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부터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야구는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부터 프로 선수의 출전을 허용했다. 프로 선수들이 당당하게 병역을 면제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셈이다. 이에 한국에서는 '코리안특급' 박찬호를 비롯해 '나이스가이' 서재응, '어린 왕자' 김원형, '뱀직구' 임창용, '리틀쿠바' 박재홍, '적토마' 이병규, '두목곰' 김동주 등 국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스타 선수들이 대거 참가했다.

반면에 숙명의 라이벌 일본이 프로 선수를 출전시키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방콕아시안게임 야구종목은 한국의 독무대가 됐다. 심지어 나무배트로 익숙해진 프로 선수들에게 알루미늄 배트까지 쥐어 줬으니 다른 나라 선수들이 한국 선수들을 제어하기는 불가능했다. 한국은 일본과의 결승전마저 13-1이라는 일방적인 콜드게임으로 승리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주역은 대부분 프로 선수들이었지만 3명의 아마추어 선수가 주전으로 활약하며 금메달에 기여했다. 현대 피닉스의 1루수 강혁과 연세대의 내야수 신명철, 그리고 동국대의 외야수 박한이였다. 그 중에서 강혁과 신명철은 이미 현역 생활을 마감했지만 박한이는 삼성 라이온즈에서 데뷔해 올해로 프로 17번째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2017년 박한이의 목표는 '신이라 불리던 사나이' 양준혁의 아성 한 가지를 넘는 것이다.

 박한이는 프로 데뷔 후 한 번도 100안타 이하 시즌을 보낸 적이 없다.

박한이는 프로 데뷔 후 한 번도 100안타 이하 시즌을 보낸 적이 없다. ⓒ 삼성 라이온즈



프로 입단 후 16년 동안 우승 7회, 가을야구 14회

부산고 졸업반이던 199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6라운드(전체44순위)로 삼성에 지명된 박한이는 동국대로 진학해 기량을 키웠다. 그리고 대학 2학년 때 방콕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선발돼 주전 좌익수로 활약, 타율 .435 2홈런 3타점 7득점의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병역 혜택까지 받은 대학 최고의 외야수가 2001년 프로 입단 시 3억원의 계약금을 받은 것은 크게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박한이는 루키 시즌부터 삼성의 개막전 1번타자 및 중견수로 낙점 받아 그 해 타율 .279 117안타 13홈런 61타점으로 신인으로는 굉장히 좋은 성적을 올렸다. 하지만 타율 .335에 20홈런을 기록한 김태균(한화 이글스)에 밀려 신인왕 수상은 실패했다. 2002년 생애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박한이는 2003년 타율 .322 170안타 12홈런 59타점으로 최다안타왕에 오르며 생애 첫 개인 타이틀을 차지했다.

2004년과 2006년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승승장구하던 박한이는 2007년 타율 .267에 머물며 슬럼프에 빠졌다. 하지만 2008년부터 보란 듯이 3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2009 시즌이 끝나고 첫 번째 FA자격을 획득한 박한이는 2년 10억 원이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조건에 계약했다. 당시 박한이는 꾸준함을 인정받으면서도 거액을 투자하고 영입하기엔 부족하다는 이미지가 따라 다녔다.

박한이는 FA계약 후에도 4년 연속 110경기 이상 출전하며 삼성의 통합3연패에 큰 기여를 했다. 2013년에는 두산 베어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 1홈런 6타점 6득점 2도루를 기록하며 시리즈MVP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한이는 2013 시즌이 끝나고 4년 28억 원에 두 번째 FA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같은 날 계약을 발표한 투수 장원삼(4년 60억)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계약 규모였다.

물론 박한이는 계약의 아쉬움을 경기장에서 드러내는 스타일은 아니다. 박한이는 2014년 125경기에 출전해 타율 .331 9홈런 80타점을 기록하며 프로 데뷔 후 가장 높은 타율과 많은 타점을 기록하며 실질적인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냈다. 박한이는 옆구리와 갈비뼈 부상에 시달린 2015년 데뷔 후 처음으로 100경기 이상 출전이 좌절됐지만 3할 타율과 110안타를 기록하며 15년 연속 100안타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수술 받은 시즌에도 100안타 행진은 멈추지 않았다

박한이는 프로 입단 당시부터 이승엽, 양준혁 같은 슈퍼스타들 사이에서 야구를 했다. 팀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중고참이 됐을 땐 최형우(KIA 타이거즈)나 박석민(NC 다이노스) 같은 선수들이 등장했다. 그 때문에 박한이에게는 언제나 '소리 없는 강자', '빛나는 조연' 같은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하지만 그 꾸준함도 15년 넘게 이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2001년 프로 입단 이후 15년 연속 한 시즌 100안타 이상을 기록한 박한이는 양준혁이 보유한 16년 연속 100안타 기록에 바짝 다가갔다. 하지만 2016 시즌 초반부터 무릎 연골 손상으로 1군에서 이탈한 박한이는 곧바로 수술대에 오르면서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안타를 칠 기회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5월 중순에 복귀한 박한이는 빠르게 안타페이스를 끌어 올렸다. 5월까지 단 18안타에 그쳤던 박한이는 8월에 20안타, 9월에 27안타를 몰아치더니 10월4일 LG트윈스전에서 봉중근을 상대로 좌중간 안타를 추가하면서 16년 연속 100안타 기록을 달성했다. 이에 앞서 9월 8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는 조쉬 린드블럼을 상대로 통산 2000안타를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 16년 간 묵묵히 걸어온 끝에 드디어 양준혁이라는 전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이제 박한이의 다음 목표는 KBO리그에서 누구도 넘보지 못했던 17년 연속 100안타 기록이다. 작년 시즌 막판엔 류중일 감독의 배려로 지명타자 혹은 상위 타순에 배치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김한수 신임 감독에게는 박한이의 기록을 배려해 줄 여유가 없다. 결국 박한이가 후배들과의 경쟁에서 이겨내 주전 자리를 차지해야만 대기록 달성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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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삼성 라이온즈 박한이 100안타 양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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