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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현재까지 25년째 방송되고 있는 국내 최고 장수 프로그램인만큼 목록만이라도 훑기조차 쉽지 않을 엄청난 분량이라는 것.
<그것이 알고 싶다> 책표지.
 <그것이 알고 싶다> 책표지.
ⓒ 엘릭시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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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그리 많이 보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 매회 챙겨보진 않지만 '이번엔 무엇에 대해서일까? 궁금해 예고를 찾아보곤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SBS-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알)'다.

지난 토요일(2017)년 1월 21일.1061회)엔 '암살범의 압수리스트-미인도와 김재규'란 제목으로 1991년부터 26년 동안 지속되어온 '미인도 위작 논란'에 대해서 방송됐다.

아무리 많은 그림을 그렸기로 자신의 작품을 몰라볼까? 애초부터 천경자 화백(1924~2015)의 '자신의 그림이 아니'라는 주장에 믿음이 갔었다. 그래서 지난해 검찰과 국과수의 진작 발표가 실망스러웠다.

누군가 자신의 어떤 목적을 위해 어떤 조치를 했을지 모른다는, '풀리지 않는 무언가'를 오래전부터 추측했던지라, 그래서 더욱 궁금했던 터라 눈을 떼지 못하고 본 방송이다.

지난해 12월 10일에 방송된 '두 개의 밀실-세월호 화물칸과 연안부두 205호'편은 꼭 보고 싶었다. 그러나 보지 못해 돈을 지불하며 다시보기를 했다. 어지간해선 다시보기에 돈을 쓰지 않아 아이들은 때때로 불만이다.

'그알'은 이런 내가 무료로 풀리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볼 정도로 좋아한다. 세월호 사건이나 미인도 위작사건처럼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들, 그러나 풀리지 않고 있는 무언가를 시청자들도 추적하게 하고, 사건의 진실 규명에 관심 두게 하기 때문이다.

미인도 위작사건도 마찬가지. 이제까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김재규(1926~1980)와의 관련은 충격이었다. 방송 덕분에 비로소 지난 26년간의 위작 논란, 그 이유가 훨씬 명쾌하게 이해됐다.

아마도 지난 토요일 '그알'을 본 사람들은 느꼈을 것이다. 미인도가 반드시 진작이어야만 하는 누군가 만든 어떤 이유가 분명하게 있음을. 거대한 조직의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김재규란 인물이 우리에게 너무나 잘못 알려졌다는 사실을.

그렇다면 이제라도 하루 빨리 제대로 밝혀져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머잖아 위작논란 그 배후가 밝혀질 것이란 것을 말이다. 그리고 미인도 위작 논란이 오늘의 혼란스런 정국과 잇닿아 있음에 분노한 사람들도 많지 않았을까?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현실이다.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들은 바 없었던 사건들이 난무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사건의 구체적 진상을 알아보고 진실을 말하자는 1990년대 민주화의 시대정신과 함께 시작됐다. 그리고 이야기(하기)를 꺼리는 오늘날의 수상한 사회·정치적 분위기 속에서도 제압되기는커녕 오히려 은밀히 폭발하는 대중들의 앎의 의지, 대화 욕망에 부응해 사랑을 얻고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크게 주목을 받은 것은 다른 시사 프로그램들처럼 굵직한 사회현안들을 비판적인 시선에서 탐사 취재할 때가 아니라 거시적 안목이 간과한 범죄 사건들을 섬세한 톤으로 그려내고 촘촘한 서사로 정리할 때다. 가정내 성폭력, 사이코패스 범죄가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세상에 실체를 드러냈다. 군 의문사, 재야인사 장준하의 죽음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다.-10~12쪽.

그간 더러 '그알'을 보며 예전에 봤던 것들의 그 후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하고, 방송으로는 보지 못했으나 기억 속에 있는 사건들이 궁금하기도 했다. 워낙 유명한 사건들, 그러나 쉽게 풀리지 않고 있는 사건들을 주로 다뤘기 때문에 그간의 '그알'을 훑는 것으로 지난 우리 사회를 아는데 좋을 것도 같았다. 하지만 지레짐작만으로 다시보기를 포기했다.

2017년 현재까지 25년째 방송되고 있는 국내 최고 장수 프로그램인만큼 목록만이라도 훑기조차 쉽지 않을 엄청난 분량이라는 것. 인터넷이란 용어조차 사람들 사이에 통용되지 않던 까마득한 시절에 시작한 프로그램이니 초기의 자료들은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이런저런 지레짐작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왠지, 막연하게 아쉬웠다. 그런 '그알'이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엘릭시르 펴냄)는 방송 1000회를 기념해 나온 책이다.

출판사와 '그알' 제작팀이 우연한 자리에서 지난 '그알'을 되돌아보는 기록을 남기자. 그렇다면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를 고민했다고 한다. 크게는 국가 차원에서 작게는 개인차원에서 벌어진 범죄의 원인과 결과를 꼼꼼하게 되짚어 보는 책을 발간하자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고, 꼭 다뤄야 하는 28개의 주제를 선정했다고 한다. 이렇게 출발한 책이라고 한다.

1992년 3월 31일 첫 방송된, 영화 <그놈 목소리>의 소재가 된 이형호 유괴 사건, 2002년 3월 경기도 하남에서 머리에 공기총 6발의 탄환을 맞은 채로 발견된 여대생 살인사건, 수경사 아동학대 사건, 오대양 사건 등, 사건 발생 당시 특히 사람들의 충격이 컸거나, 쉽게 해결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한 사건들을 성격에 따라 7장으로 정리해 들려준다.

이에 더했다. 진행자들의 인터뷰와, 관련사건의 이해와 올바른 방향으로 추적을 돕는 여러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과 진단, 제작팀원들의 이야기와, 그동안의 방송 이야기 등을. 그리고 1회부터 1002회 요약까지. 책은 다양한 내용과 형식으로 '그알' 1000회를 기록했다.

세월호 관련 방송을 마치며 눈시울 붉힌 사연을 들려주는 김상중씨와 문성근씨의 각각의 인터뷰는 시간을 내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 (아마도)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방송 속사정과 개인의 소회, 지난 23년간의 정치적, 사회적 변화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방송을 만드는 건 PD라는 인식이 있지만, 90년대 초중반에는 내가 방송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던 분들이 있었던 것 같다. 홍순철 PD가 사교육 문제를 취재할 때 나한테 500만원 뇌물이 들어온 적 있다. 집에 갔더니 케이크 상자를 주면서, 방송국이라면서 누가 케이크를 배달했다고 하더라. 방송국에서 케이크를 보내다니, 하고 이상해하면서 열어봤는데 10만 원권으로 500만원이 들어 있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 '날 보러 와요'라는 연극을 보고 뒤풀이하러 학림다방에 갔는데 그 사건을 수사했던 형사들도 거기 와 있었다. 날 보더니 정말 때리려고 하더라. '그것이 알고 싶다'를 진행할 때 형사들이 무능했다는 식으로 몰아갔다고, 너무 얄미웠다고.(…) 진행하면서 책상에 걸터앉을 때도 있었다. PD에게 들었는데, 초등학교 선생님들로부터 "초등학생들이 문성근씨 흉내를 내어 자꾸 책상에 걸터앉아서 질문을 하니 문성근씨가 책상에 앉지 못하도록 해달라"라는 전화가 종종 왔다고…."(문성근씨 인터뷰에서)-92쪽.

지난날 우리 사회에 깊고 무거운 그늘을 드리운 사건들은 무엇일까?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할 사건 사고들은 진상규명과 대책마련에도 불구하고 왜 끊임없이 일어나는 걸까? 무엇들이 우리 사회를 힘들게 할까? '관심 둔 만큼의 답을 들려주는 책'으로 권하고 싶은 책들 중 한권이다.

덧붙이는 글 | <그것이 알고 싶다> (SBS-그것이알고싶다 제작진) | 엘릭시르 | 2015-12-01 ㅣ19800원.



그것이 알고 싶다

SBS그것이알고싶다 제작진, 엘릭시르(2015)


태그:#그것이 알고 싶다, #김상중, #문성근, #미인도 위작사건,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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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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