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작된 도시>에서 권유 역의 배우 지창욱이 1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조작된 도시>에 출연한 지창욱. 영화에서 그는 게임광 권유 역을 맡았다. 상업영화 첫 주연이다. ⓒ 이정민


데뷔 3년 만에 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2009) 주연, <웃어라 동해야>(2010)의 주연…. 혹자는 지창욱을 두고 승승장구라 표현했다. 하지만 과연 지창욱이 꽃길만 걸었다고 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 그는 데뷔 10년 차가 돼서야 상업영화의 첫 주연을 맡았다. 바로 직전까지 준비하던 영화는 제작이 무산됐다.

드라마에서 익숙할지언정 여전히 지창욱은 우리에게 미지의 영역이다. 익숙함 속 낯섦이라 할까. 게임에 빠진 청년 백수의 고군분투를 담은 <조작된 도시>는 스크린을 통해 그의 깊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척도가 될 예정이다. 지난 6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어떤 모험

 영화 <조작된 도시>의 한 장면.

영화 <조작된 도시>의 한 장면. 게임 속에서 그는 리더십을 갖춘 유능한 대장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누군가에 의해 살인누명을 쓰고 이리저리 억울한 일을 당하는 편부모 가정의 힘 없는 백수다. ⓒ CJ엔터테인먼트


이번 작품에서 그가 맡은 권유는 어쩌면 가장 지창욱을 닮았을지도 모른다. 그가 게임광에 대책 없는 성격이라는 게 아니다. 위기에 대처하고,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이 말이다. 주변에서 백수라 무시할지언정, 권유는 게임 세상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위기에 빠진 타인을 외면하지 않는다. 살인사건을 조작하고 돈 없고 힘없는 이들에게 죄를 덮어씌우는 권력자들을 혼자가 아닌 동료들과 함께 대적한다.

"인물이 처한 상황에 집중했다. 만약 나라면 어땠을까, 얼마나 화나고 억울하고, 또 무서울까. 온갖 감정을 투영하려 했다. 다만 권유를 비롯해 함께 뭉친 청년들을 사회의 비주류라고 생각하고 싶진 않다. 사람들에게 소개할 때 그리 말하긴 했지만, 어느 순간 비주류는 대체 뭘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어찌 보면 참 평범한 인물인데 이들을 비주류로 보는 잣대는 아닌 거 같다.

연기하면서 좀 먹먹함이 있었다. 게임에선 그리 리더십 있는 사람이 현실에선 힘이 없다. 그런데 위기의 상황에서 물러서지 않는다. 그 부분에 박수 쳐주고 싶었다. 진짜 저였다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마음으로만 응원하지 않았을까. 근데 권유는 목숨 걸고 (누명을 벗기 위해) 뛰어들었다. 참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지창욱은 <조작된 도시>에 몸과 마음을 던졌다. 이게 혹시 그간 마음에 품고 있던 영화에 대한 갈망 때문은 아닐까. 독립영화 <슬리핑 뷰티>(2007)로 데뷔한 이후 유독 영화와 연이 닿지 않았던 그다. 3년 전까지 강우석 감독의 <두 포졸>을 준비하다 결국 제작이 무산되는 과정도 겪었다. 청춘스타지만 영화로 검증이 되지 않았으니 당연히 이번 작품 캐스팅 과정에서도 순탄치 않았을 터. 지창욱은 "그런 주변의 우려를 잘 알고 있지만 애써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며 말을 이었다.

"첫 주연이니 모험 아니냐는 말도 다 들었다. 근데 그렇기에 더 재밌지 않을까? 모험인 건 맞다. 그래서 더 최선을 다하려 했다. 상업영화인 만큼 흥행이 물론 중요하지만, 설령 실패하더라도 난 이 영화가 부끄럽지 않다. 힘들수록 감독님과 동료 배우들에게 믿음을 주려 했다. 소문 때문에 좌절한다거나 오버하지 않으려 했다.

영화라는 장르에 대한 갈망은 분명 있었지. <두 포졸> 무산으로 아쉽기도 했다. 영화를 굳이 피한 게 아니라 어쨌든 연이 안 됐던 거다. TV 드라마는 시청률 등이 약간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척도인데 영화나 무대 공연은 관객 수라는 가시적인 면이 있잖나. 그에 대한 낯섦도 있고 불안함도 있긴 했다. 여전히 이번 작품도 그렇고 전 배우는 중이다. 다만 드라마든 뮤지컬이든 영화든 연기에 있어서 큰 차이는 없는 거 같다."

 영화 <조작된 도시>에서 권유 역의 배우 지창욱이 1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꽃길과 흙길

분명 지창욱도 인기와 눈에 보이는 결과에 집착할 때가 있었다. 이에 관해 물으니 "연말 시상식에서 상 받을 걸 상상했고, 내 출연료가 얼마 정도 더 높아졌으면 좋겠다는 걸 목표로 삼을 때가 있었다"며 보다 솔직히 그가 고백했다. 그저 앞만 보고 내달렸던 순간이었다. 그래서 누군가는 지창욱에게 '탄탄대로를 걷는 스타'라고 부르기도 했고, 고생 없이 승승장구한 연예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했다. "이런저런 평에 그리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며 "막말로 군대 다녀와서 잘 안 될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겠지만, 굳이 누가 더 힘들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싶진 않다"고 답했다.

잠시 그의 데뷔 직전을 들어보자. 알려진 대로 그는 우등생에 속했다. 꽤 우수한 성적으로 중·고등학교 생활을 하다, 문득 배우라는 업을 품고 방향을 바꾼다. 불과 입시 몇 개월 전 이야기다. 약 4개월 정도 연기 입시를 준비했고, 운 좋게 그는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 들어가게 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 계기가 없었던 거 같다. 내가 왜 그랬을까? (웃음) 중학교에 입학했는데 어느 순간 등수를 매기더라. 선생님이 몇 명을 호명해서 일으켜 세운 뒤 아이들에게 박수를 치게 했다. '난 왜 박수 못 받지?' 이런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나름 공부를 열심히 하려 했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숫자에 연연하는 건 여전했고, 대학 입학이 목표가 되더라. 모의고사를 보면 점수에 맞는 학교와 학과가 쭉 나오잖나. 나도 그냥 '음, 이런 과를 전공해볼까?' 생각하는데 순간 '대학에 가서도 맨날 이런 (등수에 연연하는) 생활을 해야 하나?'하는 의문이 들었다.

스트레스받으며 살 거 같았다. 뭔가 재밌게 할 수 있는 걸 생각했고, 그래서 택한 게 연기였다. 아무것도 몰랐다. 연기가 그렇게 힘든 줄(웃음). 영화든 드라마든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기에 쉽게 생각한 거지. 운 좋게 대학엔 갔지만, 방황을 좀 했다. 얼마나 내가 연기를 못하는지 혼도 많이 났고."

이 정도면 포기할만하다. 준비가 덜 됐다고 스스로 느꼈고, 강한 열정을 지닌 동기들에 비해 자신이 초라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창욱은 포기 대신 버티기로 했다. '대체 왜?'라고 물으니 웃으며 그가 답했다. "엄마랑 많이 싸우면서 택한 길이었는데 포기해버리면 내가 너무 한심할 거 같았다"고.

행복에 대한 질문

지창욱, 리얼 상남자 영화 <조작된 도시>에서 권유 역의 배우 지창욱이 1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상상력이 풍부하다. 친구들과 만남에서 질문을 자주하며 본인과 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여러 상상을 한다. "우리가 상상하는 게 다 현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럴 때마다 좀 무서운 생각이 든다"고 그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 이정민


이제 그는 "연기가 즐겁다"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진로에 대한 중요한 분기점을 지났고, 그는 잘 버텨냈다. 조바심을 갖고, 인기를 좇던 때도 그는 애써 부정하지 않았다. "평생 연기하며 살면 좋겠지만, 또 인생은 아무도 모르지 않나?"라며 기자에게 묻기도 했다. 지창욱은 행복을 고민하고 있었다.

"연예인 친구보단 일반인 친구가 많은데 종종 꿈을 묻는다. '너의 삶은 어때?' 혹은 '요즘 회사는 어때?' 등. 정말 많이 다른 삶이란 걸 느낀다. 회사에 다닌 것도 아닌 나도 그렇고, 친구들도 그렇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좀 행복하게 살자는 쪽으로 나도 방향을 잡았다. 어릴 땐 꿈과 욕심으로 거침없이 달렸다면 사람 지창욱으로서의 삶도 중요하지 않을까. 결국, 난 배우이기 전에 누군가의 아들이고, 친구이고, 남편이 될 것이다. 그래서 요즘에 여유롭게 친구들과 뭐하며 지낼까 생각하는 게 행복하다(웃음). 물론 아무 생각 없이 작품에만 몰두할 때도 행복하다.

입대 전에 한 작품을 더 하고 싶다. 고민 중인데 도전을 위한 도전은 인위적인 거 같고, 내 흐름에 맞게 즐길 수 있는 걸 해 보고 싶다. 군대 자체는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경력 단절은 아닐 거다. 돌아보면 내가 가족과 연휴나 연말을 같이 지낸 기억이 많지 않다. 친구들과 생일 파티 이런 것도 많이 못 해봤다. 여유 없이 살았던 거 같다. 군대를 다녀오면 지금과는 또 다른 게 있지 않을까."

이른 시일 안에 그는 작품을 선택할 것이고, 당당히 입대할 것이다. 억지스럽지 않게 마음을 두드리는 캐릭터가 그에게 입혀지길 기원해본다. "진한 멜로도 좋다"며 그가 눈빛을 밝혔다. 참 다행인 건 지창욱은 우리에게 내보일 게 매우 많다는 사실. 여전히 그는 호기심 갖고 우리가 지켜봐야 할 미지의 영역이다.

지창욱, 리얼 상남자 영화 <조작된 도시>에서 권유 역의 배우 지창욱이 1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보인 모습보다 보일 것이 많다. 행복을 고민하며 즐겁게 연기하는 그의 앞날을 기대해본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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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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