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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준 화가의 대표작 '통일해원도' 판화(1985년)
 김봉준 화가의 대표작 '통일해원도' 판화(1985년)
ⓒ 김봉준 화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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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80년대 민중판화가 아직도 팔리는 이유"

- 목판화의 '칼'과 붓그림의 '붓'은 상당히 대조되는 그림 도구다.
"목판화가 칼로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이야. 목판화도 붓그림의 결과물이라고. 그런데 밑그림 작업을 뭘로 하느냐에 따라 미감이 다르다. 펜으로 밑그림하고 명암법을 써서 하면 서양식 판화가 돼. 날카롭고, 명암이 반사돼서 들어와. 그걸 이어받아 루쉰도 서양식 목판화를 했어. 반면 동양의 목판화는 붓으로 해. 붓이 가진 따뜻하고 신명나고 부드러운 것이 다 들어 있어. 나무맛과 칼맛, 붓맛이 다 들어오는 거지.

서양애들은 주로 펜과 칼 등 금속을 쓴다. 차갑고, 가늘고 뾰족뾰족한 바늘 같은 선들. 도시적이고 차가운 맛이 나지. 미감이 어떤가는 재료가 절반 이상을 결정해. 칼과 붓은 대비되는데 칼은 강하고 차가운 맛을 주는 반면, 붓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맛을 줘. 특히 붓은 물을 끌고 가. 물 맛이야. 먹물."

- 선생님의 목판화는 붓으로 밑그림을 그리는 건가? 
"그럼. 내 모든 목판화는 붓으로 밑그림을 그리지. 그래서 다르다. 내 1980년대 목판화는 여전히 사랑받고 있어. 그것을 생업 수단으로 삼기도 하고. 지금도 1980년대 민중판화가 팔린다고. 세다는 판화는 사라져도 말이야. 저거 보라, 부드러운 판화도 있다, 이거야."

- '붓맛'이라고 표현했는데, 붓이 가진 미학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일단 표현의 결과로 나타난 게 구성지고, 푸지고, 따뜻하고, 공동체적이야. 관계론적이라고도 할 수 있지. 붓이 가진 선을 가지고 비교해보자. 서양의 선은 이 점에서 이 점을 이어가면서 선이 하나 생겨. 그런 점에서 이 선은 존재 자체로 인식돼. 서양의 선은 '거기 있음'이야. 반면 동아시아에서 붓은 이 점에서 이 점으로 가는, 이동하는 움직임으로 봐. 그래서 더 살아 있는 선으로 보이지.

이런 선맛을 보면 서양사람들이 놀라. 그들은 딱딱한 매체니까 그런 느낌을 못 갖는다고. 그러다가 동양의 선필이나 일필휘지를 보면 놀라는 거지. 철학의 차이만큼 물질적 표현에서도 차이가 있어. 서양은 존재론적이라면 동양은 생성론적이지. 내가 앞서 붓은 쥐꼬리처럼 사라진다고 했잖아. 그거는 내 얘기가 아니라 일본의 근대미학자가 한 얘기야."

- 스스로 조선시대 풍속화가 김홍도나 신윤복을 계승했다고 생각하나?
"계승 발전해야 한다고 보고 그쪽 공부를 계속 해왔어. 산속에 처박혀 있으면서 풍속화와 산수화, 인물화의 전통을 훑었다. 그러면서 그 뿌리가 고구려 벽화라는 걸 알게 됐어. 그래서 고구려 벽화를 공부했지. 우리 미술의 주류는 고구려 벽화, 불화, 민화, 풍속화, 진경산수화, 인물화지 사군자나 관념산수화가 아니야. 정선의 산수화도, 신윤복·김홍도의 풍속화도 쇠락했어. 국운의 쇠락과 운명을 같이 한 거지. 토대가 무너지는데 예술이 살아숨쉬겠어? (예술의 운명은) 물적 토대와 관련이 깊어. 누가 사주고 지지해줘야지 그리지."

- 우리가 흔히 한국화, 동양화라고 부르는 것과 작가의 붓그림은 어떤 차이가 있나?
"우리 미술의 주류를 받아들이지 않고 비주류 커리큘럼만 배운 거야. 일제의 잔재라고 봐. 우리 식의 주체화, 근대화가 안 돼서 그렇지. 그런 거를 가르치는 선생이 대부분 일본에서 공부하고. 장인은 사라지고. 일본 미대를 나온 사람이 교편을 잡고, 그 제자가 다시 학생들을 가르치고. 초기 미술한 사람들이 대부분 그런 파들이야. 일본 화풍에 채색화지. 우리 미술의 본맥, 주류는 고구려 벽화, 불화, 민화, 풍속화, 인물화, 진경산수화야. 그것은 닥지에다 황모 전통으로 그린 거지."

김봉준 화가의 '5.18' 판화.
 김봉준 화가의 '5.18' 판화.
ⓒ 김봉준 화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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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한번 상실하면 한 세기를 노력해야 해"

- 붓그림의 전승이 끊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식민지 때문이야. 식민지 전통이 무서운 거야. 나라를 잃었다는 것은 단순히 국가 권력을 잃고 자기 군대가 없어서 외교권을 상실하는 데만 국한되는 게 아니야. 식민지가 끝나면 나라는 금방 되찾을 수 있지만, 문화는 한번 상실하면 한 세기를 노력해야 해. 한 세대 가지고는 안 된다고. 우리는 우리 문화의 전통을 인문학적으로만 얘기했지 장인을 기르지 않았어. 인문학자는 많은데 장인이 없어. 개탄스러워. 음식을 먹고 간 보는 사람은 많은데 우리 음식을 더 맛있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그걸 만들 수 있는 사람을 키우지 않아서 그래.

풍속화를 연구한다는 사람은 얼마나 많아. '조선 칼은 아름다워', '조선 칼의 역사는 이래' 이런 게 인문학이야. 장인학은 보검을 잘 만들어 그것을 어떻게 잘 쓰게 할지에 관한 거지. 그래야 보검이 보검답게 역할을 할 수 있는 거고. 그런데 그것을 안 키운 거야. 인간문화재 제도가 있지. 그런데 옛날 것과 똑같이 하래. 장인이 시대의 내용을 담으면서 자기 나름대로 창의적으로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지. 그래야 문화가 살아숨쉬지. 그런데 옛날 것 그대로 하래. 그거는 기계가 되라는 거야. 영혼이 없는 장인이 되라는 거지.

장인이 없어 노동의 숙련이 무너졌어. 아이디어만 가지고 예술하려고 해. 육체와 노동이 혼일일체가 되어야지. 지금 같은 문화재 관리는 완전히 죽은 나비를 유리관에 넣어놓고 '이게 나비입니다'고 하는 식이야. 나비가 살아서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한데 말이지."

- 이번 붓그림들을 '역사풍속화'라고 이름붙였는데 어떤 의미에서인가?
"풍속화, 진경산수화, 인물화 등의 전통을 계승하고, 그것을 더 발전시켜서 오늘날의 역사적인 내용을 서사적인 기법으로 재창조해 보겠다는 의미가 있지. 옛날 풍속화와 다르게 지금 시대의 서사화로 그림을 그리고자 했어. 시서화(詩書畵) 정신도 얘기하고 싶었어."

- 글과 그림이 같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전통은 서화동류(書畵同類)야. 서체와 화체는 같은 류에서 나온다는 거야. 글씨나 그림은 같은 붓으로, 같은 종이에 쓴다는 거지. 옛날에는 서당에서 글씨를 연습하다가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그리다가 글씨를 썼어. 한 화첩에 글씨와 그림이 같이 섞여 있지. 그 이유는 간단해. 모체문화가 같아서다. 고대의 어미가 같다는 거다. 암각화, 갑골문자 등을 보면 글그림 시대야. 그림 같은 글자, 글자 같은 그림이지. 그래서 전달된다고. 기호가 된 글그림 시대, 상형문자 시대야. 그림 따로, 글씨 따로, 문양 따로 있지 않았어."

- 글과 그림이 함께 있으면 어떤 미학적 효과가 생기나?
"어머니가 같으니까, 즉 문화가 같으니까 닮은 데가 있어서 서로 섞여 있어도 잘 어울려. 문화가 서로 만나면 문화의 '분화발전'만 가져오는 거는 아냐. 혼이라는 문화가 같이 온다고. 그게 시서화야. 동아시아에서는 시서화 문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이것을 발전시켰어. 반면에 서양에서는 시서화 문화를 버린 거야. 건축문화, 도시문화 형태가 그렇게 분화하고 서로 섞일 수 없는 방식으로 '분화발전'만 해왔어.

하지만 우리에게는 시서화가 어울려. 내 그림을 보면 알 수 있어. 그림 안에 시가 있어. 시심이 중요해. 그 시심이 글씨와 그림을 하나로 통합시켜 준다고. 시적인 양식으로 말이야. 간결하면서 함축미 있는 그림과 그 시적인 인식론이 같이 들어와서 서예미가 자연스럽게 생겨. (그림이) 간결하고 함축적이어서 여백이 생기고, 그 여백에 (시나 글씨 등을) 넣으면 되는 거지. 전통을 치열하게 계승한 결과야."

김봉준 화가의 '성주평화아리랑' 판화(2016년).
 김봉준 화가의 '성주평화아리랑' 판화(2016년).
ⓒ 김봉준 화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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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의 미학에서 문화창조가 나온다"

- 예술가가 당대에서 해야 할 사회적 책무가 있다고 보나? 
"난 예술을 사회와 인간이 감성적으로, 정서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봐. 예술이 원활하게 소통하는 데 쓰여야지. 예술은 정서를 소통시키는 한 방법이야. 당연히 예술에는 사회적 내용이 들어올 수 있어. 인간관계에서 개인적인 것만 있겠어? 개인적인 아픔뿐만 아니라 사회적 아픔, 사회적 공감대와 희로애락 등을 다 소통의 방법으로 예술에 담을 수 있어.

페북의 한 친구가 자기 아버지가 동아투위 기자래. 동아투위도 그려줄 수 있냐고 물어. 촛불집회 역사풍속화 식으로 말이야. 내가 '당신이 10장 사고 나머지 90장은 기증하겠다'고 했어. 지금 그거 시작하고 있어. 동아투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동아투위가 40년 동안 투쟁해온 모습과 인물들을 그리려고 해. 이런 것이 자연스러운 사회적 역할이지. 우리 삶의 언어로 사람들과 소통하다 보면 이런 요구를 만나는 거야.  상주 사드반대 집회에 판화를 찍어서 기금 마련해주고, 걸개그림도 하나 그려주고 왔어. 내 그림 여백에 직접 글도 쓰라고. 이것도 소통이야. 그럴 때 보람을 느껴."

- 그런데 예술가의 사회적 책무는 무겁고 생존은 버겨운 거 아닌가?
"그래서 <오마이뉴스> 같은 언론에서 날 널리 알려줘야 해(웃음). 난 페북으로만 소통하는데 그것만으로는 힘들어. 제도언론과 화랑에 막혀 있다고. 난 장기 블랙리스트야. 올해 워싱턴 한국문화원에 저를 주목한 큐레이터가 있어서 기획서를 올렸는데 안 됐어. 이것도 블랙리스트와 관련있는 거야."

- 왜 '장기 블랙리스트'인가? 
"1980년대에는 포고령 위반자가 됐어. 그때 파출소나 다방 같은 데 수배명단이 붙어 있었어. 20명이나 되는 수배명단에 내가 강간범, 강도범 등과 같이 있더라고. '내가 이렇게 바닥으로 떨어진 인생이 됐구나.' 변장하며 도망다녔는데 침통하더라고. 그걸로 찍혀서 직장도 잃었어. 내가 직장에 피해를 안주려고 직장을 나온 거지. 그 이후에는 직장을 못가졌어. 자의반 타의반 시민단체 등에서 활동했지. 판화를 찍어서 생존했고.

그렇게 잊혀지나 싶었는데 1990년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 사찰카드를 들고 나왔어. 1300명 정도 될 거야. 거기에 내가 50 몇 번에 있더라고. A급으로 수사가 진행 중이래. 폭로를 안했으면 날 계속 수사했을 거 아녀? 윤석양을 아직도 못 만났어. 만나고 싶다고 전해줘. 그런데 박근혜 블랙리스트에도 내가 있더라고. 그들의 배제 전략이지. 두 국민으로 갈라치고, 이쪽은 관리 대상, 탄압 대상이지. 빨갱이, 종북 프레임을 걸면 되고.

그런데 촛불시민혁명으로 100만 명이 광장에 나오면서 그런 상황을 못하게 됐지. 그들의 배제 전략을 부수지 않으면 문화는 암흑의 시대로 들어가. 문화창조는 비판정신에서 나와. '예, 예 옳습니다'만이 창작이 아니야. 달리 할 수 있어야 해. 부정의 미학에서 문화창조가 나온다고. 그런 부정의 정신을 블랙리스트로 통제하고 묶었어. 어둠의 시대로 가겠다는 거지. 그러면 짝퉁 근대주의로 가는 거야.  지금도 짝퉁 국가잖아. 흉내만 내고 있어.

창작품을 내와도 알아봐 주지도 않고, 기뻐해주는 풍토도 없어. 문화예술에서 창의성은 생명력이야. 그런데 문화 창의성을 배려하지 않아. 지들 편인 사람들만 프로젝트 지원해주고. 이명박근혜 시대에 프로젝트를 따본 적이 없어. 몇 번 신청하다가 안 돼서 집어치고 말았어. 그러니까 1980년부터 지금까지 37년 중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빼고 난 장기 블랙리스트야."

"촛불시민혁명의 거대한 서사를 완성하고파"

김봉준 화가.
 김봉준 화가.
ⓒ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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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정부가 작성한 블랙리스트 명단에 포함된 사실을 알고 나서 기분이 어땠나?
"짐작은 했어. 하는 짓이 뻔하지 뭐. 옛날부터 배제의 전략으로 국민을 갈라치기하면서 통치했잖아. 거대 공권력과 물리력으로 (국민들을) 배제하는 전략이 있고, 지금처럼 정부 지원 프로젝트 혜택을 못 받도록 배제하는 전략이 있잖아. 어떤 방식의 배제 전략이든 드러나지 않아도 있다고 짐작했어. 그런데 언론이나 교육을 통해 일상적으로 배제시키는 것이 제일 무서운 거야. 배제 전략이 일상에 침투돼 있어. 저쪽 애들의 '본드 표'가 그냥 나오는 게 아녀."

- 촛불이 어떻게 끝났으면 좋겠나?
"난 차기 정부가 촛불시민혁명으로부터 형성된 정권이라고 확신해. 그러니까 촛불 시민의 요구가 제대로 반영되어야지. 구체적으로는 '협치'가 되어야 해. 시민과 정부가 협치하고, 시민과 국회가 협치하고, 시민과 지자체가 협치해야지. 그렇게 협치하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대의민주주의니까 당신들은 쉬어, 우리가 알아서 할게.' 하지만 우리는 당신들을 믿지 못해. 촛불시민의 날을 만들어 기억하고 축제를 여는 시민광장문화가 나와야지."

- 다음에는 어떤 주제로 전시회를 열 계획인가? 
"'촛불시민혁명 국민주권행동 역사풍속화', 이것을 줄여서 '촛불시민혁명 역사풍속화'라고 하는데 이것을 끝까지 해야지. 촛불집회에 끝까지 참석해서 완성하려고 해. 촛불집회는 계속 진화할 거야. 그에 따라 그것을 담는 내 작업도 진화할 거야. 국회의사당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가결한 것, 앞으로 헌재에서 탄핵한 인용하는 것도 그려야지. 나는 그 촛불시민혁명의 거대한 서사를 완성하고 싶어. 촛불시민혁명이 가고 있는 것을 빛나는 미술로 살려내는 일은 보람되고 영광스러워. 그런 내 역할을 계속할 거야."


태그:#김봉준, #촛불시민혁명, #따뜻한 겨울 붓그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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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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