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몸의 소방관>이 예상 외의 선전을 펼쳤다.

<맨몸의 소방관>이 예상 외의 선전을 펼쳤다. ⓒ KBS


외람되지만 딴 나라 단막극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2017년, <셜록> 시즌 4가 찾아왔다. 시즌 3이 2014년이니, 햇수로만 치면 무려 3년 만이다. 하지만 마치 어제 본 듯 셜록 애청자들은 열광했고, 그 짧은 3회 방영 동안 매회의 내용을 놓고 탄성과 한숨이 오갔다. 심지어 이번 셜록 시즌이 마지막이란 '루머'에 시작도 전에 아쉬움의 입맛을 다시기도 했다. 달랑 3부작, 그것도 매년 아니고, 해를 건너 뛰고 가물에 콩 나듯 하는 이 드라마를 놓고, 전 세계 셜록 드라마 팬들은 일희일비한다.

이런 <셜록>의 예를 놓고 보면 드라마의 회차는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아니 외려 3부작이란 그 감질나는 회차가, 밑천이 그다지 두둑하지 않은 이 드라마의 가치를 더 높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른바 '영드', 영국 드라마에서 4부작은 그리 낯선 장르가 아니다. <제인 에어(2006)>를 비롯하여 제인 오스틴 <엠마(2009)> 등의 유명한 원작 소설 등이 4부작 드라마로 재탄생 되었으며,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2005)>의 원작 소설인 <핑거 스미스> 역시 3부작 드라마로 방영된 바 있다.

그런 면에서 '단막극'의 부흥을 고심해 온 KBS2 <드라마 스페셜>이 연작 시리즈에 이어 4부작 드라마를 선택한 것은 어찌 보면 필연적인 행보다. 지난해 김용수 감독의 <베이비 시터(2016,3)>가 비록 시청률 면에서는 아쉬웠지만, 독보적인 미장센으로 화제를 모았고, 이어 <백희가 돌아왔다(2016, 6)>는 4부작임에도 심지어 같은 시간대 타 방송사의 대하 사극을 가뿐히 누르고 시청률 10.4%의 신드롬을 일으키며 4부작 드라마의 가능성을 열어젖혔다.

지분을 확보해가는 4부작 드라마

 <맨몸의 소방관>

<맨몸의 소방관>의 선전은 많은 걸 의미한다. ⓒ KBS


이에 고무된 KBS2는 수목 드라마 <오 마이 금비> 후속으로 다시 4부작 드라마 <맨몸의 소방관>을 편성했다. 물론 <맨몸의 소방관>의 편성은 현재 압도적인 1위를 수성하고 있는 전지현, 이민호의 <푸른 바다의 전설>의 종영까지 시간을 벌어 다음 수목 드라마의 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기획인 바가 크다. 물론 그런 늘 '꿩대신 닭'인 처지는 아쉽지만, 그럼에도 전작 <오 마이 금비>에 그리 낮지 않은, 그리고 동시간대 MBC의 <미씽 나인>과 그리 차이 나지 않는 4회, 5.2% (닐슨 코리아)로 <맨몸의 소방관>은 제 몫을 해냈다.

지난 12일 첫선을 보인 <맨몸의 소방관>은 <베이비 시터>의 실험성보다는 <백희가 돌아왔다>의 대중성을 택했다. 사고뭉치 소방관 강철수(이준혁 분)의 개성적인 캐릭터와, 그와 맞부딪치게 되는 과거의 사연을 가진 한진아(정인선 분). '스릴러'와 '로코'를 버무린 <맨 몸의 소방관>은 과거에 한 발을 담그되, 그것에 잠기지 않고, 두 개성 있는 주인공들의 해프닝 연속으로 '사랑' 이야기에 방점을 찍으며 진행된다.

과거의 악연을 가진 주인공들, 그리고 현재에선 부유하지만 외로운 공주 같은 여주인공과 가진 것 없지만 정의로운 남자 주인공의 관계는 따지고 보면 새로울 것이 없는 구성이다. 하지만 그 가진 것 없는 남자에게 고등학생 시절 비행 청소년이었지만 이제 개과천선한 울뚝불뚝 성질의 정의로운 소방관이란 캐릭터가 입혀지며 <맨 몸의 소방관>은 신선해졌다. 특히나 실제 소방관들이 현장에서 부딪치게 되는 억울한 사례들이 주인공 강철수의 캐릭터와 맞물려 돌아가며 드라마는 그 활기를 더한다.

생생하고 신선한 캐릭터, 예측가능한 이야기

 <맨몸의 소방관>

캐릭터의 신선도에 비해 이야기는 다소 진부했다. ⓒ KBS


하지만 <맨몸의 소방관>의 미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드라마에서 주목할 것은 '공주' 대접이나 받을 것 같던 수십억 재산의 상속녀 한진아를 '역동적'인 캐릭터로 그려내고자 한 것이다. 어릴 적 저택에 도난 사건이 있었을 때도 어린 나이에도 악착같이 도둑을 쫓아가던 그 '악바리' 정신은 당시 사고의 후유증으로 히키코모리처럼 지내는 현재에서도 집요하게 사건을 추적하는 모습으로 이어지며 극의 동인이 된다. 그녀의 주문으로 그녀 앞에 반누드 모델로 본의 아니게 등장한 강철수, 악연이 인연으로 이어지게 되는 서사는 대부분 '로코'들이 멋진 남성에 의해 '구조'되는 '공주'의 캐릭터로 소모하던 것과 대조적이다.

덕분에 한진아는 그 작은 덩치로 위기의 강철수를 구하며 늘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내던졌던 강철수조차 누군가에게 '보호'를 받는 감동을 하게 한다. 사건의 굽이굽이마다, 퍼즐의 주도적 해결자로 나선다. 물론 마지막은 강철수의 죽을 힘을 다한 괴력이 그녀를 구하지만, 그건 이후 권정남(조희봉 분)으로 이어지는 강철수의 '소방관'의 사명감에 방점을 찍은 바가 크다. 오히려 그 앞 장면, 정신을 잃었던 그녀가 강철수가 등장하기에 앞서 스스로 정신을 추켜세워 자신의 천식약을 구하는 장면이라든가, 강철수와 권정남의 격투 장면에서 권정남의 머리끄덩이를 잡는 등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4부작이란 짧은 시간 속에 사랑도 하고, 사건도 해결하려다 보니 정작 극의 모티브가 된 저택 화재 사건에 대한 해결이나, 고모인 한송자(서정연 분)와 오성진(박훈 분)의 음모는 둘러리가 된 느낌이다. 형사이지만 돈 앞에 살인 사건까지 불사하는 폭력 남편 권정남과 방화범의 욕망을 거침없이 내보였던 금고털이범 오성진의 의리 있는 면모 등이 4부작의 여정 속에 휘발된 부분이 아쉽다. 아마도 접근성이 떨어지는 스릴러 대신, 호응이 쉬운 '사랑 이야기'에의 강조를 택한 전략일 것이다. 그래도 4부작이라면 좀 더 신선하고 실험적인 도전을 기대해보고 싶은 건 공중파 드라마에선 무리일까?

 <맨몸의 소방관>의 시즌2를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맨몸의 소방관>의 시즌2를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 KB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맨 몸의 소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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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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