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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2007년 2월 11일 03시 55분께, 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국인보호실 304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보호실에는 스프링쿨러가  없었고,  화재경보기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게다가 출입문이 이중 장금장치로 되어 있었고, 당시 3층에는 근무 중인 경비 용역 2명만 있었다. 그리고  CCTV를 봐야 할 직원들마저 숙직실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보호실 내의 외국인들이 쇠창살을 두드리고 비명을 질렀어도 보호소 측의 늦장 대처로 피해가 컸다. 연기가 복도까지 찬 후에야 경비용역 직원들이 소화기를 들고 왔다. 그런데 그들은 위급상황임에도 외국인들의 도주를 막는다며, 하나의 보호실을 열어 피난처로 이동시킨 후에야 다른 보호실을 개방하는 방식으로 처리했다. 이에 301호실만 먼저 열리고, 나머지 5곳에 구금된 이들은 소방관이 출동한 후에나 피신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당시 구금된 외국인 55명 중 사망자 10명과 부상자 17명이 생기는 참극이 벌어졌다. 그나마 외국인들이 수건을 물에 적셔 코를 막는 등 기지를 발휘하여 추가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부상자들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상황임에도 수갑을 차고 있어야 했다. 이들은 노동부 지침인 '선 조치 후 통보' 및 임금체불 상담 원칙의 혜택도 누리질 못했다. 그뿐인가. 권리구제 절차에 대한 충분한 안내도 받지 못한 채, 결국 피해자 22명은 정신과 진료도 받지 못한 상태애서 강제 출국을 해야만 했다. 피해자들 중 최장기 보호 기간은 1년 3개월이었으며, 대부분이 임금체불 문제가 얽힌 이주노동자였다.

앞서 한국 정부는 국내에서 부족한 노동력을 얻기 위해 1991년 11월 해외투자업체 연수제도를 시행했다. 이어 1993년 11월에는 외국인 산업연수제도를 도입했으며, 1995년에 고용허가제 도입을 추진했다. 이후 2003년 3월 29일에 산업연수생제도 폐지, 외국인 고용허가제 추진 입장을 확정, 발표했다. 그리고 8월 16일에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 공포했다. 그 결과 2004년 8월 31일에 필리핀 근로자 92명이 최초로 입국했고, 12월 23일에 한국 외국인근로자 지원센터가 개소했다. 그런데 이 고용허가제도가 도입되면서 미등록이주민 단속과 추방도 실시되었다. 그 단속에 적발된 외국인들이 거처하는 곳이 바로 외국인보호소이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국가인권위원회가 2007년 2월 27일에 국가인권위원회법 제30조 제3항의 규정에 따라 화재 사건을 조사하고 4월 9일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외국인 보호 체계를 재정립하고, 보호실 전반에 대한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들은 창살 안에서 교도소의 죄수처럼 지낸다. 그리고 그들의 '리얼 보호소 생활기'는 여전히 외부에 비공개이다.

 외국인보호소, 과연 이대로도 괜찮은가?
 외국인보호소, 과연 이대로도 괜찮은가?
ⓒ 배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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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11시. 여수진보연대와 여수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주최로 여수출입국사무소 정문 인도에 차량을 이용한 간이 분향소를 설치하고, 10주년 추모식과 기자회견을 했다. 그 후 취재진과 추모식 참석자들은 1년 반 가량 근무 중이라 자신을 소개한, 정수동 소장의 안내를 받으며 보호소 일부를 볼 수 있었다. 

정 소장은 2층 보호실로 들어가기 전 방문자 명부를 작성하라고 했으나 인원이 많자, 시간이 오래 걸리겠다며, 추도식 관계자 몇 명만 작성하는 것으로 방침을 바꾸었다. 그리고 추도식 장소 이외에서는 촬영금지라 카메라나 휴대폰 반입이 안 되지만, 믿고 수거하지 않겠으니 반드시 규정을 지켜줄 달라며 거듭 당부했다. 

일행이 처음 간 곳은 다소 생소한 명칭의 '공감실'로, 10년 전 화재 현장인 보호실 몇 곳을 리모델링하여 외국인들이 노래, 국악, 마술 등 7가지 프로그램을 배우고 도서실로도 활용한다는 장소였다. 보호소 측에서 준비한 흰색 국화로 헌화했고, 소장은 꽃을 많이 준비했다고 덧붙였다. 

 외국인보호소, 과연 이대로도 괜찮은가?
 외국인보호소, 과연 이대로도 괜찮은가?
ⓒ 배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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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실 출입구에서 가까운 뒷벽은 서가를 설치하여 책을 구비해 두었다. 나중에 한 관계자와의 대화를 통해서 이 책에 얽힌 숨겨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원래는 오래되어 낡은 데다 한글로 표기된 책만 있었다. 그런데 보호소 내 외국인들의 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정병진 목사(여수 솔샘교회)가 시정을 촉구하여 현재처럼 자국어 표기, 일부 언어별 성경을 갖추게 되었다. 

추도식을 마치고 다른 시설을 둘러보기 위해 나오려 할 즈음, 정 목사가 이곳에 화재 사건과 관련한 안내판조차 없는 것을 지적했다. 그러자 정 소장이 안내판 설치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보호소를 나올 때 어느 기자가 "왜 직원들이 (명찰) 패용을 하지 않는가?"라고 꼬집자, 정 소장은 당황해하며, '그들도 공무원이라 신분보장을 해야 한다', '규정에 없다'는 등 명찰 착용에 대해선 회피했다. 이에 해당 기자는 건물 밖으로 나와서 정 목사에게 패용이 있어야 문제가 해소될 수 있노라고 조언했다.

건물 복도에는 진정함이 있지만, 외국인이 설령 어느 직원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더라도 당사자의 이름을 모르면 그저 얼굴 묘사, 몽타주로 표현해야 하니 신고하기가 불편하다. 참고로 당일 방문객들이 보호소 내 직원 중 이름을 알 수 있는 이는 단 두 명뿐이었다. 공감실에서 자신을 소개한 소장과 의사 가운에 이름이 새겨진, 진료실의 유일한 의사였다. 정 목사는 기자의 말에 미처 생각을 못했던 부분이라며, 보호소 측에 명찰을 패용할 것을 제안하겠노라고 답변했다.

그리고 시설을 나온 어느 기자가 "언제부터 스팀을 틀었다고..."라는 말을 내뱉었다. 당일 바깥 날씨는 바람이 세차게 불고 추웠는데, 보호소 실내는 제법 훈훈했었다.

일행이 볼 수 있는 장소는 매우 제한적이어서, 이동하면서 지나가는 복도와 계단, 추모식을 진행한 공감실 1곳, 보호실 2곳, 진료실 및 외부 운동장뿐이었다. 창밖으로 초록색 바닥에 천장을 비롯한 모든 면이 창살로 된 텅 빈 장소를 봤는데, 일순 영화에서 본 정신과 병동이 떠올랐다. 옆에서 있던 추도식 관계자를 통해 그곳이 예전의 운동장이었다는 설명을 들었다. 정 소장은 이에 대해선 설명을 해주지 않았던 것 같다. 단지 탁 트인 외부 운동장만 우리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준공한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며, 운동장이라 하기엔 너무나 깔끔한 곳이라 불편했다. 

새것이 주는 불편한 시각은 좀 떨어진 곳에서 본 보호실의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남성들의 옷에서도 있었다. 소장은 그들이 불법 어획한 선원이라고 설명했다. 한 보호실에는 7~8명의 인원이 수용된다고 한다. 그 남성들은 아주 짙은 파란색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는데, 색깔과 디자인이 어쩐지 국내 영화에서 본 교도소의 수감자 옷이 생각났다. 그런데 더 신경을 거슬리게 한 것은 너무나 새옷처럼 보이는 유니폼. 그들은 4~5명 정도였는데, 면도와 이발이 잘된 얼굴에다 희한하게 하나같이 잦은 세탁으로 빛바랜 흔적, 얼룩에 구김조차 찾기 힘든 옷을 입고 있었다. 게다가 "아, 올 사람들이 너희들이었구나"라 말하는 듯한 시선으로 창살 사이로 우리를 보는 이의 표정조차도. 그래서 아주 오래전 초등학교 시절에 장학사나 학교행사로 학부모가 올 때 교장과 선생님 지시로 며칠씩 했던 환경미화가 연상되어 씁쓸해졌다.

그들의 식사에 대해선 알 수 없었다. 단지, 복도에서 대형 드럼세탁기가 돌아가고 그 주위에 군대의 군복처럼 각을 맞춰 개어진 침구류 위에 놓인 빵과 음료수만 볼 수 있었다. 참고로 당시 일행이 방문했을 때 시간이 정오가 안되었을 때였다.

보호실 한 곳은 사람은 전혀 없이 비어있고, 단지 잘 정리된 침구류와 맨 뒤쪽에 아주 적절하게 열려 있어서 방문객이 한눈에 알 수 있는 좌변기 일부만 볼 수 있었다. 3층에서였던가? 직원이 지키고 있어 볼 수 없는 안쪽 보호실에서 어떤 남자의 외침이 들려서 거기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을 정도로 철저하게 외부 방문객과 격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동하다가 얼핏 주위를 둘러보다 건축에서 '중정'이라 부르는 곳이 있었는데 층별 모두 창살이 처져 있는 걸 보니 보호실일 듯했다.     

진료실은 의료기구가 턱없이 부족하여 단순한 진찰과 치료만 가능해 보였다. 근무하는 의료진은 남성 의사 1명과 여성 간호사 1명이었다. 이전에 공중보건의가 원래 1명 있었으나, 군 복무 대신 근무할 의대생 부족으로 인력이 더 열악한 곳에 배치되어야 해서 이젠 없다고 했다. 또한, 의사는 보호소 거주가 아닌, 외부에서 출퇴근하는데, 밤에 응급환자나 기타 여성 외국인의 산부인과 진찰 및 환자 치료는 보호소와 협약한 순천의료원과 여천 전남병원에서 이뤄진다고 했다.

기자가 보호소라 불리는 시설을 둘러본 소감은 여전히 한국 정부가 미등록 외국인들을 감시해야 경계 대상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을 보호하는 시설은 충분한 인권을 보장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았다. 왜 내부를 제대로 모두 공개하질 않는 것인가? 국가기밀인가? 왜 관리직원들의 이름을 숨기는가? 왜 여성 외국인들의 모습은 공개하지 않은 것인가?

정병진 목사가 추도식에서 발언할 때 언급한, 하멜 일행을 맞이한 관아의 수장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는 표류하다 낯선 동양의 조그마한 나라에 도착한 이방인들을 똑같은 인간으로서, 진심으로 걱정하며 정착하여 살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돌봐주었다. 그게 바로 진짜 '보호'이다. 시설에 가두어 감시하는 것만이 우리가 이방인에게 할 행동인가? 영화 '국제시장'의 소재이기도 했던, 다들 힘겹던 시절, 한국인들은 독일, 미국, 사우디 등으로 돈을 벌러 갔었다. 이심전심과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그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길 바란다. 화재 사건 당시 대책위원이었던 김대권 대표(아시아의 친구들)가 추도식에서 외국인 근로자들도 우리나라의 기러기 아빠와 같을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들과 우리 모두 누군가를 생각하며, 땀 흘려 일하는 한 사람일 뿐이다. 그들은 우리의 적이 아닌, 동지, 친구일 뿐이다.

덧붙이는 글 | https://youtu.be/R6hePaDhjB4




한자어로 '좋아할, 호', '낭만, 랑',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이'를 써서 호랑이. 호랑이띠이기도 합니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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