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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금이 21세기가 맞는지 헷갈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공기처럼 존재하는 편견과 차별을 마주할 때죠. 여성 구직자, 여성 노동자, 여성 청소년 등을 옭아매는 '고조선' 급의 낡은 편견을 진단합니다. [편집자말]
가끔 세상은 남성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기를 쓰고 온라인에 연재하면서부터 그렇게 느꼈다. 세상은 여성에게만큼 남성에게 신경 써주지 않는다. 일례로 혼자 여행을 하거나 모험적인 여행을 하는 여성 여행자의 여행기에는 곧잘 이런 댓글이 붙는다.

"여자 혼자 무모한 여행한 것을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건 미친 짓이다. 본인은 운이 좋아 괜찮았더라도 이걸 보고 다른 여자들이 따라했다가 죽으면 책임질 건가?"

가끔은 정색하고 묻고 싶을 때가 있다
▲ "여자 혼자 여행하는 게 뭐?" 가끔은 정색하고 묻고 싶을 때가 있다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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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여행자의 안전을 걱정하는 남성들의 댓글이다. 사실 이건 아주 순화된 표현이고 실제 댓글은 "미친 X"," 허파에 바람 든 김치X", "X같은 X" 등 욕설의 향연이다. 아무래도 걱정되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는지, 이런 거친 말투를 써서라도 여성의 위험천만한 각오를 말려야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반면 남성들의 경우엔 댓글창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얼마 전 한 인터넷 게시판에서 사륜구동 자동차를 개조해서 아프리카 횡단을 할 계획이라는 남성의 글을 읽었다. 그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댓글이 달려 있었다.

"이재용 부회장보다 더 부러운 분"
"진짜 멋있게 사는 듯. 부러워요"
"돈보다 떠날 수 있는 용기와 과감함, 결단력이 부럽습니다."


그 차이는 대체 어디서 오는가
▲ 누구는 '이재용 부회장'이고, 누구는 '천하의 미친 X'이라니. 그 차이는 대체 어디서 오는가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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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도 아프리카에서 강도를 당할 위험이나, 열악한 도로상황, 야생동물의 위협, 조난 당할 위험성 등을 언급하며 걱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여성여행자에 붙은 댓글처럼 "미친 X"," 허파에 바람 든 김치X", "X같은 X" 등의 욕을 하면서까지 여행을 말리고자 하는 사람도 없었다.

"이런 무모한 여행을 다른 남성 여행자가 따라했다가 사고가 나면 당신이 책임질 거냐"라는 식의 책임을 묻는 이야기도 없었다. 한 명 정도가 조심스럽게 "그런데 아프리카는 좀 위험하지 않을까요?"라고 욕설없이(!) 묻기만 했을 뿐이다. 여성 여행자와는 판이하게 다른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대체 왜 사람들은 남성 여행자에 대해선 이렇게 무관심한 걸까. 남성도 보호받아야 할 소중한 존재들인데 말이다.

'여성' 여행자에게 쏟아지는 악플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16년 1인 여행자 중 여성이 52.3%, 남성이 47.7%로, 혼자 여행하는 여성 여행자의 비율이 좀 더 높게 나타났다. 개인적인 경험을 돌이켜 보더라도, 어느 나라에 가더라도 혼자 여행하는 남성보다 여성을 더 많이 마주쳤다. 재미있는 건 한국인뿐만이 아니었다는 거다. 아마 전세계적으로 여성 1인 여행자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 것 같다. 하지만 우리사회에는 아직도 여성의 여행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가득하다.

여러분 마음을 한번 들여다 보세요.
▲ 왜 여자가 혼자 여행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는지 여러분 마음을 한번 들여다 보세요.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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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든 예처럼 혼자 떠나거나, 모험적인 여행을 하는 남성은 남성들 사이에서 '이재용 부회장보다 부러운 분'이 되고 '용감한 도전자'로 칭송받는다. 하지만 여성들의 경우는 '허영심에 찌든 여자', 혹은 '경솔한 김치X'가 된다. 심지어 여성 여행자의 여행기는 다른 여성들이 따라할 여지를 주는 '부정적인 롤모델'로 인식되기도 한다.

혼자 여행하는 여성의 글에 달리는 악플은 다채롭다. 기자가 직접 겪은 것만 언급해보자면, '미친X', '김치X'는 기본이다. '인터내셔널 걸레'라고 하거나, 댓글로 '퉤, X같은 X'라며 침을 뱉는 사람도 있다. 걱정을 빙자한 혐오성 발언도 많다. 각종 인터넷 괴담을 진짜인 양 댓글로 달며 훈계를 늘어놓는 사람도 있고, '다른 여성이 따라했다가 죽으면 어쩔거냐'라고 따지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소시지는 독일이 맛있지' 등의 뜬금없는 서양 소시지 예찬 댓글이 있기도 하다.

대체 '소시지'를 빼면 대화가 안되나...
▲ 뜬금없이 "소시지는 독일 소시지가 맛있다?" 대체 '소시지'를 빼면 대화가 안되나...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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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구체적으로는 '흑형, 백형, 갈색형과 성관계를 맺고 XX를 낳아서 평생 주홍글씨를 달고 살아라.' 혹은 '이라크 반군에 납치 되서 네 번째 부인이 된 후 아빠 다른 아이 열네 명을 낳으라'는 저주형 댓글도 있고, 한 의사의 '그렇게 여행 다닐 거 다 여행 다니고 한국에 와서 처녀인 척 하면서 의사 남편이나 찾지 말아라'라는 당부형 댓글도 있었다. (이 댓글의 경우는 난 정말 현직 의사가 썼다고 믿고 있다. 설마 본인이 의사도 아닌데 이런 걱정은 하지 않겠지.)

사실 가장 많은 타입은 위에 언급한 독일 소시지 예찬론처럼 '백인 XX 빨러 여행 갔냐?' 혹은 '양놈 XX 찾아 삼만리' 등 외국남성의 성기를 주제로 악플을 달아 성적수치심을 유발시키는 타입이다. 대체 왜들 그렇게 외국남성의 성기에 신경을 쓰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왜 여성여행자의 여행기에는 그렇게 "외국남자 성기"에 관련한 악플이 달리는지...
▲ "알다가도 모르겠구나" 왜 여성여행자의 여행기에는 그렇게 "외국남자 성기"에 관련한 악플이 달리는지...
ⓒ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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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모든 여성의 여행은 허영 때문이며, 허파에 바람이 든 병적 행동으로 치부하는 댓글도 많다. 대체 돈 한푼 보태준 적 없는 타인이 어째서 남의 여행에 잣대를 들이대고 욕설을 퍼붓는지도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허파에 바람이 들었으면 병원엘 가지, 왜 여행을 가겠나.

'여자가 말이야...' 여성의 행동 제약하려드는 악플들

주변 사람들은 "악플은 무시하라"고 조언한다. 어차피 '철없는 초등학생'이나 '은둔형 히키코모리'가 다는 악플일텐데 왜 신경을 쓰냐고. 혹은 '자신은 여행을 못가니 질투가 나서', '서양남성 성기에 자격지심이 많아서' 악플을 단 거라는 해석을 덧붙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악플에 상처를 받거나 트라우마가 생기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악플들은 여행하는 여성에 대해 우리 사회가 지닌 인식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은 수많은 성차별주의와 더불어 여성이 경험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여성의 성장 가능성에 제약을 가한다.

여러분이 욕을 하면서 비난하고 규제할 대상이 아니랍니다.
▲ 혼자 여행을 하든 말든 성인 여성의 자유입니다. 여러분이 욕을 하면서 비난하고 규제할 대상이 아니랍니다.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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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여행게시판에 종종 이런 글이 올라온다.

"여자친구가 혼자 여행을 간다는데 보내야 하나요?"
"여자친구가 워킹홀리데이를 간다는데 어떻게 말려야할지 고민입니다."


대체 성인여성이 해외를 가겠다는데 어째서 남자친구의 허락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질문 자체에는 여성의 해외여행이나 워킹홀리데이 경험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들어있다.

또한 그 밑에 줄줄이 달리는 댓글에도 여성을 폄훼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워킹홀리데이를 하는 여성은 대부분 동거나 성매매를 한다', '여자 혼자 해외여행을 가면 외국남자와 바람이 난다'는 식이다. 그리고는 또 다시 '외국남성 성기'나 '소시지' 이야기가 나오고야 만다. 대체 '소시지'를 빼고는 대화가 안되는 병에 걸린 듯하다.

여성이 세상을 탐험하고자 하는 욕망은 이렇게 온갖 조롱과 비난에 시달리게 되고, 이 댓글들은 고스란히 여성 여행자의 낙인이 된다. 때문에 여행하는 여성을 향한 악플은 단순한 악플이 아니다. 이것은 울타리를 벗어나고자 하는 여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거대한 경고인 것이고, 그 목적은 여성의 활동에 제약을 가하기 위한 것이다.

'빨간 구두'의 역습, 행동에 나선 여행자들

하지만 이런 엄혹한 환경속에서도 길을 떠나는 여성들은 늘어난다. 그리고 최근엔 이런 악플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케이스도 생겨났다. 여성 여행가 조은수씨의 경우가 그렇다. 그녀는 10개월 동안 혼자 아프리카를 여행한 후, <스물 셋, 죽기로 결심하다>라는 책을 냈다.

작년 블로그에 연재하던 그녀의 아프리카 여행기가 유명해졌을 무렵, 그녀의 여행기는 캡쳐되어 남성들이 주로 사용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게시되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흑인남성의 성기'를 주제로 한 온갖 성적인 악플이 달리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악플을 접한 그녀는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지금은 차분히 그 악플들을 하나 하나 모아 고소중이다.

아프리카 케냐의 마사이마을에서 양치기로 살던 시절
▲ "스물셋, 죽기로 결심하다" 조은수 작가 아프리카 케냐의 마사이마을에서 양치기로 살던 시절
ⓒ 조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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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수씨 말에 따르면 '여자 혼자 아프리카를 여행했다'는 이유만으로 '글로벌 XX', 흑인 XX X맛' 등 성적수치심을 유발시키는 댓글을 달고, 그녀에게 욕설을 퍼부었던 그 많은 악플러들은 일단 모두 남자이고, 연령대는 20대부터 50대까지 고루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악플러의 정체는 '철없는 초등학생'이나 '은둔형 히키코모리'가 아니라, 우리 주변의 평범한 '성인 남성'이었던 것이다. 그 후 해당 악플러들에게 선처를 해달라는 요청이 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절대 선처할 의사가 없다고 한다.

"인생은 실전이니까요. 악플을 달면 어떻게 된다는 걸 알아야죠."

그녀는 악플러들에게 '지금껏 손끝으로 가볍게 저질러왔던 범죄의 무게를 인지시키고 이에 합당한 처벌을 받는 선례를 만들겠다'는 각오다. 그녀는 내게도 고소를 권했다.

"언니도 참지 말고 고소해요. 다른 여성 여행자들을 위해서도 좋은 선례를 남겨야죠."

중세의 교황도 빨간 구두를 신었고, 어린 소녀 카렌도 빨간 구두를 신었지만 발목이 잘린건 어린 소녀였다
▲ 빨간구두 중세의 교황도 빨간 구두를 신었고, 어린 소녀 카렌도 빨간 구두를 신었지만 발목이 잘린건 어린 소녀였다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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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의 동화 <빨간 구두>에는 빨간 구두를 신은 카렌의 이야기가 나온다. 검은 구두대신 빨간 구두를 선택한 카렌의 욕망은 나무꾼이 도끼로 그녀의 발을 잘라내면서 끝난다. 중세의 교황도 빨간 구두를 신었고, 어린 소녀 카렌도 빨간 구두를 신었지만 발목이 잘린 건 어린 소녀 쪽이었다. 그 시절 허락받지 않은 여성의 욕망은 이런 잔인한 경고로 끝나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고조선도, 19세기도 아닌 21세기다. 경계를 벗어나 세상을 탐험하는 여성에 대한 조롱과 비난은 여전하지만, 누구도 도끼를 들어 여성의 욕망을 잘라낼 수는 없다. 그리고 부당한 시선과 공격에 무작정 당하고 있지만은 않겠다는 여성 또한 등장하고 있다. 세상은 바뀌어, 도끼는 이쪽에서 들 차례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악플러 여러분께. 저는 혼자 여행을 하고 <당신에게 실크로드>, <남자찾아 산티아고>라는 책을 냈습니다. <당신에게 실크로드>를 연재 당시에는 중앙아시아와 중동을 여자 혼자 여행했다는 이유로 악플에 시달렸고, <남자찾아 산티아고>의 경우에는 제목이 제목인지라 무척 원색적인 '소시지'에 관한 악플에 시달렸습니다. 그 트라우마로 지금도 '소시지'를 잘 먹지 못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단언컨데, 한번 책을 사서 읽어보시면 여러분이 악플을 달 만한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해당도서는 현재 서점에서 절찬 판매중입니다. 조은수 작가의 <스물 셋, 죽기로 결심하다>도 절찬 판매중입니다. 감사합니다.



태그:#악플, #여자혼자여행, #악플연대기, #정효정, #조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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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여행작가. 저서 <당신에게 실크로드>, <남자찾아 산티아고>, 사진집 <다큐멘터리 新 실크로드 Ⅰ,Ⅱ> "달라도 괜찮아요. 서로의 마음만 이해할 수 있다면"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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