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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연대 팟캐스트 철학사이다 바로이책 <지연된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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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할 공동체가 없는 사람들

"가난한 자들에겐 호소할 공동체가 없다. '가난한 자들'은 범주일 뿐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실패와 고통에 대해 개별적으로 쏟아지는 비난을 꿋꿋하게 감수함으로써 혼자서 고통을 견뎌낸다. 그들은 자신들이 개인적으로 저지른 실수 때문에 밑바닥 계급으로 분류되고 개인이 입은 상처를 혼자 다독인다. 가난하면 외로워진다."

이 말은 사회철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부수적 피해>에서 가난에 대해 한 말이다. 여기서 가난한 자들은 단지 가난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회에서 보이지 말았으면 하는 밑바닥 계급의 모든 사람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언더클래스'라고 불리는 이 밑바닥 계급은 소비사회에서 새롭게 등장한 계층인데, 소위 계층이동이 완전히 봉쇄된 사회적 약자를 이르는 말이다. 

이 밑바닥 계급의 특징은 사회적 관심사의 밖에 존재한다는 것인데, 기본적으로 사회가 이들 존재를 골칫거리로 삼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보통 사회는 이 사람들이 밑바닥 계급이 된 이유를 두고 열심히 일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열심히 일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범죄와 부도덕의 온상이기에 사회가 돌보아줄 필요가 없는 사람들로 여긴다.

그래서 사회의 관심 밖에 놓이게 되고 결국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 이런 이유로 이 밑바닥 계급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호소할 데가 없고, 호소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들어주지 않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사람들 

 '지연된 정의'는 다음 스토리펀딩 기획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를 단행본에 맞게 고쳐 쓰고, 세 건의 재심 사건을 다뤘다.
 '지연된 정의'는 다음 스토리펀딩 기획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를 단행본에 맞게 고쳐 쓰고, 세 건의 재심 사건을 다뤘다.
ⓒ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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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자 김만권이 진행하는 <철학사이다, 바로 이 책>이 2017년 첫 책으로 선정한 <지연된 정의>는 이렇게 억울한 일을 당한 밑바닥 계급의 사람들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담고 있다.

빈곤과 무지, 장애 등으로 인해 사회적 편견 속에서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람들에게 '재심'이라는 기회를 주고 있는 <지연된 정의>(후마니타스)의 두 저자, 박상규 기자와 박준영 변호사를 만났다.

두 사람의 첫 인상은 한 마디로 '맑은 사람들'이었다. 하도 험한 일을 하고 다녀 두 사람 역시 억세지는 않을까라는 짧은 생각은 곧 편견이 되어버렸다. 한편으론 이렇게 맑은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돈도 되지 않는 재심사건을 맡아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그렇게 심각하게 귀 기울여 들을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맑은 심성은 서로에 대한 소개에서도 쉽게 드러났다. 그리고 기자와 변호사라는 언뜻 보기 드문 이 조합이 이토록 잘 어울리는 이유도 보였다.

박상규 기자 : "제가 박준영 변호사랑 실제로 같이 일을 해봤잖아요?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굉장히 선하세요. 제가 많이 배웁니다. 그러니까 법률가로서, 제가 법률가는 아니니까 제가 배울 건 별로 없을 것 같은데, 저는 사람을 대하는 것에서 많은 것을 배워요. 가령 아까 말씀하신 밑바닥 인생들, 사회적 약자들 말씀해 주셨는데, 그분들 대할 때 말을 안 놓거나 항상 높여주고, 절차를 다 지켜주고. 그런 것을 보면서 '저 스스로도 내가 과연 과거에 어떻게 살았나'를 돌아보게 하는 인물입니다."

박준영 변호사 : "저는 박상규 기자와 2년 이상 함께 했는데요, 제가 박 기자를 통해서 많이 배웠죠. 왜냐하면, 변호사는 통상 사건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책상에 앉아서 서면 쓰는 게 주된 일이고,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서 돌아다니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당사들이 수집해온 증거를 취합하는 일만 하는데, 박 기자랑 함께 재심사건을 진행하면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게 된 이유는 기자는 취재를 해야 하는데 저한테는 그게 증거수집이 돼버린 것이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의미 있는 일이 많이 벌어졌습니다. 저한테는 의미 있는 인연이었고 앞으로도 쭉 잘 계속 잘 가지고 가야 할 인연이죠."

두 사람은 서로에게 배운다고 말했다. 같이 일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를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해온 지난 재심사건을 살펴보면, 인간에 대한 예의를 아는 사람들이었다.

세 개의 재심 사건에 얽힌 사회적 약자들  

법적 과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재심'이라는 법적 절차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난관이 존재하는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한 사건에 대한 법적 판단이 바뀐다는 것은 법의 안정성에 문제를 일으킨다고 보기 때문에 재심 결정은 여간해서 내려지지 않는다.

<지연된 정의>에는 이렇게 어렵게 내려진 세 개의 재심 사건이 나온다. 삼례나라 슈퍼3인조 강도치사사건,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완도 무기수 김신혜 사건. 이 세 사건은 이 두 사람이 모두 재심을 이끌어 내거나 죄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 받은 사건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재심 사건을 선정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박준영 변호사 : "첫 번째는 도대체 얼마나 오랜 기간, 어떤 방식으로 진실을 주장했는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굉장히 긴 기간 동안 억울하다는 걸 주장했고, 그 억울하다는 주장을 언론이나 또 많은 사람이 옆에서 도와줬다. 이런 것들은 의미 있게 바라볼 수밖에 없거든요. 삼례사건이나 익산사건이 그런 케이스에 해당합니다. 무기수 김신혜 씨 사건 같은 경우는 당사자의 절박한 호소가 너무 절실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 절실한 호소는 이것은 도저히 인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호소라고 생각해서 관여했던 거고요.

뭐 때로는 사무실에 찾아왔는데 찾아와서, 저를 기다리고, 또 저한테 억울하다고 주장하면서 그 절절함을 표현하는 어떤 얼굴을 보고 또 재심에 관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 부산의 한 경찰관 사건 재심을 곧 진행할 것인데 그런 사건이 거기에 해당하고요. 또 올해 진행할 사건 중에는 고령, 나이 굉장히 많이 드신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의 억울함은 재심의 가능성을 논한다기보다는 언제까지 사실지 모르지 않습니까? 그런 사건들은 또 우선적으로 관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맡았던 이 세 사건에서 억울한 누명을 쓴 이들은 극빈층 가정에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지적장애인이거나 미성년 혹은 20대 자녀들이었다. 삼례나라 슈퍼3인조 강도치사사건에선 경찰이,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에선 검찰이, 완도 김신혜 사건에선 경찰과 검찰이 모두 이들을 범죄자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물론 법원의 무관심 역시 이 세 사건 모두에서 드러났다. 더군다나 이 사건들을 보면 경찰이, 검찰이 진범이 누구인지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모른 척 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더하게는 진범과 마주한 누명을 쓴 이들이 자신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그래서일까? <지연된 정의>에 나오는 이 세 사건은 모두 한 편의 소설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어떻게 경찰, 검찰, 법원이 모두 범인이 아닌 자들을 감옥에 가두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의도된 조작, 때로는 의도치 않은 실수를 저지르게 된 것일까? 박준영 변호사는 그 이유를 우리 사회가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찾았다.    

박준영 변호사 : "진범과 누명을 한 사람들을 불러서 대질을 시키고, 진범을 눈앞에 두고도 누명 쓴 사람들이 자기가 범인이라고 이야기를 해요. 왜 그랬느냐고 물어보면 "아니 그동안 경찰, 검찰, 법원…. 옛날에 이미 우리가 말했는데도 안 믿어줬잖아요. 안 믿어주고 나서 우리가 또 지금에 와서 안 했다고 하면 또 안 믿어 줄 것 아니에요."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 또 쉽게 자포자기를 해요. 이 사람들이. 그래서 이것은 왜 허위자백을 했냐고 상대방 의지의 문제를 따질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사회적 약자들의 말을 얼마나 안 믿어줬으면 이 사람들이 입을 닫아 버릴까, 왜 스스로에 대해 거짓말을 할까, 이걸 따져 봐야겠더라고요."

<지연된 정의>에 실린 세 편의 재심 사건은 각각 한편의 영화 같다. 실제 세계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다니. 그래서인지 15세 소년이 누명을 뒤집어 쓴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이 영화로 만들어져 2월 15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재심 당시 택시운전기사를 10여 차례 칼로 찔러 죽인 진범은 체포되지 않은 채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공소시효가 6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재심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해 이들 두 사람이 선택한 결정은 진범을 세상에 공개하는 것이었다. 보통 용기 없이 가능한 일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지연된 정의>에서도 두 사람이 가족에 대한 보복을 두려워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나온다. 진정한 용기란 이런 두려움을 극복하고서 발현되는 것이 아닐까?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

지난 9일 두 사람과 <지연된 정의>를 녹음하고 두 가지 뉴스가 들려왔다. 하나는 삼례나라 슈퍼3인조 강도사건에서 배석판사로 참석했던 박범계 의원이 사과의 뜻을 박준영 변호사에게 전해 온 것이다. 신기하게도 녹음이 끝나자마자 날아온 소식이었다.

박준영 변호사는 앞의 세 사건에 관여했던 경찰, 검사, 판사 중 그 누구도 제대로 자신들의 잘못된 행위나 판단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와중에 박범계 의원이 공식적으로 사과할 뜻을 전해 온 것이다.

박 변호사는 지금이라도 사과할 수 있는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당연히 해야 할 사과가 박수 받아야 할 용기가 되어버린 세상이 조금은 기이했지만,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니 수긍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4일 '삼례 나라슈퍼 살인사건'의 오심 피해자들을 만나 사과했다-편집자말).

또 하나의 소식은 11일 날 들려왔다. 무기수 김신혜에 대한 재심 결정에 대한 검찰의 항고를 법원이 기각했다는 것이다. 김신혜는 친부살해로 17년째 복역하고 있는 무기수로, 지난 시간 내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해 왔다. 박준영 변호사와 박상규 기자의 노력으로 무기수로서는 사법 역사상 처음으로 재심 선고가 내려진 데 대해 검찰이 항고한 것을 법원이 기각한 것이다.

<지연된 정의>를 펼치며 다시 생각해본다. 두 사람이 없었으면 이 세 가지 사건에 얽힌 사람들의 목소리는 누가 들어주었을 것인가? 인간에 대한 예의는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하고 법이라고 한다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 있는 자들이 돈으로 법률가가 아니라 법을 살 수 있는 시대.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바우만은 그럴 수 없는 사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밑바닥 계급은 일단 발을 들여놓으면 금지된 지역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소름끼치는 황무지와 같다...일단 들어서면 되돌릴 수 없다. 일단 들어서는 순간 엄청난 혐오의 시선을 받는다. 밑바닥 계급은 불행의 징조이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이 세 사건에 얽혀 누명을 쓴 사람들을 밑바닥 계급이 만든 단순한 범죄자로 취급하고 이들을 외면했다면 정의가 늦게라도 이들에게 이를 수 있었을까? 이 책은 말한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뒤늦게나마 정의를 배달하는 일, 그 자체가 아직은 정의가 살아있다는 희망을 주는 것 아닐까?

<지연된 정의>에 나오는 누명을 쓴 사람들이 법의 과정에서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었다. "이해한다"는 말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안다"라는 뜻이기도 하다. 아마 이 사람들에게 박준영 변호사와 박상규 기자를 만나기 전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 아니었을까? 그들도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두 사람의 진솔하고도 따뜻한 이야기가 <지연된 정의>에 담겨 있다.

팟캐스트 <철학사이다-바로 이책>에서 이 두 사람의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 팟빵에서 듣기 :  http://www.podbbang.com/ch/8005?e=22205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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