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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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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황찬란한 현대식 건물과 달리, 대부분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짐가방을 보면 마치 영화 속 피난 장면 같기도 했다.
대만에 이어 중국 여행 한 달(2016. 12.9 - 2017. 1.9). 중국에선 느리고 긴 기차 여행을 세 번 했다. 첫 번째는 샤먼에서 상하이로 23시간, 두 번째는 쑤저우에서 시안으로 15시간, 마지막은 시안에서 썬전으로 30시간. 

비행기로 2시간 이내인 거리를 부러 기차로 간 이유는, 돈을 아끼려는 목적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국 대륙을 실감하고 싶었다. 차창 밖으로나마 더 많은 지역을 볼 수 있는 것도 한 이유. 하지만 기차 여행도 '기본 준비'가 소홀하면 큰 코 다칠 수!

느린 기차 여행
 느린 기차 여행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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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와 불안 속 23시간 

샤먼에서 상하이로 가는 기차. 일반칸 3층 침대 중 2층, 가격 298위안(약 5만 2천 원). 사전에 두 현지인(한 명은 샤먼역 승무원)이 알려준 같은 시간, 같은 열차의 최저가 표값이 서로 달랐고, 실제 구매가는 더 저렴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어쨌든 싸게 사서 기분 좋은.

차량 내부는 꽤 쾌적해 보였다. 단, 침대 높이가 상상을 초월했다. 3층은 거의 천정에 맞닿아 있는데 그 위를 오르는 승객 모습은 묘기에 가까웠다. 침대 층수에 따라 2-5천 원쯤 차이가 나고, 소지품 분실 등을 염려해 2층을 택했는데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했다.

2층 침대까지 90도 직각의 철제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것도 꽤나 난감한데다 보안 걱정은 기우였기 때문. 10명 가까운 승무원이 꼬박 밤을 새며 30분에서 1시간 간격으로 차량 내를 점검·청소하는데다 내릴 때가 되면 탈 때 맡긴 표를 내주러 와서 도착을 알려줘 무척 든든했다.

3층 침대 기차
 3층 침대 기차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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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문제는 먹거리. 승차 전 '뭘 좀 살까?' 했지만 '어떻게 되겠지' 하고 말았다. 하지만 한잠 자고 점심 때가 되니 상황 파악이 됐다. 중국 열차 내에도 '식당칸'과 '스낵카'는 있다. 가격이 시중보다 2~3배 비싸지만 그 또한 예상했다. 그런데 정작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없었다.

나는 '공장식 축산'에 반대해 돼지와 소를 먹지 않는다. 그런데 식당칸 모든 메뉴와 스낵카에서 파는 딱 한 종류뿐인 사발면 주재료가 그것이었다. 기타 간식류는 진공 처리한 창백한 닭발과 붉은 소고기 육포, 배를 채우기엔 한없이 부족한 해바라기씨 등이었다.

한국어도 영어도 안 통하는 상황에서 설명도 허사. 하지만 같이 탑승한 옆 좌석의 두 청년이 한참 만에 영어로 말을 걸었다. 돕고는 싶은데 말이 서툴어 고민했던 모양. 그들 덕분에 고기 건더기를 뺀 사발면도 먹고, 저녁엔 식당칸에서 야채 볶음밥도 주문할 수 있었다.

청년들과 계속 대화를 나눴다. 둘은 예비 승무원이었다. 지금은 교육 중이라고. 하지만 자신들의 직업은 "지겨운 일"이라고 했다. "보다 자유롭고 행복한 일"을 바라지만 모르겠다며, 내가 부럽다고도. 하지만 "나 역시 다르지 않고 조금씩 노력할 뿐이니 용기를 내자"고 했다.

열차에서 밥을 먹게 해준 고마운 두 청년.
 열차에서 밥을 먹게 해준 고마운 두 청년.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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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혼자. 읽을 수 있는 책은 없고, 음악 듣기는 지겨웠다. 기대했던 창 밖 풍경은 지루함과 삭막함의 연속. 커다랗게 잘린 산, 파헤쳐진 땅, 꼭같은 모습으로 쌓아 올린 높은 집들의 잿빛 뼈대들……. '무엇이 얼마나, 어떻게 사라졌을까' 하는 물음과 함께 불안이 솟았다. (이 불안의 정체에 대해 다음 번에 자세히 말하겠다)

밤이 되니 낮부터 스멀대던 담배 냄새가 짙어졌다. 객실마다 '금연' 표시가 있지만, 출입문이 있는 차량 연결 구간에선 흡연이 가능했고, 식당칸에 갔더니 아예 승무원들이 담배를 나눠 피고 있었다. 객실 문을 열어둬 온갖 냄새가 차량 안에 퍼졌다.

10시가 되자 불이 꺼졌다. '정전인가' 했는데 예정된 소등이었다. 이후 타는 승객들은 어둠 속에서 자리를 찾았다. 나는 부실한 식사 탓에 배가 고팠고, 등이 아팠으며, 자다 깨다를 몇 번이나 반복해도 여전히 밤이라 '시간이 단순해지면 더 길어지나?' 하는 생각을 하다 다시 잤다.

마침내 날이 밝고, 전날 10시경 탄 열차에서 오전 9시쯤 내렸다. 첫 열차 여행의 교훈. 중국에서 장시간 열차를 탈 때는 반드시 충분한 먹거리와 볼거리를 준비할 것. 좌석 예약은 무조건 1층. 돈 여유가 있고 특히 일행 중 노약자가 있다면 따로 출입문이 있는 4인 침실칸 추천.

방심하면 탈이 난다? 

이번엔 쑤저우에서 시안까지 15시간. 앞서 경험을 거울 삼아 이번엔 도시락밥에 사발면 등 먹거리도 충분히 샀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전자책도 다운받았다.(그렇게 믿었다). 기차 예약은 쑤저우에서 한 주 내 묵었던 숙소 직원의 도움을 받았다. 저녁 7시 35분 탑승.

미리 밥 먹고 세수하고 양치까지 했다. 기차를 타면 얼마간 책을 읽고 음악을 듣다가 편히 잘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라? 침대가 없다! …… 숙소 직원 한스가 "소프트 싯(soft seat)"과 "하드 싯(hard seat)"이 있다 하여 "소프트 싯"을 골랐는데, 그 "싯"이 침대가 아니고 의자!

'하드 싯을 골랐으면 정말 골병이 들었겠군' 생각하며 일단 자리에 앉았다. 사실 열차 자체는 한국의 KTX나 새마을호 환경과 비슷하고 되레 좀 더 넓어서 불평할 게 없었다. '이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하며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런데 어라? 이번엔 책이 없네!

생각해보면 숙소 직원 한스는 영어가 무척 서툴렀고, 티켓 가격이 너무 쌌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전자책을 다운로드 받을 때 '확인'이나 '완료' 버튼을 누른 기억이 없다. 결국 밤새 앉은 자세로 역시나 자다 깨다를 반복, 이른 아침 따뜻한 사발면과 찬밥으로 속을 달랬다.

시안 가는 기차 안에서
 시안 가는 기차 안에서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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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서 2박3일 

1/3 PM 11:30 시안 기차역 출발 
1/5 AM 4:38 썬전 기차역 도착

홍콩을 가기 위한 시안에서 썬전까지의 30시간. 몇 번 망설였지만 티켓을 사고 보니 다시 기대가 됐다. 한계를 넘는 쾌감? 사실 나는 여전히 느린 기차 여행이 좋고, 중국 여행 막바지가 되니 왠만한 일이나 풍경에 담담해졌다. 그리고 몹시 피곤해 단조롭고 긴 기차 여행이 반가웠다.

이번에도 책은 없다. 탑승 전까지 스무 번도 넘게 다운로드를 시도했지만 계속 실패. 휴대전화에 저장된 음악은 지겹고.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면 좋겠지만, 노트북 배터리 수명이 다해 전기선이 없으면 바로 꺼지는 상태. 처음 두 번과 달리 이번엔 이 모든 사항을 알고 출발.

지난 이십여 일간 중국의 네 개 도시를 이동하며 느낀 것은, 중국의 물질 문명과 중국민들의 실제 생활 혹은 의식의 변화 속도가 다르다는 점. 역 안 풍경도 마찬가지. 휘황찬란한 현대식 건물과 달리, 대부분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짐가방을 보면 마치 영화 속 피난 장면 같기도 했다.

영화 속 피난 장면 같기도 한 중국 기차역 풍경.
 영화 속 피난 장면 같기도 한 중국 기차역 풍경.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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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 가까운 시각에 차를 타서 곧바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맞이한 첫 아침. 편안하고 행복했다. 전날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전자책을 다운로드 받으려 애쓰다 인터넷 환경을 불평하고, 마지막까지 종이책이라도 구하려 뛰어다닌 것이 부질 없게 느껴졌다.

하지만 역시 30시간은 길었다. 정오를 넘자 슬슬 지겨워졌다. 휴대전화를 든 몇 사람에 와이파이를 공유할 수 있는지 물었지만 불가했다. 정말이지 이렇게나 무언가를 읽고 싶은 열망에 휩싸인 건 처음. 대학 시험 기간 때 도서관에 있을 때보다 두 배쯤 더한 듯했다.

단조롭고 삭막한 풍경도 마찬가지. 일상 문화인 듯 밤낮을 가리지 않고 큰 소리로 말하는 중국 사람들, 그저 줘도 안 가질 듯한 물건을 열심히 홍보하며 오가는 역무원들, 우연히 침대 시트를 들췄다가 보게 된 당황스런 얼룩과 먼지들, 시간을 견디려는 몸부림…….

이쯤에서 글을 마무리하고 싶은데, 결론은 이렇다. 앞선 모든 시행착오와 외국인으로서 익숙지 않은 중국 문화에도 불구하고 나는 중국을 여행하는 가장 멋진 교통 수단으로 기차를 추천한다. 먹거리와 볼거리를 충분히 갖춘다면 절대 망설일 이유가 없는 여정이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맞이한 아침
 달리는 기차 안에서 맞이한 아침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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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여행은 결국 나의 일상에서 누군가의 일상을 오가는 여정.
고로 내 일상에선 멀고 낯선 곳을 여행하듯 천진하고 호기심어리게,
어딘가 멀고 낯선 곳을 여행할 땐 나와 내 삶을 아끼듯 그렇게.

지난 2016년 11월 9일부터 세 달간의 대만-중국-베트남 여행 이야기입니다.
facebook /travelforall.Myoungj



태그:#기차여행, #SLOW TRAIN, #중국여행 , #교통수단, #공장식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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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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