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주인공 이윤혁씨와 그의 팀메이트들이 오르막을 오르는 장면.

영화 속 주인공 이윤혁씨와 그의 팀메이트들이 오르막을 오르는 장면. ⓒ (주)리틀빅픽쳐스


이윤혁. 1984년생. '결체조직작은원형세포암'. 써놓고 읽으면서도 무슨 병인지 감도 안 오는 희소 암. 전 세계에 200명도 채 걸린 사람이 없는 병이라고 한다. 2009년 그는 한국인 최초로 '투르 드 프랑스'에 출전한다.

마지막으로 울어본 게 언제였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바람에 흩날리는 거리의 쓰레기만 봐도 웃던 시절이 있었고 <무한도전>에서 조금만 감동적인 부분이 나와도 눈물을 글썽이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 새부턴가 감정표현의 절대량이 현격히 준 것 같다. 무엇이 날 이렇게 만든 걸까. 전혀 나이를 의식지 않고 살았지만 이런 게 나이를 먹어간다는 방증이라면 '나이 먹기의 괴로움'은 참 무섭다고 사뭇 느껴진다. 그런 감정이 메말라버린 난 어느 토요일 심야에 이윤혁씨를 만나게 된다.

불쌍하지 않다, 그는 그저 멋있는 사람이었다

 영화는 다큐멘터리 영화이자 동시에 매우 좋은 로드무비다. 프랑스의 절경을 볼 수 있으니 눈요기로도 훌륭한 영화다.

영화는 다큐멘터리 영화이자 동시에 매우 좋은 로드무비다. 프랑스의 절경을 볼 수 있으니 눈요기로도 훌륭한 영화다. ⓒ (주)리틀빅픽쳐스


군대 휴가를 나왔다가 우연히 암을 발견한 윤혁씨는 '결체조직작은원형세포암'이란 희소 암을 이겨내기 위해 무려 25번의 항암 치료를 받았다. 윤혁씨는 어려서부터 못 하는 운동이 없었고 또래들이 학원에 다닐 때 국토대장정을 다녔다. 대학 시절엔 보디빌딩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다가온 희소 암이란 시련은 본인과 가족에게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을테다. 결국 윤혁씨는 26차 항암 치료를 받지 않기로 한다. 3개월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그는 돌연 프랑스로 갈 계획을 세운다. 고환암을 극복한 사이클 제왕 랜스 암스트롱의 자서전을 읽고서 병원에서 죽어가지 않겠다는 용단을 내린 것이다. 자신의 영웅인 랜스 암스트롱처럼 되기 위해 용기 있는, 아니 무모한 한 한국 청년은 '투르 드 프랑스'에 출전한다.

'투르 드 프랑스'는 쉽게 자전거 월드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전 세계 모든 라이더의 꿈의 대회다. 이 영화는 '투르 드 프랑스'의 풀코스 3500km를 한국인 최초로 완주한 사람의 이야기다. 실화니깐 다큐멘터리 영화다. 그리고 그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사람이다. 실화라곤 너무도 영화 같은 설정 아닌가. 영화 같은 이 실화를 보며 정말 오랜만에 눈물을 흘렸다. 사회화된 인간이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데는 익숙해도 타자의 불행에 공감하긴 상대적으로 힘든 게 그 속성이다. 심지어 나는 타자의 욕망도 욕망할 줄 모르는 사람인데도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이 나더라. 한 희소 암 환자가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게 너무 불쌍해서? 아니다. 이윤혁이라는 스물여섯 청년이 너무 멋있어서.

부족한 필력과 설명으로 인해 다들 이 작품을 눈물을 쥐어짜 내는 다큐멘터리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다행히 이 영화의 분위기는 시종 밝다. 우선 주인공 윤혁씨의 성격이 밝고 긍정적이다. 윤혁씨와 함께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도 보고 있자면 세상이 그저 외로운 곳만은 아니라는 걸 느낀다. 심지어 이 영화는 '투르 드 프랑스'의 전 코스를 앵글에 담아냈다. 황홀한 모나코 해변부터 시작해 수채화 같은 피레네 산맥을 넘고 알프스 산맥에서 보는 쏟아지는 별들 그리고 대회의 종점인 파리 개선문을 향해 질주하는 마지막 스퍼트. 이 영화는 한 인간의 감동 스토리임과 동시에 매우 훌륭한 로드무비다.

쥐어짜지 않는 눈물, 그래서 더 슬프다

프로 선수들은 보통 20여 일 만에 모든 코스를 완주하지만, 환자이자 아마추어인 윤혁씨는 49일에 걸쳐 대회를 매조지게 된다. 오히려 시간이 오래 걸렸기에 영화의 미장센은 더 훌륭해졌다. 스타와 메이저 배급사가 끌고 가는 영화들이 흥행수익에서 1, 2위를 달리고 있고 곧 있으면 아카데미 시상식 철이라 할리우드의 수많은 양질의 작품들이 개봉한다. 이미 <컨택트>와 <라이언>은 개봉했다. 과잉공급이 된 2월 흥행수익에서 많은 사람이 이 작품을 놓치게 될까 봐 이 글을 쓴다. 당신이 더 가치 있는 2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진주와도 같은 이 작품을 손에 넣길 바란다.

2010년 결국 윤혁씨는 세상을 떠났다. 드라마 같은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나이 스물여섯. 이제는 윤혁씨가 나보다 동생이 되었다. 2010년 윤혁씨가 세상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이클 황제 랜스 암스트롱은 도핑 테스트에서 양성반응을 보이게 됐다. 그가 이룬 모든 업적은 결국 약물의 힘에 의지해서 이뤄졌다는 게 밝혀졌다. 사이클계 최대의 스캔들이었다. 그렇게 윤혁씨의 영웅은 추락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윤혁씨가 자신의 영웅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지 않고 떠나서 한편으론 얼마나 다행이냐는.

모든 인간이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다 하지만 기약 없는 마지막이기에 우리는 모두 인지하지 못하고 또 오늘을 살아간다. 그렇게 투덜대며 일요일 밤엔 월요일 아침이 오지 않길 바라며 마지못해 잠자리에 든다. 결국, 아침은 밝았고 난 월요일 아침부터 자판을 두드린다. '10분만 더'를 외치며 미루던 오늘 하루의 시작이 윤혁 씨에겐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에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된다. 위대했던 젊은이 이윤혁 씨. 당신의 이름을 잊지 않겠습니다.

 청년 이윤혁에 대한 인간적인 존경심이 드는 다큐멘터리 영화.

청년 이윤혁에 대한 인간적인 존경심이 드는 다큐멘터리 영화. ⓒ (주)리틀빅픽쳐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언종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eon_etc)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영화리뷰 사이클 뚜르 드 프랑스 이윤혁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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