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빠 생일에 아들이 쓴 편지. 뭐라 썼을까?
 아빠 생일에 아들이 쓴 편지. 뭐라 썼을까?
ⓒ 임현철

관련사진보기


"내가 저것들을 뭐 먹고 낳았을까?"

아내가 간혹 하는 소립니다. 아이들이 한 번씩 사고(?)칠 때마다, 자기 배 아파 낳았어도 이해할 수 없다는 거죠. 옆에서 들으면 피식 웃음이 납니다. 그리고 한소리 덧붙이곤 하지요.

"당신 면 먹고 낳았잖아. 좋게 생각하자고."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고 했던가.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중 1때부터 말썽(?)이던 아들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진학 후였습니다. 1학년 때부터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착한 학생 조짐이 보였습니다. 2학년이던 지난 해에는 "아빠 목욕탕 가요", "아빠 탁구 치러 가요" 등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고 3이 코앞인 요즘, 완전 달라졌습니다.

"고 3 올라 갈 아들이 미역국을 끓였다고?"

고 3 아들이 끓인 미역국입니다.
 고 3 아들이 끓인 미역국입니다.
ⓒ 임현철

관련사진보기


"여보, 어제 독서실에서 밤늦게 온 아들이 당신 준다고 생일 미역국을 직접 끓였어요. 아빠 출근 전에 생일 밥상 차려 드린다고 깨워 달랬는데…."

새벽 출근을 준비하던 중, 잠에서 깬 아내 말에 놀라 뒤로 자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 진짜?"하면서도 도무지 현실로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아니네. 아들 피곤한데, 그냥 자게 두시게. 먹은 걸로 치지. 아들에게 고맙다고 전하시게."

아침은 거의 먹지 않기에 조심스레 사양했습니다. 이 말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신기하게 배가 든든하대요. '아~, 이런 게 진짜 배부른 거구나'했지요. 회사에 출근한 후에도 종일 배가 불렀습니다. 생일 저녁, 지인들과 모였습니다. 남들이 다 하는 아들 자랑은 전혀 못할 줄 알았습니다. 헌데 아들이 끓인 미역국이 자랑이 될 줄이야! 지인들, 반응이 재밌었습니다.

"고 3 올라 갈 아들이 미역국을 끓였다고? 대단하다."
"거 물건이네. 나도 미역국은 못 끓여 드렸는데. 부럽다 부러워."

지인들에게 자랑한 후 아들에게 문자했습니다.

"우리 왕자님, 미역국 감동이네. 고맙따~~~"

"오늘 아버님 생신이에요, 설마 아들이 잊은 건 아니죠?"

만나면 반가운 지인들과 한잔은 삶의 활력입니다.
 만나면 반가운 지인들과 한잔은 삶의 활력입니다.
ⓒ 임현철

관련사진보기


아들 자랑은 했으나, 사실 내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지난 해 12월 초, 지인들과 한 잔 한 후 밤 9시경 집에 들어와 아내에게 온 문자를 확인했습니다.

"오늘 아버님 생신이에요. 설마 아들이 잊은 건 아니죠?"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 우리 나이로 89세인 아버지 생신을 까마득히 잊었습니다. 야근하는 아내에게 '왜 이걸 이제 알려줘'라고 원망할 수 없었습니다. 당사자인 아들이 알아서 챙기는 게 맞지요. 그나마 뒤늦게라도 알려준 게 다행이었습니다. '나 죽었네!'했습니다. 어머니께 다급하게 전화했습니다. 어머니의 카랑카랑한 목소리.

"빨리도 전화한다. 올해는 특별히 봐준다. 너희 집이 요즘 정신이 없어서 한번 봐주는 거다. 다음부턴 어림없다. 아버지 미역국은 내가 끓여드렸다."

어머니는 다른 때와 달리, 역정 대신 넉넉한 사랑과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늦게 퇴근한 아내, 어머니의 불호령 여부를 물었습니다. 모른 척했습니다. 아내는 때가 되면 꼬박꼬박 잘 챙겼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편에게 보기 좋게 한방 먹인 겁니다. 반성 많이 했습니다. 다른 사람 챙기느라 부모님은 뒷전이었던 것부터 말입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버지 존경합니다!

아들이 쓴 편지입니다.
 아들이 쓴 편지입니다.
ⓒ 임현철

관련사진보기


"여보, 아들이 당신에게 편지 썼어요. 여기 있으니 회사 가서 읽어봐요."

생일 다음 날, 아내는 또 새벽 출근길에 나서는 남편에게 아들의 손 편지를 전했습니다. 아들이 밤에 직접 주려했는데, 술이 돼 주무시는 아버지를 보며, 엄마에게 전해주라 부탁했나 보대요. 미역국에 이어 아들의 편지라.

대충, 처음과 끝을 살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께"로 시작해서 "늘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멋진 우리 아버지"로 끝맺었습니다. 중간에 따끔한 충고와 자신의 희망 등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 중, 아들에게 처음 듣는 두 단어가 폭풍 감동이었습니다. 그건 "사랑"과 "존경"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으니 없던 힘까지 생겨나는 듯했습니다.

반성했습니다. 이렇게 아들에게 사랑 받을 자격이 있는가, 싶었습니다. 나는 내 아버지에게 이런 말을 했던가? 살갑게 했던가? 곱씹고 또 곰곰이 곱씹었습니다. 전혀 아니었습니다. 살갑기는커녕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아들이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반면교사인 아들이 한없이 고마울 뿐!

아버지. '사랑'하고 '존경'하나, 지금껏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안했습니다. 부모님 집에 가서도 아버지와 악수 나눈 후에는 거실에 앉아 말없이 TV만 보았습니다. 이를 보시던 어머니께선 "정말 재미없는 부자지간이야!"하시곤 했지요. 아들 덕분에 이제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들처럼, 아버지께 사랑과 존경을 표현해야겠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버지 존경합니다!

덧붙이는 글 | 제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생일, #미역국, #고3 아들, #존경하는 아버지, #편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