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장수 프로그램 <걸어서 세계속으로> 오프닝과 시그널 음악은 이 프로그램을 챙겨보지 않는 사람이라도 굉장히 익숙하다.

토요일 아침을 깨우는 KBS 장수 프로그램 <걸어서 세계속으로> 오프닝과 시그널 음악이 귓가에 울린다. ⓒ KBS


"저는 여성 장애인입니다. 그동안 <걸어서 세계속으로> 정말 잘 보고 있습니다. 장애인이라 가고 싶은 외국 여행에 제약이 있기 때문에 안방에서 보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볼거리와 사람들의 이야기 등이 많이 부러웠습니다. (중략) 세계 곳곳을 여행한다는 것 자체가 용기가 필요하고 장애가 있어도 많은 분들이 시도하고 있는 세상에서 저 역시 언젠가는 용기를 내보려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걸어서 세계속으로>가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정말 저 곳은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가지게 되는 프로그램인 것 같습니다." - 시청자 백연옥씨가 <걸어서 세계속으로> 게시판에 남긴 소감의 일부분

직접 발을 디디지 않으면 그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것이 여행이라고들 한다. 생전 처음 가보는 낯선 곳에서 어떤 돌발적인 일이 생길지, 어떤 새로운 것을 보게 될지, 누구를 만날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혹은 잠시 잊고 있던 나를 다시 만나는 일. 물론 그런 거창한 다짐 없이 지친 일상을 잠시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는 쉼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 서로 다른 이유로 사람들은 마음 속에 여행을 품고 있다.

이렇듯 많은 이들에게 여행은 꿈이자 언젠가 실현하기를 희망하는 '목표'다. 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럴 때 <걸어서 세계속으로>가 있다.

같이 떠나요! '걸어서 세계속으로' KBS 1TV에서 매주 토요일 오전 9시 40분에 방송 중인 <걸어서 세계속으로>의 김가람 PD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신관 사무실에서 손가락으로 세계지도를 가리키며 미소짓고 있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는 KBS 1TV에서 매주 토요일 오전 9시 40분에 방영 중인 시사교양 프로그램으로 2005년 11월 5일 '영국 맨체스터' 편으로 방송이 시작됐다.

▲ 같이 떠나요! '걸어서 세계속으로' KBS 1TV에서 매주 토요일 오전 9시 40분에 방송 중인 <걸어서 세계속으로>의 김가람 PD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신관 사무실에서 손가락으로 세계지도를 가리키며 미소짓고 있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는 KBS 1TV에서 매주 토요일 오전 9시 40분에 방영 중인 시사교양 프로그램으로 2005년 11월 5일 '영국 맨체스터' 편으로 방송이 시작됐다. ⓒ 이정민


KBS의 여행 프로그램 <걸어서 세계속으로>는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가장 알맞은 '대리만족'이 된다. 피디 한 명이 가방을 메고 훌쩍 떠나 작은 카메라에 여행지를 담아온다. 느긋하게 '걸어서' 다니기에 화면은 느리고 여행지의 구석구석을 훑는다.

피디가 화면에 많이 등장하는 일도 없다. 카메라는 대체로 1인칭 시점에서 진행되고 여행지를 설명하는 내레이션도 주로 '나'라는 주어로 시작한다. 이러니 마치 카메라를 들고 내가 촬영을 하는 것 같은 착각이 자주 든다. 그래서 <걸어서 세계속으로>는 상대적으로 템포가 빠르고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하는 다른 여행 프로그램에 비해 '1인 여행자'와 가장 닮았다.

11년이 쌓이고 쌓여서

'걸세'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는 2005년 처음 방송을 시작한 이래 총 143개국 1339개 도시(2월 6일 기준)를 걸어서 다녔다.

정말 걸어서 다니느냐고? 다른 여행자와 똑같다. '여행 피디'라고 해서 특별한 것도 없다. <걸세>의 피디들도 다른 여행자들처럼 최저가 항공권을 검색해서 여행을 떠난다. 지난 1월 21일 방송된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편을 만든 김가람 피디는 103만원에 남미까지 가는 비행기표를 끊었다고 한다. 제작비는 <걸세>가 처음 시작하던 11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았단다.

물론 물가에 맞춘 제작비의 현실화도 필요하지만 <걸세> 김서호 CP는 "제작비를 많이 사용하지 않는 것도 <걸세>의 중요한 콘셉트일 수 있다"고 말한다. '걸어서' 혹은 불편을 감수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진짜 여행자들'처럼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힘들여 배낭여행을 하는 여행자들만 만날 수 있는 풍경은 그 덕에 덤으로 얻어진다.

지역은 주로 "피디가 가고 싶었던 나라 혹은 지역"(김서호 CP)을 선택한다. 다양성을 위해 이전 주에 유럽에 다녀왔다면 그 다음 주에 가는 피디는 유럽을 피하는 정도로만 제한을 두는 편이다. 다만 한 가지 원칙이 있다면 "치안이 좋지 않은 나라를 방송에서 소개하면 안 된다"(김가람 피디)는 것이다. 또 김서호 CP는 "일부러 못 가본 나라를 무리해서 가는 일은 없을 거"라고도 한다. 무엇보다 여행자의 안전이 우선이다. 대체로 1명이서 카메라를 들고 여행을 떠나니 피디 개인의 안전도 중요하다. 하지만 <걸세>에서 소개한 여행지가 안전할 거라고 생각해 향한 시청자의 안전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래서 아예 위험한 여행지는 택하지 않는다고 한다.

 KBS 1TV에서 매주 토요일 오전 9시 40분에 방송 중인 <걸어서 세계속으로>의 김가람 PD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신관 사무실에서 '아르헨티나 편-바람이 품은 아름다움'의 편집작업을 하고 있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는 KBS 1TV에서 매주 토요일 오전 9시 40분에 방영 중인 시사교양 프로그램으로 2005년 11월 5일 '영국 맨체스터' 편으로 방송이 시작됐다.

KBS 1TV에서 매주 토요일 오전 9시 40분에 방송 중인 <걸어서 세계속으로>의 김가람 PD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신관 사무실에서 '아르헨티나 편-바람이 품은 아름다움'의 편집작업을 하고 있다. ⓒ 이정민


이 정도의 원칙들만 제외한다면 남은 것은 모두 피디에게 달려있다. 비행기 표를 끊고 그 나라에 어떤 특색이 있는지 찾아보는 등 준비 기간은 대략 2주, 비행기를 타고 가 촬영을 하는 데에는 2주, 돌아와 편집을 하고 원고를 쓰는데 2주, 방송을 내보내고 잠깐 쉬면서 다시 다음 여행지를 정해야 한다. 이렇게 다시 다음 방송을 위한 7주가 반복된다. <걸세> 피디를 하는 동안 이 싸이클은 계속 반복된다.

빡빡한 일정이지만 <걸세>는 KBS 교양국 피디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프로그램으로 통한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맡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농담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보통 한 명의 피디가 1년 정도 <걸세>를 제작하면 다른 프로그램으로 옮기게 된다. 다른 피디들에게도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끝없이 변주하는 <걸세>

<걸세> 본방송은 토요일 오전 9시 40분. 시청률은 8% 정도로 고정 시청층도 있고 안정적이나 보다 많은 시청자가 TV를 보도록 만들기에는 다소 이른 시간대다. 그래서일까? <걸세> 제작진들은 자꾸 TV 밖으로 나와 "우리 방송 어떠냐"고 말을 거는 도전을 시작했다.

지난 1월, 홍대에서 처음으로 가진 <걸세> 오프라인 모임이 좋은 예다.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에 다녀온 김가람 피디가 (예비) 여행자들을 불러들였다. 아르헨티나 여행을 준비하고 있거나, 이미 그 지역을 다녀와 좋은 정보를 가진 사람들, 막연하게 아르헨티나에 환상을 가진 사람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아르헨티나 여행 정보를 공유하고 <걸세> 영상에 피디의 생생한 설명을 곁들여 아르헨티나를 '함께 여행했다.' 단순히 방송 한 회로 끝나는 것이 아닌 피디의 경험을 시청자들에게 전한다.

시청자와 함께 하는 <걸세>의 모험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1년 <걸세>는 피디와 시청자가 '함께 떠나는 여행'을 기획하기도 했다. 여러 가지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여행을 떠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응모를 해 <걸세>의 피디들처럼 여행을 떠났고 이를 <걸세>는 영상으로 담아 방송으로 내보냈다. 약 5천 여건의 사연을 담은 편지가 몰려들었다.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는 11년짜리 방송분을 3분짜리 유튜브 동영상으로 쪼개 손쉽게 볼 수 있도록 재가공했다. 영상은 KBS <걸세> 홈페이지와 여행 플랫폼 트래벌룬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는 11년짜리 방송분을 3분짜리 유튜브 동영상으로 쪼개 손쉽게 볼 수 있도록 재가공했다. 영상은 KBS <걸세> 홈페이지와 여행 플랫폼 트래벌룬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 트래벌룬 홈페이지


시청자들과 만남을 가지는 한편, <걸세>의 피디들은 '유통'의 측면에서 이 프로그램을 좀 더 많은 시청자에게 알릴 수는 없을까, 보다 나이가 어린 시청자들에게 소구할 수는 없을까를 생각했다. 그 생각 아래 <걸세>가 행한 손꼽을 만한 시도가 있다. 바로 지난 2015년 전면 개편한 KBS <걸세> 홈페이지다.

<걸세> 11년치 방송분을 3분짜리 동영상으로 제작해 세계지도 위에 뿌렸다. 지난 11년 동안 <걸세>가 걸어다닌 지역이 한 눈에 표시되는 지도가 완성됐다. <걸세>의 홈페이지는 현재 KBS 내의 프로그램 홈페이지들 중에 가장 높은 방문자 수를 자랑한다고 김서호 CP는 전한다. 유튜브 조회수도 꾸준히 늘고 있다. 영상이 짧으니 부담없다. 이제 TV가 아니어도 시청자들은 모바일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걸세>를 볼 수 있게 됐다. 그것이 3분이든 한 시간이든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우리는 모두 <걸세>를 보고 있다.

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영상을 담는 그릇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달라질 수 있지만 피디 한 사람이 "카메라를 들고 천천히 다니며 그 지역의 생활 모습을 담는 지금의 <걸세>의 방식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김서호 CP는 말한다. 각종 여행 프로그램마다 없어서는 안 될 '드론'도 <걸세>에서는 논란거리다. '드론을 사용하는 게 무슨 <걸어서 세계속으로>냐'는 시청자들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천천히 느리게 걸어다니는 <걸세>의 본질을 사랑하는 시청자들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트렌드에 따라 여러 여행 프로그램이 피고 지고 한다. 우리는 크게 기본적인 건 바꾸지 않으려 한다. 언제나 초심처럼 발로 뛰면서, 직접 골목골목을 누비면서 영상을 담고 사람을 만나자는 콘셉트에 충실하자는 생각이 있다." (김서호 CP)

<걸세>는 앞으로 나라나 도시를 추가적으로 늘려나가기 보다 사람들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 계획이라고 한다. 예컨대 뉴욕 전체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뉴욕의 공원'과 같은 테마를 정해 영상을 찍어보는 것. 그렇다면 피디 개인의 색깔이나 취향이 좀 더 드러나지 않을까. 참 <걸세>다운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걸세>는 계속될 것이다. <걸세>가 '걷고 또 걸어' 지구별을 여행하는 74억 지구인을 만날 때까지 계속되기를 바란다.

 KBS 1TV에서 매주 토요일 오전 9시 40분에 방송 중인 <걸어서 세계속으로>의 김가람 PD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신관 사무실에서 '아르헨티나 편-바람이 품은 아름다움'의 편집작업을 하고 있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는 KBS 1TV에서 매주 토요일 오전 9시 40분에 방영 중인 시사교양 프로그램으로 2005년 11월 5일 '영국 맨체스터' 편으로 방송이 시작됐다.

앞으로도 <걸세>는 '걷고 또 걸어서' 지구인들을 만날 것이다. ⓒ 이정민


염정아는 왜 <걸세> 내레이터를 자청했나
내레이터 염정아는 이 프로그램의 팬이다.
대체로 여성 피디들이 향하는 지역에서 이들의 목소리가 돼주는 건 배우 염정아다. 염정아가 <걸세>의 애청자이기 때문이라고. 염정아 쪽에서 먼저 내레이터를 하고 싶다고 제안을 했단다. 반면 남자 피디의 경우 <걸세>의 '최장수 내레이터'이기도 한 이광용 아나운서가 생생한 전달자가 돼준다. 이광용 아나운서는 2013년부터 11월부터 <걸세>의 내레이션을 맡았다.


걸어서 세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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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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