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MBC 명절 효자프로그램에는 <아육대>만한 것이 없었다. 지난 추석특집에서 호평받은 리듬체조에 이어, 이번에는 에어로빅까지 신설한 2017 <아육대>는 12.2%(TNMS 수도권 기준)의 시청률로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사실 <아육대>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프로그램은 없었다. 매번 <아육대>를 통해 아이돌들의 부상이 속출했고, 심지어 엑소 멤버 타오는 2013년 추석특집, 2014년 설 특집 <아육대>에서 입은 부상을 빌미로 그룹을 이탈하기도 했다. 때문에 <아육대>는 좋아하는 스타를 가까이에서 오랜 시간 지켜볼 수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아이돌 팬들에게는 "내 가수가 절대 출연하지 않았으면 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로 꼽혀왔다.

부상無 감금無... <아육대>가 변했다

 30일 방송된 MBC <설특집 2017 아이돌스타 육상 양궁 리듬체조 에어로빅 선수권대회> 캡처.

30일 방송된 MBC <설특집 2017 아이돌스타 육상 양궁 리듬체조 에어로빅 선수권대회> 캡처. ⓒ MBC




매회 반복되는 부상과 논란을 의식한 탓인지, 이번 <아육대>는 농구, 풋살 등 부상이 속출했던 종목을 폐지했다. 에어로빅 종목에서 텀블링과 리프팅 동작을 선보일 때는 다소 아슬아슬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지만, '칼군무'와 아크로바틱에 일가견이 있는 아이돌들답게, 부상 없이 경기를 마칠 수 있었다. 크고 작은 부상자 없이 대회를 마무리한 것은 14번의 <아육대> 중 이번이 처음이다.

부상과 더불어 팬들의 원성을 자아냈던 '감금 녹화'도 일부 융통성이 발휘됐다. 최장 22시간까지 진행된 적 있던 <아육대>는 녹화가 진행되는 동안 팬들의 귀가를 막는 일명 '감금 녹화'로 악명이 높았다. 막차까지 끊긴 뒤 끝난 녹화 탓에, 발이 묶인 팬들이 새벽 길거리를 배회하며 추위에 떠는 모습 등이 목격되며 이들의 안전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2015년 추석특집부터 녹화를 이틀에 나눠 진행해 팬들의 귀가 시간을 배려하더니, 이번에는 엑소, B1A4 등 예선 탈락, 스케줄 등의 이유로 조기 퇴근이 결정된 아이돌의 경우, 그 팬들의 중간 퇴장도 허락했다. 지난 비난 여론을 의식한 <아육대> 측의 변화였다.

'아육대도시락중계봇'의 등장

 '아육대도시락중계봇'이라는 이름의 트위터 계정이 중계한 도시락 품평.

'아육대도시락중계봇'이라는 이름의 트위터 계정이 중계한 도시락 품평. ⓒ 트위터 캡처


하지만 새로운 논란이 일었다. 바로 도시락이다. 이제는 <아육대>의 전통으로 자리 잡은 '도시락 역(易)조공'(스타가 팬에게 역으로 선물하는 것)은 앞서 언급한 장시간 감금 녹화 때문에 시작됐다. 긴 시간 동안 주린 배를 붙들고 녹화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팬들을 위해 몇몇 아이돌들이 도시락과 간식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는 <아육대>에 참여하는 아이돌 대부분이 점심과 저녁, 간식까지 준비한다. 팬 석으로 올라와 일일이 도시락을 나눠주는 것은 기본, 직접 쓴 손편지나 사인은 물론, 직접 스티커를 붙이기도 한다. 스타들의 사랑과 정성을 직접 느낄 수 있는 '아육대 도시락'은, 팬들이 폐지를 외치면서도 <아육대>를 외면할 수 없게 만드는 요소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육대>의 상징인 이 도시락 서포트도 논란의 중심에 섰다. 대형 소속사 소속이거나, 인기 아이돌의 경우 점심, 저녁, 간식까지 값비싼 도시락이 이어졌지만, 중소형 아이돌의 경우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팬들의 도시락 인증 사진을 두고 댓글 상에서 "이번엔 누구네 도시락이 좋다", "어디 거는 별로다", "역시 대형 소속사라 다르다" 등 도시락 품평이 줄을 이었다.

급기야 이번 <아육대>에는 '아육대도시락중계봇'이라는 트위터 계정까지 등장했다. "매우 유용해 보인다", "푸짐한 구성", "1군 다운 면모", "급격한 퀄리티 하락" 등 세세한 도시락 품평을 실시간으로 이어갔다. 결국 "팬들에 대한 배려로 준비한 도시락인데 품평이 말이 되느냐"는 비난이 쏟아졌고, 결국 계정은 삭제됐다.

하지만 이 계정 탓에 새로운 논란이 시작됐다. 방송 녹화 때문에 모인 이들이니 방송국이 도시락을 준비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전에 비해 빨리 마치기는 했지만, 2017 설 특집 <아육대>도 오후 11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오전 8시 입장이 시작돼 9시께 녹화가 시작됐으니, 14시간 넘게 녹화가 진행된 셈이다. 트위터 등 SNS에서는 "일당은 못 줄망정, 밥이라도 먹여줘야지", "녹화 때문에 온 건데 도시락은 줘라" 등, 방송국에서 식사를 마련해야 했다는 의견이 줄을 이었다.

아육대 도시락, 왜 출연자가 사야 할까? 제작진 말 들어보니

 30일 방송된 MBC <설특집 2017 아이돌스타 육상 양궁 리듬체조 에어로빅 선수권대회> 캡처.

객석을 채운 팬들과 그들의 응원, 팬들을 향한 아이돌의 세리모니, 체육관 곳곳에 내걸린 현수막 하나하나까지, 모두 <아육대>의 재미를 북돋는 요소다. ⓒ MBC




<아육대> 덕분에 좋아하는 스타를 오랜 시간 가까이에서 보고, 그들이 주는 도시락까지 먹을 수 있게 됐으니 그 정도는 알아서 감내하라고 해야 할까?

'니들이 좋아 왔잖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육대>는 '좋아서 오는' 팬들이 없다면 안 되는 프로그램이다. 스포츠 중계 성격을 띤 예능프로그램이기에, 객석을 채운 팬들과 그들의 응원, 팬들을 향한 아이돌의 세리모니, 체육관 곳곳에 내걸린 현수막 하나하나까지, 모두 <아육대>의 재미를 북돋는 요소다. 텅 빈 객석에서, 저들끼리 웃고 떠들며 경기를 이어갔다면, 경기하는 아이돌의 열정도,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재미도 반감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은 방송국의 필요 때문에 팬들이 동원됐다는 이야기다. 배곯으며 응원하는 팬들이 안쓰러워 직접 도시락을 준비하기 시작한 아이돌의 팬 사랑은 갸륵하지만, 여기에 기대 책임을 외면하고만 있는 <아육대> 측도 비난을 피할 수는 없어 보인다.

2017 설 특집 <아육대>를 연출한 최행호 PD는 <오마이뉴스>와 전화 통화에서 "행여 아이돌 팬덤과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으로 보일까 걱정된다"면서도 "스포츠 경기장이나 대형 콘서트를 찾은 관객들에게 식사를 제공해주어야 할까요?"라는 말로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이번 <아육대>의 경우, 스포츠 경기처럼 자유롭게 입장과 퇴장이 가능해 원한다면 얼마든지 나가서 식사하고 돌아올 수도 있는 시스템이었다고. 하지만 녹화가 진행된 고양체육관이 교통이 불편한 데다 주변에 마땅한 편의시설이 없어, 실제 쉽지는 않을 것이다.

최 PD는 도시락·간식 준비에 부담을 느끼는 중소형 아이돌의 사정도 다 알고 있다면서 "마음이야 제작진이 모두 해드리고 싶지만, 제작비 등 여러 여건이 마땅치 않다. 간식이라도 제공해드리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마저도 넉넉지는 않았던 것 같다"는 말로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번 녹화에는 초콜릿과 우유 등이 제공됐다) 이어 "먼 곳까지 와 주시는 팬들도 고맙고, 팬들을 신경 쓰는 아이돌의 씀씀이도 고맙고 예쁘지 않나. 지금은 많이 왜곡돼 버렸지만, 예쁘고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많은 아이돌 팬들은 오늘도 <아육대>를 향해 "폐지해라", "우리 가수 출연금지 해줘라", "제발 안 나왔으면" 하고 외친다. 하지만 신인 그룹 H.U.B 루이는 두 달 동안 달리기 대회를 준비했다고 한다. 결국 루이는 여자 달리기 부문에서 금메달을 땄고, 이를 지켜보던 H.U.B 멤버들은 객석에서 눈물을 흘렸다. 공중파 프로그램에 스포트라이트 한 번 받기 힘든 신인들에게 <아육대>는 여전히 기회의 무대인 셈이다.

신인이 아니라도, 여러 아이돌이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두 달가량 양궁, 리듬체조, 에어로빅 등 새로운 종목에 도전하며 땀과 눈물을 흘렸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긴 시간, 많은 노력을 투자하는 아이돌, 그리고 먼 길을 마다치 않고 녹화에 참여해 방송의 재미를 더해주는 팬들까지. 물론 분명 <아육대>는 과거에 비해 출연 아이돌과 그 팬들을 위한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희생과 노력이 필요한 프로그램이니만큼, <아육대>도 아직은 더 많이 변해야 하지 않을까? 명절마다 꼬박꼬박 10%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MBC의 대표 명절 콘텐츠로 자리 잡은 <아육대>. <아육대>가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으려면 아직은 조금 더 변해야만 할 것 같다.

 30일 방송된 MBC <설특집 2017 아이돌스타 육상 양궁 리듬체조 에어로빅 선수권대회> 캡처.

여자 달리기 부문 금메달을 딴 신인 그룹 H.U.B 루이는 두 달 동안 달리기 대회를 준비했다고 한다. 공중파 프로그램에 얼굴 한 번 내밀기 힘든 신인들에게 <아육대>는 여전히 기회의 무대이기 때문이다. ⓒ MBC



아육대 도시락 역조공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