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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균․쇠>의 저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나와 세계>는 일곱 차례에 걸친 그의 강연을 정리한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인류문명의 쟁점과 미래에 대한 그의 생각을 종합적이면서 설득력 있게 제기한 담론이다. 주제 설정 자체가 문제제기 중심이면서 그 내용 전개가 비교적 명쾌하다. 그만큼 논란의 여지도 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나와 세계> 표지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나와 세계> 표지
ⓒ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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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독자들에게 주는 서문에서 그는 "모든 사회과학자가 불쌍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고 했다. 이유인즉, 과학자들은 엄격하게 통제되고 조작된 실험결과에 따라 단단한 이론을 생산해 왔지만, 사회과학자들은 '왜 어떤 국가는 부유하고 어떤 국가는 가난한가?'라는 기본적인 질문에도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는 게다.

그는 자신이 조류연구를 위해 통제되고 조작된 실험 대신 선택한 '자연적 실험'(natural experiment)에 주목한다. 역사에도 '자연적 실험' 사태의 적용이 가능한 현실적 사례로 그는 동독과 서독의 분할과 통합, 한반도에서 남북한의 분단 상황에 주목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세계가 직면한 일곱 가지의 중대 문제를 조류관찰자의 자연적 실험 방법론으로 설명해 내고자 했다. 그 설명이 명쾌하지만 과잉 해석의 한계도 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설정한 일곱 가지 주제를 하나씩 따라가 보자.

[첫째] 왜 어떤 국가는 부유하고 어떤 국가는 가난한가?

나는 1945년 경북 구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 한국전쟁의 참상을 경험했고, 가난한 농촌에서 자랐다. 전후에 전국토가 초토화되고 북한은 전체 인민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300만 명이 죽어 나갔음에도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남한보다 잘 살았으나, 지금은 남한이 북한보다 훨씬 잘 살고 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재레드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국부의 차이는 지역지리학의 문제와 깊이 연관된다. 한반도의 남쪽은 따뜻하고 3면이 바다지만, 북쪽은 중국대륙과 맞붙어 있고 상대적으로 추운 산악지대다. 그가 말하는 지리적 요인에서 중요한 것은 위도다. 대체로 온대지역 나라들이 열대지역 나라들보다 부유하다는 게다. 온대국가에 비해 열대국가가 가난한 두 가지 주된 이유는 낮은 농업생산성과 열악한 공중보건이란다.

일반적으로 온대지역보다 열대지역에 동식물의 종이 풍부하지만, 그것은 질병을 일으키는 종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여 세계 최고의 공중보건 대책은 온대지역의 추운겨울이라는 말도 있다. 게다가 열대지역의 질병들은 한 번 걸리더라도 면역력이 생기지 않는 '재발성 질병'이다.

기생충과 질병에 끊임없이 공격을 받아 잠비아 사람은 41세에 사망할 확률이 높지만,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80세다. 잠비아에서 엔지니어 교육을 받고 경제적으로 잠비아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간이 고작 10년 남짓하지만, 한국의 엔지니어는 30〜40년 이상 한국경제에 이바지 할 수 있다. 이처럼 열대지역의 낮은 농업생산성과 더불어 열대성 질병은 열대지역 국가들이 가난을 벗어나기 어려운 주된 이유가 된다.

가난을 부채질하는 또 하나의 지리적 요인은 육지에 둘러싸인 내륙지역이다. 바다를 끼고 있으면 해양자원의 활용은 물론, 육지나 하늘로 상품을 운송하는 것보다 킬로그램 당 운임이 7배 정도 싸다. 아프리카 대륙에는 내륙국이 가장 많이 분포되어 48개국 중 15개국이나 내륙국이다. 저자는 사방팔방이 육지로 가로막힌 지형과 열대지방이라는 약점이 겹쳐, 오늘날 아프리카가 가장 가난한 대륙인 이유를 설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게다.

한 나라의 빈부와 관련된 또 하나의 지리적 이유로 '천연자원의 저주'라는 패러독스를 든다. 천연자원이 풍부한 국가가 부유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로인해 내란과 분리 독립운동이 이어질 뿐더러, 부패와 비리를 조장하기 때문에 하나의 저주로 여겨진다.

천연자원으로 많은 돈을 버는 국가가 결국 가난하게 되는 또 다른 이유는 그 자원이 언젠가는 고갈되기 마련이므로, 경제의 다른 분야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걸 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저주에 따른 패러독스를 적극적으로 포용한 노르웨이의 경우 북해 유전에서 얻은 수익을 전 국민의 복지를 위해 장기신탁기금에 활용함으로써, 세계에서 부패지수가 가장 낮은 나라로 되었고 국민소득은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다.

[둘째] 제도적 요인이 국가의 빈부에 미치는 영향

저자는 지리적 환경요인과 함께 국가의 빈부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적 요인에 주목한다. 제도의 차이가 국가의 빈부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 사례로 분단 이후 남한과 북한의 경제수준 차이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27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풍요로운 서독과 다른 동독의 낮은 경제수준을 든다.

북한은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남한보다 잘 살았는데, 어째서 지금은 남한에 비해 그처럼 낙후되었을까. 그것은 지리적 조건이라기보다 정치경제적 제도의 요인 때문이다. 한국전쟁 이후 단기간에는 북한의 독재정권이 전후의 폐허를 복구․개발하는 데에 퍽 효과적이었지만, 독제체제가 대를 이어 세습화되는 과정에서 그 한계가 굳어져 버린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좋은 제도'(good institution)는 국민 개개인에게 생산의욕을 자극함으로써 나라의 부를 증대시키는 경제․사회․정치제도이다. 이 '좋은 제도'가 갖는 공통적 요인들로 (1) 부패가 없는 것, (2) 개인 재산권을 보호하는 것, (3) 법의 지배가 공정한 것, (4) 법적 계약의 안정성, (5) 금융자본의 투자유인 제도, (6) 살인 빈도가 낮은 제도(안전하게 살 수 있는 조건), (7) 정부의 효율성, (8) 인플레이션 관리, (9) 자본유통의 원활, (10) 장벽 없는 무역, (11) 변동환률 제도, (12) 인적자원에 대한 교육투자 등 12가지를 들고 있다.

여기 12가지의 나열에서 중요성에 따른 순위를 매기기는 어렵다. 최근 홍석현은 한국사회의 발전 아젠더 가운데 가장 시급하면도 중요한 과제로 효율적인 교육투자와 인적자원을 들었다. 한 나라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위에서 나열한 '좋은 제도'의 근원은 도대체 무엇일까?

저자는 우리가 좋은 제도를 거론할 때 흔히 근인(近因; 종속변인)에 머물고 궁극인(ultimate cause; 독립변인)을 간과하는 걸 경고한다. 그는 "좋은 제도의 근원에 대해 물어야 합니다. 좋은 제도를 하늘에서 어떤 나라에 무작위로 뚝 떨어진 선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좋은 제도의 근원을 알아내려면, 인간사회에 존재하는 복잡한 제도들의 역사적 기원에 의문을 품어야 합니다"고 했다. 그는 경제학자들이 근인적(近因的)관점에서 강조하는 좋은 제도들의 궁극적인 기원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인류역사의 1만3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1만3000년 전이면 마지막 빙하기가 끝날 무렵이고, 인류는 수렵채집으로 살았지 농업이나 목축으로 살지는 않았다. 수렵채집사회는 단조롭고 인구밀도가 낮았지만, 농업사회로 진입하면서 식량을 비축하고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인구가 늘어나 도시, 화폐, 지도자, 시장 등이 형성되면서 복잡한 제도가 만들어진다. 하여 복잡한 제도의 최종적 궁극인은 농업이고, 그 다음에 인구밀도가 높아진 정주사회가 등장했다. 또, 농업이 발달하려면 그 지역에 길들일 수 있는 야생식물과 동물이 있어야 했다.

길들일 수 있는 야생식물은 밀과 쌀, 옥수수와 콩, 감자와 사과 등 극소수에 불과했고, 길들일 수 있는 동물도 소와 양, 염소와 말, 돼지와 개 등 소수에 불과했다. 농업발달에 필수적인 야생식물과 동물은 지구의 일부 지역인 '비옥한 초승달'이라 불리는 중동지역, 중국, 멕시코와 안데스지역 등 일부 지역에 집중되었다.

이를테면, 농업은 이른바 '농업의 고향'이란 곳에서 기원전 9000년 경(비옥한 초승달 지역)부터 기원전 2000년(미국 동부지역) 사이에 생겨났고, 그 후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농업의 고향' 지역 중심으로 중앙정부의 역사가 긴 부국이 형성된 반면에, 잠비아나 뉴기니처럼 중앙정부 역사가 짧은 나라들은 아직도 빈국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1960년대에 한국과 가나와 필리핀은 모두 가난한 나라였지만, 당시 경제학자들의 근시적 예견이 빗나간 예를 이렇게 말한다. "가나와 필리핀은 열대지역에 위치해 식량생산이 쉬운 데다 천연자원도 풍부했지만, 한국은 추운 데다 천연자원도 별로 없어 부국으로 발전할 조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은 농업과 문자, 그리고 중앙정부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발달한 지역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는 것이 결정적인 이점으로 작용했다는 게다. 저자는 그게 중국과 인접한 탓이라 했지만, 필자가 보기엔 반은 맞지만 반은 틀린 지적이다.

어쨌든 저자는 필리핀과 가나의 경우 천연자원은 풍부했지만, 한국을 신속하게 부국으로 올라서게 한 원동력인 '복잡한 제도의 역사'가 없었다는 걸 강조한다. 이어 그는 국가의 빈부를 결정하는 흥미로운 제도적 요인으로 '성쇠의 반전'(reversal of fortune)을 든다. 그 단적인 예로 저자는 스페인 정복자들이 중앙아메리카에 도래하기 전까지 과테말라는 가장 부유했지만, 코스타리카는 가장 가난한 지역이었음을 환기시킨다.

하지만 코스타리카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후에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나라로 꾸준히 성장해 왔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이렇게 묻는다. "코스타리카에서 대통령을 지낸 사람들이 한꺼번에 네 명이나 부패로 투옥된 적이 있지요. 정말 끔찍한 일이지만, 부패한 짓을 저지르고도 감옥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네 명의 대통령을 두는 것보다 낫지 않습니까?"라고 되묻는다. 코스타리카는 우리의 반면교사다.

[셋째] 중국은 세계 1위가 될 수 있는가?

중국은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면서 최근 경제력이 급성장한 나라다. 원래 중국은 농업과 문명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발상한 두 지역 중 한 곳이며, 문자가 가장 먼저 만들어진 세 지역 중 한 곳이기도 하다. 유럽은 중국보다 지리적으로 훨씬 더 조각난 모습이고, 유럽을 관통하는 강들은 알프스에서 시작하여 바퀴살처럼 사방으로 흐른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거대한 두 강이 평행해서 가로지르고 있다.

유럽은 지리적으로 분할된 구조이지만, 중국은 지리적으로 통일된 거대 구조를 이루고 있다. 중국은 동아시아인으로 유럽인과는 골격이 다르다. 비옥한 초생 달 지역에서 그랬듯이, 중국에서도 1만 년 전에 농업이 발달해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인구폭발은 금속연장의 개발로 이어졌고, 다시 국가와 제국이 탄생하고 문자도 발명되었다. 중세시대에 중국은 기술문명(운하, 합금, 화약, 자기나침반, 인쇄와 종이, 활자 등)에서 세계를 선도했다. 하여 중세 중국이 주도권을 잃고 세계전역을 정복하지 못한 이유는 세계사에서 풀리지 않는 큰 의문들 중의 하나로 남아 있다.

15세기 초 중국 황제 영락제는 일곱 번이나 선박 수백 척으로 이루어진 원정함대를 파견했다. 당시 콜럼버스가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가려고 탔던 세 척의 범선에 비하면 중국 함대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여덟 번째 함대는 없었다. 유럽에서는 많은 왕들이 원정을 시도했지만, 중국에서는 오직 한 명의 황제만이 원정을 시도했고, 그 시도는 당대에 끝나고 말았다. 따라서 그 황제가 보물 함대 파견을 중단하기로 결정하자 중국의 해양원정 자체가 막을 내렸던 게다.

유럽은 중국보다 작지만 정치적인 분할로 인해 탐험가를 지속적으로 지원해 줄 지도자가 어디에선가 나왔지만, 중국에서는 황제 한 사람밖에 없었다. 황제가 허락하지 않으면 한 푼의 지원도 받을 수 없는 구조였다. 중국은 지난 2천 년간 거의 통일된 국가 체제였지만, 유럽은 역사적으로 통일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처럼 통일은 때로는 유리하고 때로는 불리하다. 중국은 일찍부터 통일된 까닭에 그 역사가 급격히 흔들리고 '요동'하는 역사였다면, 유럽은 지역이 여러 나라로 분할된 까닭에 수많은 군주가 수많은 실험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게다.

그럼 지금의 중국은 어떤가? 중국의 영향력은 곧 대국인 '국가의 영향'이다. 흔히 국가의 영향은 '해당나라의 국민 수 곱하기 일인당 소비율 혹은 생산율'과 같은 것으로 가늠한다. 현재 중국인 전체의 평균 소비율이나 생산율은 낮은 편이다. 하지만 중국이 제1세계의 일인당 소비율을 따라잡는다면, 세계 전체의 석유 소비량이 두 배로 증가할 것이다. 이미 세계에서 소비되는 어류와 해산물의 3분의 1이 중국에서 소비된다.

중국은 최근 환경문제와 인구문제로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다. 베이징 교통경찰의 기대수명은 고작 42세이다. 북중국은 이미 심각한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저자는 중국이 유럽연합이나 미국을 따라잡지는 못할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중국식 사회주의가 내면적으로 민본적․민주적 통치력을 얼마나 발휘하느냐에 따라 그 전망은 사뭇 달라질 게다.

[넷째] 개인의 위기와 국가의 위기는 어떻게 다른가?

개인은 물론 국가도 위기를 겪기 마련이고, 그 위기는 선택적인 변화를 통해 성공적으로 해결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개인의 위기는 비교적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지만, 국가의 위기는 개인 차원과는 달리 리더십과 집단의사결정이라는 문제가 개입되기에 좀 더 복잡하고 장기적이다. 변화를 요구하는 압력과 위기는 개인적 차원에서부터 국가와 세계에 이르기까지 어떤 차원에서나 닥칠 수 있다. 거기에 대처하려면 개인이든 국가든 '선택적 변화'가 필요하다.

개인의 위기는 흔히 인간관계의 문제에 기인한다. 이혼, 가족의 죽음이나 중병, 해고와 은퇴, 중대한 금전적 피해 등이 대표적이다. 위기치료사들은 한 개인의 위기극복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예측인자들을 다음과 같이 열거한다.

- 경직된 성격보다 유연한 성격
  - 자신감을 드러내는 자아강도(ego-strength)
  - 과거의 선택적 경험에서 오는 자신감
  - 자율적인 선택을 허용 받는 분위기
  - 돈 문제나 물리적 위험에 크게 구속 받지 않는 선택의 자유
  - 실패를 용납하는 여유로움
  - 문제 해결 방법을 배울 수 있는 본보기 친구
  - 감정적 위안과 물질적 지원을 해줄 만한 친구

위의 위기극복 요인들 가운데 한두 가지라도 해당되는 사람은 위기극복 가능성이 높지만, 하나도 해당되는 게 없다면 그 사람은 위기에서 헤어나기 어려울 게다.

이쯤에서 국가 위기에 '선택적 변화'가 성공적으로 적용된 사례를 살펴보자. 저자는 1868년부터 1912년까지 메이지 유신 기간 동안 일본이 이룩한 선택적 변화의 성공사례에 주목한다.

일본은 19세기 중엽 서세동점의 위기 앞에 군사력과 정치력에서 서양을 따라잡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대대적인 혁신프로그램에 착수했다. 일본은 봉건주의, 사무라이 사병, 신분제를 철폐하는 한편, 보편교육체제 도입, 공무원 선발제, 내각제 도입과 더불어 산업화를 적극 추진했다.

일본은 서양으로부터 많은 것을 차용하고 배웠지만, 일본의 가치를 보존하면서 효과적인 방법을 받아들이고자 했다. 특히 유럽을 배우기 위해 각국에 파견된 젊은이들이 귀국해서 각자 배운 분야에서 일본정책을 책임지는 위치에 오른 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선택이었다. 게다가 일본은 섬나라여서 국경을 맞댄 인접국가로부터 큰 압박을 받을 이유도 없었다. 결국, 국가의 위기는 해당 국가의 역사적 선택과 지리적 여건에 따라 많이 다르다는 게다.

저자는 미국의 위기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편이지만, 동시에 불운의 조짐을 경계한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의 경제력, 최강의 군사력, 높은 국민소득을 누리는 한편, 지리적으로도 큰 축복을 받은 나라다. 그리고 민주주의도 미국이 역사적으로 누려온 강점 중의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미국 민주주의의 퇴락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정치적 타협의 잦은 결렬, 투표율의 저조, 심화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 공공복지 투자의 하락 등을 들고 있다.

[다섯째] 위험평가, 전통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위험의 평가에서 우리는 어떤 유형의 위험은 습관적으로 과대평가하는 반면에 어떤 위험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뉴기니 원주민들은 죽은 나무 아래에서는 절대로 잠자지 않는다. 저자는 뉴기니의 숲에서 밤을 보낼 때마다 숲 어딘가에서 나무가 쓰러지며 땅을 때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죽은 나무 아래에서는 잠을 자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통해 저자는 '건설적 편집증'(constructive paranoia)이라는 개념을 고안해 냈다.

'건설적 편집증'은 터무니없는 과민반응이 아니라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 조심스런 태도다. 이를테면, 한 번 행할 때는 위험수준이 무척 낮지만 그 행동을 반복하게 되면 위험의 가능성이 누적되어 결국에는 그로 인해 죽음을 맞이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게다. 이런 위험을 피하는 방법적 교훈이 '건설적 편집증'이다. 저자는 터무니없는 과민반응과 타당성을 지닌 조심스런 자세의 차이를 강조한다.

전통사회에서 위험은 주로 자연환경과 관계가 있지만, 현대문명사회에서는 자동차와 사다리 혹은 심장마비와 암 등 비전염성 질병이 대표적이다. 비교적 낮은 위험 발생률과 사고를 당하더라도 금세 치료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위험에 대한 현대인의 생각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저자는 여러 위험 요인의 순위를 나름대로 평가하고, 이에 따른 사망자의 수를 따져 우리는 '조심하고 또 조심할 것'을 권고한다.

미국인들은 테러리스트의 공격, 항공기 추락, 원자력 발전소 사고, 유전자조작 식품 등의 위험은 과대평가하는 경향이지만, 자동차와 음주와 흡연, 낙상에 의한 사망자는 상당히 많음에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즉,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이나 단번에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위험은 과대평가하는 반면에,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위험이나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받아들이는 위험은 과소평가하기 쉽다는 게다.

우리가 일상 삶에서 테러리스트의 공격이나 유전자 조작식품보다 더 크게 걱정해야 하는 진정한 위험은 샤워실이나 목욕탕에서, 젖은 도로에서, 사다리에서 혹은 계단을 내려가다 미끄러져 넘어질 가능성이다. 샤워와 운전은 뉴기니의 숲에서 죽은 나무 아래서 잠자는 것과 똑같은 정도로 위험한 짓이다. 다만 우리는 매일 샤워를 하지만 조심해서 할 따름이다. 건설적 편집증은 저자가 뉴기니에서 배운 가장 큰 삶의 교훈이 되었다.

[여섯째] 건강하게 삶의 질을 유지하며 오래 사는 법

현대인을 괴롭히는 대표적인 비전염성 질병으로는 당뇨, 고혈압, 심근경색, 암, 동맥경화증, 신장 질환, 통풍 등이 꼽힌다. 서구식 생활방식이 인류에 가져온 변화는 엄청나다. 서구식 생활방식의 특징은 정주 생활, 적은 육체활동, 고칼로리 섭취와 과체중, 지나친 음주, 염분과 당분의 과도 섭취 등이다. 저자는 건강 위험인자와 질병의 상관관계 중 염분섭취와 고혈압, 그리고 비만과 당뇨 간의 관련성에 주목한다.

최근 중국과 인도에서도 당뇨환자가 크게 증가한 반면에, 미국과 유럽의 중류 이상의 교육수준이 높은 집단에서는 당뇨의 발병률이 더 낮게 나타난다. 인도와 중국의 경우에는 이제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여유가 생기자 푸짐하게 먹지만 당뇨에 걸릴 위험은 높아졌다. 반면에 가난한 사람들은 넉넉하게 먹을 형편이 못되어 당뇨에 걸리지 않는다. 요즘 비유럽권의 먹고살 만한 집단이면 어느 나라에서나 당뇨 발병이 15〜30% 정도라고 한다.

우리가 비전염성 질병에 걸릴 위험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택하라!"고 하면 간단히 해결된다. 즉, 적절한 운동, 저염식, 과체중을 피하는 합리적인 식습관 등이다. 하지만 현대인에게 그것은 끔찍한 일이다. 이래저래 안락함과 달콤함은 몸에 배어 있다.

올리브유와 생선과 채소가 주원료인 이탈리아 식단은 전통적인 식단과 무척 유사하다. 그 덕분에 이탈리아의 당뇨 발병률은 대부분의 유럽국가나 미국보다 낫다. 그래서 이탈리아인들은 삶을 마음껏 즐기면서도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우리에게 건강한 식습관과 생활방식이 그래서 중요한 게다.

[일곱째] 세계가 직면한 중대한 문제들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직면하게 될 세계적 문제들 중 저자는 다음 세 유형의 문제에 주목한다. 그 첫 번째 문제는 당연히 지구의 '기후변화'다. 기후변화는 물리적 원인, 생물학적 원인, 사회적 원인이 혼재된 복잡한 문제여서, 전 지구적으로 10년 안에 우리 모두의 삶에 큰 파장을 일으킬 위험을 안고 있다.

그 문제의 출발점으로 그는 세계인구와 1인당 평균 '인간영향'(human impact)을 제기한다. 여기 1인당 평균 인간영향은 한 사람이 소비하는 평균 자원량과 배출하는 평균 폐기물량을 뜻한다. 현재 인간의 자원소비량과 폐기물생산량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오늘날 인간 활동은 주로 화석연료를 태우기 때문에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고, 이것이 대기로 배출되어 이른바 '지구온난화' 현상을 초래케 된다. 온난화의 영향으로 우리들이 당면하는 주요문제는 가뭄, 식량생산의 감소, 열대성 질병의 전반적 확산, 해수면의 상승 등이다. 이런 문제들을 과학기술로 해결하기 위한 '지구공학'(geoengineering)적 노력이 등장했지만, 예상되는 비용이나 그 효과 면에서 아직 많은 숙제를 안고 있다. 

기후변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이제 인간들은 화석연료를 덜 태우고, 재생 가능한 에너지에 더 많이 의존해야 한다. 당장 미국과 중국이 이산화탄소 배출에 관한 쌍무협정을 맺는다면 현재 배출량의 41%나 줄일 수 있다. 현재 지구에는 70억 인구도 먹고살기가 힘든데, 금세기 말에 90억이 넘는 인구를 어떻게 먹여 살릴 수 있을지가 문제다. 우선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게 급선무다.

두 번째 문제는 국가 내와 국가 간에 심화되는 '불평등' 현상이다. 우선 국가 간에 불평등 문제를 보면, 세계에서 국민소득이 높은 노르웨이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들에 비해 400배나 부유하다. 한국도 가장 가난한 국가들보다 100배 쯤은 부유하다. 국부(國富)는 우리들의 삶에 넉넉한 식량, 깨끗한 물, 아동교육, 직업훈련, 공중보건 등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세계화된 지구촌에서 질투하고 분노하며 절망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자신들의 질투, 분노, 절망감을 우리 모두와 함께 공유하려 들 것이다. 그래서 이민 물결과 난민 문제, 테러문제가 끊이지 않는 세계문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한 나라 안에서 불평등 문제는 폭동으로 연결되는데, 그 심각한 사례들이 세계 곳곳에서 늘어나고 있다. 미국이 불법 이민자 문제를 트럼프 대통령 식으로 밀어붙인다고 그 문제가 해결될까? 크기가 늘어나는 풍선은 언젠가 터져버린다. 터지면 끝장이고, 때는 늦다.

마지막 세 번째 문제는 '환경자원의 관리'다. 생태계는 우리에게 더러운 물보다는 깨끗한 물, 혼탁한 공기보다 맑은 공기, 척박한 토양보다 비옥한 토양을 궁극적으로 제공한다. 그것도 공짜로 말이다. 공짜로 제공되는 생태계 서비스의 경제적 가치는 헤아릴 수 없다. 장회익 교수는 생태계의 온생명 덕분에 우리 낱생명은 원천적으로 온전한 생존이 가능하다고 했다. 생태계의 파괴는 곧 우리 인간생존의 파멸로 이어진다.

인간에 의한 자연자원의 소모량은 인구수에 일인당 평균 자원소모율을 곱한 값이다. 현재 서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부유한 나라의 1인당 평균 자원소모율이 가난한 나라의 그것보다 32배나 높다고 한다. 따라서 세계적 자원고갈의 위험은 가난한 나라들의 높은 인구증가율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미국인 3억과 유럽전역의 8억 명의 높은 자원소모율에서 비롯되고 있다. 게다가 최근 중국과 인도에서 부유층의 자원소모도 엄청 늘어나고 있다.

결국, 지구자연자원을 적정하게 관리하려면 정치경제적인 면과 개인적 노력이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 왜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자기 파괴적인 행위를 멈추지 않을까? 문제는 단기적 개발이익에 눈이 어두워 장기적으로 자국뿐만 아니라 세계자체를 파멸로 이끄는 정치지도자들이 여전히 득세하는 데에 있다. 그런 정치지도자를 지켜주는 정치제도는 물론, 그런 지도자를 선택하는 우리들 자신이 문제다. 결국 열쇠는 깨친 시민의 손에 쥐어져 있다.

끝으로, 책 말미의 <재레드 다이아몬드에게 문명의 길을 묻다> Q & A를 간략히(8개항 중에서 네 가지로) 요약한다.

1. 미래에는 어떤 요인이 인류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이고, 우리가 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부의 불평등이고, 둘째는 자원의 남용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국가 간의 핵전쟁 가능성이나 테러리스트의 핵공격 가능성인데, 실제 일어날 가능성과 그렇지 않을 가능성은 반반이다. 이런 문제들은 우리가 자초한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결심하느냐 않느냐가 중요하다. 그는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쪽을 선택할 가능성이 51%이고, 그렇지 않을 가능성은 49%란다.

2. 리더와 교육의 역할에 대한 견해는?
리더의 덕목은 정직하고 현실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리더에게 이런 자질이 부족한 게 문제다. 교육은 미래지향적이다. 모든 시민에게 최상의 교육을 제공하는 걸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저자는 미국보다 한국의 공교육이 더 양질이라고 평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전체적(대학과 평생교육 등)으로 미국교육의 수월성은 여전히 세계적 수준이다.

3. 최근 유럽에서 발생한 테러는 종교뿐만 아니라 인종갈등도 내재해 있다. 테러리즘의 뿌리를 뽑을 수 없을까?
테러리즘의 궁극적 원인은 언젠가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갖지 못하게 만든 비참한 생활조건 때문이다. 테러리즘의 궁극 해결책은 전 세계의 생활조건을 향상․개선하는 것뿐이다. 동시에 우리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스스로를 지켜내야 한다고 했지만, 필자가 보기에 문제는 복잡하고 심각하다. 테러문제는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의 문제이자 세계적인 문제다.

4. 미래사회는 로봇과 인공지능이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인데, 그로 인해 인간의 삶이 얼마나 바뀔까?
인류의 삶은 지난 6만년 동안 발전해 왔지만, 지금 그 발전 속도는 엄청나다. 하지만 인간의 근본적인 걱정거리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분쟁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어떻게 건강을 유지할 것인가 등이다. 아마 로봇과 인공지능을 더 많이 갖게 된 뒤에도 우리는 계속 같은 걱정을 하며 살아갈 게다.

인류에게 장밋빛 미래가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우리가 지금보다 나은 선택을 할 때, 그게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개인이든 국가든 '선택적 변화'가 중요한 게다. 천지간에 나 하나부터 바로 사는 게 혁명의 시작이다. 그걸 기반으로 공동체적 변화가 일어나도록 노력하는 길밖에 없다. 적어도 그 가능성이 51%가 될 때까지는.

덧붙이는 글 | '총.균.쇠'-'사피엔스'-'나와세계' 이들 세 책은 상호연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문명비평서로 3권 모두 주목할 만하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나와 세계 - 인류의 내일에 관한 중대한 질문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김영사(2016)


태그:#나와 세계, #재레드 다이아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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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둥이로 태어나 지금은 명예교수로 그냥 읽고 쓰기와 산책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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