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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내(內) 는 집을 나타내는 멀 경(?)에 들 입(入)이 결합된 형태의 회의자이다.
▲ 內 안 내(內) 는 집을 나타내는 멀 경(?)에 들 입(入)이 결합된 형태의 회의자이다.
ⓒ 漢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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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밖을 구분하기 좋아하는 중국인은 중원의 문명을 외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았다. 하지만 그 만리장성은 한 번도 밖에서 문이 열린 적이 없었다. 내부의 분열과 모반으로 늘 안에서 적에게 문을 열어주는 역사의 반복이었다.

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제는 누르와치를 영원성(寧遠城)전투에서 물리친 명장 원숭환(袁崇煥)을 반역을 꾀하려 한다는 청의 반간계에 속아 능지처참하고, 결국 자신은 이자성의 반란군에 쫓겨 자금성 뒤 경산에서 자결하고 만다. 이자성이 베이징을 점령할 때 부하였던 유종민은 명나라 장수 오삼계(吳三桂)의 첩 진원원(陳圓圓)의 미모에 반해 바로 그녀를 첩으로 맞이하는데, 이 소식은 만리장성의 최동단 요새 산해관을 지키던 오삼계에게 전해지고, 오삼계는 격분하여 진원원을 되찾기 위해 청에 투항하고, 베이징으로 향하는 모든 만리장성의 성문을 청 태종에게 자동문처럼 열어준다. 명, 청의 교체기는 내부의 분열이 얼마나 허망하게 만리장성을 무너뜨리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안 내(內, nèi) 는 집을 나타내는 멀 경(冂)에 들 입(入)이 결합된 형태로, 집에 들어와 있는 상태에서 '안, 속'의 의미가 생겨났다. 작게는 중국 전통 가옥형태인 사합원(四合院)과 자금성에서, 크게는 만리장성에서 보듯, 중국인은 안과 밖을 구분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자신들은 세계 중심인 중화(中華)이고, 동쪽은 동이, 서쪽은 서융, 남쪽은 남만, 북쪽은 북적이라고 구분한 중화사상도 이런 성향의 반영이다. 높고 단단한 담장으로 벽을 쌓아 내부를 보호하고, 외부로부터 자유로운 접근을 철저히 차단하고, 그 안에서 자신들만의 문화를 지키겠다는 강한 내부 집단의식이다.

<시경(試經)> '소민(召旻)'에 "하늘이 재앙을 내리니, 해충 같은 도적들이 안에서 온갖 말들로 싸우네(天降罪罟, 蟊賊內訌)" 라는 구절에서 '내홍(內訌)'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외부로부터 격리된 내부는 더 쉽게 경직되고, 더 쉽게 내홍에 휩쓸리는 법이다.

1978년 덩샤오핑이 죽의장막을 걷고 개혁개방을 시행하기 전까지 중국은 그야말로 만리장성이라는 우리 안에 갇힌 배고픈 팬더였다. 굳게 걸어둔 빗장을 풀고, 문을 열고, 소통의 창문을 내며 중국은 지금까지 발전해왔지만, 아직도 자신들의 쳐둔 장막 안에 머물려는 폐쇄성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한 모습이다.

중국은 시리아, 이란, 북한과 함께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가 되지 않는 SICK 국가로 불린다. 게다가 인터넷 만리장성(The Great Firewall)을 통한 온라인의 자유로운 정보 유통을 사전 검열하고 제한한다. 중국이라는 테두리, 그 안에 있다는 이유로 자유로운 소통이 제한되고, 일상적으로 검열을 염두에 둔다면 어찌 창의적인 상상력이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밖을 공고히 했다고 해도 속이 좀 먹어 비어가면(內裏蛀空), 와해는 시간문제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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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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