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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지난 해 11월 17일 오전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지난 해 11월 17일 오전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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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가 끝나고 다시 학교생활기록부 종합전형(아래 학종) 시즌이 돌아왔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학년이 마무리되는 2월은 학생부 기록을 마지막으로 검토해야 하는 시기라 교사와 아이들은 학생부를 사이에 두고 머리를 맞댄다. 눈을 부릅뜨고 오탈자가 있는지, 활동한 내용이 혹 누락돼 있는지 등을 찾아내는 때다. 3월이 되어 학년이 바뀌면 수정하기가 무척 까다롭다.

올해 수능을 치르게 되는 2학년 아이들의 학생부에 대한 '집착'은 매섭기까지 하다. 아직 고3 시절 1년이 더 남았는데도, 마치 이번이 마지막인 것처럼 학생부 기록에 목을 맨다. 그래서 2월 며칠간 등교하는 날에는 수업 자체가 불가능하다. 아예 학급별로 교사와 아이들이 학생부를 '크로스 체크'하는 시간으로 운영된 지 이미 오래다.

학종 마사지가 담임교사 최고의 덕목?

기실 담임교사에게 학생부 작성은 학년말 몇 개월을 통째로 헌납해야 할 만큼 부담스러운 업무다. 학급당 학생 수도 적지 않은 데다 기록해야 할 항목이 너무 많아서다. 교과세부능력특기사항과 창의적 체험활동 영역 중 동아리 활동을 제외하고 사실상 학생부의 모든 항목이 담임교사의 몫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종이 담임교사를 '3D 업종'으로 내몰았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학종이 대세로 자리잡아가면서 '풍성한' 학생부는 모든 고등학교 교육의 당면 과제가 되었다. 학생부의 '질'이 입시의 당락을 결정한다는 믿음을 공유하게 되면서, 교사의 자질과 역량조차 학생부에 의해서 평가받게 됐다. 아이들이든 학부모든, 시쳇말로 학생부를 잘 '마사지'해주는 담임 만나는 것을 축복이라고 여기는, 바야흐로 '학종 시대'다.

그런데, 학년 마감을 앞두고 교무실로 득달같이 달려와 자기 학생부 기록이 부실하다며 늘려달라고 통사정하는 아이들이 제법 많다. 대개는 최상위권 아이들로, 내 수업시간 자신이 배웠고 실천했다는 구체적인 내용을 출력해 보여주며, 교사의 시각으로 재구성해 기록해달라는 요구다. 물론 거짓은 아닐 테지만, 그렇다고 그걸 학생부에 옮겨 적어야 하나 싶어 여간 찜찜한 게 아니다.

여기서 잠깐 내 수업방식을 소개하면 이렇다. 수업 내용을 녹화해 블로그에 탑재하고 아이들에게 가정에서 예습해오도록 한다. 수업시간 녹화한 영상과 관련지어 미리 만든 학습지를 나누어주고, 아이들끼리 모둠별로 가르치고 배우며 정답을 찾아내 친구들 앞에서 설명할 수 있도록 한다. 학습지는 인문계 고등학교의 현실을 반영해 수능과 모의고사 기출문제를 발췌해 편집해 만들었다.

어떻게든 공부에 담을 쌓은 아이들을 수업에 참여시키고 싶어서다. 말하자면, 또래 친구들끼리 문제를 해결하고 발표하는 과정에서 모둠 내 다른 친구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시늉이라도 내지 않겠느냐고 봤다. 몇몇 최상위권 아이들은 별반 효과가 없을 거라면서 외려 자신들의 공부 시간만 빼앗기게 될 거라는 불만을 터뜨렸다.

적어도 모둠 안에서 활동이 이뤄지다보니 예전처럼 엎드려 자거나 조는 아이는 거의 사라졌다. 공부를 포기했다는 아이들조차 심드렁한 표정으로 짝꿍의 학습지를 베낄지언정 손에는 펜이 들려있었다. 모둠별 발표자를 무작위로 뽑아 아이들 앞에서 설명해야 하니 부담을 갖는 것이다. 아무튼 '친구들 공부까지 챙겨야 하는' 최상위권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가며 근근이 수업을 끌어왔다.

자평하자면, 수업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수행평가 감점 방식 등 보완할 게 여럿이지만, 1차적인 목표였던 수업 중에 자는 아이들이 현저히 줄어들었으니 나름 만족한다. 그러나 정작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학생부 기록에서는 낙제점을 받았다. 수업 방식 상 교과세부능력특기사항을 '풍성하게' 꾸며줄 꺼리가 마땅치 않아서다.

최근 학교마다 학생부를 어떻게 기록해야 하는지에 대한 컨설팅 바람이 불고 있다. 심지어는 교직원 회의가 외부 강사를 초청한 강좌로 대체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디든 관광을 가면 남는 거라곤 사진밖에 없듯, 학교교육의 활동도 학생부만 남는다는 '비교육적인' 말까지 난무한다. 입시에 교육과정이 종속돼있고, 시험에 나오지 않는 과목은 버려지듯, 학생부 기록에 도움이 되지 않는 교육활동은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된다.

"연중 모둠활동으로 진행된 수업에서 모둠장으로서 학습지 해결과 내용의 공유 등 활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특히 스피드퀴즈 등 게임을 활용한 수업 때는 교과서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하는 순발력을 보였다. 중간고사가 끝난 10월 마지막 주에 근대사를 다룬 국제질서의 변동과 근대국가 수립 운동 단원은 모둠 대항 스피드퀴즈대회를 가졌다."

컨설팅 과정에서 '쓸데없는 내용이라며 차라리 비워둬라'며 신랄하게 비판 받은, 내가 쓴 한 아이의 교과세부능력특기사항 기록이다. 1500자까지 활용할 수 있는데 지나치게 짧고, 어느 항목의 어떤 내용이든 중복되면 안 된다는 지적이다. 수업이든 동아리 활동이든 자율 활동이든, 교과와 관련된 특별한 활동을 한 경우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아이들마다 활동내용이 동일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수업과 다양한 활동을 통해 아이들의 사고가 확장되는 과정을 기록해달라고 주문했다. 순간 '여관'이 돼가는 교실의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결국 최상위권 아이들에게 주목해 달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유능한 교사라도 수백 명의 아이들의 학습 과정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일일이 기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물며 속절없이 쓰러지는 아이들을 일으켜 세우기도 바쁜 판에.

사실 아이들 각자의 학습 과정을 개별적으로 학생부에 기록한다는 건 소수의 과외수업이라면 모를까 불가능에 가깝다. 한다 해도 '인상 비평'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자료로 아이들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간파해낸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보지만, 그럼에도 자신한다면 선발권을 가진 대학에서 면대면 검증해야할 부분이지, 그 책임을 고등학교에 떠넘겨서는 곤란하다.

그럼에도 단 한 명이라도 상위권 대학에 진학시켜야 하는 고등학교는 늘 '을'의 처지다. 결국, 교사는 작문 능력을 발휘하여 자발적으로 '마사지'하거나, 아이들이 '자기 PR'하듯 정리해온 것을 거의 그대로 옮겨 적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다. 개중에는 실제 수업과는 사뭇 동떨어진 내용도 있고, 남이 대신 적어준 듯 '멋진 글'도 보인다. 거칠게 말해서, 교사든 아이들이든 외부 컨설팅을 받으며 학생부 기록을 '따로 또 같이' 준비하는 셈이다.

학벌구조 그대로 두면 학종도 소용없다

무엇보다 고등학교는 대학의 '갑질'에 휘둘려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고 있다. 한낱 입시 실적에 눈이 멀어 백 배 천 배 더 중요한 걸 잃고 있는 것이다. 바로 아이들과 학부모의 학생부에 대한 신뢰다. 학생부가 '소설책'이라는 비유와, '학생부 기록대로라면 우리나라 아이들은 죄다 성인군자'라는 조롱이 시작된 곳은 바로 아이들의 입이다. 영구 보존 장부라는 학생부는 그렇듯 입시를 위한 '1회용'으로 전락해 버렸다.

요컨대, 학종과 관련된 사교육 시장마저 번창하는 가운데, 학교마다 학생부의 양과 질이 내신 등급과 정확히 비례하는 상황이 '정착'됐다. 학종은 본디 수능이나 내신 등 계량화된 지표로 파악하기 힘든 인재를 발굴해내기 위해 설계됐다. 그런데, 학종이 대세로 자리 잡은 현실은 그와는 정반대로 굳어져가고 있다. 학종은 수능의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가 돼버렸다.

문제는 돌고 돌아 다시 온존한 학벌구조다. 이를 해체하지 않고서는 백약이 무효다. 국민적 기대를 안고 출발한 학종마저 최상위권 아이들이 따로 챙겨야 하는 '스펙'으로 전락한 현실에서, 학생부는 '소설책'이라는 조롱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엇비슷한 성적의 지원자들 중에 '이왕이면 다홍치마'를 가려 뽑을 수 있는 상위권 대학에게만 꽃놀이패였을 뿐이다.

학벌구조를 고정 상수로 놓은 채, 입시의 방식으로 교육과정과 수업을 개선하려고 했던 것 자체가 패착이었다. 그건 어쩌면 1등 하면 스마트폰 사준다는 식의 부모와 아이와의 어처구니없는 '거래'와도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정권이 바뀌고 관련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입시체제도 춤을 추듯 바뀌었지만, 학교교육은 불신과 개혁의 대상에서 단 한 번도 자유롭지 못했다.

학종이 대세라며 순순히 받아들이기 전에, 오늘도 컨설팅을 받는 자리에서 질타를 받으며 컴퓨터 자판 앞에서 전전긍긍하기 전에, 당장 학벌구조 혁파에 힘을 모아야 한다. 학종이 문제가 많으니 다시 수능으로 돌아가자는 말도 어이없긴 마찬가지다. 수능의 대안으로 모색된 게 학종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학종이든 수능이든 학벌구조의 종속 변수일 뿐이다.

사족 하나. 지난 몇 년 간 행정적인 업무만 맡았었는데, 올해 다들 기피하는 담임교사를 지망했다. 뭐 특별한 각오나 다짐 같은 건 없었다. 종일 컴퓨터와 마주하다보니 아이들과의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었던 터다. 그래서 그냥 아이들과 1년 동안 교실과 운동장에서 즐겁게 공부하고 뛰어놀고 싶었다. 새로 축구화도 장만했고, 여름방학을 이용해 아이들과 지리산 종주 계획도 미리 세워놓았다.

그런데, 학생부 기록에 대해 질타를 받고 나니, 당장 그 활동들이 학생부에 어떻게 반영될 수 있는지부터 고민하게 된다. 학생부 기록을 위해 학교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학생부에 대한 불신까지 광범위한 마당에, 기록이 부실하다며 교사의 자질까지 의심 받고 있으니 자괴감마저 든다. 차라리 강사의 말마따나 '쓸데없는 내용' 다 지우는 대신, '내 이름을 걸고 열심히 가르쳤고 충실히 배운 학생'이라는 딱 한 마디만 적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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