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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우, 권영국 변호사와 법학교수들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법원 앞에서 법원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영장기각 결정을 규탄하며 영장재청구의 당위성을 알리기 위한 노숙농성 돌입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이날 이들은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의 진상을 낱낱이 밝히는 영장실질심사에서 조의연 판사는 구속영장 기각으로 법원의 역사적인 역할과 책무를 외면했다"며 "법원은 진정한 정의의 수호자로 거듭날 수 있도록 자정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고 이재용에 대한 영장재발부 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 이재용 영장기각에 분노한 법률가, 노숙농성 돌입 이덕우, 권영국 변호사와 법학교수들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법원 앞에서 법원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영장기각 결정을 규탄하며 영장재청구의 당위성을 알리기 위한 노숙농성 돌입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이날 이들은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의 진상을 낱낱이 밝히는 영장실질심사에서 조의연 판사는 구속영장 기각으로 법원의 역사적인 역할과 책무를 외면했다"며 "법원은 진정한 정의의 수호자로 거듭날 수 있도록 자정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고 이재용에 대한 영장재발부 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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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새벽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사법부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영장실질심사를 맡았던 서울중앙지법 조의연 판사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빗발치는 중이다. 조 판사는 이 부회장 말고도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 옥시 레킷벤키저 존 리 전 대표의 영장을 기각한 전력이 있는 판사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조 판사와 재벌 사이에 부당거래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조 판사 말고 다른 판사가 영장실질심사를 맡았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그동안 사법부가 유독 재벌에게 관대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마침 이 부회장의 영장이 기각되기 바로 전날인 18일 서광주고등법원 전주 제1민사부는 버스회사가 24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운전기사 이아무개씨를 해고한 것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SNS는 온종일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자조 섞인 반응으로 들끓었다.

심지어는 조의연 판사가 삼성 장학생이었고, 그의 자녀가 삼성 입사를 앞두고 있다는 게시글이 마치 사실인양 유포됐다. 조 판사가 실제로 삼성 장학생이었을 수도 있다. 심지어 조 판사가 삼성으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수수했다는 의혹 역시 빠르게 확산됐다. 삼성의 전력으로 볼 때 충분히 타당한 가설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의혹을 뒷받침할 근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조 판사가 사건과 관련해 직접 삼성으로부터 로비를 받았는지, 혹은 삼성 장학생이었는지 여부를 논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공분은 이해하겠지만, 근거 없는 의혹 제기는 금물이기 때문이다.

비리 재벌 수사, 미래 고객 만드는 작업 

문제는 법조계의 관행이다. 비리 재벌 사건은 검사, 혹은 판사에겐 미래의 고객을 확보할 좋은 기회다. 특수부 검사 출신으로 삼성 법무팀장으로 재직하다 삼성그룹의 비리를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는 "특수부 검사 시절, 대형 경제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이 변호사 개업 뒤 자신이 수사했던 피의자를 위해 변호하는 것을 종종 봤다"고 회상했다. 김 변호사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자.

"경제범죄를 저질렀던 자들이 굳이 자신을 수사했던 변호사를 찾아와 변호를 맡기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게다. 검사 시절, 자신들을 잘 봐줬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앞서 설명한 것 처럼, '자수조서'를 만드는 등의 방법을 동원해 죄에 대한 처벌을 감경해 줬다는 점을 알고 다시 그런 수완을 발휘해 주기를 기대하며 찾아온 것이다. 만약 해당 변호사가 검사 시절 자신들을 엄격하게 수사했다고 여긴다면, 해당 변호사가 아무리 유능해도 사건을 맡길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일부 검사들에게 대형 경제범죄 수사란 미래의 고객을 만드는 작업인 셈이다."

- 김용철 변호사, <삼성을 생각한다> 중에서 

말하자면, 검사들이 법기술을 동원해 비리 기업인들의 죄를 경감해주고 이후 변호사 개업한 뒤 이들을 고객으로 맞이한다는 의미다. 이런 관행이 비단 검사에게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판사 역시 재판 과정에서 비리를 저지른 재벌 총수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해 훗날을 도모할테니 말이다.

법원이나 검찰 조직의 경우, 꼭대기로 올라갈수록 자리는 한정돼 있다. 결국 대법원장이나 검찰총장에 오르지 못하는 이상 판·검사들은 궁극적으로 변호사 개업을 염두에 둬야 한다. 현직에 있을 때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인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면 퇴임 후는 문제없다. 변호사 시장에서 기업 고객은 큰 수임료를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최근엔 대형교회 목회자도 각광 받는 블루 오션이다. 실제 대형교회 목회자의 법률 대리만 전문으로 하는 로펌이 성업 중이다.

또 아예 자신이 맡았던 사건 피의자가 경영하는 기업에 임원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2012년 이귀남 전 법무장관은 오리온 그룹 상임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가 장관 재직 시절이던 2011년 초 오리온 그룹 담철곤 회장 부부는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그해 6월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는 회삿돈 226억 원을 횡령하고 회사에 74억 원 상당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담 회장을 구속기소했다.

그러나 결과는 밋밋했다. 담 회장 부인은 입건 유예였고, 담 회장은 2013년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형을 선고 받았다. 결국 이 전 장관은 자신이 수사 총책임자였고, 피의자가 한창 재판 중인 와중에 피의자가 경영하는 기업에 입사한 것이다. 당시엔 이 전 장관의 행보를 두고 오리온 그룹이 보은도 하고, 향후 수사에 영향을 끼치려 거물급 전관을 영입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거셌다.

조 판사가 이 부회장의 영장을 기각하자, 몇몇 누리꾼들은 그의 퇴임 이후 행보를 주시하자는 게시물을 남겼다. 민주당 손혜원 의원실 김성회 보좌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래와 같이 적었다.
이재용 부회장의 영장 기각 소식이 전해지자 민주당 손혜원 의원실 김성회 보좌관은 자신의 SNS에 조의연 판사의 향후 행보를 주시해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이재용 부회장의 영장 기각 소식이 전해지자 민주당 손혜원 의원실 김성회 보좌관은 자신의 SNS에 조의연 판사의 향후 행보를 주시해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 김성회 보좌관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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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의연 판사님, 법리상 다툼의 여지가 있어서 이재용 부회장 풀어주신 것 욕할 생각은 없습니다. 법관의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단하셨을테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은퇴하고 삼성 근처에 얼씬거리시다 걸리시면 후후훗. 법복 벗고 본격적인 수금활동 하실 때까지 쭈~욱 모니터링 해드리겠습니다."

역사학자 전우용 선생도 자신의 트위터(@histopian)에 "판사 한 사람이 미래의 삼성 고문변호사행 티켓을 셀프 발급했다"고 꼬집었다.

이재용 부회장의 영장기각은 비단 조의연 판사 한 사람만의 성향 때문이 아니라 법조계 전반에 팽배한 관행의 산물 아닐까. 정경유착 못지않게 '사법-재벌' 유착 역시 청산해야 할 부조리다.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은 사법부 역시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을 위해 개혁해야 할 한 축임을 여실히 드러냈다. 마침 20일 '이재용 영장기각에 분노하는 시국농성 제안 법률가 일동'(20일 오후 12시 30분 기준 68명)은 서초동 법원사거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노숙농성에 들어갔다. 또 이날 저녁 7시엔 이재용 부회장 구속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도 열렸다. 이 촛불이 횃불이 되어 정의보다 돈을 좇기 급급한 사법부의 어둠을 밝혀주기를 소망한다.


태그:#정경유착, #조의연 판사, #담철곤, #이귀남, #김용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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