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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중에는 양심적병역거부를 결심한 청년, 고민 중인 청년들도 있다
 이들 중에는 양심적병역거부를 결심한 청년, 고민 중인 청년들도 있다
ⓒ 전쟁없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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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에 눈이 펄펄 내리던 1월의 토요일이었다. 나는 올 겨울 들어서 가장 큰 눈송이를 맞는 거라 기념 사진도 한 장 찍으며, 시청에 모인 사람들 걱정도 하며 예비군 훈련 거부자 행사를 하는 서울 중구 스페이스노아로 걸음을 재촉했다.

행사는 이미 시작되었고 예비군 훈련 거부자들의 친구들이 만든 영상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내가 막 자리를 잡았을 때 기타를 들고 나온 가수 김승신이 노래를 불러 주었다.

"생각대로, 배운 대로 사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네~"

오늘 마련한 자리의 취지를 미리 알려주는 듯한 노래였다. 생각대로, 배운 대로 살기 위해 국가의 의무라는 이름하에 진행되는 복무에 송곳처럼 반대를 외치는 청년들. 김형수, 이상, 조성현. 세 사람이 차례대로 무대에 섰다.

녹생당 상근자로 일하는 김형수는 크리스천이다. 국제구호단체 '개척자들'의 리더 송강호 선교사의 강연을 듣고는 '누구나, 당연히'를 붙이는 '군대' 복무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평택 대추리 사건, 용산 참사를 접하며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전쟁 반대를 하는 것이 전쟁이 일어난 이후에 평화를 외치는 것보다 어쩌면 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모른 척 살 수 없었다. 그렇게 사는 것은 자신이 믿고 배운 크리스천의 길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그래서 제대 후 첫해부터 예비군 훈련을 거부하기로 결심했다.

8년 동안 수십 차례 경찰조사

예비군 훈련 거부자는 8년 동안 수십 차례 경찰조사를 받고, 법원에서 재판을 받는다. 수 백에서 많게는 1천 만 원 벌금을 선고받으며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도 있다. 예비군 제도가 실시된 1968년 후 예비군 훈련 거부로 처벌을 받은 사람은 900명이 넘으며 이들 대부분은 여호와의증인이다.

"행복해?"
"진짜 나로 살고 있는 것 같아…."

두 번째 무대는 본인이 배우로 출연한 연극의 한 장면으로 시작되었다. 이상은 군대를 다녀왔고 국제 인권단체인 앰네스티에서 일을 했었다. 그리고 얼마 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연극에서 배우를 하였다. 오늘 자리도 이상의 초대로 오게 되었다. 제주 강정마을에서 만난 이상과 쭈야(전없세 무기감시팀). 둘의 초대로 연극을 보았고, 그동안 잊고 지냈던 병역 거부자들에 대한 기억이 소환되었다.

나는 대학생 시절 취재를 해야 하는 과목이 있었다. 소설가 이시백 선생님의 추천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처음 만났다. 거부를 하려고 결심한 사람, 거부를 하여 군대 대신 감옥에 가 있는 사람, 감옥을 다녀 온 사람을 만났다. 한동안 그 여운이 남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 속에 점점 잊혀져 있던 청년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가 담긴 연극을 보았을 때 눈물이 많이 났다. 미안해서.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미소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반갑지 않은 편지에 대한 얘기를 할 때 마저도
▲ 벌금 고지서, 경찰 사건처리서, 법원소환장들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미소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반갑지 않은 편지에 대한 얘기를 할 때 마저도
ⓒ 수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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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고 있던 내 안의 무언가를 깨워준 그 앞에 나는 또 눈치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야 했다. 이상은 꿈 이야기를 해주었다. 일본으로 가는 수학여행에서 선생님은 이상에게 '너는 왜 예비군 훈련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상은 웃으며 대답했다.

"선생님, 원래 제가 하기 싫은 건 안 하잖아요."

이상은 꿈에서 깬 뒤 비로소 자신을 향한 희미한 물음에 대해 명료한 대답을 얻을 수 있었다. 여호와의증인(이 종교를 믿는 이들은 군대 대신 감옥을 간다)도 아니고, 평화 활동가라고 내세우지 않는 그가 왜 거부를 하느냐는 주변인들에게 해줄 수 있는 답변은 딱히 없었다.

"이유를 만들려 했던 것 같다. 특별한 계기나 드라마틱한 사건을 기대하는 이들에게 그동안의 나의 대답은 그들을 납득하게 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전쟁은 오늘날 전사들이 누리는 것과 같은 명성과 특권을 병역거부자가 누릴 수 있을 때 끝나게 될 것이다' - 존 F. 케네디
▲ 엽서에 적힌 말 '전쟁은 오늘날 전사들이 누리는 것과 같은 명성과 특권을 병역거부자가 누릴 수 있을 때 끝나게 될 것이다' - 존 F. 케네디
ⓒ 전쟁없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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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 경험 속에서 의식과 무의식이 축적되어 이런 결정을 하게 되지 않았을까 스스로 답을 찾아내려고 하였다. 예비군 훈련을 거부하기까지는 수많은 이유가 있었을 테지만 그 모든 이유를 관통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지 못한 부담감. 그에게는 또 다른 벽이었다. 하지만 그는 좀 편안해 보인다. 앞으로 더 많은 벽이 너를 막을 수 있지 않느냐는 우려에 그는 말해줄 것이다. '괜찮아, 이렇게 사는 게 나야. 이게 진짜 내 모습이야.'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잡은 조성현도 크리스천이자 군대를 다녀왔다. 약간의 고민은 됐지만 카추사에 합격 후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다. 군 생활도 만족스럽게 끝냈다. 그러나 그를 뒤흔든 한 장의 사진. 2008 가자지구, 셀 수 없는 총구가 박힌 건물에는 한 여자아이가 서 있다.

"가자 지구의 소녀 사진은 내 마음에 쿡 박혀왔다. 이 문제가 나와 어떻게 닿아 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평화에 대한 고민은 국방 이슈에 대한 관심을 불렀고, 강정마을에서 평화 활동을 하며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다."

대안학교 교사인 그에게 평화에 대한 고민은 하면 할수록 문제는 단순해졌다. 군대를 가야하는 이유보다 가지 않는 이유가 더 많이 보였다. 이미 군대를 다녀온 그는 한시름 놨지만 예비군 훈련이 남아있었다. 그는 자신의 미국인 친구 캐런이 '왜 군대를 안 가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되물었던 말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했다.

"왜 군대를 안 가냐고 묻지 말고, 왜 군대를 가는지 물어야 하지 않나?"

그는 자신이 왜 예비군훈련을 거부하는지, 평화가 무엇인지 여전히 고민중이라고 하였다
 그는 자신이 왜 예비군훈련을 거부하는지, 평화가 무엇인지 여전히 고민중이라고 하였다
ⓒ 전쟁없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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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런의 아버지는 베트남전을 거부하였고, 대체복무로써 전쟁터에서 불 끄는 일을 하였다.
예비군 훈련 거부를 한 지 6년이 됐지만 '평화'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만약 벌금을 내지 못하는 상황까지 처한다면 훈련 거부를 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한 아이의 아빠. 그는 베트남전에서 한국 군인들에게 가족을 모두 잃은 피해자들을 만났다. 지난날의 일을 용서하고 싶다고 한국에 온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방문에 태극기를 휘날리며 반대하고 조롱하는 한국인들을 보며 그 피해자 베트남 사람은 말했다.

"전쟁도 치열하지만 평화도 참 치열하네요."

그는 예비군 훈련을 거부하면서 유일하게 좋은 점은 '전쟁없는 세상' 등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일이라고 한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서 함께 동참해주길 바란다며 긴 고백을 마쳤다. 이들을 보며 나도 생각해본다.

한국의 한 청년이 저 먼 나라 소녀를 보며 느낀 것처럼
이들의 문제가 나와 어떻게 닿을 수 있을지

다음번에는 오늘처럼 많이 울지 않기를.
덜 미안할 수 있기를

*이 행사를 주최한 전쟁없는세상은 '모든 전쟁은 인간성을 파괴하는 범죄'라는 신념을 공유하고 있는 평화주의, 반군사주의자들의 네트워크로 2003년 구성되어 전쟁에 저항하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에 참가후기로도 올라가 있습니다. 예비군훈련 거부자를 위한 기금 마련 행사는 1월 21일 진행되었습니다.



태그:#전쟁없는세상, #양심적병역거부, #예비군훈련거부, #가자 지구, #베트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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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세계사가 나의 삶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일임을 깨닫고 몸으로 시대를 느끼고, 기억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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