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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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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단편소설집을 읽었다.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은데 여건이 안 맞을 때, 사는 게 왠지 밋밋하게 느껴질 땐 동네 도서관에 가서 단편소설집을 찾아 읽곤 한다. 다채로운 풍경과 여정이 있는 여행을 떠난 듯한 기분이 들어서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편안한 여행이 고팠을까. 서고에 꽂힌 책들 사이에서 <호텔 프린스>가 반짝 눈에 띄었다.

젊은 작가들 8명의 글이 담긴 단편소설집으로, 특이하게 모두 호텔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흥미롭게도 호텔에서 글을 쓸 수 있도록 '소설가의 방'이라는 공간을 작가에게 제공해서 나온 일종의 테마 소설집이란다.

창작 활동하기 좋은 고장(통영이나 제주도, 파주 등)에서 기획했던 '레지던스 프로그램'에서 많은 작품들이 세상에 나오긴 했지만, 레지던스 그 자체를 소설의 소재로 한 작품은 처음이라 특별했다.

작가들이 보여주는 서로 다른 화법과 시선을 통해 호텔은 잠시 머물다 가는 숙박시설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고가는 문학적 공간으로 변모한다.

서로 다른 삶의 이야기가 담긴 여덟 개의 호텔방

'어느 누구도 절대로 사랑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절대로 엄마처럼 한 남자만 사랑하지 않겠다고,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면, 내 곁에 붙잡아두고 싶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래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했다.' - 김혜나 <민달팽이> 가운데 

호텔이 주는 화려하고 멀끔한 이미지와 다르게,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내면엔 저마다의 결핍어린 상념과 아픔이 배어있다. 서로의 입장에 따라 소통과 불통을 넘나든다. 주변에 인간관계가 없는 건 아니지만 마음은 자꾸만 표류하고 방랑하는, 어쩐지 남 같지 않은 사람도 나온다.

유방암 수술을 한 아내가 냄새에 민감해지자 점점 소심해지는 남자 이야기(김경희 <코 없는 남자 이야기>), 사라진 아내를 찾으러 하와이로 떠나는 어느 가장의 사연(서진 <해피 아워>) 등은 짧지만 짙은 여운과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이야기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머무는 호텔은 어느새 고요하고 적막한 공간이 되어 머릿속에 그려진다.

운명같이 재회한 옛 남자 친구와 번잡한 섬 페스티벌 장소를 떠나 가까운 호텔로 향하는 정지향의 <아일랜드 페스티벌>, 식사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느린 달팽이 화가와 애무도 키스도 없는 정사를 습관적으로 나누는 김혜나의 <민달팽이>에서 호텔 프린스는 묘한 낯설음과 익명성이 보장된 은밀한 공간이 된다.  

<호텔 프린스>에 있는 여덟 개의 방(소설)을 흥미롭게 지나면서, "Do Not Disturb!(깨우지 마시오!)" 카드를 걸어놓고 잠시나마 내 마음을 뉘어놓고 싶은 책 속 공간을 만나 좋았다. 우연히 떠난 여행에서 운 좋게 나만의 '소울 플레이스'를 발견한 기분이랄까. 문득, 책상 하나와 노트북 그리고 읽고 싶은 책 몇 권이 놓인 내 작은 방이 귀하게 느껴졌다.

책을 다 읽고 여행에서 돌아오는 후련한 마음으로 뒤표지 그림을 감상하는데 표기된 책 값이 5500원이다. 잘못 기재된 건가 했더니, 한국문학의 발전을 응원하기 위해 출간 후 1년 동안은 이 가격으로 나온단다. 여러모로 특별한 책이다. 

덧붙이는 글 | 안보윤 외(지은이) | 은행나무 | 2017-01-25
제 블로그에도 송고했습니다 : sunnyk21.blog.me



호텔 프린스

안보윤 외 지음, 은행나무(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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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야 금속말을 타고 다니는 도시의 유목민. 매일이,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