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더 킹>은 사회파 영화의 계보를 잇는다.

영화 <더 킹>은 사회파 영화의 계보를 잇는다. ⓒ 우주필름


또, 검사 영화다.

한때 조폭 영화가 인기를 끌던 시절이 있었다. 2010년 이후부터는 검사영화 전성시대다. 조폭이든 검사든 소위 센 자들이 등장하는 영화가 대중에게 호응을 얻는다는 건 그만큼 사회 내의 권력 격차(power distance)가 크다는 방증일 게다. 조폭에서 검사로의 전환은 사람들이 폭력에 감응하는 정도가 그나마 조금 세련되어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권력자의 상징과도 같은 검사 일개인에게 이 사회를 더욱 정의로운 곳으로 변화시켜주길 기대하는 소박하고 수동적인 소망의 발로일까.

한재림 감독의 신작 <더 킹>은 <내부자들>(2015), <검사외전>(2016), <마스터>(2016) 등을 잇는 사회파 검사영화이다. 주인공 박태수(조인성 분)는 다른 영화들의 검사들처럼 입도 걸고 행실도 바르지 않으며 출세욕은 강한 평검사이다.

권력이 주는 쾌락에 몸을 맡긴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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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태수가 그의 상사 검사인 한강식(정우성 분), 양동철(배성우 분)과 함께 교통사고를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들이 사고를 당하기 직전 차 안에서 나누는 대화가 상징적이다. 강식은 하회탈이 웃는 얼굴을 한 건 안동 지방의 대마초 밭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한강식 무리야말로 권력이 주는 쾌락에 깊숙이 몸을 담근 이들이다. 사실 하회탈은 별신굿놀이 등 마당극 때 사용되던 소품으로 당시 지배층인 양반 계층에 대한 비판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후 영화는 주인공 태수의 독백과 그를 둘러싼 인물들이 그려내는 사건 그리고 실제 우리 정치사의 한 장면을 자료화면으로 버무려서 한 편의 소란스럽고 우스꽝스러운 마당극처럼 풀어낸다. 태수는 양아치인 아버지 밑에서 학교 시절 싸움만 일삼는 문제아로 크지만, 더 큰 권력을 갖기 위해 공부에 몰두하여 서울대에 입학한다. 민주화 시절에는 시위현장에도 아주 살짝 발을 담그지만, 제대 후에는 고시에 매진해 검사가 된다.

검사 발령 이후 큰일(?)을 하고 싶던 태수는 교사에게 성폭행당한 여고생 사건을 정의롭게 처리하지 않는다. 대신 지역 유지의 아들인 피의자와 타협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자인 부장검사 한강식 라인을 타게 된다. 이후의 내용은 태수가 출세 가도를 달리는 장면, 몰락하는 장면, 그리고 다시 복수를 펼치는 장면으로 채워진다.

태수와 강식은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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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주인공 박태수는 대한민국을 은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문제아로 살던 태수는 폐허나 다름없는 가정환경을 딛고 일어나 대입과 고시 공부에서 기적과도 같은 성과를 거둔다. 하지만 이 같은 화려한 성과로 태수를 추동한 건 더 큰 권력에 대한 강한 갈망과 승부사 기질이다. 영화에서 몇 차례 언급되는 태수의 "양아치 같은 눈빛"은 그가 정의나 이성을 주춧돌 삼아 움직이는 인물이 아님을 암시한다. 그래서 그는 더 큰 성공(?)을 위해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가장 약한 존재인 소녀를 겁탈한 파렴치한과도 러브샷을 한다.

이름에서부터 '한강의 기적'을 연상시키는 한강식에서도 대한민국을 찾을 수 있다. 태수가 비겁한 속물의 한 면이라면 강식은 완고하게 망가져 버린 괴물의 전형이다. 강식이 역사 교육을 다시 해야 한다고, 요즘 젊은것들이 역사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일장연설 쏟아내는 장면은 그저 우스꽝스러운 소극의 한 장면이 아니다. 우리네 타락한 기득권자들의 날것의 속마음을 그대로 게워내고 있기 때문이다.

다이내믹 코리아 역시 부정의와 타협한 산물이다. 광복 직후부터 이승만 정권은 어떤 이유에선지 친일 세력을 청산하지 못했다. 박정희 시대의 슬로건은 "잘살아 보세"였으나 여기서 중요한 건 "'나도 한 번' 잘살아 보세"였다. 전두환 때는 부동산과 사교육이 계급 재생산의 주요한 도구였다. IMF 시절에는 많은 이들이 해고되거나 길바닥에 나앉았음에도 그러거나 말거나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가 유행했다. "꼬우면 성공하라"는 말에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집단이기주의는 징그러울 만큼 강하지만 공공성이나 공동체 의식은 놀랍도록 약한 사회였다. 민주화 운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번번이 기회주의 세력에 의해 가로막혔다. 그러는 동안 부정의가 승리하는 것을 너무 자주 목도했다. 이기심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정의를 이야기하는 이는 촌스럽거나 위선적인 사람 취급을 받았다. 사회가 어찌 되건 나만 성공하고 보자는 성공지상주의와 출세주의가 강물처럼 넘쳐흐르는 사회였다. 그 결과가 지금의 최순실 정국일지 모른다.

실제로 영화의 중간중간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 장면이 강식 무리의 굿판과 함께 마당극의 대형 걸개그림처럼 소환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장면과 박근혜 당시 국회의원의 웃는 얼굴 등은 부정의로 점철된 현 시국에 대한 강한 비애감에 젖게 한다.

사적 복수심으로 공적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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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결말부는 태수의 강식에 대한 복수 장면으로 채워진다. 물론 이 복수극은 태수의 정의감에 의한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사적인 복수다. 자신을 성공으로 이끌어 줄 것 같던, 하지만 성공의 직전에 끌어내린, 자신의 롤모델에 대한 복수인 셈이다. 이 복수극에 자기 자신의 과오에 대한 진지한 반성 같은 건 자세히 나타나지 않는다.

사적 복수를 위해 태수는 검찰 내부고발자를 자처하며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등 공적 영역으로 침투한다. 이전의 다른 검사영화들이 그랬듯 정의는 정의 그 자체로 완성되지 않는다. 대신 "양아치 같은 눈빛"을 한 승부사 기질이 있는 개인의 권력욕망이나 복수심에 의해 비로소 가능성이 열린다.

신은 죽었고 이성은 조롱당하는 시대이다. 돈이면 왕도 되고 비선 실세도 될 수 있다. 이 같은 시대에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현대에도 정의는 작동할 수 있을까. 정의의 관념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이제 불가능한 걸까. 사회적 합의 이전에 좀 '난 사람'의 사적 욕망에 기대어 공적 정의를 바로 세운다는 발상은 정의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일까. 혹 정의에 대한 허무주의의 또 다른 버전은 아닐까.

마지막 신에서 영화는 주인공 태수의 입을 빌려 "여러분이 왕이다. 누구를 뽑을 거냐?"라고 묻는다. 다소 급작스럽고 노골적인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올봄 혹은 여름에 떠밀리듯 기표소에 들러야 할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한 표를 행사할 것이다. 하지만 찝찝함은 남는다. 우리는 진정 왕인가. 아니면 근대시민사회의 주인인가. 우리가 주인이라면 그동안 사회정의 관념의 합의를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토론해왔는가. 한편의 소란스러운 마당극은 끝이 났지만, 정의가 바다에 가라앉은 대한민국의 현실은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더 킹 조인성 정우성 한재림 감독 배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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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노무사. 반려견 '라떼' 아빠입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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