을 꿈꾸는 캐릭터는 좀 더 입체적인 캐릭터로 묘사되며 스토리에도 훨씬 활력이 생기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 때부터 주인공이 부르는 뮤지컬 형식의 OST 역시 반향을 일으켰는데, 조연 세바스찬이 부른 'under the sea'나 아리엘이 부른 'part of your world'는 유명한 넘버다. 이 때부터 디즈니 공주 캐릭터들의 발전이 이루어졌지만 행동의 동기가 여전히 '사랑'과 '남성'에 있다는 것은 여전한 한계였다. 

벨, 쟈스민, 포카혼타스... 뚜렷한 주관을 가진 당찬 여성상

 수동적인 여성에서 똑똑하고 진취적인 여성으로

수동적인 여성에서 똑똑하고 진취적인 여성으로 ⓒ 디즈니


<미녀와 야수>의 히로인 벨은 책읽기를 즐기고 모험심이 강한 캐릭터로 야수의 성에 갇히게 된 순간에도 야수와의 말싸움에서 한마디도 지지 않는 똑똑한 여성으로 묘사된다. 그동안 남성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약속하며 남성의 지위에 짓눌리던 캐릭터와는 다른 모습으로 그려진 것이다. 잘못된 것은 확실히 잘못되었다 지적할 줄 아는 배포는 디즈니 여성상의 진화를 의미했다. 게다가 왕자에게 첫눈에 반하는 전작의 공주들과는 달리, 야수와의 감정이 점진적으로 발전되며 스토리의 변화가 생겼다는 점 또한 눈여겨 볼 만하다.

<알라딘>의 쟈스민 공주는 아예 도둑인 남자 주인공에 비해 높은 지위로 설정이 되어있다. 쟈스민은 높은 지위에도 불구하고 모험심이 강하고 뚜렷한 주관을 가진 캐릭터로 묘사되며 단순히 알라딘과의 사랑이 아닌, 모험에 함께 동참하고 결국에는 세상을 구해내는 데 일조하는 캐릭터로서 활약한다. 이 때부터 백인 위주의 캐릭터에서 유색인종의 공주들이 활약하기 시작했다는 것 또한 중요한 지점.

<포카혼타스> 역시 유색인종에 소수인종으로 지혜롭고 가치관이 뚜렷한 캐릭터다. 백인들로부터 부족을 지켜내는 캐릭터로서, 소수인종이 아닌 백인들이 악역으로 등장했다는 것은 획기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었다.

뮬란, 티아나, 라푼젤... 직접 운명과 싸워 이겨낸 캐릭터

 남성 중심의 세계에서도 남성보다 더 우월한 능력을 보이는 여성 캐릭터

남성 중심의 세계에서도 남성보다 더 우월한 능력을 보이는 여성 캐릭터 ⓒ 디즈니


1998년 등장한 <뮬란>은 최초의 동양인 캐릭터로, 아버지를 대신하여 남장을 하고 군에 입대하는 대담성을 보인다. 여성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군대'는 물론, 여성은 얌전해야 한다는 영화의 시대 상황을 뛰어넘어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동등한 위치 이상의 더 뛰어난 활약을 해내는 캐릭터가 탄생한 것이다. 이에 동양인이라는 점까지 더해지며 뮬란은 디즈니 공주들의 진화에 한 획을 긋는다. 여기에 러브라인은 양념처럼 약간만 더해지며 그동안 공주들의 중요한 행동의 동기였던 '사랑'이 한 풀 꺾이는 모양새를 보여준다. 이 때부터 러브라인의 변화가 중점적으로 이뤄진다.

<공주와 개구리>의 티아나는 최초의 흑인 공주로 능동적인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간다. 티아나는 아버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레스토랑을 열고 싶다는 목표가 뚜렷하다. 부자도 아니라 열심히 일도 해야 한다. 개구리 왕자와 키스한 후 자신도 개구리가 되어버린 티아나는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기 위해 모험을 해야 한다. 이 때, 왕자 캐릭터가 듬직하고 멋있게 묘사되기 보다는 능글맞고 놀기 좋아하는 한량처럼 묘사된 것도 주목해 볼 만하다.

이 캐릭터는 <라푼젤>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성에 갇혀 살던 라푼젤은 공주의 지위를 스스로 되찾는 능동성을 보인다. 한 편 남자 주인공인 유진은 멋있기보다는 능글맞은 캐릭터로 그려진다. 여주인공과 어쩔 수 없이 함께 모험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도 비슷하다. 여자 주인공의 비중이 크게 늘어나고 캐릭터가 다변적으로 바뀌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싸워 이겨내려는 공주들의 모습이 정착된 순간이다.

메리다, 엘사, 모아나....독보적 능력을 갖춘 걸크러시 여성 캐릭터

 엘사는 그동안의 착한 공주들들 뒤집는 캐릭터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엘사는 그동안의 착한 공주들들 뒤집는 캐릭터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 디즈니


시간이 흐르면서 공주들은 단순히 공주를 넘어 리더로서의 면모를 갖춘다. <메리다와 마법의 숲> 속 활쏘기에 능한 메리다는 독보적인 능력으로 주어진 인생에 맞서는 것을 넘어 스스로 인생을 개척하는 캐릭터다. <겨울왕국>의 엘사 역시 얼음마법을 부리는 독보적인 능력을 갖춘 캐릭터다. 자신의 능력을 제어하지 못한 엘사는 스스로 성을 벗어나 자신만의 왕국을 만드는 강수를 둔다. 그동안 착하기만 했던 공주의 캐릭터에서 벗어나 "착하게 살지 않겠다"고 외치는 엘사의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는 많은 팬들을 만들어 내기에 충분했다. 모아나 역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능동적인 리더로서의 모습을 보인다. 이때부터 공주들에게 러브라인이 필요 없어졌다. 그동안 어떤 식으로든 왕자와의 사랑을 다뤄왔던 디즈니는 왕자에 대한 열망보다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캐릭터들로 이야기를 채웠다.

시대가 변하면서 디즈니 공주들의 캐릭터 역시 변화하고 있다. 단순히 왕자와 공주의 스토리가 아닌, 점차 자신의 열망과 꿈을 알고 그 목적지향적으로 변하는 캐릭터들로 이제 성에 대한 고정관념도 깨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처럼 앞으로의 디즈니 공주 캐릭터들도 더 열정적으로 변해 관객들을 만족시켜 주기를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디즈니 겨울왕국 엘사 모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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