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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 그리고 10만인 클럽 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2015년 6월 14일부터 23일까지 일본 순회강연을 마치고 6월 24일부터 7월 9일까지 북녘의 수양딸을 찾아 북한을 여행했습니다. 또 2015년 10월 초에도 북한을 한 번 더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연재 '수양딸 찾아 북한으로'를 통해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을 전하려 합니다. - 기자 말

다시 만난 북송 장기수  

10월 12일, 새벽 4시쯤 잠이 들어 일어나 보니 벌써 점심시간이 다 되어간다.  어젯밤 새벽까지 추위에 떨어서인지 남편의 몸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것 같다. 의사에게 가자고 해도 병원을 싫어하는 남편은 극구 거절한다. 안내원 경미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버님, 어서 의사에게 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냐, 괜찮아. 인간에겐 자연치유 기능이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다 낫게 돼 있어."
"그러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시자고. 어서 의사 선생께 가시자요."
"아니, 좀 더 보자구."

"아버님, 우리 조국을 위해서라도 어서 가시자요."
"응? 그게 무슨 말이야?"

"혹시 아버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외부에서 얼마나 악선전을 해대겠습니까. 다른 나라 여행 중 병이 생기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지만 우리 조국에 온 손님한테 그런 일이 벌어지면 외국에서 또 얼마나 악담을 해대겠냐는 말입니다. 그냥 드리는 말씀이야요. 아버님 위해서 기러는 거니 어서 가시자요."
"그래, 경미야. 좀 견뎌보다 정 아프면 가자. 고맙다."

오늘 오후 일정은 모두 취소했다. 대신 점심 식사 후 나는 경미에게 지난 6월에 방문한 적 있는 북송 장기수분들 댁을 다시 방문할 수 있는지 물었다. 내가 그분들 댁을 방문하고 싶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미국서 준비해 온 작은 선물을 전해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 6월에 있었던 이분들 댁 방문은 예정에 없던 일정이었다. 이분들께서 내가 머무는 고려호텔 바로 옆 아파트에 사신다는 말을 당시 안내원 김혜영 선생으로부터 듣고 찾아갔었다. 아무런 선물도 준비하지 못하고 따뜻한 대접만 받고 돌아온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이번 북한여행을 앞두고 준비한 노인용 영양제들을 이분들께 전해 드리고 싶었다(관련 기사 : "60년대 남한에서..." 평양서 만난 '남파간첩').

경미가 어딘가에 여기저기 전화를 건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돌아와 "3시 반쯤 방문이 가능하다"고 전한다. 그 시간에 로비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그때까지 쉬기 위해 방으로 돌아왔다.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북송 장기수 최선묵 선생님, 세번째가 최선묵 선생님의 부인, 네번째가 김동수 선생님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북송 장기수 최선묵 선생님, 세번째가 최선묵 선생님의 부인, 네번째가 김동수 선생님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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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얼굴이 점점 힘들어 보인다. 잠깐이면 될 테니 그래도 함께 가겠다고 한다. 로비에서 경미를 만나 아파트로 향한다. 북송 장기수 김동수 선생님 댁으로 들어서니 같은 아파트 건물에 살고 계신 최선묵 선생님께서 부인과 함께 이미 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최선묵 선생님께서 반가이 맞으시며 안부를 물으신다.

"아이구, 신 선생. 그동안 잘 있었오?"
"네, 선생님께서도 건강하시지요?"
"아주 건강하오. 그래 팔은 다 낫습니까? 지난여름 이곳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는데."
"어머나, 그걸 다 기억하시고 계시네요. 네, 수기치료(지압)를 받고 다 나았어요. 생활하는 데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고맙습니다."

지난 6월 만났을 때 내가 그런 얘기를 한지도 모르고 있는데 세심한 이 분은 그걸 다 기억하고 있다. 경기 지방의 말씨 때문에 이웃집 할아버지를 만나는 양 한결 더 친근감이 느껴진다. 남쪽에 친척들이 많이 살고 있을 텐데 얼마나 그리울까.

저녁에 행사가 있어서 정장 차림을 하고들 계신단다. 보통 포상을 받은 북한 민간인들이나 군인들의 옷에는 큼직한 훈장들이 여백 없이 주렁주렁 달려있는데, 40여 년 징역살이에 비해 이분들의 정장을 장식하는 훈장은 숫자도 적고 그 크기도 작다. 내게 북한 훈장에 대한 지식이 없어 이분들이 달고 있는 훈장들의 의미를 몰라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걸까.

 김동수 선생님 조카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러 주시는 북송 장기수 최선묵 선생님과 만수대 예술단 배우 출신의 부인
 김동수 선생님 조카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러 주시는 북송 장기수 최선묵 선생님과 만수대 예술단 배우 출신의 부인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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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해 온 선물을 두 장기수 선생님들께 드리고 아파트를 나선다. 최선묵 선생님 부인께서 손을 살포시 잡는다.

"멀리서 오는데 왜 무겁게 이런 걸 들고 와요."
"무겁기는요. 아무것도 아녜요. 하나는 남성용이고 또 하나는 여성용이에요. 분홍색이 여성용입니다. 다음에 또 찾아뵐게요. 사모님, 두분 항상 건강하세요."

오늘은 남편의 몸이 너무 안 좋아 호텔에서 남은 시간을 보내며 생각에 젖는다. 법원에서 받은 긴 형기를 다 채우고도 자신의 생각과 믿음을 바꾸지 않는다는 이유로 십수 년 더 징역을 살아야만 했다니. 오래전 일일 텐데 한국에 아직도 이런 법이 남아있을까? 만일 나에게 국가 권력이 내가 갖고 있는 기독교 신앙과 믿음을 포기하라고 강요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아마도 나는 이분들과 같은 길을 갈 것이다.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  

10월 13일. 아침에 일어난 남편이 아무래도 의사에게 가봐야겠다고 한다. 보통 괴로운 게 아닌 것 같다. 경미에게 말하니 펄쩍 뛰며 좋아한다. 이 호텔에 의사 선생님이 계시다며 우리를 데리고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의사 선생님의 진료를 받는 남편
 의사 선생님의 진료를 받는 남편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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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의 한 객실을 의료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상냥한 여의사 선생님께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우리를 맞는다. 남편의 혈압을 재고 여기저기 진찰을 하더니 두 종류의 약을 환자인 남편이 아닌 내게 준다. 하나는 가루약인데 따뜻한 물에 타 가지고 다니면서 물 대신 마시고 다른 하나는 식후에 복용하는 거라며 내게 신신당부한다.

"남자들은 약을 잘 안 먹는단 말입니다. 시간도 잘 지키지 않고. 기러니 녀사께서 잊지 말고 꼭 챙기십시요. 고려의학에 따라 만든 약인데 보기보다 약이 잘 들을 겁니다."

약을 받아들고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의료실에서 받은 약
 의료실에서 받은 약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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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후에 복용하라는 약이 나를 과거로 돌려보낸다. 네모난 종이 한가운데 약을 놓고 몇 번을 접어 고깔모자 모양으로 만든 포장이다. 예전에 남쪽에서도 바로 이렇게 약을 종이에 쌌다.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도 난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에 간호사가 약을 환자인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에게 건넸고 어머니가 약을 가지고 다니시며 시간이 되면 아버님께 드리곤 했다.

내게 북한 여행은 여러 이유로 단순한 관광의 의미를 넘어선다. 그중 하나가 사실적이고도 완벽하게 과거로 돌아가는 일이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의 여행을 떠난 것 같이. 그리고 지금은 점점 잊혀 가는 아니면 잃어버린 우리들의 옛 모습을 발견하는 일이다.

지난여름 팔 수기치료 때와 같이 진료비는 무료란다. 혹시나 해서 선물용으로 항상 핸드백에 넣고 다니는 작은 화장품을 억지로 탁자 위에 놓아두고 고맙다는 인사를 연상드리며 의료실을 나왔다.

피자 식당에서 맡는 북녘의 바닷내음

오늘 오후에는 수양딸 설경이네 집에 간다. 가기 전 점심 식사를 무얼로 할지 남편과 '논쟁'을 벌린다. 내 속셈은 남편이 소주같은 술을 마시지 않아도 되는 음식점을 찾는 일이다. 보다 못한 경미가 휴대전화를 열고 여기저기 식당의 메뉴를 보여주며 고르라고 한다.

 휴대전화로 식당을 찾는 경미
 휴대전화로 식당을 찾는 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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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점을 찾아주는 휴대전화 화면
 상점을 찾아주는 휴대전화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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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전화전자상점'이라고 쓰인 화면 위에 '이 제품은 콤퓨터소프트웨어보호법에 의하여 보호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상점별로 찾아볼 수도 있고 상품별로도 찾을 수가 있다. 가기 전에 미리 주문도 할 수 있고 배달이 가능한 상점이나 음식점들도 있다. 결제는 현금카드로 하거나 또는 현지에서 상품을 받을 경우 현금을 내도 된다. 유엔의 금융제재로 인해 북한에서 신용카드 사용이 불가능한 불편이 있을 뿐이다.

 피자집을 찾아서
 피자집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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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은 피자로 '합의'를 봤다. 두세 번 가본 적이 있는 '해운이딸리아특산물식당' 대신 새로운 곳을 가보기로 했다. 우리가 가려는 피자집은 광복거리라고 부르는 길에 있다. 식당을 찾아 길을 거닌다. 오고가는 북녘의 동포들과 마주치며 "사랑한다"는 말을 소리 없는 눈빛으로 전한다.

 조심스럽게 서빙을 하는 웨이트리스
 조심스럽게 서빙을 하는 웨이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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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요리 전문 음식점인데 메뉴에는 한식 요리도 몇몇 눈에 띈다. 나는 에피타이저로 포기김치를 주문했다. 남편이 조개구이와 함께 맥주를 주문한다. 내가 '몸이 아픈 사람이 왜 또 술을 들려고 하느냐'고 말려 보지만 소용이 없다. 게다가 옆에서 경미는 "맥주가 술입니까?"라며 한술 더 뜬다. 경미를 북한의 셋째 수양딸 삼았다간 내 남편 오래 못 살 것 같아 정신이 번쩍 든다.  

서빙하는 웨이트리스가 마치 집안 내 어른들 대하듯 손님을 공손하게 대접한다. 혹시라도 부족할까 싶어 조심하는 몸가짐이 마음을 움직인다. 그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려 뚫어지게 그녀를 쳐다본다.

 서해산 조개구이
 서해산 조개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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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트리스가 조개 위에 알콜을 골고루 뿌린 뒤 불을 붙인다. 조금 있으니 조개가 입을 쩌~억 벌리고 뽀얀 국물을 흘린다. 남포에서 온 조개란다. 북한의 서해안에 흔해 빠진 게 조개라고 한다. 뜨거운 조개 하나를 집어 조심스럽게 즙을 마시고 살을 뜯어 입에 넣는다. 나는 바로 대동강 맥주 두 병을 추가로 주문한다. 남편이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한다.

 평양 포기김치
 평양 포기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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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 하나를 먹고 나서 집어 든 김치가 침샘을 요동친다. 10월인데 추운 겨울 김장김치에서나 느낄 수 있는 '쨍한' 사이다 맛을 낸다. 어찌 이런 맛을 낼 수 있는지 웨이트리스에게 물었다. 평양김치는 사시사철 이 맛이라고 한다. "그래도 겨울 김장김치가 제일 맛있으니 겨울에 꼭 오십시오"라며 겨울 북한여행을 유혹한다. 포기김치 한 접시를 추가로 더 주문했다. 그리고 얇은 햄이 얹혀져 있는 시실리아식 피자와 해물 스파게티를 주문했다.

피자의 맛은 내가 이탈리아에서 맛본 것과 아주 흡사하다. 아마도 이탈리아 수입산 치즈와 햄을 사용해서 그렇지 않나 싶다. 해물 스파게티는 새우와 여러 가지 조개류를 넣어 만들었다. 그중 하나가 동해안에서 나오는 섭조개다.

 북한의 동해안 (2011년 10월 6일)
 북한의 동해안 (2011년 10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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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첫 북한 여행 때 바라본, '슬프도록' 아름다웠던 동해안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수정같이 맑은 바닷물이 흰눈꽃송이 같은 거품을 날리며 금빛 모래사장으로 밀려왔다.

마치 그날 그 해변가에 있는 양 내 조국 한반도 북부의 바다 내음을 듬뿍 맡으며 스파게티 접시 위의 다양한 조개 맛에 빠져든다.

"Just let her go! (그냥 가게 해줘!)"

 마중 나온 설경이와 의성이
 마중 나온 설경이와 의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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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설레는 마음으로 설경이네 아파트에 도착하니 손자 의성이를 데리고 설경이가 마중을 나와 있다. 의성이도 반가워하며 내 옷을 어루만지며 잡아당긴다. "할머니 보고 싶었냐"는 물음에 "응, 할마이"라고 또렷하게 대답한다.

 설경이네 아파트 경비 아주머니와 함께
 설경이네 아파트 경비 아주머니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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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입구에서 경비원 아주머니가 뛰어나오신다.

"아이구, 의성이 할마니. 설경이가 또 오신다 기러디만 뎡말 오셨구만. 기래 안녕하셨습니까?"
"네, 아주머니. 별고 없으셨어요? 건강하시죠?"
"내레 아주 건강하요. 의성 할마니는 그 먼 미국서 이래 딸래집 오겠다고 그 먼 길을…."
"네, 아주머니. 그게 제 낙이에요."

"어서 들어 가시라요. 손주하고 재밌게 노시라요."
"네, 갈 때 또 뵙겠습니다."

아파트 계단을 오르는데 경미가 웃어 죽겠단다. 경비원 아주머니가 '할머니' 같이 보이고 내가 '아주머니' 같이 보이는데 서로 거꾸로 불러 웃음을 참느라고 혼났단다. 설경이에게 경비원 아주머니의 나이를 물으니 나와 비슷할 거라고 답한다. 북한사람들의 나이를 짐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20대 이하는 나이보다 어려 보이고 30대 이상은 나이보다 훨씬 더 들어 보이기 때문이다.

 왼쪽이 안내원 경미 그리고 가운데가 설경이.
 왼쪽이 안내원 경미 그리고 가운데가 설경이.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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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이 아빠의 안부를 물으니 근황을 얘기한다.

"이제 안내원 일은 더 이상 안 하고 사무실에서 일합니다."
"어머, 잘 됐다, 얘. 이제 오래 집을 떠나 있지 않아도 되니 말야. 근데 의성이 아빠 진급했구나?"
"네, 맞습니다."
"축하한다, 설경아."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다. 안내원은 관광단을 이끌고 한 번 나가면 1~2주씩 집을 비워야 한다. 의성이를 위해서도 아주 잘된 일이다. 

"두 분 열병식은 잘 보셨습니까?"
"응, 근데 나는 원래 군대를 무서워해. 이 아바이가 열병식 사진 찍겠다고 해서 간 거야. 지난번 말한 대로 외신기자 자격으로 취재했어. 우리 둘째 딸 설향이는 잘 있지? 걔네 집도 곧 갈 거야."
"네, 지금 배가 잔뜩 불러 있습니다. 1월 초 정도에 출산 예정입니다."
"그렇구나, 어서 가 보고 싶구나."

"또 다른 일정은 없으십니까?"
"한 사람 또 만날 사람이 있는데 글쎄 잘 될는지…. 그리고 자강도와 신의주 관광을 좀 다녀오려구 그래."

"만나셔야 할 분이 대체 누구신데 잘 될는지 걱정하시나요?"
"탈북해서 서울서 살고 있는 한 여성의 가족을 만나는 일이야. 지금 그 가족들이 평양에 살고 있거든. 김련희라는 사람인데 본인은 속아서 왔다며 북송을 요구하지만 이미 한국 시민이 되었기 때문에 한국 정부로서는 그 사람의 요구를 들어줄 수가 없는 거지. 경미에게 그 가족을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아직 아무 대답이 없어, 하하."

내가 경미를 쳐다보자 미소만 지으며 아무 말이 없다.

 칭얼거리는 의성이를 달래는 설경이
 칭얼거리는 의성이를 달래는 설경이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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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대화가 지루했는지 의성이가 칭얼거리기 시작하자 달래기 위해 설경이가 의성이를 안고 일어선다. 우리는 선 채로 한동안 대화를 나누다 작별인사를 했다.

나에게는 이번 여행에서 제일 중요한 두 가지 일정이 있다. 하나는 평양의 두 수양딸을 만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탈북자 김련희씨 가족을 만나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평양의 가족과 대화를 나누게 해 주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할 수가 없다. 대체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북한은 그렇다 치자. 어찌 세계화를 부르짖는 나라가 가족에게 가고 싶다는 사람을 붙잡아 두는가 말이다. 오히려 이를 보는 세계 여론만 나빠질 뿐이다. 나는 김련희씨의 얘기를 가끔 미국 친구들과 나누곤 한다. 그들의 대답은 모두 한결같다.

"Just let her go! (그냥 가게 해줘!)"

아파트를 나서며 경비 아주머니와 인사를 나눈다. 이제 가면 또 언제 오냐며 눈시울을 붉힌다. 꼭 다시 오겠다는, 지킬 수 있는 약속을 하고 호텔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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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음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음악박사. 전직 성악교수 이며 크리스찬 입니다. 국적은 미국이며 현재 켈리포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첫 북한여행 이후 모두 9차례에 걸쳐 약 120여 일간 북한 전역을 여행하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 그리고 북한여행 중 찍은 수만 장의 사진들을 오마이뉴스와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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