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는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시리즈 기획 '사무실을 살려줘, 쫌'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15년 8월 진행한 시즌1에서는 사무실 근무 환경에 대해 다뤘고, 2016년 9월 시즌2에서는 '꼰대' 문제를 보도했습니다. 시즌3에서는 직장 내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문제인 플러팅(집적거림)에 대해 다룹니다. 상대의 의사에 반하는 집적거림의 문제점을 여러 회에 걸쳐 보도합니다. [편집자말]
Paye ton taf, Paye ton robe, Paye ta blouse…

최근 프랑스는 paye시리즈가 유행입니다. Paye, 돈을 내라는 말인데 무슨 돈을 내라는 걸까요? 시작은 'Paye ta shnek(여성의 값을 내라)'는 사이트입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는 성추행, 성차별 발언 피해자들의 증언을 익명으로 게시하는 사이트인데요. 이 사이트가 주목받기 시작하고 알려지면서 발전한 형태인 Paye ton taf(회사에서 겪는 성추행 혹은 성차별 발언을 게시하는 사이트), Paye ton robe(법조계 종사자들의 피해 증언사이트), Paye ta blouse(의료계 종사자들의 피해증언 사이트) 등 점점 직업별로 세부적으로 발전해 나가게 된 겁니다.

paye ton taf 사이트
 paye ton taf 사이트
ⓒ 'paye ton taf' 캡처

관련사진보기


내용을 보면 이렇습니다. 

"요즘은 여자들이 운전도 하는 시대야 - 업무차 방문한 농장에서 만난 님므라는 도시에 사는 농부가"
"당신은 게다가 이쁘기까지 하네요! - 면접을 보던 도중 면접관이 이력서의 내 사진을 보면서"

'이런 가벼운 농담이 어떻게 성희롱이고 성차별이라는 거지?'라고 생각하셨나요? 성희롱이라고 뭔가 단어부터 무시무시하게 느껴지면서 '에이, 이쁘다는 말은 칭찬이잖아' 싶으실 텐데요.

최근 프랑스에서도 녹색당 의원이자 하원의회 부희장이었던 '드니 보팽 사건'이 터지면서 단순한 '호감'의 표시와 성적 괴롭힘의 경계에 대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드니 보팽은 다수의 여성 피해자로부터 성추행으로 고소당했습니다. 평소 여성들의 권리를 위한 발언과 정치적 행보를 보여온 사람이라 추문에 대한 사회적 파장이 상당히 컸습니다.

보팽 의원은 상대여성에 대한 "단순한 호감의 표시"였을 뿐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이후 여러 언론 매체에서는 성추행과 성희롱, 호감의 표시를 구분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결론은 간단합니다. 바로 상대방의 '동의'가 있느냐 없느냐 입니다.

프랑스 일간지 <l'express>는 이런 기사를 내기도 했습니다.

상대 여성에게 말을 걸 때, 단 한 번이라도,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요소가 조금이라도 들어가 있는 발언이 해당됩니다. 여기서 여성이 거부의사를 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발언이 계속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여성이 거부의사가 없었다구요? 그래도 '아닙니다'. 보통 대다수의 남자들로 구성된 일터의 위계질서에서 대부분의 여성은 높은 확률로 쉽게 거부의사를 표시할 수 없는 약자의 입장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성의 답변이 없었다면 그건 거부의사의 표시로 봐야합니다. 만약 여성이 원했다면 그들은 '예스!'라고 말할 능력이 있는 존재들입니다. '예스'라고 하지 않았다구요? 그럼 당신이 마음에 안드는 겁니다.

상대방의 확실한 동의 없다면 그건 '성폭력'

 상대방의 명확한 동의가 없었다면, 당신은 성폭력을 저지른 겁니다. 적어도 프랑스에서는 그렇습니다.
 상대방의 명확한 동의가 없었다면, 당신은 성폭력을 저지른 겁니다. 적어도 프랑스에서는 그렇습니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나는 단순한 호감의 표현이었는데 상대방에게는 성희롱 혹은 성추행으로 다가왔을까? 호감과 성폭력을 구분할 수 있는 간단한 문장이 있습니다. '과연 상대방의 의견을 고려했는가?' 아마 스스로 대답할 수 있을 겁니다. 상대방의 명확한 동의 의사가 없었다면, 그렇습니다. 당신은 성폭력을 저지른 겁니다. 적어도 프랑스에서는 그렇습니다.

사실 이 드니 보팽 사건보다 앞서, 프랑스 사회에서 직장 내 성폭력의 심각성을 사회적으로 인지시키는 전환점이 된 사건이 있는데요. 바로 유명한 도미니크 스트라우스 칸 사건입니다. 프랑스는 'DSK스캔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총재였던 그는 지난 2011년 미국 뉴욕의 한 호텔 직원 성폭행 미수 혐의로 체포되어 사퇴했습니다.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상대방의 동의 없이 성폭력을 시도했던 DSK 사건이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이후, 프랑스에서는 "내가 혹시 DSK하니?" "DSK하고 싶은 건 아닌데 말이야..."라는 말이 한동안 유행했습니다. 직장 내의 상하관계를 이용한 상대방의 동의 없는 '호감 표시'가 성희롱 혹은 성추행으로 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럼 프랑스 사회에서 바로 이런 성폭력이 벌어지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볼까요? 피해자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할 수 있습니다. 먼저, 자신이 고용한 사람들의 업무환경에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사업주, 노조대표, 회사 메디컬센터의 의사, 일반 의사, 노동조정관이 각각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집니다. 

먼저 사업주는 피고용인의 건강과 권리를 보호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으며, 피해 사실을 인지한 사업주는 반드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책임을 다하지 않을 경우 사업주는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의 모든 사업장은 노동조합 혹은 사업장의 크기별로 직원들을 대표하여 고용주에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위원회를 반드시 구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피고용인의 투표로 선출된 대표에게 피해 사실을 알릴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회사 내의 메디컬 센터 의사에게 상담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피해자의 사례를 알게 된 의사는 반드시 해당 기관에 신고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피해자는 이 외에도 일반 개인 의사에게도 피해사실을 알릴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의료시스템은 국민 개개인이 모두 자신의 주치의를 지정하도록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일반 의사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면 역시 해당 기관에 신고를 해야합니다. 노동부에 속해 사업장의 부당한 해고나 피고용인의 권리 침해를 감시하는 노동 조정관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여러 단계의 조치 외에도 해당 행위는 법적으로 제재 가능합니다. 여기 몇 가지 판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① 판례번호 Cass. Soc. 28 janvier 2014, n°12-20497
직장에서 해고된 프랑수와씨는 자신의 해고사유가 부적절했으며 이를 근거로 실업급여 등 혜택이 박탈된 데 재심의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프랑수와씨가 해고당한 이유는, 사무실에 최근 채용된 젊은 여직원 멜린다씨에게 '사무실에서 다른 직원들 없이 단둘이 만나고 싶어'라는 내용의 자필 편지와 꽃다발을 여러 번 보내고, 그가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이런 행동을 고집했고, 나이 차이에 따른 압박을 가했으며, 피해자에게 괴롭힘 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재판부는 명시했습니다. 프랑수와씨의 소송은 1심과 2심을 거쳐 최종심까지 진행됐는데 최종재판부는 프랑수와씨의 해고는 정당하다며 패소판결을 내렸습니다.

② 판례번호 Cass. Soc. 12 fevrier 2014, n°12-26652
직장상사 미스터 X씨는 인턴 후 회사에 정규채용된 마담 Y씨에게 '너의 벨벳 같은 입술에 입맞춤을 가득 보내면서, 좋은 하루 되길 바라'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이후 마담 Y씨는 직장 내 성희롱의 요소가 있다고 고소했고, 법원은 '성희롱 요소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2심 판결을 파기하고 '성희롱 요소가 확인된다'라며 재심을 주문했습니다.

프랑스 노동법 L1152-1조는 근로자의 권리와 존엄성을 침해하고 신체적·정신적 건강 손상 및 직업상 장래를 위태롭게 할 위험이 있으며 근로 조건의 악화를 목적으로 하거나 달성하는 행위를 처벌하고 있습니다. L1152-2조 역시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정의하고 있습니다.

"근로자의 권리와 존엄성을 침해하는 이 행위의 어떠한 피해자도 제재와 해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특히 급여와 직무 그리고 조직 재배치, 직무의 부여, 직업적 승진 혹은 근로계약의 재조정 등의 영역에서 직·간접적 차별 조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 행위를 구분하는 기준은 굉장히 세분화 되어 있고 다양합니다. 보복조치로 근로자의 역량을 뛰어넘는 과도한 업무를 할당해서 지속적인 실패를 초래하거나 직업을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유발하는 경우, 피해자가 스스로 그만두도록 전략적인 상황을 만드는 경우, 해당 직무가 아닌 생소한 직무를 부여하는 경우, 대화를 거부하거나 업무에 필요한 정보를 고의로 누락하여 피해자를 고립시키는 경우, 상호 합의 없이 반말을 하는 경우, 업무시간이 끝날 때즈음 긴급한 요청을 하는 경우, 휴가를 써야 하는 기간이 임박해서 휴가를 삭제해 버리는 경우 등등 피해자의 권리침해를 막기 위한 다양한 기준이 있습니다.

하지만 법은 마지막 최후의 수단입니다. 그 전에 앞서 Paye ta taf... 같은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증언하는 여러 사이트의 존재와 해당 사례들을 공론화하고 문제제기하며 화두를 던지는 언론, 그리고 사회 구성원 스스로가 '과연 나의 행동이 상대방의 동의에 반하는 행위인가 아닌가'를 스스로 인지하고 되물어 보고, 검열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먼저 필요합니다. 

이번 주제를 위해 직장을 다니고 있는 여러 프랑스인들에게 질문을 하면서 가장 많이 받았던 답변입니다.

"상대방의 동의가 없는 접근은 상상도 할 수 없고, 사람이니까 호감은 가질 수 있겠지만 회사 동료를 사적인 관계로 굳이 끌어들이고 싶지 않다. 직장동료란 단순히 같이 일을 하는 사람이고, 공적인 관계다. 연락은 회사 메일로 하고 그들의 개인 연락처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개인 연락처로 부적절한 연락을 한다면 그 다음날 회사에서 쫓겨날 것이다. 대체로 그런 분위기다."

[관련기사]
① 스무살 어린 부하직원과 '썸'? 당신은 공유가 아니다
② 부장님의 집적거림, 거절했더니 보복이 시작됐다
③ "1박2일 답사 가자, 나 믿지?" 집적대는 것도 가지가지


댓글9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지역네트워크부에서 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