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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숲'하고 '처음처럼' 같은 글월을 남기기도 한 신영복 님은 스무 해 동안 옥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한창 푸르게 뻗어 나가던 스물일고여덟 살 무렵부터입니다. 어려서 배운 숨결을 젊어서 펼치려 할 즈음 날벼락을 맞은 셈입니다.

신영복 님을 감옥으로 끌고 간 정치권력은 수많은 사람을 감옥에 가두기도 했고, 목숨을 빼앗기도 했습니다. 감옥으로 끌려가지 않거나 목숨을 겨우 건사한 사람들도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쳐 1980년대를 지나는 동안에 푸른 꿈을 펼치기는 수월하지 않았습니다. 독재라고 하는 정치권력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했습니다.

어느 지루한 일요일 온종일 겨우 수필 한 편을 읽고 난 노인이 내뱉듯이 들려준 말은 "자기 집 뜰이 좁아서 꽃을 못 심는다나 뭐 그런 걸 썼어"라는 확실한 한마디였다. 화려한 단어, 유려한 문장에 결코 현혹되지 않는 그의 통찰은 그의 무식에서 온 것이다. (24쪽)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자기의 생각은 결국 자기가 겪은 삶의 결론이라고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어느 개인에 대한 이해는 그가 처한 처지와 그 개인을 함께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37쪽)

 겉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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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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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숲이 되기에 '더불어숲'이요, 늘 고이 흐르는 살림이기에 '처음처럼'입니다. 나 혼자서는 숲이 못 되고, 너 혼자서도 숲이 못 됩니다. 그러나 나나 너나 어느 한 사람이 스스로 먼저 작은 씨앗으로 뿌리를 내리기에 서로 즐거이 어우러지면서 짙푸른 숲으로 나아갑니다. 처음부터 크게 우거진 숲이 아니라, 처음에는 작은 씨앗에서 비롯하며 함께 어깨동무를 하는 숲이에요.

처음 품은 마음을 마지막에도 고이 품을 수 있기에 '처음처럼'입니다. 한결같을 수 있도록, 사랑스러울 수 있도록, 아름다울 수 있도록, 언제나 우리 스스로 우리 모습을 가꾸자고 하는 다짐인 처음처럼이라고 할 만합니다.

이 두 가지 다짐말은 어떻게 태어날 수 있었을까요? 괴롭고 아프던 스무 해 감옥살이에서 시나브로 길어올린 다짐말일 수 있습니다. 스물일고여덟 살부터 스무 해 동안 사회 바닥자리에서 숨죽이며 눌려야 했지만 이때에 스스로 새롭게 배웠기에 깨달은 다짐말일 수 있어요.

본다는 것, 관계있다는 것, 굉장히 중요합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단절된다는 것, 이것은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해요. 오늘날 자행되는 차마 못할 짓들이 대부분 보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49쪽)

신영복 님이 흙으로 돌아간 지 한 해입니다. 2016년 1월 15일에 흙으로 돌아간 신영복 님을 기리는 뜻에서 두 가지 책이 나왔습니다. 하나는 여러 매체와 했던 만나보기를 갈무리한 <손잡고 더불어>이고, 다른 하나는 그동안 따로 책에 묶지 않던 글하고 강연 자료를 엮은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입니다.

"폭력을 사용하여 강제하는 경우를 성폭행이라고 한다면 똑같은 행위를 폭력 대신 돈으로 강제하는 경우 이를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하는가?" 누이를 망쳐 버린 못난 오라비의 한 맺힌 질문을 잊을 수 없습니다. (199쪽)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를 읽으면 신영복 님이 감옥에서 만나서 삶을 새롭게 배우도록 일깨운 죄수 이야기가 흐르기도 합니다. 말장난일 뿐인 글을 읽고서 이 말장난에 사로잡히거나 휘둘리지 않는 늙은 죄수가 있었다고 해요.

신영복 님은 감옥에서 나온 뒤 명상을 배워 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되더랍니다. 그런데 명상 수업에서 시키는 대로 하기보다 감옥에서 으레 했듯이 '벽보기'를 했더니 외려 마음이 차분해지더라고 하는 이야기가 흐르기도 합니다.

신영복 님도 서울대를 나왔습니다. 그런데 스무 해 옥살이를 마치고 사회로 돌아와서 여러 사람들을 마주하고 보니, '서울대 나온 사람'은 너무 논리를 따지더랍니다. 그만 '논쟁을 하는 일이 실천이 되는' 모습을 흔히 보여주곤 하더라 하고 느낀다는 이야기가 흐르기도 합니다.

대개의 인텔리 출신들은, 특히 서울대 출신들은 모든 문제를 논리적으로 접근하려 합니다. 다른 사람과의 논쟁도 무조건 논리 정합적인 방식으로 전개하려고 하지요. 자연히 논의는 논쟁적이 되기 쉽고 소모적인 사투로 이어지는 경향을 띠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논쟁 그 자체가 실천이 되고 마는, 다시 말해서 실천적 성과는 없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369쪽)

냇물은 흐르고 흘러서 어디로 갈까요? 가만히 짚어 봅니다. 냇물은 골짜기에서 비롯합니다. 골짜기는 멧자락 한켠에 있습니다. 우리가 마시는 모든 물은 처음에는 깊은 멧자락에서 비롯하는데, 골짝물이 냇물이 되고, 냇물이 가람으로 됩니다. 가람은 개어귀를 지나면서 바다가 되어요. 이 바다는 바람을 타고 구름으로 되었다가, 빗물로 되어 다시 이 땅으로 찾아와요.

냇물은 가람이요 바다이며 구름이고 비인 셈입니다. 우리가 마시는 모든 물은, 또 우리 몸을 이루는 물은, 바로 냇물이자 가람이자 바다이자 구름이자 비라고 할 만합니다.

책더미 속에 귀뚜라미가 있나 보다. 아까부터 울었지만 지금에야 깨달았다. 기계공업의 생산구조를 투자율의 시각에서 보느라고 귀뚜리 소리마저 스치다니. (140쪽)

대전교도소가 새 집을 지어 이사한 후 가장 기뻤던 일은 산이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구속되고 난 후 16년 만의 일이었다. (299쪽)

"기계공업의 생산구조를 투자율의 시각"에서 보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느라 귀뚜리 노랫소리를 놓쳤다고 해요. 열여섯 해 만에 옮긴 다른 교도소에서는 산을 볼 수 있어서 기뻤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 생각을 마음에 품으면서 하루를 산다고 할 만할까 하고 곱씹어 봅니다. 우리는 곁에 무엇을 두면서 늘 바라보는가 하고 되새겨 봅니다. 신영복 님은 귀뚜리 노랫소리를 놓쳤구나 하고 깨달으며 '스스로 선 자리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며 생각할 적에 즐겁고 아름다운 삶'일까 하고 돌아봅니다. 갇힌 교도소라 하더라도 '산을 볼 수 있'는 자리가 삶에 얼마나 푸른 기쁨이 되는가를 온몸으로 배웁니다.

우리가 저마다 작은 씨앗이자 나무가 되어 '더불어숲'이 된다면, 사회뿐 아니라 마을과 집도 짙푸르게 달라지리라 봅니다. 우리가 서로 아끼고 보듬는 마음을 '처음처럼' 노래하면서 아침을 연다면, 우리가 선 보금자리부터 아름다움으로 깨어나리라 봅니다. 작은 한 걸음이 어깨동무하여 나아가는 큰 걸음이 되지 싶어요. 시냇물이 너른 가람이 되어 바다로 거듭나요. 바다에서 피어난 빗물이 온누리를 싱그러이 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신영복 글 / 돌베개 펴냄 / 2017.1.2.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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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사전 편집자로 일하면서, 전남 고흥에서 <사전 짓는 책숲집 '숲노래'>를 꾸립니다.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읽는 우리말 사전》《골목빛》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