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프로야구 시즌이 지난 3월 31일부터 드디어 막을 올렸다. 최근 KBO리그에서는 '프런트야구'가 뜨거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까지 두산의 2연패는 프런트야구의 대세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현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과거에는 배후에서 현장을 지원하는 역할로만 인식되며 전면에 주로 나서지 않았다면 최근 한국도 메이저리그처럼 프런트 야구의 득세가 보편화됐다. 특히 프런트의 중심으로 구단 운영의 전반을 실질적으로 관장하는 단장의 중요성이 최근에는 감독 이상으로 더 주목받고 있다.

경기인 출신 단장들의 약진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현재 10개 구단의 절반 가까이가 현역 야구선수 출신의 경기인 단장을 임명했다.  특히 올 겨울 가장 눈길을 끈 것은 KBO 사상 최초로 '프로 감독 출신' 단장이 잇달아 두 명이나 탄생했다는 점이다. 박종훈 신임 한화 단장과 염경엽 SK 단장이 그 주인공이다.

박종훈 한화 단장은 과거 LG의 사령탑을 지낸 바 있고, 염경엽 SK 단장은 바로 지난해까지 넥센의 사령탑을 맡았던 인물이다. 그간 선수 출신 단장은 있었어도 감독 출신은 없었다. 또한 이들은 단장직을 맡기 전부터 스카우트나 운영팀장, 육성이사 등을 역임하며 프런트 경력까지 이미 갖춘 인물들이기도 하다. 화려한 경력과 더불어 현장과 행정 실무 양면에서 모두 밝은 인물이라는 사실은, 그만큼 신임 단장들이 새로운 소속구단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펼칠 것임을 예고한다. 곧 한화와 SK가 2017년에는 모두 단장 중심의 프런트 야구와 내부 육성시스템을 강화하겠다는 포석으로도 읽힌다.

 지난 2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블루스퀘어 삼성카드 홀에서 열린 2017 KBO 미디어데이에서 한화 이글스의 김성근 감독(가운데)과 이태양(왼쪽)과 이용규가 인사하고 있다.

지난 2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블루스퀘어 삼성카드 홀에서 열린 2017 KBO 미디어데이에서 한화 이글스의 김성근 감독(가운데)과 이태양(왼쪽)과 이용규가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화와 SK가 신임 단장들을 영입해오는 과정도 흥미롭다. 한화는 박종훈 단장이 부임하기 전까지 감독의 권한이 기형적으로 강했다. 김성근 감독은 2015년 한화 사령탑으로 부임한 이후 지난 2년간 선수단 운영의 전권을 휘두르며 프런트 인사에까지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팀은 막대한 투자와 지원에도 불구하고 잇달아 포스트시즌에 탈락했고, 김성근 감독은 혹사 논란 등 여러 가지 구설수에 휘말리며 체면을 구겼다. 한화는 올겨울 프런트 교체를 포함한 인사 개편을 단행하며 박 단장을 영입했는데, 이는 곧 김 감독의 절대권력을 회수하고 프런트가 주도하는 시스템으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실제로 박종훈 단장은 취임 후 빠르게 구단을 장악하며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고 있다. 박 단장은 지난 수년과 달리 올해는 FA 시장에서 철수했다. 내부 육성으로 선수단의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윌린 로사리오와의 재계약, 알렉시 오간도와 카를로스 비야누에바 등 화려한 메이저리그급 외국인 선수 구성도 모두 박 단장이 주도했다. 김성근 감독은 올해 1군 운영에만 전념하는 것으로 역할이 축소됐다.

SK도 염경엽 단장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적지않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SK는 지난 겨울 김용희 감독과 결별했고 장기집권을 이어오던 민경삼 전 단장도 물러나면서 새 판 짜기에 나섰다. 염경엽 단장은 사실 지난해 넥센 사령탑 시절부터 SK의 차기감독 후보로 거론되었던 인물이었다. 염 단장은 지난 시즌이 끝나고 넥센 감독직에서 자진사임했지만 SK 부임설은 끝내 부정한 바 있다. 

SK는 외국인 사령탑인 트레이 힐만 감독을 영입한 데 이어 염경엽 단장을 신임 단장으로 모셔오는 의외의 인사를 단행했다. 감독 내정설까지 있었던 인물을 단장으로 데려올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파격이었다. 염 단장은 당초 해외 연수를 준비하고 있었으나 SK의 적극적인 삼고초려에 마음들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염 단장은 넥센 사령탑 시절에도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후 언젠가는 단장직을 맡아보고 싶다는 희망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감독급 단장들의 등장과 함께 가장 눈길을 모으는 부분은 역시 기존 감독들과의 관계 설정이다. 단장과 감독은 각각 현장과  프런트의 최고 책임자로 기본적으로 협력하는 파트너이지만 의견이나 방향이 다를 경우 언제든 충돌할 수 있는 긴장관계이기도 하다.

감독 경험이 있는 단장이라는 점은 양면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본인이 감독의 어려움을 직접 체험해본 인물이기에 현장의 목소리와 고충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지만, 반대로 감독과 노선이 다르거나 팀이 위기에 처할 경우 언제든 감독의 목을 조를 수 있는 '정적'이 될 가능성도 있다.

김성근 감독은 올해로 한화와의 3년 계약이 만료된다. 지난 2년간의 성적 부진과 구설수로 경질설도 유력하게 거론되었지만 일단 한화는 계약 기간을 보장해주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대부분 프런트에 빼앗기며 갈등의 여지를 남겨놓은 상태다. 올 시즌도 초반부터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할 경우 '레임덕'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현장의 권한을 강조하는 김 감독은 과거에도 프런트와 수많은 불화를 빚다가 불명예스럽게 물러난 전력이 많다. 올 겨울에도 박종훈 단장이 주도하는 프런트가 전력보강에 소홀하다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상성상 서로 상극인 김 감독과 박 단장의 궁합이 끝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는 올시즌 한화의 가장 큰 불안요소가 될 수도 있다.

 SK의 신임 감독 트레이 힐만과 신임 단장 염경엽

SK의 신임 감독 트레이 힐만과 신임 단장 염경엽 ⓒ SK 와이번스


SK의 신임사령탑 힐만 감독은 제리 로이스터 전 롯데 감독에 이어 역사상 두 번째 외국인 감독이다. 힐만 감독은 과거 니혼햄을 이끌고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등 아시아 야구를 경험해본 바 있지만 한국 야구는 어디까지나 처음이다.

아직까지 힐만 감독이 SK에서 추구하려는 야구 색깔이나 지도자로서의 성향이 드러나지 않은 가운데, 바로 지난해까지 넥센에서 프로 감독직을 수행했으며 한때 팀의 차기 감독 후보로 거론되던 인물이 신임 단장으로 등장했다는 것은 미묘한 대목이다. 한국야구를 아직 잘 모르는 외국인 감독과, 누구보다 국내 야구단 실정에 밝은 감독급 단장의 만남, 본인의 의도야 어찌됐든 민감한 여지가 있는 구도임은 부정할수 없다. 염 단장은 LG 프런트 시절에도 팀 운영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여러 가지 루머에 시달렸던 경력이 있는 만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SK는 2006년 야구 철학과 성향이 전혀 다른 김성근 감독-이만수 수석코치를 영입하며 갈등의 불씨를 초래한 바 있다. 그나마 서열이 분명했던 감독-코치 관계와 달리, 이번에는 감독-단장의 구도다.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고 서로를 존중하다면 문제가 없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하늘에 태양이 두개 떠있는 구도가 될 수도 있다. 실세 단장들이 가져올 파급효과가 팀에 미칠 나비효과가 주목되는 이유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야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