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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전 총장의 불출마

때아닌 예언 타령이다. 지난 1일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자 순식간에 인터넷은 뜨거워졌다. 여기저기서 많은 정치인들이 이미 그의 중도 사퇴를 예상했다며 자신의 안목을 자화자찬하고 나선 것이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예측한 대로 반기문 사퇴. 중도사퇴는 당연한 결론>이라는 제목의 글로 "저에게 족집게라며 돗자리 깔고 동업하자는 분들 많습니다만 이건 예언이 아니라 합리적 예측이었을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언론은 과거 반 전 총장의 중도사퇴를 예측했던 이들의 발언들을 다시금 조명하기도 했다.

 반기문 전 총장 불출마에 대한 이재명 성남시장의 변
 반기문 전 총장 불출마에 대한 이재명 성남시장의 변
ⓒ 이재명 시장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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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나도 자신의 예지력을 뽐내며 그것이 무슨 대단한 능력인 양 강조하는 모습들. 그러나 유권자의 한 명으로서 그런 자화자찬을 보고 있자니 민망하기만 하다. 실제 그의 사퇴는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일반 국민들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나만 하더라도 설날 부모님과 정치 이야기를 하면서 반기문 전 총장은 절대 대선에 나올 수 없을 거라고 확언하지 않았던가.

따라서 반기문 전 총장의 불출마와 관련하여 우리가 주목할 점은 누가 그의 중도 사퇴를 맞추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많은 사람이 그의 불출마를 예측할 수 있었느냐 하는 점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의 중도 사퇴를 예상했다면 바로 그 이유가 사람들이 원하는 대통령의 조건에 맞닿아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을 통해 차기 대통령의 적합성을 그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예상했다는 반 전 총장의 불출마.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느낀 것일까?

목표의 부재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부부가 12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후 공항철도를 이용해 서울역 대합실에 도착해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부부가 12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후 공항철도를 이용해 서울역 대합실에 도착해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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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반기문 전 총장이 대선 레이스에 끝까지 참여할 수 없으리라고 판단한 첫 번째 이유는 그의 불분명한 목표 때문이었다.

반 전 총장은 귀국 이후 불출마 선언 전까지 대통령이 되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을 밝힌 바 없다. 물론 정권교체가 아니라 정치교체를 하겠노라고 일갈했지만, 그 정치교체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만큼이나 공허하다.

정치교체? 도대체 무엇을 교체한다는 거지? 기존의 정치인이 아니라 공무원 출신인 자기가 대통령을 하면 정치교체인가? 세대교체? 그러기에는 그 자신이 나이가 너무 많은데? 아니면 민주당이 아닌 정권교체? 바른정당, 새누리당과 긴밀한 사이를 유지하면서 정권교체를 운운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자. 지금까지 대통령들은 모두 뚜렷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 땅에 민주주의와 남북평화를 뿌리내리고자 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역감정을 없애고자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국민이 고생하든 말든 어쨌든 국가를 수익모델로 삼고자 하였으며, 하물며 박근혜 대통령 역시 아버지에 대한 제사를 지내기 위해 대통령이 되었다.

그런데 반기문 전 총장은 그런 목표가 없었다. 단지 국민들이 자신을 대통령으로서 지지해준다니, 당선 가능성이 높다고 하니 대통령 후보로 나섰을 뿐이다. 그가 이번 대선에서 떨어졌다면 다음 재선을 노리며 정치를 계속할 수 있었을까? 물론 당연히 없었을 것이다. 절박함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이가 어찌 풍찬노숙을 견딜 수 있단 말인가.

결국 많은 사람들이 반기문 전 총장의 출마에 고개를 갸웃거린 건 그가 무엇을 할지 몰라서이다. '보수적 진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거들먹거리며 감히 대통령을 운운하는 그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제2의 박근혜를 보았다. 대통령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소위 바지사장이 되어 그 뒤의 기득권들만 배를 불리는 사회. 우리는 지금 그런 사회를 바꾸고자 하고 있다.

공감능력의 부재
 

 팽목항을 찾아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의 손을 잡은 반기문. 과연 그들의 마음을 얼마나 공감했을까.
 팽목항을 찾아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의 손을 잡은 반기문. 과연 그들의 마음을 얼마나 공감했을까.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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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전 총장의 불출마를 예측할 수 있었던 두 번째 근거는 그의 공감능력의 부재였다. 그는 귀국 이후 많은 현장들을 방문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지만 상대방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환심을 얻지 못했다. 그는 불출마의 변에서 '인격살인에 가까운 음해와 각종 가짜 뉴스'를 언급했지만,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매일 웃음거리로 전락한 것은 그가 그만큼 만났던 사람들과 공감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세월호 팽목항 방문을 보자. 예전 같았으면 사진 한 장으로 보도되고 끝났겠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SNS를 통해 퍼진 그의 팽목항 방문의 실상은 실로 어처구니없다. 미수습자와 생존자도 헷갈리고, 소위 그림을 위해서 코치대로 유족들의 손을 잡는다. 평소 세월호 참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해봤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다.

이런 반 전 총장의 태도는 결국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과 맞닿아 있다. 그는 지금까지 실패를 크게 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 연배가 그렇듯 어렸을 때는 찢어지게 가난했고 성장하면서 개인적인 부침이야 있었겠지만, 공무원이 되고 난 뒤에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오면서는 장삼이사들의 삶에서 멀어져갔다.

게다가 그는 외교공무원 출신이다. 국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와 상관없이 정권의 지시사항에 맞춰 국외에서 임무를 수행해야 했던 신분이다. 알아도 모르는 척, 몰라도 아는 척하며 항상 자기 생각을 숨기고 살아와야 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에 체화되어 항상 자신의 판단을 유보했는지도 모른다.

과연 이런 인물이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을까? 우리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보편적인 삶에 대한 감수성이 결여되어 있고,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할 수 없는 이가 우리의 리더가 될 수 있을까? 현재 우리는 공주님을 대통령으로 모셨던 탓에 끔찍한 대가를 치르고 있지 않은가.

고급공무원으로서 안분지족해 온 반 전 총장의 삶. 그가 청년들에게 일이 없으면 자원봉사라도 어려운 곳에 가라고 하고 기자들을 가리켜 '나쁜 놈들'이라 지칭했던 건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그가 장삼이사의 삶을 모르기 때문이며, 싫은 소리를 한 번도 들어보지 않았던 탓에 자신에게 가해지는 비판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시대정신을 담을 수 있는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1일 오전 서울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불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1일 오전 서울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불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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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반 전 총장의 불출마를 예측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의 뒤떨어진 시대감각 때문이었다. 그는 불출마 직전 촛불집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촛불민심이 변질됐다고 이야기했다. 비록 한 번도 직접 가보지 않았지만 TV 화면으로 볼 때 달라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현 시국에서 촛불이 국민 전체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비록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주말마다 촛불을 들고 광화문을 채우고는 있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혼재되어 있고, 심지어 상반된 의견까지 존재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민들이 촛불을 지지한다는 점이다. 아니, 지지하지는 않더라도 그것이 필요하다고 인지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특검과 헌재의 탄핵 심판이 그 결과이다. 우리는 이를 시대정신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반 전 총장은 이를 무시했다. 얼마 되지 않는 세력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스스로 생각해보지도 않은 말을 뱉었다.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이며, 대통령이란 자리가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책무를 가지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이번 대선의 키워드는 누가 뭐라고 해도 정의다. 현재 많은 국민들이 먹고사는 문제에 앞서 정의가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정의가 바로 서야 먹고사는 것도 나아질 수 있음을 지난 10년간 비싼 수업료를 주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혹자들은 "정의? 대한민국에 아직 그런 달달한 게 남아 있긴 하나?"며 아직까지도 현 시국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만, 비관론에 빠질 필요는 없다. 시대정신이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반 전 총장이 촛불 변질을 운운한 이후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자신이 대통령의 깜냥이 아님을 온 천하에 공개한 것이며, 시대정신을 담을 수 없다는 자기고백이기 때문이다.

이번 반기문 전 유엔총장의 대선 불출마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해준다. 그에게 몰렸던 지지율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본질 대신 간판에 집착하는지 보여주었으며, 반면 그의 몰락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 희망이 싹트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대통령으로 누구를 뽑아야 하냐고? 반 전 총장의 불출마를 보며 결심했다.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고, 장삼이사들과 교감할 수 있으며,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자. 바로 그를 대통령으로 뽑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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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지금은 비록 회사에 몸이 묶여 있지만 언제가는 꼭 공부를 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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