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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당' 하면 이승만·이기붕·부패 등이 자동으로 연상된다. 자유당이 올바르지 못한 정당이었다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새누리당이나 바른정당도 자유당을 옹호하지는 않을 것이다.

1963년부터는 대한민국에서 자유당을 옹호하는 게 헌법적으로 불가능해졌다. 1962년 12월 확정되고 이듬해 12월 발효된 제5차 개정 헌법의 서문(전문)에 '4·19 의거의 이념에 입각해서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한다'는 정신이 명시됐기 때문이다. 자유당 정권을 붕괴시킨 4·19 혁명 이념이 헌법 서문에 들어간 결과, 그 어떤 세력도 자유당을 두둔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정도로 자유당은 올바르지 못한 세력으로 대한민국에서 낙인찍혔다.

그런데 새누리당과 바른정당 역시, 따지고 보면 자유당보다 나을 게 없다. 어떻게 보면, 자유당보다 훨씬 올바르지 못한 정당일 수도 있다. 지난 연말 이후의 행보를 보면, 이들이 4·19 직후의 자유당보다 훨씬 더 양심이 없다는 느낌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자유당도 차마 생각지 못한 것을, 이들은 생각하는 차원을 넘어 행동에까지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당은 왜 4.19 이후 대선 후보 안 냈나

이승만 전 대통령.
 이승만 전 대통령.
ⓒ 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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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혁명의 결과, 대한민국 정부체제는 의원내각제로 바뀌었다. 이렇게 된 것은 일차적으로는 민주당 내부의 구파가 내각제를 선호했기 때문이다. 1955년 반(反)이승만 세력이 대동단결해 민주당을 세울 당시, 기존의 한국민주당과 민주국민당은 구파로 분류되고 자유당 탈당파와 흥사단 출신들은 신파로 분류됐다. 독재자 이승만과의 투쟁 경험이 상대적으로 더 길었던 민주당 구파는 4·19 전부터 내각제를 선호했고 이것이 4월 혁명의 결과로 개정 헌법에 반영되었다.

그런데 4·19 혁명으로 이승만이 하야한 날은 4월 26일이고 이에 따라 제3차 헌법 개정이 이루어진 날은 6월 15일이다. 두 달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대통령제에서 내각제로 헌법 개정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내각제 개헌이 이렇게 쉽게 이루어진 것은 꼭 민주당 구파 때문만은 아니었다. 4·19 폭풍을 맞고 휘청거린 자유당이 내각제를 지지했기에 가능했다.

자유당이 그렇게 한 것은, 이승만·이기붕이 사라진 뒤라 마땅한 대통령 후보를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가장 컸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4·19라는 국민적 단죄를 받은 상태에서 감히 대선 후보를 낼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자유당도 4·19 이후에 법적 처벌을 피하고자 미꾸라지처럼 이리저리 모색을 했지만, 국민들 앞에 감히 대통령 후보를 내놓는 뻔뻔함은 보이지 못했다. 이승만 같은 실패작 대통령을 내놓아 국정 농단을 초래한 세력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은 보여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은 지금 이 와중에도 대통령 선거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친박 홍문종 의원이 2월 2일 JTBC '뉴스룸'과의 인터뷰에서 "황교안 권한대행을 좋은 후보로 생각한다"고 언급한 데서도 나타나듯이, 새누리당 역시 금년 대선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바른정당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당에서는 이미 유승민 의원과 남경필 경기지사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새누리당은 지금도 박근혜 대통령을 모시고 있다. 바른정당 역시 1월 창당 이전만 해도 새누리당과 함께 박 대통령을 모셨다. 그들이 대통령으로 모신 박근혜가 최순실과 공조해서 벌인 죄악은 이승만·이기붕의 죄악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들의 죄악은 이승만 정권의 부정부패나 부정선거에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 국정을 농단하고 금전을 끌어 모으는 면에서, 자유당 정권보다 결코 부족함이 없는 세력이다.

박 정권이 그런 죄악을 저지른 데는 새누리당뿐 아니라 바른정당도 공동 책임이 있다. 최순실이 특검 건물에 들어가면서 소리 높여 부인한 '공동 책임'은 박근혜·최순실 관계뿐 아니라 박근혜·최순실·새누리당·바른정당 관계 안에도 있다.

박근혜를 비판하며 새누리당을 나온 유승민도 다를 바 없다. 그 역시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한때 대통령으로 모셨다. 그렇기 때문에 유승민 같은 바른정당 사람들의 대선 출마 역시 새누리당 사람들의 대선 출마와 오십보백보의 차이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은 물론이고 바른정당도 대선 준비에 신경을 쓰고 있다. 이것은 4·19 직후의 자유당만도 못한 일이다. 자유당 못지않은 죄악에 동참해놓고도 또다시 대한민국을 지배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자신들이 양심과는 거리가 먼 집단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탄핵 정국 속에서 그들이 국민을 상대로 양심이 아니라 앙심을 품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헌정동지회가 5대 총선에서 1석밖에 못 얻은 이유

4.19 혁명 당시 모습.
 4.19 혁명 당시 모습.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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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의 자유당은 대선에 대한 미련을 접고 민주당의 개헌 의견에 동조함으로써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하지만, 당시의 우리 국민들은 그것에 대해서마저도 등을 돌렸다. 4·19 정국 속에서 치러진 제5대 국회의원 총선거 결과가 그것을 보여준다.

촛불 정국에서 비박은 새누리당을 나와 바른정당을 결성했다. 현재 바른정당은 32석의 의석을 보유하고 있다. 유사한 일이 4·19 직후에도 있었다. 자유당 국회의원 일부가 친정을 버리고 헌정동지회를 결성한 것이다. 1960년 6월 18일자 <동아일보>에 따르면 결성 당시 헌정동지회에는 42명의 의원이 있었다.

자유당은 대선에 대한 욕심을 버리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고, 헌정동지회는 그것에 더해 자유당과의 인연을 끊는 모습까지 보여주려 했다. 하지만, 이들은 5대 총선에서 국민들의 냉대를 받았다.

상원인 참의원 선거에서 자유당은 전체 58석 중에서 4석밖에 얻지 못했다. 헌정동지회는 한 석도 얻지 못했다. 하원인 민의원 선거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체 233석의 민의원 의석 중에서 자유당은 2석, 헌정동지회는 1석밖에 차지하지 못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대 독재집단을 이뤘던 자유당과 헌정동지회가 이렇게 초라하게 몰락했던 것이다.

"대중은 기억력이 약하기 때문에 세월이 지나면 곧 잊어버린다"고 말하는 정치인들이 많지만, 4·19 혁명으로 단련된 우리 국민들은 자유당과 헌정동지회가 최소한의 양심을 보여주려고 애쓰는데도 이들을 외면하고 5대 총선에서 다시 한 번 그들을 단죄했다. 4·19나 촛불 같은 중요한 사건 때는 대중의 정치적 기억력이 급속히 강화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1960년의 자유당과 헌정동지회는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보여주려 했지만, 결국 국민의 외면을 받았다. 그런데 2017년의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은 그나마도 하지 않고 있다. 자신들이 최소한의 양심은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은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하고 박근혜 탄핵을 마무리하는 일에 2017년 상반기를 다 바쳐도 시원찮다. 이런 판국에 그들은 다음 정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에만 함몰되어 있다. 그들은 촛불 민심에 귀 기울이는 게 아니라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다. 마치 박근혜와 무관한 사람들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이 박근혜·최순실 사태로부터 보고 느낀 게 별로 없음을 뜻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박근혜와 거리를 두거나 박근혜를 비판하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잿밥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그들을 양심 있는 집단이라고 할 수 있을까. 국민의 신뢰와 신임을 받을 만한 집단이라고 할 수 있을까.


태그:#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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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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