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의 푸른 꿈>은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원조 걸그룹격인 '김시스터즈'를 조명한다.

<다방의 푸른 꿈>은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원조 걸그룹격인 '김시스터즈'를 조명한다. ⓒ 인디라인


바야흐로 걸그룹의 시대다. 매주 가요프로그램마다 데뷔 무대를 갖는 걸그룹이 한두 팀씩은 된다. 1990년대 말 SES와 핑클을 시작으로 본격화된 걸그룹 '리그'는 10여 년이 흘러 원더걸스와 소녀시대의 양자 대결로 정점을 찍었다. 최근의 대세 걸그룹이라면 'TT'로 인기몰이 중인 트와이스나 아이오아이 정도를 들 수 있겠다. 점점 더 많은 걸그룹들이 다양한 콘셉트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며 경쟁은 치열해지고 수명은 짧아진다. 올해로 데뷔 6년 차를 맞은 AOA는 최근 방송에서 "우리와 같은 해 데뷔한 걸그룹이 70여 팀이나 됐다"며 "그중에서 지금까지 활동 중인 팀은 헬로비너스, 피에스타, 크레용팝 정도"라고 했다.

국내 걸그룹의 기원을 찾다 보면 일제 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39년 일본 동경군인회관에서 열린 조선악극단 공연 전단 속 '저고리 시스터즈'라는 이름이다.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여성 가수들이 모인 저고리 시스터즈는 '눈물 젖은 두만강'의 가수 김정구와 함께 일본 공연 무대에 올랐다. 애초에 그룹으로 기획됐다기보단 프로젝트팀 형식의 걸그룹이라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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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고리 시스터즈를 거쳐 간 가수 중에 이난영이 있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영화 <다방의 푸른 꿈>은 그가 만든 '진짜 원조' 걸그룹, 바로 김시스터즈에 대한 이야기다. '목포의 눈물'로 유명한 이난영은 '오빠는 풍각쟁이야'의 작곡가 김해송과 결혼했다. 이후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가세는 기울었고 김해송은 납북됐다. 이난영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자신의 두 딸 숙자와 애자, 그리고 조카 민자를 미8군 무대에 올렸다.

불과 열 서너 살의 나이에 데뷔한 이들은 입소문을 탄 끝에 스무 살 즈음이던 1959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진출했다. 이후 김시스터즈는 라이프지 특집 화보의 주인공이 되었다. TV쇼 CBS <에드 설리번 쇼>에는 (비틀즈보다도 많은) 22회나 출연했다. 미국 내 1인당 국민소득이 2076달러였던 시절, 김시스터즈는 스타더스트 호텔에서 1만 5000달러의 주급을 받았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네 번째 고액 납세자가 됐다. 그들의 미국 진출은 국내 걸그룹 사상 최초이자, 지금까지를 통틀어 가장 성공적이었다.

영화는 세 자매 중 막내인 민자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1941년생. 일흔이 넘은 나이의 그는 김시스터즈의 결성과 활동 과정을 파노라마처럼 회상하며 아이처럼 해맑게 웃는다. "부끄럽기도 했지만, 무대에 서는 게 정말 행복했다"는 그와 자매들은 음악가 집안에서 자연스레 음악 천재로 자랐다. 열 가지도 넘는 악기를 다룰 줄 알았고, 새로운 악기를 접하면 금방 익혀 연주할 수 있었다. <K팝 스타>나 <슈퍼스타K>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들과 비교해도 단연 돋보일 만한 천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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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자의 인터뷰 외에 러닝타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김시스터즈의 공연 무대다. 그중에서도 <에드 설리번 쇼> 속 공연 장면들은 이들이 어떻게 미국의 톱스타가 되었는지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아름다운 음색과 완벽함에 가까운 하모니는 말할 것도 없고, 무대를 장악하는 퍼포먼스와 특유의 흥은 놀라울 정도다. 정해진 안무 따위 없이 스윙 템포에 몸을 흔드는 이들의 모습에서는 음악을 대하는 날것으로서의 환희가 그대로 전해진다. 익살스러운 표정과 몸짓으로 웃음을 자아내는가 하면, 아일랜드 출신인 사회자 에드를 위해 백파이프 연주 무대까지 꾸민다. "우리 병사들을 기쁘게 해주다가 직접 우리나라에 왔다"며 김시스터즈를 반긴 미국인들 사이에서, 어느새 그들은 신선한 해외 뮤지션이 아닌 익숙한 미국 팝 스타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음악이 더는 음악 그 자체만으로 존재할 수 없는 지금의 현실에도 영화는 적지 않은 시사점을 남긴다. 그리고 이는 섹시나 큐트, 걸크러시 따위의 미명 하에 '기획된' 걸그룹이 아니라, 멤버 개개인의 음악성과 개성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걸그룹에 대한 갈증이기도 하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재즈 클럽에서 여전히 남편과 함께 공연 무대에 오르는 민자, 김시스터즈를 기억하며 '뮤지션'이자 걸그룹으로 고군분투 중인 미미 시스터즈와 바버렛츠. 반세기의 세월을 뛰어넘어 이들 사이에 보이는 영화 속 연결고리는 퍽 다행스럽다. '무대'에 앞서 '음악'을 하는 걸그룹, '퍼포먼스'가 아니라 '흥'에 취하는 관객 사이의 교감은 언젠가 다시 이루어질 수 있을지 모른다. 영화 <다방의 푸른 꿈> 속 '푸른 꿈'의 실체는 바로 거기에 있다. 오는 2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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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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