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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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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사 김정희는 제주 사람을 무식하게 보았다고 하셨다. 뱀을 안 죽이고 놓아두고, 육지에서는 귀하지만 제주에서는 흔한 수선화를 뽑으니까.
이 연재 기사는 지난 여름에 연재하였던 <제주 아이들이 소개하는 환경여행지> 그 다음 이야기로서, 이번에는 '제주 역사'를 주제로 여행하고 돌아와 어린여행자들이 직접 쓴 여행기입니다. 덧붙이자면, 현재 제주시 광양초등학교에 다니는 평범한 5학년 어린이들이 프로젝트 수업 과정에서 부모나 교사의 도움 없이 모둠별로 여행지를 선택하고, 제주역사를 공부하고, 교통이나 각종 정보를 조사한 후, 예산을 짜고, 좌충우돌 여행을 다녀오기까지 배우고 느낀 점을 쓴, 각자 인생에서 보자면 최초의 여행기인 셈입니다.

이를 위해 아이들은 친구들이 쓴 여행기를 돌려 읽고서, 살릴 부분과 삭제할 부분을 가려낸 후, 전체적인 흐름에 맞게 고치고 추가하는 '집단 글쓰기'의 고단하지만 의미 있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따라서 문장의 짜임새가 부족하고 투박할 수도 있지만, 아이들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점을 누군가에게 전하고자 하는 진지함만큼은 부족하지 않게 담겼습니다. 더불어, 아이들끼리 떠난 '스스로 여행'의 앞뒤 맥락에 대한 설명을 그들의 교사인 제가 얼마 정도의 글을 덧붙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 기자 말

전설의 밥 친구들, 추사의 수염을 만지다.
 전설의 밥 친구들, 추사의 수염을 만지다.
ⓒ 전설의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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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밥' 모둠 아이들이 선택한 여행 장소는 추사관이다. '추사 김정희'는 우리가 선택한 제주역사 9가지 작은 주제 가운데 하나다. 제주 섬이 오랜 세월 유배지로서 기능해온 사실은 그 자체로도 제주만의 독특한 역사적 장면임은 물론, 중앙에서 온 유배자들이 사상과 문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제주민에게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유배의 역사는 제주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주제임에 틀림없다.

유배의 역사를 아이들과 함께 쉽게 공부하기 위해 추사 김정희를 선택하였다. 추사 김정희의 삶과 글씨를 공부하면서 유배의 역사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그리고 지역의 판화가 선생님을 초청하여 세한도를 목판에 조각도로 새기고 직접 찍어보았다. 그 장면에서 아이들은 엄청난 집중력을 보여주었는데, 조각이 고된 노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만든 '나의 세한도' 작품을 보며 뿌듯한 성취감을 느꼈음은 물론이다. 

이번 프로젝트 여행학습에서 '전설의 밥'이 선택한 추사관은 여러 여행지 가운데에서 가장 멀리 있는 곳이었다. 하루짜리 여행에서 갔다가 오는 데만 버스로 3시간이 소요되는 쉽지 않은 코스였다. 그럼에도 크게 다투지 않고 힘과 마음을 모아 유쾌하게 다녀온 그들이 자랑스럽다. 특히 혼자 여학생이었던 현지가 고군분투했다. 이제 그들의 '역사로의 시간여행'을 따라 가보자.         

역사로의 시간여행

글과 사진: 광양초 5학년 강지민, 김현지, 송지현, 진호연

기다리고 기다리던 프로젝트 여행을 하는 날이 왔다! 우리는 제주의 역사라는 주제를 가지고 여행을 떠난다. 평일에 이렇게 우리끼리 학교 밖을 나온 것이 이번이 두 번째다. 이번에는 서귀포에 있는 추사관을 간다. 우리 '전설의 밥' 모둠은 오늘 여행을 위해 추사관, 추사의 길, 버스, 예산 등 많고 많은 정보를 조사하였다.

임시 버스정류장에서 서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아이들
 임시 버스정류장에서 서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아이들
ⓒ 전설의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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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45분에 모이기로 했지만 그 약속 지키지 못하였다. 호연이와 지민이는 제 시간에 왔지만 현지와 지현이가 시간을 지키지 못했다. 이때 지민이가 지현이에게 전화를 걸어서 우리끼리 버스 타고 간다고 거짓말을 해서 지현이가 조금 화를 냈다. 우리는 바로 기념사진을 찍고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늦어도 괜찮아! 버스는 많아!"

서로 격려하면서 수다 떨며 동광양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하였다. 그런데 버스정류장이 없다…. 이상하였다. 달랑 의자 하나와 임시 정류장이라고 적혀있는 간판 하나였다. 그래서 그런지 버스들이 자꾸 우리를 버리고 그냥 지나가 버린다. 다른 버스정류장과 달라서 못 본 것이다. 그렇게 10분 동안 기다린 끝에 주민의 도움으로 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탔다.

또 하나의 작은 사건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실수가 일어났다. 현지가 2천원만 내면 되는데 4천원을 냈다. 현지는 한 사람당 1000원인 줄 알고 낸 것이다. 그래서 동전으로 돈 봉투가 무거워 졌다. ㅠㅠ. 이렇게 시외버스터미널까지 왔다. 표를 구매하고 20분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우리는 500원짜리 어묵을 먹었다. 어묵을 다 먹고 나니 버스가 왔다. 급하게 간식을 사서 버스에 탔다.

갔다가 오는 데에만 3시간짜리 하루 여행
 갔다가 오는 데에만 3시간짜리 하루 여행
ⓒ 전설의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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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읍 가는 버스에서 옆 반 친구들을 만났다. 옆 반에서 두 모둠이나 추사관을 가는지를 몰랐다. 한 20분 정도 달리니깐 지현이 "아~ 게임하고 싶다" 하다가 결국 게임을 하더니 현지한테 걸렸다. 그래서 지현이는 현지한테 한 대 맞고 게임 한 판을 했다. 하지만 게임에서 졌다. 지현이는 한 판 더 하고 싶었지만 또 맞아야 하니깐 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사진만 찍고 볼 뿐… 많이 졸리고 심심했다.

1시간 30분을 달려서 드디어 보성리에 도착했다. 30초 정도 걸었더니 추사관 도착! 아주 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작았다. 가자마자 사진 찍고 난리였다. 추사의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해설사 선생님과 안내원께서 우리를 반겨주셨다. 추사의 계단은 유배자의 고통이라고 말씀해주셨다.

추사의 일상을 듣고 세한도와 추사가 한 일들을 설명하셨다. 세한도에서 집 왼쪽 두 그루의 나무는 추사가 유배되자 회피한 사람들이고 오른쪽 나무 두 그루는 늙어서 언제 죽을 줄 모르는 추사 김정희와 그의 제자라고 하셨다. 그래서 제자가 바람이나 눈보라를 막아준다는 뜻이다.

유배자의 고통과 삶을 나타낸 지그재그 계단
 유배자의 고통과 삶을 나타낸 지그재그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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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의 삶에 대한 해설사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추사의 삶에 대한 해설사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 전설의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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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추사 김정희는 제주 사람을 무식하게 보았다고 하셨다. 뱀을 안 죽이고 놓아두고, 육지에서는 귀하지만 제주에서는 흔한 수선화를 뽑으니까. 그런데 해설자 선생님이 계속 제주 사람은 무식하다고 하니까… 호연이는 하하 기분이 좀 그랬다. 추사관 위층에 추사 김정희 동상과 수선화가 있었는데 해설자 선생님께서 추사가 수선화를 좋아했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때 현지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너무 지루해서 영혼이 나갔나 보다. 한순간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왜 추사관에 왔지? 그냥 해녀박물관 갈 걸…."

이렇게 추사관에서 깊은 뜻을 얻고 밖에 있는 추사 유배지로 갔다. 추사가 유배 왔을 때 살았던 집에 앉았다. 너무 더웠다. 현지는 옆 반의 연서와 수다를 떨었다. 드디어 해설자 선생님의 설명이 끝났다.

이제 밥을 먹을 생각 하니 좋았다. ㅎㅎ. 해설자 선생님과 인증 사진을 찍고 자유롭게 유배지를 구경하였다. 응x를 누는 곳에 지현이가 폼 잡고 앉았다. 찰칵!! 여러 가지 사진을 찍다가 이제 배가 많이 고파서 밥을 먹으려고 했는데 안내지도에는 원하던 추사관 카페가 없었다. 현지가 말했다.

"우리 밖에서 먹어야 되나봐?"

여기는 통시(뒷간)~!
 여기는 통시(뒷간)~!
ⓒ 전설의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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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추사관 주변만 뱅뱅 돌았다. 그래놓고 추사관 카페 없다고 그냥 땅바닥에 앉아서 도시락을 먹었다.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추위에 떨면서 먹었다. 하지만 애들끼리 얘기를 하니까 추위도 모르고 그냥 밥을 먹었다. 밥을 먹다가 안전 도우미 선생님께서 호연이 보고 "호연이는 벌써 콧수염 났네?" 하셨다. 그래서 호연이가 "그래서 엄마가 저 중학생 되면 면도기 사주신데요~!" 라고 했다. 그래서 모두 웃었다. 호연이는 민망하였지만 뭐 다른 친구들이 웃는 모습이 좋았다.

그리고 학부모 안전 도우미 선생님께서 딸 윤영이가 좋아하는 노래도 틀어주셨다. 그렇게 해서 도시락을 다 먹었다. 밥을 다 먹고 또 추사관을 구경했다. 그러다 우연히 애들이 상황극을 찍자고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액션 영상이 되었다. ㅋㅋ. 이런 것은 "우리만 알면 안 되지~!" 하면서 영상을 찍었다. 진짜 많이 웃겼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추사의 길을 걸었다. 추사의 길은 여러 가지 코스가 있는데 그 중 가까운 길을 걸었는데 30분도 안 되어 도시락 먹는 곳으로 돌아왔다. 좀… 짧았다. 그래서 호연이가 다른 코스를 더 돌자고 하였지만 다수결로 우리는 주변에 있는 '보성초등학교'에 가기로 했다. 보성초등학교 안을 둘러보려고 교무실로 가서 그 학교 선생님께 허락을 구하였더니 밖에만 둘러볼 수 있다고 하셔서 우리는 아쉽게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덧붙이는 말: 그곳 선생님께서는 평일 날 제주시에서 아이들끼리 시외버스를 타고 여행 왔다고 하니,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여러 번 물어보셨다고 한다. '어느 초등학교 다니니?' '현장체험학습을 왔다고?' '너희들끼리?' '그럼 너희 반 다른 친구들은?' '모둠마다 다른 곳으로 여행을 한다고?' 그래서 결국 지켜보시던 안전도우미 학부모님까지 나서서 설명을 해야 하셨다고….)

지도를 보며 추사의 길을 찾아서!
 지도를 보며 추사의 길을 찾아서!
ⓒ 전설의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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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이 맞나?(추사의 길)
 이 길이 맞나?(추사의 길)
ⓒ 전설의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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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학교 쉼터(?)에 앉았다.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때 호연이가 비장의 카드라고 하면서 유카(유희왕카드)를 꺼내 들었다. 지민, 호연, 지현 이렇게 남자아이 셋은 유카를 하고 현지는 가방을 정리하면서 음악을 틀었다. 호연이는 완패를 당하고 슬퍼하였다. 모두 재미있는 것은 아니지만 쉴 수 있어서 편안한 시간이었다.

우리는 1시 30분에 750번 버스를 타고 1시간 동안 졸고 또 사진을 찍으면서 제주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우리는 터미널에서 화장실을 다녀오고 또 어묵을 먹었다. 고맙게도 안전도우미 선생님이신 윤영이 아빠께서 어묵을 각각 3개씩 사주어 배불리 먹었다. 좀 미안했다. 호연이는 죄송해서 못 먹겠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말이 이렇게 나와 버렸다.

"아저씨가 돈을 너무 낭비하는 것 같아요."

어렵게 탄 버스에서 우리 네 명
 어렵게 탄 버스에서 우리 네 명
ⓒ 전설의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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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현지는 비상금을 아껴서 기분이 'Good'이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갔는데 1년 동안 기부할 것을 사인하는 곳에 호연이 빼고 모두 갔다. 결국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이 안전 도우미 선생님을 불렀다. 하는 수 없이 호연이도 따라 가는 사이 뒤에서 502번 버스가 지나가는 것이다! 다음에 쓸 돈을 계산하는데 버스비도 200원이 부족했다. 그래서 우리는 운동도 할 겸 학교까지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지현이가 걸어갈 때 '15금' 말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도 당당하게!

"시간이 남았으니 당구 칠래?"
"술 마실래?"
"춤출래?"

그리고도 더 이상한 말을 하였다. 물론 장난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듣기에도 좀 말이 심했다…. 그래도 우리는 장난으로 받아들이고 같이 웃었다. 그렇게 시청에 거의 다 왔을 때 현지가 다른 모둠 수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런! 데! 수진이네 모둠은 모두 집에 가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용샘께 전화를 드렸더니 햄스터네 모둠과 우리 모둠만 남았다고 하셨다. 우리 모둠이 꼴찌가 아니라서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수다를 떨면서 걸었다.

우리는 카페에 가려고 한 것을 포기하고 그냥 우리 학교로 돌아왔다. 이렇게 프로젝트 세 번째 역사여행이 끝이 났다. 이번 여행이 저번보다 더 즐겁고 안전한 여행이었고 배운 것도 훨씬 많았다. 협동하며 즐겁게 다녀올 수 있어 좋았다. 다음에도 이번처럼 즐겁고 신나는 여행을 하면 좋겠다. (다음 편에서 계속)


태그:#여행과 글쓰기, #광양초등학교, #프로젝트 여행수업, #추사관, #추사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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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에서 살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초등교사가 되었고, 가끔 여행학교를 운영하고, 자주 먼 곳으로 길을 떠난다. 아내와 함께 한 967일 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묶어 낸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이후,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 <여행자의 유혹>(공저), <라오스가 좋아> 등의 책을 썼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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