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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2016 오마이뉴스 청춘! 기자상 - 청춘, 르포하다' 우수상 수상작입니다. 곽민서·김미성 기자는 SRT 도입으로 위기를 맞은 무궁화호에 직접 올랐습니다. 시민들의 입을 통해 국가가 감당해야 할 '착한 적자'의 필요성을 설명했습니다. 이 기사는 지난해 말 작성됐습니다. 해당 시점을 고려해 읽어주세요. [편집자말]
수서역 SRT가 정차한 모습
 수서역 SRT가 정차한 모습
ⓒ 김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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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타는 느낌이에요."

직장인 김영진(회사원, 가명) 씨는 SRT(Super Rapid Train, 수서에서 출발하는 고속철도)에 처음 몸을 실었다.

"의자도 뒤로 부드럽게 젖혀지고 승차감도 좋네요."

김씨는 평소 고향 대구로 내려갈 때 KTX를 탔다. 그러나 앞으로는 계속 SRT를 탈 것이라 말했다.

SRT는 철도공사가 지분 41%를 소유하는 새로운 고속철도다. 서울역이 아닌 수서역에서 출발한다. 특히 강남, 분당 지역 주민들은 SRT 개통을 반기고 있다. 이전에는 고속철도를 타기 위해 서울역까지 가는 데만 40~50분이 걸렸다. 이제는 수서역까지 5~10분이면 충분하다. 강남에서 자취하는 대학원생 이연재 씨는 "(SRT는)이번이 세 번째예요. 역이 가까워서 계속 이용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SRT 특실 내부
 SRT 특실 내부
ⓒ 김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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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고 넓은 좌석, 자리마다 구비된 콘센트, '빵빵한' 와이파이 또한 SRT의 자랑이다. 그래서인지 SRT에는 태블릿PC를 켜고 영화를 감상하는 승객들이 유독 많았다. 게다가 승무원은 특실 손님에게 물과 요깃거리까지 일일이 챙겨주었다. 마치 비행기 비즈니스석을 타고 있는 듯했다. SRT 승무원 정인지(가명) 씨는 "특실 서비스는 일대일 위주예요. 항상 샘플을 저희가 직접 드리죠. 손님들이 대우받는 느낌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KTX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과거 경영 부담 등의 이유로 폐지된 KTX 마일리지 제도가 부활했고 기존 할인 제도도 확대됐다. 새마을호, 무궁화호 등 일반열차의 할인 폭도 커졌다.

이 경쟁은 언뜻 시민들의 만족을 높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애초 SRT를 만든 목적도 거기에 있었다. 공사의 철도 사업 '독점'으로 경영효율성이 떨어지고 있으니, 별도로 자회사를 설립해 내부 경쟁을 도입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SRT를 운영하는 (주)SR과 KTX를 운영하는 철도공사의 내부 구조를 보면 의문점이 생긴다.

(주)SR은 수익성이 높은 고속열차만 운영한다. 또 수서, 동탄, 지제를 제외한 노선의 80%를 KTX와 공유하고 있다. 열차 업무 대부분은 기존 공사 직원들의 몫이다. 철도공사 직원이 SRT 안내 방송을 해주는 상황이다. 대규모 자금 투자가 필요한 차량 정비, 차량 구입 등도 공사의 손을 빌린다. 굴릴수록 수익이 나는 구조다.

반면 철도공사는 고속열차와 일반열차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일반열차는 고속열차와 달리 굴릴수록 적자가 난다. 요금 때문이다. 무궁화호, 새마을호 등 일반열차 요금은 원가 대비 60~70%에 불과하다. 공사는 KTX가 벌어들이는 수익으로 그 적자를 메꾸고 있다. 이를 '교차보조'라 부른다.

이러한 환경에서 고속철 이용자라는 파이가 둘로 나누어져 버렸다. 공사의 적자는 점점 더 불어날 수밖에 없다. 실제로 SRT와 같이 KTX 요금을 10% 인하할 경우 연간 1천7백억 원의 적자가 예상된다고 한다. 할인가를 적용하지 않더라도 331억 원의 적자가 날 것으로 추정된다. 공사의 방만 경영을 해소하겠다며 도입한 SRT가 도리어 적자를 늘리고 있는 셈이다.

화살은 수익성이 낮은 일반열차로 돌아온다. 때마침 정부는 2017년부터 산간벽지지방 일반열차 예산 보조금(PSO: Public Service Obligation)을 30% 줄이기로 했다. 철도공사는 태백선, 정선선 등 벽지 노선의 16개 역을 무인화하거나, 해당 노선 열차 수를 절반으로 줄이는 방안을 발 빠르게 내놨다. 교차보조가 위기에 놓인 것이다. 

위기에 놓인 태백선에 오르다

민둥산역 시내 모습
 민둥산역 시내 모습
ⓒ 곽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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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 오르자마자 역한 지린내가 먼저 풍겨왔다. 자리로 가는 연결 칸 바닥은 헐거웠다. 차량 아래 선로가 언뜻언뜻 비쳤다. 어릴 적 이곳을 지나갈 때면 혹시 열차가 끊어지지는 않을까 무서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무궁화호는 20년 전 그 모습 그대로였다. 최첨단 고속열차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낡은 기차. 그러나 이른 아침 무궁화호는 '의외로' 북적이고 있었다.

카페 칸에 모여 앉은 고등학생들에게 물었다.

"기차 안에 학생들이 엄청 많은데 다들 어디 가는 거예요?"
"학교 가는데요."


양동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김윤기 군은 매일 아침 무궁화호를 탄다고 했다.

"7시 37분 차가 있는데 그다음 차는 9시 40분이에요. 이거 놓치면 학교 못 가요."

동생 내외를 보러 원주로 가는 길에 만난 설성숙 씨도 볼일이 있을 때면 항상 무궁화호를 탄다고 말했다.

"고속버스나 다른 교통수단은 안 타세요?"
"에이, 나이 든 사람이 무슨. 시간은 많고, 저렴하고. 우리는 당연히 무궁화호를 타지."


무궁화호를 선택한 사람들. 혹은 무궁화호가 선택이 아닌 필수인 사람들. 낡디낡은 태백선은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달리고 있었다.

오전 10시 35분 민둥산역에 도착했다. 관리사무소에 가서 노선 감축 계획에 관해 물었다. 관계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모른다'고 말했다. 아직 공문도 내려오지 않았고, 정해진 것도 없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는 그러면서도 말끝을 흐렸다.

"이번에 아침 차가 없어지면서 우리 역 이용자 수가 많이 줄긴 했지. 여기 분들은 아침 차를 타고 병원에 가셔야 하는데…"

태백선은 지난가을 파업을 겪었다. 현재는 6개 열차 중 4개만 운영 중이다. 그런데 노선 정상화 중 갑자기 정부 예산이 감축됐다. 나머지 2개는 언제 복구될지, 복구되기는 할지, 누구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는 민둥산역 주민들의 삶과 직결된 문제다. 실제로 민둥산역 주변에서는 병원을 찾아볼 수 없었다. 병원에 가려면 철도를 타고 원주까지 나가야 한다.

"불편해. 말도 못 해."

역 앞에서 마트를 운영하는 윤기복(가명) 씨가 말했다.

"아침 7시 5분 차 없어지고, 청량리에서 오는 4시 차도 없어졌어. 그 다음 차는 밤 10시 반에 있는데 그거 타고 집에 오면 새벽 두 시야."

그녀에게 되물었다.

"버스 타시면 안 돼요?"
"여기서 버스터미널까지 나가려면 콜택시로 만 원이야. 거기에 버스비 2만500원 더하면 3만 원 돈이지. 근데 철도를 타면 1만3800원이잖아. 돈 차이가 얼만데."


우문이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무궁화호를 타느냐고?

이는 비단 산간벽지 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산발 서울행 무궁화호에 다시 올랐다. 열차는 여전히 북적거렸다. 자리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대학생, 수능에서 해방된 고3 학생들, 나들이 갔다 돌아오는 가족들까지.

이곳에서 박성희(가명) 씨를 만났다. 그는 평택에 있는 회사에 다닌다. 통근을 위해 매일 밤 무궁화호를 탄다. 박씨처럼 수도권에서 통근하거나, 통학하는 시민들에게 무궁화호는 여전히 좋은 발이 되어준다. 그럼에도 노선 축소는 계속됐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물론 효율성, 즉 '최소 비용 최대 편익'을 생각한다면 그것이 옳은 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철도 적자를 문제삼는 시선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공공부문이란 게 뭐냐...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김철식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전문 연구원은 말했다.

"시민을 위한 공공 서비스는 효율성이라는 프레임을 가지고 가면 안 되는 영역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수익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국가가 담당해야 하는 거죠."

철도 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김명환 전 철도노조위원장
 철도 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김명환 전 철도노조위원장
ⓒ 김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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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환 전 철도노조위원장은 이와 관련해서 '착한 적자'를 이야기했다.

"우리 노조는 '착한 적자'라는 표현을 썼어요. 소위 돈이 안 되는 곳에서도 철도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철도공사가 부담하는 적자는 착한 적자죠. 다만, 열차 운영의 투명성, 민주적 의사결정은 항상 전제로 깔려야 해요."

이에 더해 김 전 위원장은 철도 민영화에 쓴소리를 냈다. 적자를 문제 삼으며 시작된 민영화가 오히려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철도는 통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죠. SRT 세 개 역 구간은 철도공사에서 충분히 운영할 수 있어요. 사업소만 하나 더 만들면 되니까요. 근데 지금은 SR이라는 회사를 아예 따로 만들었잖아요. 회사를 하나 더 만들면 임원, 관리자, 직원이 있어야 하고 여기에 필요한 관리비, 회계비 등 운영비가 또 들어가요. 그냥 똑같은 조직을 하나 더 만든 거예요."

그렇다면 이미 SRT 운영이 시작된 상황에서 한국 철도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그에게 방향을 물었다.

"이미 긍정적인 시도가 이뤄지고 있어요. 현재 서울 도시철도가 통합하는 과정에 있어요. 두 개의 공사가 각각 따로 운영 중인 1~4호선, 5~8호선이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될 거예요. 하나의 컨트롤타워가 만들어지면서 효율성이 높아지는 거죠."

이어 그는 "SR과 철도공사도 가능해요. SRT 지분 41%를 철도공사가 갖고 있기 때문에, 지금 가진 지분을 저희가 받으면 돼요.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보험·의료와 같은 공공분야 산업의 민영화 바람에 대해 고민해봐야 돼요. 공공성이 필요한 분야는 국가가 주도해서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해요"라고 정리했다.

그의 말에는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었다.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애담 스미스는 이렇게 답했다.

"국가의 마지막 의무는 공공사업과 공공기구를 건설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이는 사회 전체에 큰 이익을 주지만 어떤 개인이 그것을 건설하고 유지할 수 없다." -애담 스미스, <국부론>



태그:#청춘기자상, #청춘,르포하다, #SRT, #철도민영화, #민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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