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눈 감아도 난 볼 수 있어 
난 볼 수 있어
말 하지마 난 알 수 있어 
느낄 수 있어
이곳은 너무 답답해 
다 알고 있어
이곳은 날 미치게 해 
Losing In My Heart
저 하늘로 넌 날 수 있어 
떠날 수 있어
I Wanna Fly To The Sky 
I Wanna Fly

너는 날개가 있어 
날 수 있어
정말이야 날 믿어줘 
네 꿈이 날게 해

- 피터팬컴플렉스, '나비보호색' 노랫말 중에서

코펜하겐의 프리타운 크리스티아니아
 코펜하겐의 프리타운 크리스티아니아
ⓒ 한성은

관련사진보기


이 땅에서는 살 수가 없다. 날개를 펴서 저 하늘로 날아가야 한다. 자유가 있는 곳으로 가자. 하지만 세상에 그런 곳이 어디에 있을까? 그런 곳이 없다고 희망마저 버릴 수는 없다. 그런 곳이 없다면 우리가 만들자.

68 학생 운동의 여운이 남아 있던 1971년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 있던 해군 기지가 폐쇄됐다. 그리고 이 10만 평이 넘는 버려진 부지에 자유를 원하는 젊은이들과 집이 없는 노숙인, 히피, 동성애자, 미혼모 같은 사회 취약계층이 몰려들었다. 당시 진보성향의 매체에서는 '다 같이 8번 버스를 타고 크리스티아나로 모이자!'는 사설이 실리기도 했단다. 그렇게 탄생한 자치 공동체가 바로 프리타운이라 불리는 크리스티아니아(Christiania)다.

이들은 총회를 열어 전원 합의를 원칙으로 하는 직접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자치 공동체를 유지 하고 있다. 또, 공동체를 상징하는 빨간 바탕에 노란 원이 세 개 그려진 깃발도 만들고, 독자적인 화폐 체계도 만들었다. 그리고 스스로 EU에 속하지 않는 독립된 도시국가라고 공표했다. 물론 이들이 덴마크 정부로부터 자치 공동체의 법적 지위를 보장받은 것은 아니다. EU 역시 크리스티아니아를 도시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은 지금도 자신들만의 규칙을 만들어 자치 공동체를 이끌어 가고 있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지켜야 할 규칙은 단 세 개뿐이다. 첫째, 일체의 폭력을 금지한다. 둘째, 중독성이 강한 마약을 금지한다. 셋째, 오토바이와 자동차 금지한다. 이 세 가지를 제외하고는 공동체 내에서 어떤 일을 하든 개인의 자유다. 크리스티아니아는 국적과 인종에 관계없이 이주를 원하는 모든 사람에 열려 있다. 68 학생 운동의 큰 기치였던 '모든 금지를 금지하라.'는 자유 정신을 투철하게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모두에게 열려 있는 프리 타운이라고 해도 나는 어쨌든 낯선 이방인이고 위태로운 여행자 신분이라 잔뜩 긴장한 채 마을로 들어갔다.

프리타운 크리스티아니아의 풍경들 1
 프리타운 크리스티아니아의 풍경들 1
ⓒ 한성은

관련사진보기


프리타운 크리스티아니아의 풍경들
 프리타운 크리스티아니아의 풍경들
ⓒ 한성은

관련사진보기


마을은 생각보다 아주 조용하고 한적했다. 길을 걷는 사람 대부분이 이곳 나 같은 관광객이었다. 모두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곳은 스스로 집을 짓고 사는 것은 괜찮지만, 토지 소유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크리스티아니아의 역사가 40년이 넘었지만, 최근 덴마크 대법원은 이 지역의 소유권이 정부에 있다고 판결했다.

공동체 주민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를 상대로 협상을 해서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토지를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기금 마련이 쉽지는 않은 상황이라 했다. 이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관광객 유치에도 힘을 쓰고 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도 외부인들이 마을에 들어와 구경하며 걷는 것을 불쾌해하지는 않았다.

자기 손으로 직접 집을 지었기 때문인지 집의 형태와 크기가 제각각이었다. 오직 도보와 자전거만 다닐 수 있는 마을 길은 예쁜 공원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예술인들도 많이 이주해서 살고 있어서 곳곳에 벽화도 많았다. 물론 마을의 특성상 모든 곳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거나 구석구석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수레가 달린 세발 자전거는 ‘크리스티아니아 자전거’라 불린다.
 수레가 달린 세발 자전거는 ‘크리스티아니아 자전거’라 불린다.
ⓒ 한성은

관련사진보기


크리스티아니아는 그들만의 작은 세상을 만들어 살고 있었다.
 크리스티아니아는 그들만의 작은 세상을 만들어 살고 있었다.
ⓒ 한성은

관련사진보기


마을 중심부에는 작은 광장이 있고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 있었다. 벼룩시장인가 싶어서 가까이 갔는데, 그곳에는 대마초를 파는 노점상들이 줄지어 있었다. 크리스티아니아는 마약을 금지하고 있지만, 대마초는 예외였다. 이중적인 잣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유럽 사람들은 우리보다는 대마초에 관대한 편이었다. 학계에서도 대마초의 유해성과 중독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덴마크 정부는 당연히 대마초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 문제로 인해 크리스티아니아는 항상 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대마초를 파는 사람들은 다들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고 있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로 대낮에 광장에서 버젓이 대마초를 팔고 있는 장면은 가히 충격이었다. 함부로 사진을 찍었다가는 험한 일을 당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어서 곁눈으로 흘낏 보고는 서둘러 거리를 빠져나왔다. 이곳 뿐만 아니라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대마초를 접할 기회가 많다. 하지만 해외에서 대마초를 피우는 것도 명백한 불법이므로 호기심으로라도 가까이하면 안 된다.

크리스티아니아를 나와서 구세주 성당(Vor Frelsers Kirke)으로 향했다. 이 성당을 찾은 이유는 첨탑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코펜하겐 전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코펜하겐 구세주 성당의 첨탑 전망대는 여타의 성당과는 다른 점이 있는데, 종루 계단을 따라 끝까지 올라가고 나면 다시 외벽에 돌출된 계단을 따라 그야말로 첨탑 끝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첨탑 외부에 설치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손끝, 발끝이 찌릿찌릿한 느낌을 받는다. 첨탑 끝 90m 높이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그 높이가 적당히 현실감이 느껴져서 수백 미터 낭떠러지보다 훨씬 무서웠다. 빙글빙글 탑을 따라 올라가면 계단 끝으로 갈수록 서로 비켜서기도 어려울 만큼 계단이 좁아진다. 급기야  첨탑 맨 끝에는 딱 한 사람만 설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구세주 성당의 첨탑
 구세주 성당의 첨탑
ⓒ 한성은

관련사진보기


두려움이 커지는 만큼 희열도 커졌다. 첨탑 끝에서 코펜하겐을 내려다보니 붉은 지붕을 얹고 있는 집들이 레고(LEGO) 블록처럼 서 있었다. 반듯하게 나누어져 있는 구획을 따라 지어진 집들과 잘 정비된 도로를 보니 시뮬레이션 게임 '심시티'가 생각나기도 했다. 혹시 이 모습을 보고 레고 장난감을 만든 것은 아닐까?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첨탑 꼭대기에서 코펜하겐의 조망을 실컷 감상하고 싶었지만, 무섭기도 했고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아서 얼른 자리를 비켜주고 내려왔다.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를 겨우 이틀이나 사흘 돌아본다고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유서 깊은 구시가지를 골목골목 누비더라도 그 도시를 오롯하게 느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럴 때는 가장 전망 좋은 곳에서 그 도시를 내려다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도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서서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으면 시간이 켜켜이 쌓인 흔적을 볼 수 있다. 어떤 곳이 최근에 만들어진 지역이고, 어떤 곳이 오랜 역사와 전설이 흐르는 지역인지 한눈에 구별할 수 있다. 코펜하겐 역시 운하를 중심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도시가 점점 성장해 나간 흔적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다.

레고 블록이나 심시티 같은 코펜하겐 시가지 풍경
 레고 블록이나 심시티 같은 코펜하겐 시가지 풍경
ⓒ 한성은

관련사진보기


이게 진짜 데니쉬 페스츄리라고 했다.
 이게 진짜 데니쉬 페스츄리라고 했다.
ⓒ 한성은

관련사진보기


다시 걷고 또 걸어서 코펜하겐 중심가로 향했다. 물가가 아무리 비싸다고 해도 여기까지 와서 그 유명한 데니쉬 페스츄리를 안 먹고 지나칠 수는 없었다. 유럽 어느 나라나 그렇지만 북유럽 국가들 역시 빵이 맛있기로 유명했다. 그리고 덴마크 하면 역시 페스츄리 아닌가! 여기저기 인터넷을 뒤져서 페스츄리 잘 만들기로 유명하다는 가게에 가서 페스츄리를 샀다. 뭔가 종류도 다양했고 저마다 이름이 있었는데 설명을 들어도 어떤 것을 먹어야 하는지 몰라서 그냥 맛있는 빵 달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받아 든 빵을 받아 들고 입 안 가득 우물거리며 코펜하겐 최대의 번화가 스트뢰게트(Strøget) 방향으로 걸었다. 코펜하겐 시청사 앞을 지나가는데 자전거가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네덜란드도 자전거 이용률이 높은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코펜하겐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자전거 전용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자전거 전용 신호등도 있었다. 모든 사거리에는 자동차를 위한 신호등과 함께 그것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자전거 전용 신호등이 있어서 자전거 이용자들은 그 신호를 보며 거리를 누볐다. 자전거가 워낙 많아서 우리나라처럼 적당히 알아서 다녔다가는 보행자와 충돌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베트남 호치민이나 타이완 타이페이에서는 신호가 바뀌면 거대한 파도처럼 출발하는 오토바이들을 보며 입을 다물 수가 없는데, 코펜하겐에서는 오토바이 대신 자전거들이 엄청난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이들에게 자전거는 운동이나 취미가 아니라 어엿한 교통수단이었다. 우리나라도 자전거 이용률이 이 정도로 높아진다면 심각한 교통 체증이나 도심의 대기오염 문제도 크게 개선될 것 같았다. 교통 체증 해소를 위해 엄청난 예산을 들여 매년 자동차 도로를 확장하는 것보다 코펜하겐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방법일 것 같다.

코펜하겐에는 자전거 전용 신호등이 따로 있었다.
 코펜하겐에는 자전거 전용 신호등이 따로 있었다.
ⓒ 한성은

관련사진보기


시내 중심가를 걷다가 덴마크에 대해서 크리스티아니아만큼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 준 인상적인 장면을 두 번이나 목격했다. 첫 번째는 분수대가 있는 광장에 설치되어 있던 커다란 사진전이었다. 자연과 여성의 몸을 주제로 한 사진전인 것 같았다. 다양한 인종의 여성들이 자연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사진이었는데 문제는 모든 작품이 누드사진이었다. 심지어 우리 사회에서는 노출이 금기된 신체 부위들도 가감 없이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광장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지나다니는 거리였는데, 우리나라였다면 상상도 하지 못할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것이다. 시민사회 운동의 일환인지, 예술가의 작품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여성의 누드 사진이 공공장소에 전시되어 있다는 자체만으로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가까이 가서 작품들을 보고 사진을 찍는 것만으로 괜히 주눅이 들고 눈치가 보였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오히려 사람들이 전시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보였다.

나를 깜짝 놀라게 했던 야외 사진전
 나를 깜짝 놀라게 했던 야외 사진전
ⓒ 한성은

관련사진보기


두 번째는 퀴어문화축제(Queer Culture Festival)였다. 코펜하겐 티볼리 공원 맞은편 광장에서는 성 소수자들의 인권 운동을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퀴어문화축제를 실제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각각의 부스에서는 축제와 관련한 다양한 행사를 하고 있었다. 알록달록 무지갯빛으로 꾸며진 광장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

TV에서 보던 퀴어 퍼레이드는 굉장히 요란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잔뜩 모여서 춤을 추고 있었는데, 이곳은 TV에서 본 축제와는 달랐다. 무지개 깃발이 걸려있지 않았다면 퀴어 축제라는 것도 몰랐을 정도였다. 축제에 참여한 사람들은 저마다 맥주나 와인을 손에 들고 음악을 들으며 여유롭게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그곳에 있는 누구도 성적 지향성을 기준으로 다수자와 소수자로 나뉘어 있지 않아 보였다.

직접 참여한 첫 번째 퀴어문화축제였다.
 직접 참여한 첫 번째 퀴어문화축제였다.
ⓒ 한성은

관련사진보기


여느 축제와 다를 것 없이 사람들이 모여 흥겹게 공연을 즐기고 있다.
 여느 축제와 다를 것 없이 사람들이 모여 흥겹게 공연을 즐기고 있다.
ⓒ 한성은

관련사진보기


코펜하겐 퀴어문화축제에는 소수자도 다수자도 없이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웠다.
 코펜하겐 퀴어문화축제에는 소수자도 다수자도 없이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웠다.
ⓒ 한성은

관련사진보기


덴마크는 1989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동성 간의 시민결합 제도를 도입한 나라이고 2012년에는 동성결혼 허용법이 의회와 왕실을 통과했다. 그러니까 덴마크에서는 '성 소수자'라는 단어 자체가 없는 것이다. 사실 코펜하겐 시민들이 실제로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보수적인 가치관을 가진 세력과 마찰은 없는지 내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들이 의회와 왕실로부터 성 다수자들과 똑같은 권리를 법적으로 부여받았다는 것만으로 자유와 인권을 향한 덴마크 사람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2016년 UN의 세계 행복 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에서 덴마크가 1위를 했다. 덴마크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스스로 참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직접 코펜하겐에서 이들의 삶을 보고 있으니, 이들이 누리는 행복이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덴마크에 보수 정권이 들어섰을 때 위정자들은 무법지대로 보이는 크리스티아니아를 철거하려고 몇 번이나 시도를 했다. 그런데 그때마다 공동체 주민뿐만 아니라 코펜하겐 시민들이 모두 뭉쳐서 강제 철거를 막았고, 결국에는 정부와 부지 매입을 위한 협상에 성공했다.

코펜하겐 시민들은 불법 여부보다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법 아래에 사람이 있는데 덴마크는 법 위에 사람이 있었다. 이들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의 국민이 된 것은 자유와 인권을 향한 치열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같은 보고서에 우리나라는 157개 조사국 중에서 58위를 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블로그 '타박타박 아홉걸음(http://ninesteps.tistory.com)'에도 동시에 게재되었습니다.



태그:#타박타박, #아홉걸음, #배낭여행, #세계일주, #덴마크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자란 저에게 아이들이 "선생님"이라고 불러줍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은 성실한 여행자가 되어야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