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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이 혼란하다. 이럴 땐 따뜻한 기억 하나가 위안이 된다. 달포 전에 아들이 서울에 전세 집을 얻고 이사했다. 수도권, 특히 서울 시내의 전세 집 얻기란 호락호락하지 않다. 자금을 스스로 해결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부모가 도와준다 해도 많은 출혈을 각오해야 한다. 그런데 떡하니 지낼 방을 마련한 것이다. 이럴 땐 아들이 좀 대견해 보이기도 한다.

1월 초순의 어느 토요일, 아이는 짐을 옮겼다. 친구의 차로 고시원에 있는 짐을 빼서 새로 얻은 전세방(집)으로 이사를 한 것이다. 자기 돈으로 마련한 집도 아닌데, 왜 아이는 굳이 '전세방'이 아닌 '전셋집'으로 부르려는 것일까.

스스로 이런 집을 얻기란 우리 사정으로는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대학생들 주거 해결책의 일환으로 전셋집을 얻어 주는 제도가 있다. 아들이 이 혜택을 입게 된 것이다. 내가 공부할 때만 해도 이런 제도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조금이나마 살기 좋아졌다는 증거다.

 스스로 이런 집을 얻기란 우리 사정으로는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사진은 내용과 관계 없음)
 스스로 이런 집을 얻기란 우리 사정으로는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사진은 내용과 관계 없음)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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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목동 학교 근처에 전셋집을 하나 얻었다. 아이도 애들 엄마도 마음에 들어 한다. 주인 댁 아주머니는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해서 신방을 차려도 된다고 비행기를 태웠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아이는 스스로 전셋집을 갖게 된 데 대해 대단히 만족했다. 기본적인 가재도구는 아이가 마련했지만 부족한 것 투성이다. 집에 들어간 이틀 뒤인 월요일, 아내와 함께 아들네 집(?)에 갔다.

​사내 아이 혼자 한 이사 현장을 상상해 보라. 어수선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내가 집을 정리해 주고 있을 때 한 젊은 아주머니가 찾아 왔다. 이 집을 소개해 준 공인중개사 사무실 대표였다.

나와는 초면이지만 아내와는 두 번째여서 서로 반갑게 인사했다. 그의 손에는 제법 묵직한 짐이 들려 있었다. 궁금해하는 줄 알고 공인중개사 대표가 먼저 말을 꺼냈다.

​"사모님, 이거 떡입니다. 이웃에 이사 떡을 돌리셔야죠. 멀리서 오시는 줄 알고 제가 준비해 왔어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이사 떡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들이 아직 대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방을 옮기는데 무슨 이사 떡까지….' 이런 상념에 사로잡혀 있을 때 당한 일이어서 더 놀라웠다. 아내는 기분 좋게 이웃에 시루떡을 돌리며 인사하기에 바빴다.

팍팍한 세상이지만, 웃음 짓게 하는 작은 행동

 시루떡
 시루떡
ⓒ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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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아이가 바로 저기 201호로 이사를 왔습니다. 대학생이라곤 하지만 모든 게 부족해요. 잘 부탁드릴게요."

​모두들 좋아했다. 잘 지내자, 아들을 관심 갖고 지켜보겠다, 아들이 잘 생겼다는 등의 덕담이 돌아왔다. 동행한 아이는 쑥스러워하면서도 꾸뻑하며 허리 굽혀 인사했다. 인정이 살아 있는 것 같아 보는 이들까지 흐뭇해했다.

​식사라도 같이 하자는 말에 공인중개사 대표는 가 볼 데가 있다면서 자리를 떴다. 멀지 않으니 가끔 아들의 근황을 살피겠다고 했다. 그냥 가려다 발길을 잠시 돌렸다.

"사모님, 지난 번 보내 주신 사과 맛있게 먹었어요. 저 혼자 먹기 아까워 김천의 교회 사모님이 보내신 거라고 막 자랑하며 주위 사람들과 나눠 먹었어요. 감사합니다."

​서울에서 집 구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돈이 많으면 어디든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하늘에 별 따기다. LH에서 대학생 전세 자금을 지원받아 집을 얻어야 하는 우리 아이와 같은 입장엔 더욱 그렇다. 그런데 흡족하기까지한 집을 얻다니!

​이렇게 되는 데는 중개사 대표의 역할이 컸다. 정확한 건 모르지만, 집주인도 LH 대학생 전세금 대출 조건을 수용했고, 입주할 집도 근저당 설정이 전무해서 LH의 계약 조건에 부합하는 물건(物件)이었다. 공인중개사가 이런 조건의 집은 흔치 않다면서 즉석에서 계약서를 작성해 준 것이다.

아내가 선물한 청송사과 청송 사과를 한 상자 사면서 아들 전셋집을 연결해 준 공인중개사에게도 한 상자를 따로 보냈다. 무척 고마워했다. 짧지 않은 중개 일을 하면서 이런 선물을 받아 보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 아내가 선물한 청송사과 청송 사과를 한 상자 사면서 아들 전셋집을 연결해 준 공인중개사에게도 한 상자를 따로 보냈다. 무척 고마워했다. 짧지 않은 중개 일을 하면서 이런 선물을 받아 보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 이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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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얼마 뒤 당도 높기로 유명한 청송 사과를 한 상자 사면서 아들 전셋집을 연결해 준 공인중개사에게도 한 상자를 따로 보냈다. 무척 고마워했다. 짧지 않은 중개 일을 하면서 이런 선물을 받아 보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작은 선물이 사람을 이렇게 기쁘게 할 수 있다니.

사랑과 인정 나눔은 늘 상대적이고 또 하기 나름이다. 인심이 점점 피폐해져 간다고 하지만 그것을 되돌리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나부터, 작은 것부터 나누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꼭 물질이 아니어도 좋다. 겨울 뒤에 찾아오는 봄 같은 마음이면 족하다.

​어제 오후엔 서울 아들 집주인으로부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아들에게 한 달에 두세 번은 와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전화를 끊기 전 하는 말이 솔직히 사모님 보고 싶어 하는 말이라며 속내를 내비쳤다. 이제 서울 가서 하루 편히 묵을 집이 있어서 좋다.

사방에서 나를 협공한다 해도 이런 따뜻한 인정의 빛 한 줄기만 있으면 이겨낼 수 있지 않겠는가. 사랑과 정(情)은 사람이 지녀야 할 불변의 가치이다. 환경과 조건이 우리를 비굴하게 만든다 해도 그것을 뚫고 나갈 길은 오히려 곳곳에 열려 있다. 나는 그 문을 찾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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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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