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발굴단>을 통해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를 찾아서 보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재밌는 다큐들, 이야깃거리가 많은 다큐들을 찾아보고 더욱 사람들이 많이 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편집자말]
목에 걸려있는 사원증이 반짝이는 황금같이 보였다. 남들이 알만한 회사에 입사하여 앞서 나가는 친구들을 보면 깊은 한숨이 나왔다. 아르바이트 공고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소위 말하는 '꿀알바'를 찾는 나에게 취업한 친구들은 '꿀인생'을 사는 것으로 보였다.

그랬던 친구들의 한 마디. "너무 힘들다", "그만두고 싶다" 배부른 소리처럼 들렸다. 텅텅 빈 지갑을 바라보며 "언제 취업하지" 소리만 내내 뱉어내는 나한테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니. 배가 불러서 머리가 이상해진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런데 이 친구만 이상한 게 아니었나 보다. 입사한 신입사원의 4명 중 하나는 조기 퇴사를 한다니. 수천만 원을 버리고 사표를 내고 나온 사람들도 있다니. 지난 2016년 9월에 방송됐던 <SBS 스페셜> '은밀하게 과감하게-요즘 젊은것들의 사표'의 이야기는 충격이었다. 아직 제대로 된 취준생도 되지 못한 나에게는 더욱.

요즘 젊은 것들의 사표

 기마 자세로 기업이념을 외우고, 카드섹션을 통해 자신이 조직 내 하나의 작은 부품임을 인식하는 과정을 가지기도 한다.

기마 자세로 기업이념을 외우고, 카드섹션을 통해 자신이 조직 내 하나의 작은 부품임을 인식하는 과정을 가지기도 한다. ⓒ SBS


인턴, 어학연수, 자격증, 대외활동까지. 엄청난 스펙을 쌓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기업에 합격한 이들. 취준생 딱지를 벗어났을 때는 뛸 듯이 기뻤다. 기쁨은 잠시, 어느새 회사는 가기 싫은 장소가 됐다. 13개월이 걸려서 취업한 회사를(평균 취업 기간) 18개월 안에 그만둔다. 100명 중에서 27명 정도가 3년 안에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니 아이러니한 증상이다.

취업에 목말랐던 이들이 일찍 회사를 나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조직과 직무적응 실패이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던가. 회사에서는 회사법을 따라야 한다. 정식 출근 시간보다 일찍 출근해서 시간을 허비하다가 8시부터 근무를 시작하고 상사의 취향에 맞게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이에 어긋나면 어김없이 호통이 날라 온다. 보고서는 얼굴을 향해 날아다니고 참기 힘든 모욕이 귓가를 때린다. 같은 내용을 상사의 취향 따라 여러 버전으로 준비해야 함은 물론 이해할 수 없는 기업 문화도 따라야 한다. 기마 자세로 기업이념을 외우는 일에 카드섹션을 통해 자신이 조직의 하나의 작은 부품임을 인식하는 과정을 가지기도 한다.

이러려고 스펙을 쌓고 엄청난 경쟁을 이겨냈는지 자괴감이 들만하다. 회사의 매뉴얼대로만 움직이기 위해 일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적어도 많은 사람들이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했을 것이다. 이것뿐이었다면 버틸 만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추가로 회식 강요도 이어진다. 회식은 친목을 다지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장소여야 했는데, 업무와 다를 바가 없다. 먼저가 좋은 자리를 봐 둬야 하고 흥이 깨지지 않도록 분위기도 띄어야 한다.

회식만도 아니다. 쉬는 날에는 아침부터 모여 조기 축구니, 등산이니 반강제로 함께하게 된다. 도대체 회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은 언제인지. 개인적인 시간을 가져본 적은 언제인지. 새 시대의 노예인가 싶다. 돈만 조금 더 받는.

상사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방송만 봐도 한숨이 나온다. 흔히 꼰대들이 할 법한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요즘 애들은 끈기가 없어", "자기가 잘났다고만 생각한다", "회식하는데 10시가 되면 전화가 오네!" 등. 이렇게 생각이 다른 걸까. 회사에 맞게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못 버틴다거나 스펙이 낭비된다는 등의 말들만 오가고 있다. 신입사원의 능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생각은 해봤는지. 창의적인 인재를 원하며 회사의 틀만 강요하는 건 아닌지. 이럴 거면 기계를 뽑지 왜 사람을 뽑은 건지. 묻고 싶은 말들이 가득하다.

이러니 조기 퇴사하는 사람들이 가득할 수밖에. 신입사원을 교육하는 비용이 걱정된다면 그 교육이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 고민 해봐야 하지 않았을까. 결국, 젊은 청년들의 끈기 부족으로, 부족함으로 치부한다면 변하지 않을 것이 뻔하다.

취업이 전부가 아니었다니

 이왕 오래 걸을 거라면 조금 더 고민해보련다. 회사법을 그대로 따를 자신도, 꼰대 같은 상사들의 말을 온전히 받아들일 자신도 없으니 말이다. 적어도 웃을 수 있게, ‘사람다운’ 삶을 위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조금만 더 찾아보련다. 비록 조금 늦을지라도.

이왕 오래 걸을 거라면 조금 더 고민해보련다. 회사법을 그대로 따를 자신도, 꼰대 같은 상사들의 말을 온전히 받아들일 자신도 없으니 말이다. 적어도 웃을 수 있게, ‘사람다운’ 삶을 위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조금만 더 찾아보련다. 비록 조금 늦을지라도. ⓒ SBS


이런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니 미간에 주름이 잔뜩 잡혔다. 주변 특이한 친구들의 문제가 아니라 많은 내 또래의 친구들이 겪고 있는 문제라니. 아직 취업조차 하지 못한 내가 겪어야 할 문제라니. 암담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부족한 적성 고민의 시간이 아닐까. 내 지난 과정을 돌이켜보면 진지하게 나에 대해 고민했던 것보다는 시키는 대로 공부했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처음 들어간 학원에서 수준이 낮다는 말에 기분이 나빠져 무작정 문제집을 풀어댔던 기억. 그렇게 가장 높은 반까지 올라가고 고등학교에서도 우수반에 들어갔던 기억. 어째서 3년 동안 같은 담임, 같은 친구들과 남들과 다른 수업을 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보다 그곳에서 시키는 것을 외우고 풀었던 기억. 그렇게 입시 기계처럼 공부하는 매뉴얼대로 따랐다.

그러니 내가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에 대해서 진정으로 고민해보지 못했다. 어렴풋이 법률 장르를 좋아하는 것을 느끼고 변호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 전부랄까. 하지만 어쩌나 성적이 잘 나온 것을 따라 이과를 왔고 공대를 와버렸으니. 그나마 가졌던 변호사의 꿈은 너무도 먼 곳으로 가버렸다.

다행이라면 대학에 와서 다양한 활동들을 하면서 조금씩 하고 싶은 일에 대해 고민해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도 그중에 일부. 세상 어딘가의 약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다는 작은 소망, 내가 느낀 것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내가 키보드 앞에 있도록 만들었다.

물론, 아직 실력도 엉망, 어떻게 이것을 이어나갈지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이것이 정말로 내가 좋아하는 일인지에 대한 확신도 부족하다. 노동자가 진정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마음도 있으니까.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실천 활동을 하는 것도 좋아하니까. 이것을 살려 어떻게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는 않지만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졌다.

비록 암담한 실업률에 어느 한 직장에 들어가는 것도 어려운 사회이지만 빠른 것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취업하고도 돌아오는 저 친구들을 보면서(물론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앞날이 잘 보이지는 않지만, 이왕 오래 걸을 거라면 조금 더 고민해보련다. 회사법을 그대로 따를 자신도, 꼰대 같은 상사들의 말을 온전히 받아들일 자신도 없으니 말이다. 적어도 웃을 수 있게, '사람다운' 삶을 위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조금만 더 찾아보련다. 비록 조금 늦을지라도.

사표 사원증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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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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