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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2016 오마이뉴스 청춘! 기자상 - 청춘, 르포하다' 우수상 수상작입니다. 신혜연 기자는 9일간 강남역 8번 출구 앞에 세워진 반올림 농성장에 머물며 그곳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이 기사는 지난해 말 작성됐습니다. 취재 당시 삼성반도체·LCD 부분에서 일하다 직업병으로 사망한 노동자 수는 78명. 그 사이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세상을 등졌습니다. 이제 사망자는 총 79명, 비극은 현재진행형입니다. [편집자말]
강남역 8번 출구 1분 거리. 평당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값비싼 땅 위에 '5성급 호텔'이 들어섰다.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 농성장 이야기다. 지금까지 반올림에 접수된 삼성 반도체와 LCD 부문 산업재해 사례는 225건. 이 중 사망자는 79명에 이른다. ▲ 사과 ▲ 배제 없는 보상 ▲ 재발 방지 대책을 외치며 삼성 본사 앞에 반올림이 주저앉은 지도 1년이 넘었다. '삼성공화국' 통치권이 미치지 않는 마지막 피난처에서 숙식을 함께했다. 2016년 12월 16일부터 24일까지의 기록이다. -기자 말

농성장 전경.
 농성장 전경.
ⓒ 신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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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6일~17일] 길 위의 5성급 호텔

437. 숫자 옆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삼성 직업병 문제 올바른 해결 촉구 반올림 노숙농성'. 멀리서 보기에 농성장은 은색을 띤 둥그런 외계 물체 같다. 강남 한복판에 놓인 비닐 뭉치는 사방이 커다란 돌로 고정돼 있다.

10여 분간 밖을 서성였지만 안에서 두런두런 목소리만 들릴 뿐 입구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텔레그램으로 입구를 물었다. "팻말 뒤쪽이에요." 437. 처음 봤던 팻말을 옆으로 옮기고 비닐을 들어 올렸다. 겹겹이 쌓인 막과 사투를 벌인 끝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내부는 생각보다 아늑했다. 갈색 장판 위에서 사람들은 침낭을 두른 채 앉아 있었다. 반올림 활동가 권영은씨가 반기며 농성장을 소개했다. 농성장은 지금 겨울 대비 상태라고 했다. 농성장 가운데는 해수욕장에서 볼 법한 커다란 파라솔이 서 있는데, 올해 겨울이 오자마자 파라솔 위로 커다란 하우스용 비닐을 덮어버렸다. 비닐 2겹과 에어캡, 내부가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붙인 은박지까지 총 4겹으로 둘러싸여 있다. 농성장 규모는 가로 4m, 세로 2.8m, 높이 2.1m다. 키가 165cm인 나는 파라솔 바로 아래선 서 있을 수 있지만, 가장자리로 갈 땐 허리를 숙여야 한다.

"삼성과 서초구청에서 건축물을 세울 수 없다고 주장하는 탓에 작년에는 이 날씨에 비닐도 못 덮게 했어요. 규정에도 없는 '고도제한'을 강요하는 바람에 작은 우산 하나 세우고 허리를 푹 숙인 채 지냈죠."

영은이 농성장 변천사를 짧게 설명했다.

농성장 내부. 반올림 활동가 영은과 콩, 성호.
 농성장 내부. 반올림 활동가 영은과 콩, 성호.
ⓒ 신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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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람 부는 밖에 비해 따뜻했지만, 가스난로 탓에 냄새가 심했다. 두 시간 남짓 있었는데도 밖에 나오니 한동안 정신이 몽롱할 정도였다. 환기가 안 되는 농성장 내부에서 추위를 버티려니 별수 없었다.

"따뜻함을 위해 건강을 희생하고 있는 거죠."

영은이 농담 투로 말했다.

농성장 구석에 놓인 '반도체 소녀상'이 눈에 띄었다. 세월의 흔적으로 여기저기 뜯긴 동상은 서울시립대 조경과 학생의 졸업 작품이다. 어린 여성 노동자들이 반도체 공장에서 병들고 있는 현실을 소녀상을 통해 꼬집었다. 반올림 농성장에 오기 전만 해도 이 소녀상은 삼성 '무재해 기념탑' 앞에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반도체 소녀상. 한 때 삼성 ‘무재해 기념탑’ 앞에 세워져 있었다.
 반도체 소녀상. 한 때 삼성 ‘무재해 기념탑’ 앞에 세워져 있었다.
ⓒ 신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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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은이 자리에 있던 다른 활동가를 소개했다. '콩'이라는 활동명으로 불리는 공유정옥씨는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다. 전부터 직업병 예방을 위한 활동을 해왔다.

"교섭간사를 콩이 맡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 농성해요. (웃음)"

영은의 설명에 콩이 한참 웃는다.

반올림은 2014년부터 삼성과 교섭을 해왔다. 삼성이 직접 제3의 중재기구를 통해 직업병 피해자들에게 사과, 보상, 예방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한 덕분이었다. 삼성과 피해자들 간의 교섭 끝에 외부 인사들로 꾸려진 조정위원회가 출범했고, 2015년 7월에는 조정위원회가 최종 권고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막상 권고안이 나오자, 삼성은 이행을 거부했다. 대신 9월에 자체 보상위원회를 만들어 자의적인 보상에 나섰다. 이후에는 직업병 문제가 전부 해결된 듯 언론에 홍보했다.

"조정위원들을 완전 물 먹인 거죠."

콩이 화를 내며 말했다. 작년(2015년) 10월 7일. 조정권고안을 무력화시키려는 삼성에 맞서 농성을 시작했다. 구호는 "약속을 이행하라". 그 후로 이어진 시간이 437일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강남역 농성장 '출근길'에 올랐다. 오전 10시 30분에 도착해보니 콩과 반올림 활동가 이종란(42) 노무사 모두 침낭에 몸을 숨긴 채 잠자리에 들 태세였다. 나도 모르게 몸을 뉘었다. 가만히 누워 있으니 버스 지나가는 소리부터 행인들 말다툼 소리까지 생생하게 들렸다. 내가 머리를 뉘인 곳에서 차도까지는 불과 5m도 안 될 터였다.

점심때 미국 에모리대학교 김선철 한국학 교수가 방문했다. 한 손에는 초밥이 들려 있었다. 농성장과 초밥이라는 조화가 낯설어서 신기한 표정을 짓자, 콩이 태연하게 말했다.

"여기 5성급 호텔이라니까요."

그렇게 때아닌 만찬이 벌어졌다. 김 교수는 한국 장기 투쟁 농성장을 연구하고 있었다. 김 교수가 노숙 농성에 대한 생각을 말했다.

"시민운동의 수세기에서 노숙농성장이 중요한 거점을 형성하고 있다고 봐요. 연대의 끈을 유지하면서 동력도 유지해내는 역할인 거죠."

[12월 18일~19일] 이들의 '연대'는 그들에겐 '대리'

동민, 혜정, 현아, 종란이 핸드벨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동민, 혜정, 현아, 종란이 핸드벨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 신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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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저녁. 농성장 입구 스피커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반올림에 산재 신청하셨던 노동자 한 분이 돌아가셔서 선전전 중이에요."

종란이 설명했다. 사인은 악성 림프종이라고 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비닐 막을 걷어 올린 채 노래를 들었다. "노동자 행복해야 메리크리스마스~"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종란이 부탁한 대로 <오마이뉴스>에 반올림 계정으로 추모글을 올렸다. 제목은 "삼성은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사진으로는 방진복을 입은 활동가들이 등 뒤에 직업병 사망자들의 이름을 붙이고 행진하는 장면을 넣었다.

이날은 경제학을 공부하는 대학생 양동민(22)씨와 학교 친구인 정혜정(21)씨가 농성장을 지켰다. 저녁을 짜장면으로 해결한 후, 종란이 어디선가 핸드벨을 꺼냈다. 단체행사가 있을 때 종종 사용한다고 했다. 그렇게 즉석 연주회가 열렸다. 밤 지킴이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이현아 간사까지 합류해 '두유 히얼 더 피플 싱'을 연주했다.

"라솔 파솔 라시b 도."

입으로 음계를 불러가면서 한 음, 한 음 연주를 이어갔다. 은은한 핸드벨 소리는 연주자들의 서툰 손놀림에도 불구하고 멋지게 들렸다. 휑한 바람만 가득한 강남역에 따뜻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음날도 아침 일찍 농성장을 찾았다. 10시 정각에 맞춰 도착하니 전날 밤 농성장을 지킨 동민이 피켓을 들고 아침 선전전 중이었다.

"늦잠 자는 바람에 선전전이 좀 늦어졌네요."

동민이 머쓱한 듯 웃었다. 곧이어 동민 친구 오재현(21)씨가 도착했다. 전부터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반올림 '대리농성 의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대리농성 의혹'은 지난여름에 불거졌다. 7월 9~10일 이틀간, '인권재단 사람'의 후원으로 반올림은 1박 2일 휴가를 다녀왔다. 빈 농성장은 '사람' 활동가들이 지켰다. 그러자 언론들은 이를 두고 '대리 노숙농성'이라며 비판했다. '그동안도 활동가들이 아니라 외부인이 농성장을 지켰다'고 전하며 '전문 시위꾼' 프레임을 씌우기도 했다.

반올림 농성이 1년째 이어지는 데는 연대활동의 힘이 컸다. 시민들은 '반올림 지킴이'로서 자발적으로 강남역 8번 출구를 찾았다. 동민과 재현을 비롯해 전날 만난 현아, 혜정 모두 자발적인 연대에 나선 '지킴이'다.

아침 선전전에 나선 동민.
 아침 선전전에 나선 동민.
ⓒ 신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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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걸 연대라 부르는데 그들은 대리라고 불러요. 우리가 돈을 받고 이런 일을 하는 게 아닌 데도요. 자신들 관점에서만 세상을 보는 것 같아요."

동민이 말했다. 재연은 살짝 충격받은 듯 보였다.

"언론에 크게 실망했어요."

재연에게 농성장은 소중한 공간이다.

"'농성'은 공간을 차지하는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문제를 보여주는 행위잖아요. 강남역에 이런 곳이 가시적으로 존재하고,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되게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농성장을 보면, 직업병 문제가 이 사회에 물리적으로도 실제적으로도 자리할 공간이 있다는 희망이 들어요."

[12월 20일] "대학 졸업장 따서 삼성 가려다 노무사 됐죠"

반올림 농성장 입구에 서 있는 팻말.
 반올림 농성장 입구에 서 있는 팻말.
ⓒ 신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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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무렵. 한낮에 농성장을 찾았다. 조윤희(27) 노무사가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윤희는 올가을 시험에 합격한 새내기 노무사다. 다큐멘터리 <탐욕의 제국>을 보고 삼성 직업병 문제를 처음 접했다.

"다큐멘터리 안에서 사람이 실제로 죽는 게 충격이었어요."

노무사 시험에 합격한 이후로는 틈틈이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백수' 처지라 시간이 많기도 하지만, 활동가들이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을까 해서 농성장 시간표에 이름을 채워 넣게 된다고 한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반올림 활동가 박영일(42)씨가 방문했다. 한동안 생업을 위해 공장에서 일했다고 한다. 오랜만에 들른 농성장은 영일이 떠나기 전보다 많이 좋아져 있었다.

"예전엔 바닥에 스티로폼 하나 깔고, 위에는 비닐 한 겹 두고 잤어요. 비 오면 일어나서 비를 털고, 눈이 오면 닦고 그랬는데. 지금은 진짜 호텔이 됐네요. 하하."

영일은 손가락이 다섯 개가 안 된다. 23살 때 공장에서 프레스기계를 다루다가 사고를 당했다. 그때부터 산재노동자들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영일은 윤희를 보더니 '반올림을 지원하는 노무사 모임(반지모)' 이야기를 꺼냈다. 홀로 고생하는 종란을 돕기 위해 4년 전, 십여 명의 노무사들이 심기일전해 만든 단체다.

"노무사 역할이 참 크거든요."

내가 물었다.

"나쁜 일 하는 노무사들도 많죠?"

영일이 빠르게 답한다.

"아휴, 많죠. '노동자 무시하는 사람'이 노무사라는 말도 있을 정도로. 산재사건 가보면 사측 노무사들 어찌나 열심히 일하는지."

그리고 덧붙인다.

"그래도 반올림 노무사들 열정만 못하죠. 삼성을 상대로 이겼으니까. (웃음)"

얼마 후 윤희 친구 문가람(27)씨가 도착했다. 가람은 한 때 삼성 LCD 공장에서 일했다.

"집에 딸이 다섯이에요. 할머니가 가부장적이셔서 여자는 대학교육 하실 생각을 안 하셨어요. 빨리 취업하려고 상고에 진학했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삼성을 택했죠."

가람이 삼성에 붙었을 때, 가족들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회사일은 생각보다 고됐다. 종종 멍해질 때가 있어 병원에 가보니 의사가 공황장애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엔지니어들은 고졸 출신인 생산직 직원들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가람은 4개월 만에 무단 퇴사했다.

"대학 졸업장을 따서 다시 삼성에 오려고 했어요. 당당한 커리어우먼을 꿈꾸면서요. (웃음)"

새내기 노무사 가람과 윤희.
 새내기 노무사 가람과 윤희.
ⓒ 신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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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은 끝내 꿈을 이루지 못했다. 대신 노무사가 됐다. 가람에게 어떤 노무사가 되고 싶은지 물었다.

"대학 다닐 때 <전태일 평전>을 읽었어요. 한자로 쓰인 근로기준법을 옥편으로 일일이 찾아 읽으면서, 전태일 열사가 '대학생 친구 한 명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대요. 저는 그런 대학생 친구가 되고 싶어요. '권리를 알려주는 사람'이요."

가람은 최근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하는 이재용 회장 앞에서 반도체 노동자들의 영정 사진을 펼쳐 들어 화재가 됐던 유명인이기도 하다.

"종란 노무사님이 부르셔서 간 건데, 처음엔 입구에서 조용히 피켓을 드는 건 줄 알았어요."

가람은 부끄러워했다.

"엄청 소심한 사람인데 갑자기 투사가 됐네요.(웃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전 '최순실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하기 위해 국회의사당에 도착하는 가운데,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회원들이 고 황유미씨 등 삼성반도체 공장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힌 현수막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 이재용앞 '반올림' 기습시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전 '최순실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하기 위해 국회의사당에 도착하는 가운데,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회원들이 고 황유미씨 등 삼성반도체 공장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힌 현수막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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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종란에게 당시 상황에 대해 들었다. "이재용이 들어올 때 어떻게든 70명 영정 사진을 한 번이라도 보여 줘야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벌인 일이라고 했다. 종란은 삼성 경호원이 자신이 들고 있던 황유미씨 영정 사진을 부순 걸 마음 아파했다. 황유미씨는 반올림을 처음 만든 황상기씨의 딸로, 삼성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24살에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종란이 물었다.

"이재용의 아름다운 입장을 위해 황유미 영정은 부서져도 되나요?"

[12월 21일~22일] 삼성이라 외면했던 죽음

비가 내리는 21일 저녁. 농성장 입구.
 비가 내리는 21일 저녁. 농성장 입구.
ⓒ 신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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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밖에 나서니 비가 오고 있었다.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농성장에 도착할 즈음인 9시가 되자 쏟아져 내렸다. 지하상가로 이어지는 강남역 안은 연말을 맞아 활기가 가득했다. 손님들은 분주하게 옷을 고르고, 거울 앞에서 모자를 썼다 벗었다 하며 즐거워했다.

농성장에 도착하니 앞 시간 지킴이 당번인 영은과 정성호(32)씨가 맞아줬다. "비가 생각보다 많이 오네요. 괜찮을까요?" 내가 걱정스럽게 묻자 영은이 말했다.

"예전엔 고생했지만, 이젠 파라솔이 있어서 괜찮아요. 오히려 비가 오는 게 길거리 소음을 막아줘서 자기에 더 좋아요."

성호는 오늘이 따뜻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요 며칠은 추워서 고생했어요. 아침에 서리가 낀 날은 일어났을 때 많이 피곤하더라고요."
영은도 거든다.

"이불 안 덮으면 공기가 너무 차서 숨쉬기가 힘들 정도니까."

펄럭펄럭. 영은이 안심시켰지만, 비바람이 불자 농성장 천장이 종종 들썩였다.   

자운이 농성장에서 노트북을 켜고 일하고 있다.
 자운이 농성장에서 노트북을 켜고 일하고 있다.
ⓒ 신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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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지킴이를 같이 할 임자운(38)씨가 도착했다. 자운은 반올림 활동가이자 변호사다. 자운은 올해 8월 서울변호사협회에서 '명(明)변호사상'을 받았다. 삼성반도체 노동자 난소암 산재승인 판결을 이끌어낸 공이다.

판결문에는 "근로자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사실관계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사정에 관하여는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인정할 수 없다", "의학적 관점에서 인과관계를 따지는 방식과 업무상 재해에 있어 상당인과관계를 판단하는 방식은 달라야 한다", "발병률이 낮아 의학적 연구가 잘 이루어지지 않은 질병에 대해서는 증명의 정도가 완화되어야 한다" 등의 문구가 담겼다.

피해 당사자인 이은주씨는 18살 때부터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다. 그러다 건강 악화로 6년 만에 퇴사했고, 이듬해 난소암 진단을 받아 36세에 사망했다. 자운이 처음 사건을 들었을 때만 해도 재판에서 이길 거란 확신은 없었다. 난소암이란 질병이 워낙 희귀병이기 때문이다. 질병에 대한 연구 자체가 잘 안 돼 있으니 인과관계를 입증하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법원이 이 같은 경우에는 인과관계 입증 부담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인정해준 것이다.

"연구가 안 된 병은 사실 치료도 힘들죠. 따지고 보면 공공보험은 이런 분들에게 더 필요한 거예요. 이분들을 배제하면 산재 제도가 존재할 이유가 없죠."

자운의 설명이다.

반올림이 첫발을 뗄 때부터 산재 인정은 큰 고비였다.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씨가 처음 산재 신청을 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던 게 반올림이 출발한 계기기도 했다. 언론과 시민단체에도 연락을 해봤지만, 삼성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이유로 외면받기 일쑤였다.

"황유미씨 산재 판결 이전과 이후는 아주 달라요. 그 판결 때문에 사람들이 반도체 공정이 산재 원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요. 선례도 남고, 이후 판결에도 영향을 주니까요."

반올림이 '국내 직업병 인정 관행을 바꿨다'는 평가를 듣는 것도 이 때문이다.

농성장 앞에 놓인 황유미씨 영정 사진 옆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농성장 앞에 놓인 황유미씨 영정 사진 옆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 신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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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자정에 가까워졌다. 자기 전에 주변 사진을 찍어두려고 농성장 밖으로 나갔다. 덜덜 떨며 사진을 찍고 농성장 안으로 들어오는데, 비닐에 고여 있던 물이 무릎으로 왈칵 쏟아졌다. 실제로 파란 청바지가 진한 남색으로 물들기도 했지만, 몸이 젖은 솜처럼 무거워졌다. 따뜻한 침낭 안으로 들어가니 잠이 쏟아졌다.

아침에 휴대전화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코가 약간 시린 것 빼고는 몸 상태가 괜찮았다. 자운이 사 온 도시락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메뉴는 소고기 김치볶음밥이었다.

"비가 중간에 무섭게 왔는데, 안 깨시더라고요."

자운의 말에 머쓱해졌다.

[12월 23일~24일] "삼성, 그러면 안 돼요" 그녀가 싸우는 이유

저녁 6시. 연말을 맞아 손님들이 줄을 이었다. 박정임 순천향대 환경보건학과 교수가 친구와 함께 농성장을 찾았다. 파스, 비타민, 롤케이크 등 선물도 챙겨왔다.

"종란 얼굴이 자꾸 까매져요. 다음엔 화이트닝 크림을 사와야겠다."

박 교수 말에 종란이 답한다.

"그냥 농성을 빨리 접게 해주세요. 하하."

이날 농성장을 함께 지킨 성호와 이상수(32)씨는 대학 동기다. 성호는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에서 5년, 상수는 삼성 PCB 연구팀에서 11년간 근무했다. 대학 졸업 이후 각기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퇴사하고 반올림 농성장에서 다시 만난 셈이다. 직업병 피해자는 아니지만, 둘 다 퇴사 직전에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박 교수가 설명한다.

"이게 'health worker effect'(헬스 워커 이펙트)라고 해요. 작업 환경을 견딜 수 있는 노동자만 회사에 남아있으니 역학조사를 하면 직업병이 잘 발견되지 않는다는 거죠."

모집단 자체가 환경에 견딜 수 있는 사람들로 걸러져 평균 이상으로 건강한 상태라는 뜻이다. 몸이 아픈 걸 참고 계속 일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문득 떠오른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크리스마스 이브는 매섭게 추웠다.

"그거 아시나요? 예수는 말구유, 우리 사회에서 가장 낮은 곳에서 나셨습니다."

농성장 앞에서 혜경 모녀가 포즈를 취했다.
 농성장 앞에서 혜경 모녀가 포즈를 취했다.
ⓒ 신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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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DJ의 클로징 멘트를 들으며 농성장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오늘 지킴이는 김시녀(60)씨와 한혜경(39)씨다. 혜경은 삼성 직업병 피해자다. 1996년 입사해 6년간 일하다 건강 악화로 퇴사했다.

퇴사 후에는 잔병치레를 하다가 뒤늦게 뇌종양인걸 알고 2005년 10월에 수술을 받았다. 너무 늦게 발견한 탓에 후유증이 컸다. 눈의 초점이 맞지 않아 사물만 분간하는 정도고, 평형 감각이 사라져 돕는 사람이 없으면 밥을 먹기도 어렵다.

혜경 모녀가 반올림을 알게 된 건 지역 재활병원에서다.

"젊은 사람이 날마다 운동하러 오니까 사회복지사 눈에 띄었나 봐요. 운동을 많이 하면 몸이 빨리 나을 줄 알았거든요. 맨날 일찍 가서 재활 자전거 손잡이에 혜경이 손을 묶고 운동시켰어요. 그때 만난 사회복지사가 직업병일지도 모르겠다고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시녀가 설명했다. 반올림 도움을 얻어 2009년에 산재신청을 했지만, 불승인 처분을 받았다.

"의사가 그러는데 평형감각을 되찾는 데 승마치료가 좋대요. 이번에 정유라 말값으로만 10억 원을 지원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 어이가 없더라고요."

혜경 모녀가 삼성에게 바라는 건 진정한 사과다.

"우리 혜경이는 항상 그렇게 말해요. '내가 보상받는다고 내 몸이 다시 돌아오냐'고요."

삼성이 산재 신청을 포기하고 반올림과 연락을 끊는 조건으로 거액 보상금을 제안했을 때, 혜경은 거절했다. "왜 계속 싸우는 거예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혜경이 답했다.

"저건 안 되죠. 삼성이 지금처럼 하면 피해자가 계속 나올 것 아니에요. 계속 저 같은 사람이 나오면 불쌍하잖아요. 제가 왜 이러고 살아야 돼요. 저도 답답해 죽겠어요. 진짜 저러면 안 돼요. 삼성이란 놈들이 저러면 안 돼요."

시녀가 옆에서 혜경을 달랬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반올림 농성장을 찾은 기독교단체.
 크리스마스이브에 반올림 농성장을 찾은 기독교단체.
ⓒ 신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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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송 왔습니다." 저녁 8시 반. 늦은 저녁 손님이 찾아왔다. 농성장 밖으로 나가니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성탄 새벽송'이라 쓰인 커다란 현수막 뒤로 청년 20여 명이 서 있다. 외롭게 투쟁 중인 이웃들과 찬송가를 나누는 행사라고 했다. 갑을오토텍, 광화문 장애인차별철폐 농성장, 세월호 분향소 등이 이들의 목적지다. '고요한밤 거룩한 밤'과 같은 찬송가를 서너 곡 부른 뒤, 청년 한 명이 대표기도를 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를 버리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나라가 되도록 해주십시오. 정의가 승리할 것을 믿습니다."

새벽송이 끝나고, 농성장 안으로 되돌아가 청년들이 나눠준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파란 비닐 포대 안에는 별 모양 포장지로 싸인 남녀 양말 세트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찬송가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농성장에서, 종란은 산재 사망자 수를 수정했다.

새하얀 종이에 까만 펜으로 78이란 숫자를 썼다. 이제 야외 팻말에는 76이란 숫자 위에 한층 무거운 78이란 숫자가 덧입혀질 것이다. 2017년은 반올림이 한국 사회에 반도체 노동자 백혈병 문제를 제기한 지 10년째 되는 해다(지난 14일 오전, 삼성전자 화성공장에서 근무하던 김기철씨가 급성골수성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삼성반도체·LCD 노동자의 79번째 죽음. 취재는 김씨의 사망 전에 진행됐다 -편집자 주).


태그:#반올림, #삼성백혈병, #삼성반도체, #황유미, #김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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