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주년 문희준. 팬들에 대한 미안함 담아! H.O.T 출신 가수 문희준이 11일 오후 서울 한남동의 한 공연장에서 열린 <문희준 20주년 기념 콘서트> 쇼케이스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데뷔 20주년을 맞은 가수 문희준의 20주년 기념앨범의 타이틀곡 '우리들의 노래는 끝나지 않았다'는 팬들이 20주년을 기념하며 선물해준 광고의 글귀를 그대로 차용해 팬들의 입장으로 가사를 쓴 작품이다.

문희준은, 생에 가장 기쁜 날, 오랜 시간 자신을 지지해준 팬들에게 사과해야 했을까? ⓒ 이정민


"20년간 항상 가슴 속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잃지 않고 활동해왔다. 저로 인해 속상해하는 팬 여러분께, 제가 좀 부족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더 잘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똑같은 팬으로서 감사하게 생각하며 활동하겠다. 고맙고 미안하다."

12일 가수 문희준이 결혼식 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유별나게 돈독하기로 유명한 문희준과 그 팬들. 그런데 왜 문희준은, 생에 가장 기쁜 날, 오랜 시간 자신을 지지해준 팬들에게 사과해야 했을까?

공감 일으킨 20년 팬의 글

문희준, 사랑해준 팬들의 이야기를 노래! H.O.T 출신 가수 문희준이 11일 오후 서울 한남동의 한 공연장에서 열린 <문희준 20주년 기념 콘서트> 쇼케이스에서 신곡 '우리들의 노래는 끝나지 않았다'를 열창하고 있다. 데뷔 20주년을 맞은 가수 문희준의 20주년 기념앨범의 타이틀곡 '우리들의 노래는 끝나지 않았다'는 팬들이 20주년을 기념하며 선물해준 광고의 글귀를 그대로 차용해 팬들의 입장으로 가사를 쓴 작품이다.

문희준과 함께 악플과 싸웠던, 20년 지기 팬들이 화가 났다. 그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조롱과 무시도 견뎠던 팬들이 화가 난 이유는 결혼 자체가 아니었다. ⓒ 이정민


인터넷 초창기, '네티켓'(인터넷 에티켓)이라는 단어조차 생기기 이전, 누리꾼들이 문희준에게 쏟아낸 조롱과 비난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배고픈 록을 위해 하루 오이 3개만 먹는다", "7옥타브까지 올라간다" 등 지금 돌이켜보면 황당한 루머들이 판을 쳤다. 합성과 플래시 애니메이션이 막 활성화되던 시기, '문희준'이라는 존재는 마음껏 씹고 뜯고 가지고 놀아도 되는, 공인된 장난감이었다.

지난 8일, 온라인 커뮤니티(디시인사이드)에는 자신을 문희준의 20년 팬이라 소개한 한 팬의 글이 올라왔다. 이 글에는 20년간 어떤 마음으로 그를 지지해왔으며, 왜 팬들이 그의 결혼 발표 이후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지가 세세하게 적혀있었다. 억울한 루머에 시달리던 문희준을 위해, 뜨거운 여름날 여의도 공원에서 해명문이 적힌 부채까지 나눠주며 그를 보호했던 팬들이, 그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조롱과 무시를 감내해야 했던 팬들이 등 돌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분명 '결혼' 자체가 아니었다.

글에 따르면, 팬들의 서운함은 결혼 발표 바로 이튿날 시작됐다. 좋아하는 스타의 결혼에 마냥 쿨할 팬은 별로 없다. 하지만 올해 나이 마흔. 팬들 대부분이 이미 결혼해 아이까지 있는 마당에, 그가 결혼한다는 사실 자체가 팬들에게 큰 충격은 아니었다. 팬들의 당혹스러움은 그의 결혼 자체가 아니라, 많은 나이 차이 정도였을 테다. 실은 그마저도, 혹여나 나이 차 때문에 비난받을 문희준을 걱정해서였지, 결혼 자체가 싫어서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튿날, 문희준은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즐거운 생활>을 통해, 팬들을 '시누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게다가 문희준의 어머니는 직접 스튜디오를 찾아 "팬들이 욕할까 봐 걱정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기에 데뷔 20주년 콘서트를 찾았던 예비신부(크레용팝 멤버 소율)의 '관크'(관객 크리티컬, 다른 관객의 관람을 방해하는 태도) 목격담까지 줄을 이었다. 소율이 다리를 올리고 내내 휴대폰을 만졌으며, 객석에 앉은 팬들을 손가락질하는 등 관람 태도가 매우 불량했다는 것이다.

H.O.T. 라이벌 그룹이라 칭해지던 젝스키스와 god가 모두 재결합했지만, H.O.T.는 20주년을 기념하는 앨범은커녕 1회성 콘서트도 없었다. 리더였던 문희준은 20주년을 맞아 20회 콘서트를 열며, 그런 팬들의 아쉬움을 달래주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문희준 팬들은 이 무대를 굉장히 남다른 의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 공연이 갖는 의미와 팬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문희준이었지만, 이 공연에서 팬들을 향해 '저 이제 결혼해도 되나요?'라고 물었다. 객석에 예비신부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팬들은 "예비신부의 관크보다, 우리를 들러리 삼아 사랑놀이를 한 문희준에게 더 화가 난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관크' 목격담에 대해 문희준은 "예비신부가 아니라 그 일행이 저지른 행동"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공연장에서 위로를 받아야 할 팬들을 들러리 세운 게 아니냐는, 더 중요한 부분에 대한 해명은 없었다.

"결혼 안 했다면 이런 일 생겼을까?"

 문희준과 소율 부부

지난 12일 결혼한 문희준-소율 부부 ⓒ 코엔스타즈


결혼 이틀 전인 지난 10일. 문희준은 다시 한 편의 글을 올렸다. "20주년 콘서트로 결혼 비용을 마련했다", "팬들을 ATM 취급했다" 등 여러 논란에 속상한 마음을 토로하며, 그는 "다시 한번 대중의 오해를 받게 된다면,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 같다"고 호소했다.

그리고 이 글 말미, "용기를 내어 하고 싶은 말은, 결혼 때문이 아니라고 하는데, 결혼을 안 했다면 이런 일들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썼다. 팬들의 배신감과 불만의 이유를, 자신의 결혼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는 그의 말에, 팬들은 다시 한번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헐, 너 걔 남자로 좋아한 거야?"
"걔가 연애(결혼) 안 하면 너랑 사귈(결혼할) 줄 알았니?"

스타를 좋아하는 팬들이 가장 많이 듣는,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일 것이다. 물론 스타의 연애·결혼을 마냥 좋아할 팬은 없다. 하지만 팬들 사이에는 "연애나 결혼은 휴덕(덕질을 쉰다)감이긴 해도, 탈덕(덕질을 그만둔다)감은 아니"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팬들은 무엇에 화를 내고, 무엇 때문에 탈덕하는 것일까?

팬은 스타와 결혼하고 싶지 않다

 H.O.T. 팬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응답하라 1997> 공식 포스터.

H.O.T. 팬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응답하라 1997> 공식 포스터. ⓒ CJ E&M


팬과 연예인의 관계는 차갑게 보자면, 스타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팬과, 그들의 지지와 사랑을 기반으로 돈을 버는, 일종의 비즈니스 파트너에 가깝다. 하지만 이만큼 불평등한 관계도 없다. 팬들의 조건 없는 지지와 사랑은 오로지 스타만을 향한 것이지만, 스타의 활동은 개인의 성공을 위한 것이지 팬들을 위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브 앤 테이크'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 이 불평등한 관계에서, 팬들이 스타에게 바라는 것은 오로지 내 이 아낌없는 사랑에 대한 최소한의 감사와, 팬이라는 존재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 그뿐이다.

문제는 연애나 결혼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팬들을 들러리 삼았느냐 아니냐, 팬들의 사랑을 ATM 삼았느냐 아니냐다. 결혼이라는 중대사는 당연히 그들의 개인적인 결정이지만, 그 과정에서 팬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고려하는 '척'이라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조건 없는 사랑을 보내주는 팬들의 사랑에 조금만 예의를 갖춰줬으면 하는 요구가 그리 과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1세대 아이돌 H.O.T. 열성 팬을 주인공으로 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냈던 <응답하라 1997>의 내레이션으로 팬들의 마음을 갈음한다. 만약 성시원(정은지 분)이 지금 우리 곁에 있었다면, 그녀 역시 문희준의 팬들과 함께 화내고, 울지 않았을까?

"내가 오빠를 사랑하는 마음은 아가페라고 했다. 플라토닉도, 에로스도 아닌 아가페. 그건 바로 무한정의 사랑이다. 비록 보답 받을 수 없는 사랑이지만, 그 결과가 기만이나 조롱만큼은 아니길 바란다. 팬은 만인의 연인에게 불특정 다수를 자처하는 사랑의 바보다. 그 외로운 사랑에 일일이 응답해줄 수는 없어도, 배신감에 울게 하는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문희준 응답하라 1997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