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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이 중단된지 오늘로서 딱 1년이 되었습니다.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은 '개성공단에서 일했던 청년'과 '개성공단에서 일을 하고 싶었던 청년' 두 청년의 이야기를 담아, 개성공단 재개를 촉구하고자 합니다.


분단은 아직도 한민족에게 큰 상처로 남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 불편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익숙하다. 그래서 올해 2월 개성공단이 폐쇄되었을 때에도 그것의 문제점을 아는 국민들은 많지 않았다. 청소년 중 일부는 북한을 우리와 다른 국가로 인식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점차 통일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이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분단이 70년 이상 지속되면서 우리에게 분단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과연 분단된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분단은 당연한 것일까? 암이 위험한 것은 장기가 우리 몸 깊숙이 있는 데다,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에 병을 일찍 발견하지 못하고 고통이 심해져서 발견할 땐 생명을 잃을 정도로 위험한 지경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분단은 어쩌면 우리에게 위독한 상태에 이르게 함에도 그것이 위태롭게 할 만큼 깊은 병이란 사실을 모른 체 살아가는 암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분단이 이렇게 익숙한 가장 큰 이유는 한편으론 분단으로 인한 억압에 그만큼 익숙하다는 이야기도 한다. 이 억압은 다양하지만 대체로 하나로 정리될 수 있다. 바로 '다양한 의사 표현에 대한 억압'이다. 탈 분단이란 개념은 추상적이면서 포괄적인 개념이다. 간단하게는 분단구조의 해체이기도 하지만, 깊게 들어가면 분단에 파생된 모든 잔재의 청산까지 복잡한 양상을 가진다. '통일'이 과거 민족주의가 대세였던 해방과 전쟁 이후 추구했던 목표였기 때문에 현재 한반도 상황에선 적합하지 않다. 통일이란 개념 속에선 다양성을 유보시키는 폭력성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과거 남북정권은 통일을 내세워 역설적으로 분단체제를 더욱 강화했던 선례가 있었다.

그렇다면 탈 분단은 보다 우리 일상에서 어떻게 보고 느낄 수 있을까? 우선 그 전에 우리는 언제부터 통일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었는지부터 간략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통일은 '단결'이란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분히 국가권력자에 의해 국민을 통제시키는 것으로 악용될 수 있다. 불행히도 휴전 이후 남북은 특히 과거 냉전 시기 체제경쟁에서 남북 권력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강화시키는 데에 통일을 독점하고 이 목표를 위해 '국민'과 '인민'의 기본 권리를 박탈시켰다.

그리고 남북 각자의 주도 하의 일방적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무조건 경제개발을 빌미로 주권을 철저히 유린시켰다. 북한은 그 흐름을 깨지 못했지만, 남한은 1980년 '광주 민주항쟁'을 계기로 7년 뒤,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잃어버린 주권을 쟁취했다. 그런 뒤에야 비로소 국민은 통일을 마음껏 말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추진한 남북화해협력정책을 보수진영에선 체제부정으로 몰고 다시 과거 반공적인 시각에서 통일을 독점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2016년 12월 현재 우린 똑똑히 목격하고 있다.

다시 말해 탈 분단은 '통일논의의 주도권을 국민이 가지는 것'이며 동시에 '다양성에 기초한 민주주의의 성숙과 확장'이 곧 탈 분단의 실제임을 앞선 역사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우리는 주권재민을 광화문광장에 모인 수많은 촛불을 통해 확인했다. 이 광장은 바로 '분단의 구조가 해소되는' 장소이다. 앞서 분단은 통일을 빌미로 국가권력에 일방적으로 '단일화'하는 과정임을 보았다.

다양성을 배제한 체 일방적으로 어떤 입장 또는 세력의 의지를 관철시키려는 배타적인 갈등이 곧 분단의 실재적 모습이다. 또한, 오로지 상대를 이기기 위해 모든 가치를 경제 우선 제일주의로 잡은 산업화로 인한 폭력성을 우린 '세월호 참사'를 통해 목격했다. 일부 보수단체들은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으면서도 내세운 논리가 바로 '경제위기를 부추긴다.'는 비상식적인 논리였다. 여기에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비판과 갈등, 토론을 '분열'로 통칭하며 곧 북한과 연계된 '종북 세력'으로 규정해 버린다. 지금 그 오래된 분단의 잔재들이 해소되는 과정을 우린 광장에서 보고 있다.

그렇다면 광장은 어떻게 분단에서 파생된 일상적인 문제를 해소하며 그것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이 글은 광장이 '단일성에서 다양성으로 변화하는 만남의 장'으로서 탈 분단에 기여하고 있으며 이것이 남북분단의 해소로 이어지기 위해선 남북의 사람들 간에 만남의 장이 있어야 함을 주장한다. 이에 대한 실제적인 모델로서 중단된 개성공단의 일상적 단면을 통해 광장의 다양성이 어떻게 남북분단에 다양성을 부여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미리 탈 분단을 경험하는 만남의 장 : 개성공단

우리는 남북관계와 통일을 말할 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잊는다. 우리가 느끼지 못할 정도로 분단의 익숙함을 간과한다. 우리에게 분단은 일상적으로 자연스럽다. 연세 높은 어른이 아니라면 대다수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미 분단된 상태에서 태어났다. 통일은 어디까지나 책으로 보았다. 이중 누구도 통일이 된 한반도를 경험한 이는 해방 이전의 세대가 아닌 이상 거의 없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익숙한 통일은 사실 매우 부자연스럽다.

경험을 안 했기 때문에 통일은 매우 추상적으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대부분 통일은 반대하지 않는 한 거의 장밋빛 환상으로 채워져 있다. 통일이 되면 자연스럽게 남북은 하나가 되고 곧 강대국이 될 거라고 믿고 있다. 도대체 이런 밑도 끝도 없는 통일에 대한 절대적 믿음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건 같은 민족이라는 매우 추상적인 동질의식에서부터 시작된다. 단군 할아버지부터 반만년 동안 한반도에서 같은 역사를 가진 민족, 그리고 일제 강점기의 아픔을 공유한 같은 말을 쓰는 한민족으로 우린 북한을 바라본다.

그러나 추상적이기 때문에 이러한 반응은 다분히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런 생각을 갖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또 대부분 북한을 '주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단이 우리에게 자연스럽다면 북한에 대한 인식은 추상적인 '민족'이란 동질성보단 '주적'이란 현실적인 존재가 더 와 닿는다.

사실상 남북관계는 짝사랑과 비슷하다. 짝사랑은 일방적인 사랑이다. 거기엔 상대방과의 감정의 공유나 교감이 없다. 그러다 보니 짝사랑은 상대방을 매우 추상적으로 이해한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신이 짝사랑하는 상대방을 자기가 원하는 생각대로 상대방의 동의 없이 그리고 사랑하는 것이다. 대부분 짝사랑은 상대방을 향한 보다 직접적인 만남과 교류가 없다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종종 파국으로도 치닫는 것을 보게 된다. 상대방이 자신의 생각대로 사랑을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급기야 상대방에게 강제로 사랑을 강요하거나 폭력을 쓰기도 한다. 다시 말해 남북 구성원은 바로 현실적인 서로의 이해와 교감 보다 자기가 원하는 일방적인 사랑을 강요하는 통일을 외치고 있는 셈이다. 아니 이미 남북의 짝사랑은 한번 파국을 겪었다. 바로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한 6.25전쟁(한국전쟁)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절망적인 결론에 이른다. 통일은 우리에게 자연스럽지도 않고, 남북은 오랫동안 자기가 원하는 짝사랑을 강요하는 관계라면 탈 분단 보다 분단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실제 일상에서 매일 얼굴을 맞대면서 부대끼고 대화하며 실질적으로 남북 구성원들이 조심스러운 사랑을 키워갔던 장소가 있었다. 바로 개성공단이다.

2005년 본격적으로 개성공단이 운영된 이후, 완전히 문을 닫은 2016년까지 근 10년 동안 개성공단에서는 남북 근로자들이 매일같이 만나고 함께 일하면서 서로의 편견을 허물고 새롭게 사람 대 사람으로 관계를 이어갔던 '통일의 실체'였다. 외국인에게 남북통일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긴 설명 없이 보여 줄 수 있는 곳이 바로 개성공단이었다. 여기서는 오히려 분단이 어색하다. 분단에서 남북 구성원은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일방적인 사랑을 강요했었다.

하지만 개성공단에서 함께 지내보니깐 그런 편견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무섭고 거칠고 음흉스러울 것 같던 북한 근로자들은 그저 우리가 평범하게 볼 수 있는 가장이며, 어머니이고, 이웃이었다. 그래서 편견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고 어느 세 개성공단에서 남북 근로자들은 함께 살아가고 교제에 더 익숙해져 있었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탈 분단을 실제로 경험하고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개성공단은 바로 미리 탈 분단을 자연스럽게 남북 구성원들이 경험하는 미리 본 만남의 장이었다.

개성공단 그때 그 하루 : 일상에서 온몸으로 경험하는 탈 분단

오늘도 어김없이 자명종 시계는 오전 6시를 귀 따갑도록 울린다. 정말 몸은 무겁지만, 일찍 일어나야 한다. 휴대폰과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는 개성공단에서는 아날로그적인 감성으로 살아야 한다. 약속된 시간에 나가지 못하면 회사 지각은 피할 수 없다. 그렇게 부지런히 세면하고 숙소를 나선다. 자전거를 타고 숙소에서 차로 20분 떨어진 직장까지 이동한다. 빠르게 대로로 나갈 수도 있지만, 맘 편하게 외곽으로 빙빙 돈다. 뭐 산책 겸이라는 건 명분이고 사실은 까다로운 북한 교통보안원의 눈을 피해 자유롭게 다니고 싶은 저항정신이라 할까? 안개가 자욱이 낀 개성공단은 매우 부산하다. 새벽부터 5만이 넘는 북한 근로자들이 통근 버스를 타고 직장으로 출근하기 때문이다. 무려 250대의 버스가 이동하는 장관이지만 5만의 북한 근로자를 실어 나르기엔 무리다. 거의 콩나물 버스가 되기 십상이다. 그리고 버스에 내려선 꼭 삼삼오오 손을 잡고 직장까지 출근을 한다. 그런 출근 시간의 부산한 모습을 보면서 J군도 출근했다.

출근하고 밀려오는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고 점심때 쯤 되면 함께 근무하는 북한 근로자 아저씨가 이야기를 걸어온다. 이번엔 자녀 자랑이다. 이번에 개성의 명문인 개성 성균관 상공업대학에 자식이 입학했다면서 굳어진 얼굴에 웃음꽃이 피는 걸 보면 남북 부모의 마음은 다 비슷하다는 걸 느낀다. 대부분이 다 아버지뻘인데 사리원 출신인 비슷한 연배의 북한 근로자는 어느새 친구처럼 친숙하다. 때마침 브라질 월드컵 시즌이라 외국의 유명한 축구 스타플레이어에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음 남북 남자들은 역시 축구 이야기면 사족을 못 쓴가 싶다. 그렇게 수다를 털다 보면 어느덧 정오가 오고, 출출한 배를 부여잡고 식당에 간다. 이때가 아쉬운데 남북 근로자들이 직장에서 일은 같이하지만 식사는 따로 한다. 같이 얼굴을 맞대고 함께 먹으면 참 좋을 텐데...

오후에 잠시 숙소에 들려 차를 끌고 오기 위해서 J군은 잠깐 걷기로 한다. 오후의 따사로운 태양과 그 속에서 배구를 하며 웃음꽃을 피우는 황해도 아가씨들의 코웃음에 마음은 한결 여유로워진다. 숙소에서 차를 끌고 가기 전에 숙소 옆 OO편의점에 들른다. 개성공단에서는 모든 종업원은 반드시 북한 근로자를 써야 해서 점원 역시 북한 앳된 여자 점원이다. 그냥 자연스럽게 고향이 어딘지 물어본다. 수줍어하면서도 할 말을 하는 북한 여자 점원의 모습이 참 보기 좋다. 그리고 차를 몰고 다시 직장에 도착해서 남은 일들을 마무리하고 그렇게 퇴근길에 오른다.

저녁노을이 길게 늘어진 개성공단 밖의 북한 마을풍경. 2중으로 펜스가 둘러치고 그사이 북한 초병이 있지만, 북한 마을은 그 어느 때 보다 가까이에 있다. 거기에 개성공단은 주변에 공장도 도시도 없기에 소리가 잘 들린다. J씨는 그때 펜스 건너편 길에서 한 아이의 쩌렁쩌렁한 소리로 '엄마'를 부르는 장면을 바라본다. 그 아이는 또랑또랑하게 엄마를 부르고, 동구 밖부터 달려오는 자녀를 보며 안길 준비를 하는 어머니의 너그러운 모습. 그리고 그렇게 품에 안긴 자녀는 그렇게 어머니와 함께 손을 잡고 집으로 간다. 그 아이가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어머니에게 재잘재잘 이야길 한다. 그것은 카메라로 담으라고 해도 담을 수 없는 J군만의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그렇게 북한 사람이 아닌 한 사람의 개성공단 이웃을 만나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정말 탈 분단을 온 몸으로 맞보고 싶은가?

위의 J군의 '개성공단의 일일'이 소설처럼 들리는가? 하지만 이것은 추상적인 상상이 아닌 실제를 바탕으로 재현한 이야기다. 개성공단에서 남북 근로자들은 실제로 남한 사람, 북한 사람(또는 남조선 사람, 북조선 사람)으로 서로를 보지 않는다. 그냥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이자 함께 이야길 나누는 가까운 이웃으로 서로를 느끼고 나눈다. 거기엔 이념도 정치적인 견해도 나눌 필요가 없다. 그저 함께 일상을 나누는 친근한 이웃이자 친구로 이미 개성공단에서 근무하는 남북 근로자들은 탈 분단을 온몸으로 경험해 왔다.

실제로 개성공단이 작년 2월 갑자기 폐쇄되었을 때 북한도 맞대응으로 제대로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48시간 이내로 남한 근로자들을 모두 추방시켰을 때의 이야기다. 그렇게 급하게 나갈 준비를 서두르는데 매일 직장 건물을 청소하던 직원이 '선생님 언젠가 꼭 다시 만납시다.'란 인사를 건넬 때 뭉클했다는 일화도 있다. 비록 남북관계는 크게 변했고 정치적인 갈등이 증폭되었을지언정 개성공단 안에서만큼은 남북 근로자 모두 서로 함께 관계를 지속하길 원하고 바랐다. 사실상 개성공단은 남북 구성원이란 정체성에서 개성공단인 이란 새로운 공동체 의식이 싹트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경험이 지금 단절된 채 1년여의 시간을 맞이한 것이다.

정말 탈 분단을 온몸으로 맞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주저 없이 개성공단이 다시 복원되길 소망하고 또 새로운 정부에 외쳐야 한다. 지난 남북관계에서 보듯 아무리 정부가 남북교류의 의지가 강해도 국민이 동조하지 않으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을 경험을 통해 철저히 느꼈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야말로 더 많은 만남을 경험해야 한다. 연애는 책으로 공부해서 알 수 없듯이, 남북 구성원이 함께 살아가는 진정한 탈 분단은 이론과 이해가 아니라 경험과 만남을 통해서만 직접 경험하고 체득될 수 있다. 곧 더 많은 지역에서 남북 구성원들이 함께 만남을 통해 탈 분단을 희망하고 고대하는 이들이 남북 도처에 많아지길 기원한다.

덧붙이는 글 | 미디어오늘,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홈페이지에 중복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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