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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집회와 이를 지지하는 국민들에 맞서 대항하는 일부 기독교인들이 있다. 대다수 기독교인들은 하늘의 섭리에 어긋나는 박근혜 대통령의 불의를 질타하고 있지만, 일부 수구적인 목사들과 추종자들은 촛불을 꺼버리겠다며 거리로 몰려나와 태극기를 휘날리고 있다.

심지어 그들은 탄핵반대 집회에 대형 십자가까지 동원하고 있다. 지난 연말의 크리스마스이브 때는 서울 덕수궁 앞에서 박근혜와 최순실을 위한 대규모 모임까지 가졌다. 예수를 상징하는 십자가와 크리스마스이브를 박근혜·최순실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일부 기독교 목사들의 이 같은 행위는 한국의 종교적 전통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제껏 이 땅의 종교 지도자들은 민족 전체를 구하는 일에는 앞장설지라도, 일부 목회자들처럼 세속 정권을 비호하는 일에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주일 예배를 준비해야 할 귀중한 토요일에 박근혜를 위한 맞불 혹은 태극기 집회에서 신명을 다해 고함치는 일부 목회자들은 성서의 교리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이 땅의 종교적 전통과도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런 면에서 그들은 기독교의 이단이고 종교 자체의 이단이라고 할 수 있다.  

KBS 드라마 <화랑>의 주인공들인 신라 화랑들, 이들 화랑보다 먼저 등장해 나라 수호에 앞장선 고구려 조의선인들, 송나라 사신단 간부인 서긍의 주목을 끌어 그의 책인 <고려도경>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고려 재가화상들, 유교 정권의 핍박을 받으면서도 임진왜란 때 들고 일어나 나라를 구한 조선 승군들.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이들이 종교적 수행자로서 평소에 무예를 단련했다가 비상시에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전쟁터에 뛰어들었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이들이 세속 정권 수호에 나서는 대한민국 시대의 일부 목회자들과는 차원이 달랐다는 점이다.

 서울시 용산구의 전쟁기념관에서 찍은 신라 화랑.
 서울시 용산구의 전쟁기념관에서 찍은 신라 화랑.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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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화랑들, 정권 아니라 나라 위해 싸웠다

위작 논란이 있는 필사본 <화랑세기>에 따르면, 신라 화랑들도 국내 정쟁에 가담한 사례가 있다. 드라마 <화랑> 속의 화랑들도 어느 정도는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은 예외였다. 대개의 경우, 화랑들은 정권이 아니라 나라를 수호하기 위해 군복을 입고 무기를 들었다.

드라마 <화랑>에 나오는 화랑들은 진흥왕 때인 6세기 중반의 사람들이다. 이들보다 1세기 뒤인 7세기 중반의 화랑들 중에서 후세에 오래도록 기억되는 이들이 있다. 동족인 백제를 상대로 한 전쟁에서 자신을 희생해 유명해진 점은 좀 그렇지만, 660년 황산벌 전투에서 영웅적인 희생의 길을 택한 화랑 반굴과 관창이 바로 그들이다.

황산벌에서 벌어진 처음 4차례 전투에서 5만 명의 신라군은 5천 명의 백제군에게 4연패를 당했다. 그 전부터 신라가 압도적인 군사적 열세에 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그다지 이상한 풍경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린 반굴과 관창이 적진에 뛰어들어 처참하게 희생된 것이 전세 역전의 계기가 되었다. 어린 종교 수행자들의 희생을 지켜본 성인 병사들이 죽기 살기로 달려들면서 전세가 일순간에 역전됐던 것이다. 반굴·관창의 희생은 민족사적 관점에서는 좀 그렇지만, 이를 발판으로 신라는 백제의 위협을 물리치고 국제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었다. 

종교인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거는 전통은 고구려에도 있었다. 화랑과 비슷한 조의선인(皁衣仙人)이 고구려에도 있었다. 검은 의복(皁衣)을 입고 신선(仙人)의 길을 추구한다고 그렇게 불렸다. 이들 역시 종교적 수행과 무예 단련에 힘쓰는 '목회자'들이었다.

우리는 고구려와 당나라의 격전인 645년 안시성 전투를 기억한다. 이 전투는 우리 머릿속에서 양만춘 장군을 연상시킨다. 물론 양만춘이 공을 세운 건 사실이지만, 전투를 승리로 이끈 밑바탕에는 수많은 조의선인들의 희생이 있었다. 정규군이 아니라 종교인들의 활약이 승리의 원동력이었다. 

먼 훗날의 고려 최영 장군이 그때의 역사를 언급했다. <고려사> 최영 열전에 따르면 그는 "당나라 태종이 우리나라를 공격했지만, 우리나라가 승군 3만 명을 출동시켜 그들을 격파했다"고 말했다. 최영이 말한 '우리나라'는 자기 시대의 고려가 아니라 그 이전의 고구려다. 그리고 승군은 조의선인이다. 한자 승(僧)은 불교 승려뿐 아니라 여타 종교 성직자들도 가리켰다. 조의선인들이 종교인 겸 전사였기에 승군이라 불렸던 것이다.

 전쟁기념관에서 찍은 최영.
 전쟁기념관에서 찍은 최영.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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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 금하는 불교 승려들, 창칼 들었다

최영의 말에 따르면, 세계 최강 당나라 군대에 맞서 나라를 지킨 주역은 정규군이 아니라 승군 즉 목회자들이었다. 이런 승군이 3만 명이나 나서서 목숨을 건 결과, 고구려가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평소에 조의선인들이 부패한 왕을 지킬 목적으로 깃발 들고 시위하는 일에 에너지를 소모했다면, 또 그런 일로부터 떡고물을 챙기는 일에 에너지를 소모했다면, 안시성 전투 같은 결정적 순간에 그처럼 큰 기적을 이루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종교인들이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전통은 고려시대에도 이어졌다. 1123년 송나라(북송) 사신단의 중간 간부가 되어 고려를 방문한 뒤 <고려도경>이란 기행문을 남긴 서긍은 조의선인과 유사한 고려 종교인들을 보고 강한 인상을 받았다.

서긍은 검은 옷이나 검은 허리띠를 착용한 그들의 명칭을 몰랐기 때문에 편의상 재가화상이라 불렀다. 민가에서 생활하는 종교인이라고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화상이라고 말했지만 불교 승려는 아니었다. 서긍은 그들이 불교 계율을 모르는 승려였다고 말했다. 신선의 길을 추구하는 조의선인이었기에 불교 계율을 모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서긍은 재가화상들이 평소에는 일반인처럼 생활하다가 비상시에는 나라를 위해 전투에 자원한다고 말했다. 그런 사람들이 고려에 많다는 사실에 강한 인상을 받았기에 <고려도경>에다가 재가화상 이야기를 남겼던 것이다. 

그런 조의선인(재가화상)들이 맹활약한 무대가 몽골과의 전쟁이었다. <고려사> 김경손 열전에 따르면, 1231년 제1차 몽골 침입 당시 김경손을 비롯한 12인의 조의선인들이 몽골군 진영을 헤집고 다닌 결과로 몽골 대군이 두 차례나 퇴각한 일이 있었다. 12인의 '목사님 특공대'가 몽골 대군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영웅적인 모습을 연출했던 것이다. 대형 십자가를 들고 '박근혜 사수'를 외치며 도심을 교란하는 일부 기독교 목사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종교인들이 나라를 지키는 전통은 조선시대로도 이어졌다. 임진왜란 때 목탁 대신 창칼을 든 휴정대사·사명대사의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들 역시 임금과 정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와 세상을 위해 창칼을 들었다.

전쟁 초반에 계속 밀리기만 했던 조선군이 반격의 계기를 잡은 것은, 승군을 비롯한 의병들이 사방에서 들고 일어나 일본군을 교란시켰기 때문이다. 살생을 금하는 불교의 승려들이 일본군 앞에서 거리낌없이 창칼을 들 수 있었던 것은, 종교인들이 나라를 위해 무기를 드는 전통이 조선시대에도 여전히 강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당시의 승군들. 경기도 고양시의 행주산성에서 찍은 사진. 그림 속의 오른쪽이 승군이다.
 임진왜란 당시의 승군들. 경기도 고양시의 행주산성에서 찍은 사진. 그림 속의 오른쪽이 승군이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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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고대 이래로 한국에서는 종교인들이 평소에는 수행에 전념하다가 전시에는 나라를 위해 용감하게 희생하는 전통이 있었다. 이런 전통이 있었기에, 오늘날에도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들이 우리 사회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데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일부 기독교 목사들이 그런 전통을 훼손하고 있다. 그들은 나라를 지키는 것과 정권을 지키는 것의 차이를 분간하지 못하고 있다. 불의한 정권과 의로운 정권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불의한 정권을 지키는 것을 나라를 지키는 호국의 길로 착각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서 떨어지는 얼마간의 떡고물을, 기독교 신이 중동 광야에서 모세의 백성들에게 내려준 만나라는 비상식량쯤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들은 박근혜 정권을 지켜주는 일을 고되고 어려운 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여전히 정권을 쥐고 있는 대통령 쪽에 서는 일은 여전히 쉬운 길이다. 예수는 마태복음 7장 13절에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면서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라고 말했다. 대통령 편에 서고 그 권력을 이용하려는 목회자들은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다. 그 문은 넓고 편한 듯하지만, 예수는 그것이 멸망의 문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제라도 박근혜 편에 서는 불의한 노선에서 이탈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도널드 트럼프의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아베 신조의 군사적 드라이브로부터 나라와 민족을 지키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미국의 정권교체로 한층 더 힘들어질 2017년 정유년을, 정유라 모녀와 박근혜를 위해 사용하는 어리석음을 우리나라 종교인들이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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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 노비들,왕의 여자,철의 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