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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내로부터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

"근데 우리는 왜 아이를 낳았을까? 이렇게 위험하고 나쁜 일도 가득한 세상인데."
"응? 그래도 세상이 이렇게 엉망일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던 것 같은데."
"몰랐다고? 세상이 이럴거라 모르진 않았어. 늘 별로였잖아. 왜 낳았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일이야. 그리고 우리가 애들을 흔히 세상이 말하는 정답 안에서 키우려고 하지도 않고, 엄청 보호하는 편도 아니고,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아이들 생각을 강제로 바꾸려고 하지도 않고. 야단은 많이 치지만 ㅎㅎ. 여튼 그렇잖아. 근데 우린 왜 애들을 낳았지?"

당연한 것에 대해 '왜'라는 물음을 받으면 당황스럽다

예기치 않게 혹은 너무 당연한 것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받으면 당황스러워서 어찌할 지 모를 때가 있다. 아이에게 덧셈을 알려주다 "왜 1+1=2야?" 라는 질문을 받을 때 같다고 할까? 매일 저녁 퇴근해서 현관문을 열면 '아빠! 아빠!' 외치며 팔짝팔짝 뛰는 둘째와 이젠 꽤 자라서 유아 때의 모습은 벗어난 초등학교 저학년 첫째를 맞이하고 있는 난 왜 아이를 낳았냐는 물음에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가족
 가족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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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삶이 너무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현실이 되었기에 그들의 존재를 결정하게 되었던 이유를 생각해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내에게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그것도 빨리 낳자고 했던 것은 나였다. 아내는 좀 더 시간을 갖고나서 아이를 낳고 싶어했지만 나의 보챔으로 생각했던 것보다 일찍 아이를 갖게 되었다. 난 아이가 생기면 새 생명을 만난 기쁨과 아이를 향한 사랑이 그득하게 피어나는 가족의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아이가 생겨나서 태어나고 자라가는 과정은 상상만큼 행복하고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임신 기간에 겪어야 하는 아내의 입덧, 무거워진 몸으로 인해 겪게 되는 육체적 정신적 제약, 남성들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고스란히 견뎌야 하는 출산의 날, 그 후 짙은 어둠속에서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일을 저주받은 시지프처럼 해내야만 하는 시간들을 거쳐야 했다. 육아는 아내의 일상뿐만 아니라 육아의 일부만을 담당했던 나의 일상까지도 완전히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것이었다.

육아 스트레스
 육아 스트레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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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에 보람과 기쁨도 있지만 정말 힘들고 진이 빠지는 과정이다. 아이가 생기면 당연히 이정도 고생은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게도 되지만 막상 겪어보면 임신과 출산, 육아는 진심 버거운 일이다. 게다가 아이들이 자라갈수록 걱정은 더 많아진다. 세상엔 흉흉하고 끔찍한 뉴스들이 넘쳐나고,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거센 경쟁의 물결이 넘실댄다. 더욱이 성 불평등 사회에서 살아가야 할 여성인 아이들을 생각하면 한숨으로 땅이 꺼질 정도다.

그런데도 나는 왜 아이를 낳자고 했는가?

순전히 남성의 시선으로만 임신, 출산, 그리고 육아를 바라봤던 것 같다. 여성이 엄마가 되는 것이 결코 자연스럽고 당연한 과정이 아니라는 걸 깊이 느끼며 과거 나의 태도를 반성하게 된다. 게다가 몹시도 자유로운 영혼을 소유하고 있는 아내에게 무엇인가에 얽매여야 하는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울 것일지 생각해보지도 않은 채로 아이를 갖자고 재촉했으니. 나는 왜 아이를 낳자고 했을까?

아이와 행복하게
 아이와 행복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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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사랑하는 아내를 닮은 또 다른 존재를 보고 싶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다른 작은 존재와 관계를 맺어간다는 것은 어떤 경험일까? 그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아이들과의 만남은 삶을 더 풍성하게 해줄 것이라 생각했다. 부모님을 적절히 닮았던 내가 자라면서 부모님과 겪었던 다툼과 갈등, 주변에서 듣는 자녀와의 문제 등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그건 일종의 작은 부작용 정도라 생각했다.

둘. '가 보지 않은 길'에는 끌림이 있다.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부모'라는 새로운 역할에 대한 궁금함도 아이를 갖자는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부모-자식 관계를 겪어보긴 했지만 그것은 자식 입장에서의 관계였기에 부모된 마음, 역할과 책임이 어떤 것인지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부모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포기하게 될 것들이 무엇일지 구체적으로 실감하지 못했기에 더 쉽게 부모가 되고 싶다 결정했던 것 같다.

셋. 가정을 이룬다고 했을 때 자녀를 빼놓고는 가정의 그림을 그려보지 못했다. 가정이라면 당연히 부모님이 있어야 하고(때론 조부모님도) 그 자녀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 독립된 또 하나의 가정을 이뤘던 우리에게도 가정에 자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생각이었다. 내가 살아왔던 환경이 그러했고, 자녀를 갖는 것은 인생에서 당연히 거쳐야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아이를 돌보며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떤 모습의 부모가 될 것인지, 아니 부모가 무엇인지, 한 생명의 삶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 어느 정도의 책임일지 등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은 채 자연스러운 과정처럼 아이를 갖고자 했던 것 같다. 아니 아내에게 아이를 낳자고 졸랐다고 말하는 편이 더 맞겠다. 돌아보니 뭘 몰라서 용감했던 시절이었던 듯 하다.

만약 내가 아내였다면 엄마가 되지 않았을지도…

아빠가 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지도 않은 채, 게다가 엄마가 되어야 하는 아내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도 않은 채 너무 쉽게 아이를 갖자고 했던 것 같다. 물론 아내도 아이가 있으면 좋겠다고는 했지만 본인이 생각하는 시기를 선택할 수 있었다면 보다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예상치 못한 때에 엄마가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던 아내는 심리적으로 상당한 압박을 받았을 것 같다.

그럼에도 아내는 걱정과 불안, 두려움을 통과해 남자로선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동반하는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두 번이나 거쳤다. 요즘에도 아이들을 돌보느라 가진 에너지의 대부분을 육아에 쏟아 붇고 있다. 몹시 버거운 과정이기는 하지만 아내는 아이를 갖게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아이가 없는 삶은 상상하기 어렵고, 또 다시 결정을 해야 하는 때가 온다고 해도 엄마가 되는 것을 선택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만약 내가 아내라면 혹은 여성이라면 엄마가 되는 삶을 절대로 쉽게 선택하지는 못할 것 같다. 예전엔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사람들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그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심지어 나도 종종 아이들 없이 자유를 누리는 삶을 꿈꾸곤 하니까.

자유를 꿈꾸는
 자유를 꿈꾸는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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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자라가는 것을 지켜보며 아이들과 더 깊은 유대를 형성해 가는 과정에는 분명 놀라운 기쁨, 환희, 신비, 행복이 있다. 아이를 가진 다른 부모들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할 수도 있게 된다. 사랑의 폭도 넓어진다. 하지만 이런 좋은 점들과는 별개로 엄마가 됨으로써 포기하거나 미뤄야만 했던 한 인간으로서 아내의 인생도 있었음을 생각하게 된다.

남성인 나의 눈으로 보기에도 아이를 가짐으로 인해 마주치는 현실의 제약과 장벽들은 상상 이상이다. 아이 양육에 대한 책임을 각 가정이 거의 전담하게 하고, 엄마에겐 더 큰 책임과 역할을 요구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아내는 요즘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 혹은 정체성을 찾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만약 엄마가 되지 않았더라면 보다 수월하게 그 지향점에 도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되는 선택에 큰 영향을 끼친 당사자로서 난 아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싶다. 우리 사회시스템도 엄마가 되었기 때문에 부닥치는 현실의 벽을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바뀌어가기를 기대한다.



태그:#엄마, #육아, #출산, #아빠, #무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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