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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유학중인 학생으로 현재 프랑스 사회당 당원으로 있는 김중회 시민기자가 글을 보냈습니다.오독할 수 있는 곳만 고치고 나머지는 그대로 싣습니다. [편집자말]
이번 프랑스 대선 경선에서 대이변을 만든 브누아 아몽 후보의 홍보 문구이다. 브누아 아몽 후보는 이번 경선에서 35.21%의 예상보다 훨씬 높은 득표율로 1등의 자리를 차지했다.
▲ 프랑스의 심장을 뛰게하다 이번 프랑스 대선 경선에서 대이변을 만든 브누아 아몽 후보의 홍보 문구이다. 브누아 아몽 후보는 이번 경선에서 35.21%의 예상보다 훨씬 높은 득표율로 1등의 자리를 차지했다.
ⓒ 브누아 아몽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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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좌파 제 1당인 사회당에서도 대이변이 일어났다.

2012년 당시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로 바람잘 날이 없었던 프랑수아 올랑드 정권 4년간 시민들이 가졌던 사회당에 대한 기대는 꺾일 수밖에 없었다. 올랑드 당시 대선 후보가 2012년 5월 6일, 튈르에서 했던 연설에서 자신의 당선에 대해 '많은 이들이 기다렸던 순간이며, 젊은이들은 결코 맞이해보지 못했던 순간'이라고 말하며 '변화는 바로 지금'이라고 약속했던 것과는 달리 정반대의 시간을 보낸 프랑스 시민들은 결국 그로부터 등을 돌리고 말았다. 결국 그를 배출해낸 사회당 역시, 신뢰를 잃고 말았다.

미테랑이 만든 프랑스 복지 시스템을 잘 보완했었던 국무총리 조스펭의 2002년 대선에서의 예상 밖 참패 이후, 지난 15년 동안 사회당에선 '비행 청소년에 대한 군대식 교육 주장' 등 여러 논란을 빚어냈던 루아얄 현 환경 장관이나 '해고 조건 완화' 등을 직권으로 통과시킨 마뉘엘 발스 총리 등 그 동안 사회당이 가지고 있던 노선보다 공화국의 가치와 국가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했다.

또 기업 중심의 효율적인 경제 성장을 주장하거나 우파의 논리를 일부 받아들인 사회당 정치인들이 대선후보로 출마하거나 내각에서 자리를 차지했었다. '지금의 좌파'가 더 합리적일 필요가 있다는 주장과 함께 이제 '새로운 좌파'의 정의를 써나감과 함께 다른 가치를 받아들여야한다는 설득과 함께 올랑드 현 프랑스 대통령 등의 정치인들이 지금까지의 사회당의 담론과 정치 노선을 형성해왔다.

그러나 올랑드 정권 4년간, 정작 서민들의 '삶'은 바뀌지 않았고, 시민들이 그의 당선에 기대했던 '공화당식 반(反)서민 정책 청산'은 그와 그의 정치에 참여했던 수많은 내각 관료들과 국회의원들에 의해 '청산'이 아닌 '연장'으로 이어졌다. 지금은 사회당을 탈당한 유력 대선 후보 엠마뉘엘 전 경제장관의 '파리 시내 일부 영업시간 연장'이나 시민들의 가장 큰 분노를 일으켰던 '엘 코므리법(노동시간 연장, 해고조건 완화, 비정규직 확대)' 등 '좌파의 쇄신'이라는 명분하에 시민들의 살림살이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더욱이, 청년들의 빈곤은 극심해지고 정작 그의 '실업률이 줄었다'는 주장과는 반대로, 비정규직이 늘고 이로 인해 청년들의 안전 고용은 더욱 이뤄지지 못하는 등 프랑스 사회의 가장 큰 문제였던 '일자리' 문제마저 그의 '친기업 정책'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못했다. 정작 '새로운 좌파'를 주장했지만, 서민들에겐 그 역시 지난 공화당의 '반(反)서민 엘리트 정치인'들과 큰 차이가 없었던 '기득권 정치인'의 이미지가 강했던 것이다.

바로 이런 사회당의 이미지 때문인지, 사회당 후보들의 지지율은 예전같지 않았다. 명실상부 프랑스의 정부여당이자 제 1당인 사회당의 지지율은 대선후보들 중 5위에 그치는 데에 만족해야만 했다. 그나마 그 중에서 가장 1등이었던 올랑드 정권의 국무총리였던 마뉘엘 발스 후보가 설문조사에서 10% 가량의 지지율을 획득할 수 있었지만 그의 국무총리 재임기간 동안의 문제와 올랑드 정권에 대한 책임론이 작용하여 그 역시 사람들의 기대는 모으지 못했고 사회당의 앞길에는 걱정만 가득했다.

더 이상 자기 정치의 필요성도, 존재 가치의 이유도 확인되지 못한 사회당에 대한 언론의 비판과 사람들의 문제의식은 컸다. 졸지에 창당 이래 몇 차례 없었던 큰 고비를 맞이한 사회당 앞 길에서 당원들의 당의 미래에 대한 시름은 깊어만 갔다.

그러나 '흥행이 가능할까?'라는 의문 속에서 시작된 사회당을 중심으로 한 여러 정치세력의 연대체 'La Belle Alliance Populaire'의 대선 단일후보 1차 경선에서 대이변이 일어났다. 프랑스 전역에서 1,337,820명의 시민들의 참여로 이뤄진 완전국민경선에서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브누아 아몽이 35.21%로 7명의 후보 중 1등의 자리를 차지했다.

설문조사나 언론은 이번 경선이 시작할 때부터 노련한 기성 정치인인 발스 전 총리의 승리를 점치며, 그를 중심으로 다른 정당 후보들과 비교를 했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많이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브누아 아몽이 1차 경선 승리를 한 것뿐만 아니라, 각각 3등과 4등을 차지했던 아르노 몽뜨부르 후보와 벵상 페용 후보가 경선 전부터 반(反) 발스 노선이었고, 결과 발표 후 아르노 몽뜨부르는 곧바로 아몽 지지선언을 하는 등, 브누아 아몽의 당선 가능성은 매우 높아졌다. 경선 초기만 해도, 지지율이 낮은 후보에 머물렀던 그가 어떻게 1등을 거머쥔 것일까?

경선 초기, 지지율 7%에 머물렀던 아웃사이더

2016년 9월, 프랑스의 좌파 정치인 브누아 아몽과 미국의 좌파 정치인 버니 샌더스가 만나서 찍은 사진이다. 두 사람 모두 기성 정치권의 아웃사이더에서 시작하여 극적인 성장과 '진보 정치'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 브누아 아몽과 버니 샌더스의 만남 2016년 9월, 프랑스의 좌파 정치인 브누아 아몽과 미국의 좌파 정치인 버니 샌더스가 만나서 찍은 사진이다. 두 사람 모두 기성 정치권의 아웃사이더에서 시작하여 극적인 성장과 '진보 정치'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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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누아 아몽이 한국의 일부 언론들의 코멘트처럼 단순히 '더 급진적이고, 더 좌파적이며, 더 새로운' 인물에 그쳤다면 이번 경선에서 40여만의 표를 모으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미 그런 후보라면 공산당과 단일화를 이룬 '좌파전선'의 장 뤽 멜랑숑도 있고 '반자본주의'를 당명에까지 분명하게 써놓은 반자본주의신당(NPA)의 후보 등 사회당보다 좌파에 포진해있는 후보라면 충분히 찾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나 장 뤽 멜랑숑을 제외한 다른 후보들은 가시적인 지지율도 보이지 못하는 게 현실이며, 장 뤽 멜랑숑 후보 역시 그 동안 선거에 꾸준히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책적인 대안의 부족이나  지지율 10% 초중반에 계속 머무르는 데에만 그쳤다는 비판을 받는다.

단순히 프랑스 시민들은 '좌파적'이라는 정체성만으로 투표를 결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프랑스 좌파들을 '구태'라고 비판하며 사회당을 박차고 나온 전진(En Marche)의 '엠마뉘엘 마크롱' 후보가 프랑스 대선 주자 중 명실상부 TOP 3에 들었다는 점에서 시민들은 지금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키'와 분명한 '자기 정치', 무엇보다 '자신들에게 가까운 정치'를 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시민들의 좌우를 막론한 '기성정치에 대한 염증' 역시 큰 요인 중 하나였다.

수많은 요인들 중 시민들이 가진 '기성 정치에 대한 피로'는 현재 프랑스 정치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다. 프랑스 고등교육기관 중 엘리트 학교로 손 꼽히는 '그랑제꼴(Grandes Ecoles)' 출신들, 특히 '국립행정학교(ENA)' 출신들이 프랑스 정계를 비롯한 사회의 상층을 독점하면서 프랑스의 사회 불평등이 심화되었는데, 더욱이 위와 같은 학교들은 비싼 등록금으로 상류층이 아닌 학생들이 지원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여 더 큰 문제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위와 같은 학교들에 다니는 학생들이 다른 프랑스 청년들처럼 아르바이트를 해야하거나, 월세 걱정을 하거나 하지 않아도 되는 현실 등이 더욱 프랑스의 엘리트 정치인들을 민생과 괴리되게 만들었다. 그런 코스를 거친 정치인들, 특히 지난 올랑드 내각에서 정부 요인을 맡았던 정치인들과 노동개악 등의 정책을 밀어붙인 사회당 정치인들 대다수가 위와 같은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는 점에서 프랑스 시민들은 사회당에게서 존재 가치의 특별한 이유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사회당과 프랑스가 프랑스의 노동자들이나 서민들이 아닌 테크노크라트들에 의해 움직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유지가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통찰력있는 조언이었던 것이다.

반면 브누아 아몽은 위와 같은 사회당의 주류 정치인들과는 다른 코스를 밟았다. 다른 후보들과 다르게 그는 프랑스의 부르타뉴에 있는 국립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국회의원 보좌관 활동을 통해 정계에 입문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사회당의 청년 조직(현재는 별도로 운영되지만 원래는 사회당과 하나였다)인 Mouvement des Jeunes Socialistes(MJS)의 대표로 선출되며 천천히 정치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고 프랑스의 노동 정책 기틀을 닦은 정치인 마틴 오브리의 발탁으로 점점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올랑드 내각의 교육정책과 상업, 사회적 경제 정책을 담당하는 장관으로 발탁되었지만, 이번 선거에도 나왔던 아르노 몽뜨부르와 함께 그에 반기를 들며 장관직을 사임했다. 그리고 대선 후보 경선에서 1등을 얻은 지금까지 학벌의 도움없이 당에서 차근차근 성장한 정치인이었던 것이다. 그는 스스로 영국 노동당의 대표인 제레미 코빈을 자주 인용하며 자기 정치를 설명하곤 하는데, 제레미 코빈 역시 그와 비슷하게 당에서 차근차근 성장하며 몸소 현실정치를 부딪히며 배운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기성 정치인들이 민심과 괴리되는 모습을 극복하기 위해 인터넷을 통한 직접적인 소통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브누아 아몽이 프랑스 시민들의 지지를 받은 것은 단순히 그의 이력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가 가진 '새로운 아이디어'도 그 이유였다. '새로운 좌파'를 약속했지만 정작 '자기 정치의 부재'와 '민심과의 불통'으로 정치적인 원동력을 만들지 못했던 이들도, 언제나 그렇듯 선명한 가치와 분명한 좌파적 대안, 근본적인 변화와 혁명을 외치며 '개량주의 비판'을 이야기했던 이들도 프랑스 시민들에게 폭발적인 관심을 얻기엔 역부족이었다.

실질적으로 그들이 어떤 정치를 하고자 하는지, 그게 시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삶을 어떻게 개혁하는 지와는 동떨어져 있었고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비전의 부족함으로 항상 우파 정치인의 비판 요소가 되거나 현실의 성과를 만들기엔 힘에 부치는 것이 컸기 때문이다. 또한 설문조사에서 청소년들에게 가장 인기없는 직업이 '정치인'으로 꼽혔을만큼 정치인의 말만 앞선 모습들에 대한 불신을 넘어서려면 검증된 정책과 정확한 비전이 필요했다. 그런 점에서 브누아 아몽이 가진 비전이 프랑스 시민들에게 통할 수 있었다.

그가 다른 후보들과 차별화할 수 있었던 것은 미래 시대에 대해 준비가 된 그의 정책 기조였다. 브누아 아몽은 앞으로 다가오게 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 정책 프로그램들을 준비했다. 원래 프랑스가 항상 강세를 보였던 프랑스의 2차 산업이 위축되고, 환경에 대한 대비와 자원과 상품을 효율적으로 생산하거나 소비하기 위한 기술들의 발전이 급속도로 이뤄지면서 이에 대한 산업 시스템 변화에 대한 대응과 이에 맞는 정부 정책의 변화 요구가 거세져왔다.

그래서 브누아 아몽은 로봇세 도입과 이를 통한 전국민에 80만원 상당의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정책, 그리고 청년 실업과 인재난 문제를 대비하기 위한 청년수당 정책 등을 약속하며 그의 경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또한 프랑스 전기 생산의 과반을 차지하는 핵발전소의 폐기를 약속함과 동시에 화석연료(디젤)를 통해 발전되는 전기 퇴출을 약속하고 그와 더불어 지역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지속가능한 에너지 생산 프로젝트를 도입하는 것을 대안으로 내세웠다. 또한 현재 파리 대중교통에 상용화 된 전기 자동차를 보다 대중에게 상용화하는 정책 등 기술 발전을 통한 경제 활성화 대책을 약속했다. 이 밖에도 국민투표 활성화나 민주주의 개혁을 위한 근본적인 정책들을 제시하며 그의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브누아 아몽의 프로그램은 세 번의 토론을 통해 검증의 심판 위에 오를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제안은 프랑스 시민들에게 설득력이 생겼고 결국 마지막 토론은 그의 승리로 끝났다(방송국 설문조사에서 토론에서 가장 합리적이었던 후보로 브누아 아몽이 꼽혔음). 그리고 그 다음 주말에 있었던 선거에서 승리했다.

설문조사에선 마뉘엘 발스나 아르노 몽뜨부르와 같은 노련한 정치인들에게 한없이 밀렸던 그가 예상 밖의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당선에는 사회당에 실망했었던 기존 사회당 지지자들과 '분노한 청년들'의 역할이 가장 컸다. 실제로 청년들의 인구가 더 많은 지역구의 개표 결과가 전체 평균보다 브누아 아몽의 지지율이 10%가량이 더 높을 정도로 청년들과의 소통과 그의 정책이 성공했음을 증명해냈다. 무엇보다 당권파의 패권에 대한 비판 역시 컸던 것이 한 역할을 했다.

4일 앞으로 다가온 결선 투표, 그 이후에 사회당은 어떻게 될까?
프랑스의 좌파 제 1당인 사회당을 필두로 한 중도 좌파, 좌파 정당들의 연대체인 La Belle Alliance Populaire의 단일 경선 로고이다.
▲ 프랑스 좌파 단일후보 경선 프랑스의 좌파 제 1당인 사회당을 필두로 한 중도 좌파, 좌파 정당들의 연대체인 La Belle Alliance Populaire의 단일 경선 로고이다.
ⓒ lesprimairescitoye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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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프랑스 좌파에게는 결선투표만이 남았다. 사회당의 당권파로서 올랑드 정권의 총리였던 마뉘엘 발스는 '정의로운 프랑스'를 만든다는 캐치프레이즈로 프랑스 시민들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결선에 도전하고 있고, 또 다른 한 편에서는 사회당의 아웃사이더였던 브누아 아몽이 기적적인 승리를 위해 준비 중에 있다.

이번 경선에서 브누아 아몽과 경쟁했던 아르노 몽뜨부르는 적극적으로 그를 지원해주는 행보에 나섰다. 또한 그의 정치적인 은인이었던 마틴 오브리 현 릴 시장은 그를 만나 그의 승리를 응원했다. 이렇듯 올랑드 정권 4년 동안 침체에 빠졌던 사회당이 브누아 아몽의 신승으로 역전 드라마를 쓰자 시민들의 관심이 다시 쏠리고 있으며 사회당 주변에서는 사회당이 혁신하는 데에 대한 기대가 솟아오르고 있다.

이와 더불어 공화당의 '대처리스트' 피용후보와 국민전선의 '포퓰리스트' 르 펜 후보를 저지하고 사회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한 대외적인 구도 재편에 대한 가능성도 꾸준히 떠오르고 있다. 사회당과 멜랑숑, 마크롱을 중심으로 한 좌파 단일후보 요구가 있었던 와중에, 지난 미테랑 대통령 당선의 경우처럼 좌파전선과 공산당의 단일후보인 장 뤽 멜랑숑과의 연대론이 먼저 떠올랐다. 이를 인식한 듯 멜랑숑 후보는 이에 대해 '급진적인 좌파를 대변하는 브누아 아몽의 당선을 축하하며 언제 한 번 커피라도 마시자.'는 말을 트위터에서 꺼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본인이 사회당과 타협할 일은 절대 없다'며 연대론에 대한 이야기는 단번에 일축시켰다.

어찌되었건 사회당 경선에서 예상치 못한 역전 드라마가 쓰이면서 사회당의 고갈된 생명력에 대한 걱정은 불식되었다. 그러나 오히려 한 편에서는 올랑드 정권의 실패에 가장 책임이 있는 마뉘엘 발스 후보가 결선 투표에 올라간 그 자체가 문제라는 비판도 존재했다. 3위에 위치한 아르노 몽뜨부르 후보와 10% 가량의 격차를 벌이며 결선에 올라간 마뉘엘 발스 후보가 숱한 비난과 심지어는 '밀가루 폭탄'과 '뺨 테러'까지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지지율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이번 경선 구도에서 마뉘엘 발스 후보와 그를 제외한 다른 사회당 후보들의 연대로 발스 낙선의 긴장감이 높아지자 그의 지지자들이 결집한 것이라는 분석도 존재한다.

한편 이번 결선 투표는 오는 29일 일요일 오전 9시부터 시작되며 7시에 종료된다.


태그:#프랑스, #사회당, #좌파, #급진파, #브누아 아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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