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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 없이 끓는 물에 채소를 먼저 데친 다음 고기와 함께 나온 소스에 먹는다. 버크셔 고기 맛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메뉴다. ⓒ 김진영
돼지고기는 맛있다. 버크셔는 맛으로는 그 가운데 으뜸이다. 버크셔는 흑돼지의 일종으로 꼬리, 다리, 입 부위가 하얀색인 육백 흑돈이다. 우리가 재래 돼지로 알고 있는 돼지 또한 검은색이지만 버크셔는 모양새가 달라 구분하기 쉽다.

버크셔는 17세기에 영국에서 개량한 돼지 품종으로 미국을 거쳐 한국에 도입된 품종이다. 2000년도에 몇 군데 육종장에서 도입해 사육했지만 지금은 전북 남원의 다산육종에서 사육하는 버크셔K가 유일하다.

버크셔의 장점은 맛이다. 첫째, 근섬유가 얇고 많아 씹는 맛이 좋다. 둘째, 비계의 수분 함량이 적어 쫄깃하다. 셋째, 근육 내 포도당과 유리 아미노산이 많아 단맛과 감칠맛이 좋다. 쉽게 이야기하면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국내에서 버크셔를 사육하기 전, 일본에서는 '쿠로부타'라는 이름으로 전국적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일본에서 흑돈을 사육하는 곳 중 가장 유명한 지역은 규슈 남단의 가고시마 현이다. 가고시마 현에서는 1990년대에 흑돈사육조합을 만들었다.

흑돈에 대한 사육 기준을 정해 사육과 출하 기준을 맞춘 돼지만 가고시마 흑돈으로 출하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등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 가고시마 흑돼지는 버크셔 품종으로, 230일 이상 - 백색 돼지는 180일 정도면 출하한다 - 사육하고, 고구마 사료를 60일 가량 먹여야 하는 등 기준이 까다롭다.

'떼루아'라는 와인 용어가 있다. 와인 생산 지역의 풍토·품종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걸 뜻한다. 가고시마와 남원의 흑돈도 조상은 영국에서 18세기에 육종한 버크셔로, 지역의 풍토와 선호하는 조리법과 맛에 따라 다른 맛을 낸다.

일본은 돈가스를 위한 등심을, 한국은 구이를 위한 삼겹살을 중심으로 육종한다고 한다. 버크셔K를 육종한 박화춘 박사는 "가고시마 흑돼지는 사육 후기에 등심의 지방함량을 높여 돈가스에 적합하도록 사육한다"며 "사료의 탄수화물 함량을 높이고 단백질 함량을 낮춰 마블링이 잘 형성되도록 한다"고 말한다. 이 차이점이 남원의 버크셔와 가고시마 버크셔의 육질 차이를 낸다고 한다.

국내의 돼지고기 소비 문화는 삼겹살에 붙은 비계는 좋아하지만, 돈가스에 있는 비계는 싫어한다. 국내 돈가스는 지방을 제거한 등심을 사용한다. 지방이 많으면 비계를 붙여 양만 늘렸다 타박하는 손님이 많아 순살만 사용한다. 반면, 일본은 두껍게 썬 고기에 비계가 고스란히 붙어있는 걸 내는 곳이 많다.

오래 전부터 가고시마에서는 다양한 흑돈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샤브샤브, 돈가스, 구이, 라멘, 규동 등이 있다. 맛있는 메뉴 몇 가지를 소개한다.

○ 돈가스|2cm 정도 두껍게 썬 등심을 잘 튀겨냈다. 버크셔 육질은 부드러우면서 탄력이 있다. 거기에 보수성이 좋아 촉촉하다. 가고시마 흑돈 등심은 버크셔 육질 특성에 지방층이 숨어 있어 한층 더 부드럽다. 압권은 순살에 붙어 있는 비계의 녹진한 맛이다. 입안에서 고소한 여운을 길게 남긴다.
라드+카놀라유로 튀겨낸 돈가스. 씹으면 살 사이에 숨어 있던 지방이 터진다. 함께 나오는 밥은 가고시마산 고시히까리로 밥과 궁합이 좋다. 반주로 생맥주 한 잔이면 금상첨화다. ⓒ 김진영
○ 샤브샤브|국내에는 소고기 샤브샤브를 내는 곳은 많지만, 돼지고기 샤브샤브를 내는 곳은 드물다. 가고시마에서는 흑돈 샤브샤브를 하는 곳이 많다. 흑돈은 샤브샤브로 즐겨야 제맛이다. 육수에 지방 성분이 녹아 들어간 고기가 가진 담백한 맛을 오롯이 즐길 수 있다. 돼지고기 냄새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버크셔는 돼지고기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얇게 저민 고기를 살짝 익혀 먹다 보면 금세 고기가 바닥날 정도로 맛있다.
간이 없이 끓는 물에 채소를 먼저 데친 다음 고기와 함께 나온 소스에 먹는다.버크셔 고기 맛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메뉴다. ⓒ 김진영
○ 구이|우리나라는 목살과 삼겹살이 구이의 주메뉴이지만, 일본은 삼겹살과 등심이다. 국내에서 등심을 메뉴로 내놓는 구이 집은 없다. 하지만 등심을 알게 모르게 구워 먹어 봤다. 삼겹살 집에서 삼겹이 아닌 이겹으로 살이 널찍한 부위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삼겹살 수요가 다른 부위보다 많아 돼지 도체를 분할할 때 삼겹살의 양을 늘리기 위해 잘라낸 등심 부분이다.
고기를 주문하면 고기만 준다. 밑반찬을 따로 주문해야 한다. 국내와 달라 불편한 듯 하지만 합리적인 가격에서 좋은 고기를 맛 볼 수 있다.원가가 높은 고기를 저렴하게 제공할 수 있는 까닭은 곁가지 반찬이 없기 때문이다. ⓒ 김진영
버크셔 등심은 백색 돼지와 달리 촉촉하고 부드럽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지방 함량이 높아 구워도 전혀 퍽퍽하지 않다. 고기를 주문하면 고기와 소금, 그리고 소스만 준다. 나머지 반찬은 따로 주문해야 한다. 잔반도 사라지거니와 고기 가격이 1인분에 5천~7천 원 수준으로 싸다. 이밖에도 라멘, 규동(덮밥), 에끼벤, 만두 등 가고시마에서 다양한 요리로 버크셔를 즐길 수 있다.

남원의 버크셔는 가고시마의 버크셔와 맛이 다르다. 먹는 방법이 주로 직화구이를 선호해 지방 함량이 적다. 대신 감칠맛과 단맛은 남원의 버크셔가 조금 낫다. 특히 비계는 가고시마 버크셔보다 탄성이 좋아 구웠을 때 씹는 맛이 있어 좋다. 가고시마 버크셔에 견주어 육질이 떨어지지 않는 남원의 버크셔이지만, 근래까지는 직화구이가 전부였다.

버크셔 고기로 육수를 낸 막국수 집, 앞다리와 뒷다리를 이용해 샤브샤브를 내는 고깃집, 족발과 목살을 일본식 양념으로 내는 이자카야 등 다양하게 요리를 내는 곳이 늘고 있다. 버크셔를 취급하는 곳이 늘었지만, 사육한 지 17년이 지나도 여전히 아는 이보다 모르는 이가 많다. 일본 규슈 가고시마에 맛있는 흑돈이 있듯이, 우리나라 전북 남원에도 맛있는 돼지가 있다.



태그:#흑돼지, #버크셔, #가고시마, #남원, #돼지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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