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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옥수수 유전학의 선구자 바바라 맥클린톡에 대한 글을 읽으며 그녀의 열정적인 삶에 감탄했던 적이 있다. 그녀는 온갖 차별과 오해를 딛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열정적으로 매달려 살아 '미친 과학자'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여성에게 과학자의 길은 높고 높은 벽이었다. 21세기에도 여성 수학자나 과학자라는 말은 여전히 낯설다. 내가 <과학 하는 여자들>이라는 제목만으로 호기심이 동했던 이유다.

 <과학 하는 여자들> 한국의 여성 과학자 어벤저스 5인
 <과학 하는 여자들> 한국의 여성 과학자 어벤저스 5인
ⓒ 메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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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하는 여자들>(메디치)은 한국의 여성 과학자 5인의 삶과 그들이 속한 연구 영역을 소개한 글이다. 생명과학자 김빛내리, 화학공학자 박문정, 미생물학자 이홍금, 법과학자 정희선, 수학자 최영주가 주인공들이다.

그들의 전문 영역은 모두 다르지만 다섯 모두 공통점이 몇 가지 있다. 열정과 집념, 실패에 좌절하지 않는 끈기와 인내, 끊임없는 도전 의식, 무한한 호기심, 주도적 삶의 선택, 열렬한 독서광이라는 특징이 그것이다.

이 책의 기획의도가 '과학 하는 여자들' 시리즈를 통해서 롤 모델이 되는 여성 과학 기술인을 후배 여성들에게 제시하는데 있다고 한다. 책이 소개한 여성 다섯의 전문 분야와 이력이 모두 독특하고 흥미롭다.

그들은 모두 전문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지만 남성 학자들과 다른 고민을 해결해야만 했다. 다섯 명의 여성 학자들이 고민하는 몇 가지 문제점들에 주목해보자.

첫째는 기초 학문에 대한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순수수학이나 이론 물리학 등 단시일에 성과물을 낼 수 없는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연구 조건과 연구 환경은 열악하기만 하다. 기초 학문은 기초를 닦아 놓는 것과 같다. 눈앞에 드러나는 성과물이 보이지 않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기초 학문에 대한 전폭적인 이해와 지원이 필요하다.

김빛내리 교수의 경우 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왔지만 국내에서 과학자가 정규직으로 자리를 잡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당신이 그렇게 연구를 좋아하는데 박사 후 연구 과정을 밟는게 어때?'라는 남편의 격려와 지지로 미국 하워드휴즈화학연구소에서 2년간 연구원으로 일하며 RNA 중에서 단백질을 만드는 전령RNA(mRNA, messenger RNA)연구에 몰두했다. '세포의 운명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어떻게 기능분화가 일어나는지 해답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녀의 운명을 바꾼 것은 miRNA와의 만남이다. 하등동물에게만 있다고 알려진 miRNA가 사람에게서도 발견되면서 생명과학계에 새로운 길이 열렸다. RNA 알려진 것보다 훨씬 다양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자신의 판단과 일치하는 새로운 증거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이 세운 가설을 바탕으로 miRNA를 통한 유전자 조절 연구를 평생의 과업 삼아 맹렬한 연구를 시작한다.

연구 조건은 열악했다. 대한민국은 기초과학 연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단기간에 연구 결과를 낼 수 없는 연구에는 투자를 하지 않는다. 열악한 연구 환경과 부족한 연구비를 충당하느라 2억의 빚을 지고 위암으로 치료까지 받으면서도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연구자의 힘든 길을 포기하지 않는 끈기로 버텨냈다.

'과학자는 정말 멋지고 복 받은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정신적 만족감이 아주 크다. 자연에 있는 비밀의 열쇠를 찾아내고 새로운 원리를 최초로 발견하는 것은 마치 탐험가가 미지의 길에 첫발을 내딛는 것처럼 기쁨과 흥분을 준다. 더구나 막연한 생각이나 가설이 실험으로 정확하게 입증될 때 얻는 만족감은 형언할 수 없이 크다. 연구에 성공해서 얻는 명예나 부상들은 부차적 문제일 뿐 결코 목적이 될 수 없다. 생명과 관련해 숨겨진 비밀을 엿볼 수 있는 작은 퍼즐 조각을 얻었을 때 느끼는 만족과 기쁨이 연구자가 얻는 진정한 보상이다. - 33~34쪽

둘째는 성차별이다. 실력으로도 순위로도 승진의 첫 순서에 있었지만 두 번이나 남성 동료에게 승진에서 밀리고 후배 남자 연구원에게 커피를 타줘야 한다면 누가 퇴사를 고민하지 않겠는가. 남녀 차별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유리천장은 존재한다. 그 차별의 벽을 어떻게 넘을 것인지 사회적인 차원에서 고민이 필요하다.

법학자 정희선은 1980년 초 미연방수사국(FBI) 와 로스엔젤레스 경찰국(LAPD)를 방문하는 연수 길에 오른 그녀는 소변과 혈액에서 마약 성분을 검출하는 것을 목격하고 마약 검출 실험법을 습득하고 돌아온다. 한국에 돌아와 소변으로 마약을 검출하는 실험을 확립한다. 하지만 그녀는 남자 동료에게 승진에서 두 번이나 밀리며 사표를 고민한다. 그녀의 사표를 막아 준 준 것은 끊임없이 검사를 의뢰하며 밀려들어 온 '소변'이었다.

'첫 번째 승진 탈락 때는 마음이 많이 아팠지만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억지로 참고 넘겼는데, 두 번째 탈락했을 때는 정말 힘들었다. 바로 사표를 내고 국과수를 떠나고 싶었다. 그런데 얄궂게도 그때 내 사표를 막아준 것이 바로 '소변'이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전국적으로 필로폰 남용 여부를 확인해 달라며 매일매일 밀려드는 소변들 때문에 사표를 쓸 시간이 없었다. 눈 만 뜨면 밤새 의뢰된 소변이 쌓여 있어 바로바로 검사하고 결과를 통보해야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신없이 소변과 씨름하며 지내다 보니 승진 탈락의 우울함도 잊을 수 있었다.' - 101쪽

화학공학자 박문정 교수도 대학원에서 여학생들을 노골적으로 반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그녀가 끈기와 집념으로 일에 몰두하지 않았다면 다른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셋째는 육아에 관한 고민이다. 다섯 명의 학자가 하나같이 육아에 대한 고민과 내상이 깊었다. 육아 휴직도 남녀 누구든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적인 편견을 깨트리기 위한 노력은 개인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사회가 육아를 책임져 준다면 여성들은 사회에서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수학자 최영주 교수의 고백은 많은 여성 직장인이 갖는 고민일 것이다. 그녀는 수퍼우먼이길 포기하고 두 아들을 키웠다고 한다.

'아이를 낳으면 연구에 막대한 지장을 줄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현실이 되었다. 미국에서 안일을 잘 도와주던 남편이 한국에 오니 180도 변해버렸다. 큰 아이를 낳은 뒤 시어머니가 포항으로 달려오시지 않았다면 연구자로서 내 삶은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 65쪽

자신만만하고 긍정적이던 소녀 최영주는 사춘기를 겪으며 우울한 학창 시절을 보낸다. 사랑도, 우정도, 부모님의 사랑도, 과학 이론도 변하는데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지 찾고 싶었다. 그때 만난 것이 수학이다. 변하지 않는 것을 향한 열망, 진리를 향한 갈망이 그녀를 수학자로 이끌었다는 것이 경이롭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여성학자의 길은 녹록지 않았다. 그녀는 아이가 아플 때도 출장을 가야 했다. 아이가 위험한 상황에서 입원을 했을 때도 학교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녀의 뼈아픈 고백은 사회가 육아의 공공적 책임을 함께 고민하도록 만든다.

'그날은 도우미 아주머니가 전화를 해서 아이가 열이 많아 하교 후에 방에 누워 있다고 했다. 점심시간에 아이를 데리고 인근 소아과 병원을 찾았다. 그 병원도 점심시간이었디. 근처 큰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아이 숨소리가 이상하다며 엑스레이를 찍자고 했고, 그 결과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나 지금 학교 들어가야 하는데요"였다. 의사가 어이없다는 듯 "아주머니 정신 차리세요. 아이가 위험합니다. 폐 90%가 하얗게 되었어요. 이곳에서 치료가 불가능할 수도 있어요"라고 호통쳤다. 하늘이 노랗게 변했다.' - 67쪽

오십에 극지 연구에 도전한 미생물학자 이홍금 소장도 극지에 가서 떨어져 살아야 할 때 고등학생이던 아들과 가족의 전폭적인 이해가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여성들은 능력 면에서 남성에게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사회에서는 여전히 남성과 여성의 영역을 구분을 지어 차별하고, 어머니와 며느리로서의 역할까지 슈퍼우먼의 삶을 요구한다. 사회의 통념이 깨지고 양육을 비롯한 사회의 공동 책임의 분야가 확대되면 더 많은 여성들이 전문 영역에서 마음껏 기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이홍금 소장은 여성의 장점인 포용력과 부드러움, 소통 등 여성의 장점을 마음껏 발휘해 정부 출연 연구소 중 최하위였던 극지 연구소 연봉을 중간 수준 정도로 올려놓았다. 이 소장은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꿈을 이루려는 열정과 도전 의식이 더 필요하다'며 주변 환경을 탓하지 말고 환경을 자기 자신에게 맞게 바꾸라고 조언한다. 특별히 지금도 세계명작을 찾아 읽는다는 이홍금 소장은 '어렸을 적 다방면의 독서 경험이 다양한 국제회의와 외국과학자들을 만날 때 진가를 발휘했다'고 독서가 지닌 힘을 전해준다.

전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들의 특징은 열정과 끈기다. 박문정 교수의 일화는 그들이 얼마나 열정적이고 끈기 있는지 잘 보여준다. 그녀는 6개월 이상 고분자 합성 되지 않아 극도의 조바심과 스트레스로 연구실에서 숙식하며 실험을 반복했다.

머릿속에 온통 그 문제 뿐이었다. 집에서 돌아가 샤워를 하는데 습관처럼 문제가 떠올랐다. 불현듯 '작은 착오로 고분자 중합의 종결 반응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연구실로 돌아가 물질을 합성했다. '유레카'를 외친 아르키메데스의 발견의 기쁨을 그대로 체험한 것이다. 우연한 발견이라고 하지만 끈질긴 집념과 열정의 산물임을 누가 부인할 수 있으랴.

'과학에서 제일 중요한 단어가 바로 '세렌디피티'(serendipity)이다. 우연한 발견! 아르키메데스의 비중 측정 방법,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가 해낸 원자핵의 존재 발견, 굿이어(Charles Goodyear)의 가황 반응 발견 등은 모두 이러한 우연의 산물이다. 그런 발견을 놓치지 않고, 가설을 세우고 검증해서 세상을 바꾸는 것이 바로 과학자의 사명이다.' - 183쪽

덧붙이는 글 | 과학 하는 여자들/ 김빛내리. 박문정, 이홍금. 정희선, 최영주 지음/ 메디치/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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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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