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많은 논란 속에서 진행됐다.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많은 논란 속에서 진행됐다. ⓒ 부산국제영화제


"미묘한 위치에 있는 현 부산영화제 집행부는 희생자인가? 부역자인가?"

19일 부산국제영화제가 최근 특검 수사에 대해 밝힌 입장을 본 한 영화인의 반응이다. 부산영화제가 특검 수사에 공식적인 견해를 밝혔으나 핵심을 비껴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부산영화제는 이날 '부산국제영화제 탄압의 실체는 전부 밝혀져야 한다!'는 보도자료를 내고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정부 지원금 삭감 지시와 감사원 고발,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에 대한 사퇴 압박 및 검찰 고발 등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부산영화제 측은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는 무조건 차단하겠다는 유신 시대에나 가능한 발상이 박근혜 정부에서 일상적인 통치행위로 이뤄졌다는 사실에 영화계와 문화계는 물론 전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면서 "2017년 국제영화제 지원 예산이 32억 원에 25억 원으로 줄어든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또한 "부산시 또한 이런 과정에 직접 관여했다"며 행정지도점검, 집행위원장에 대한 사퇴 압박과 검찰 고발 등 부산국제영화제에 가해진 일련의 보복 조치가 부산시를 통해 이뤄진 것에 대해 특검이 이 모든 사태의 전모를 소상히 밝혀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정권의 마음에 들지 않는 영화를 틀었다는 이유로 온갖 보복을 당하면서 20년간 쌓은 영화제의 명성이 크게 훼손됐고 쉽게 회복할 수 없는 깊은 내상을 입었다"면서 "특검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덧붙였다.

그간 블랙리스트와 함께 부산영화제 탄압이 특검의 조사 대상에 올라 관련 자료 등을 제출했던 부산영화제가 뒤늦게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이다. 하지만 영화계 인사들은 입장발표가 시기적으로 늦게 나온 데다 영화제 측의 자세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이용관 명예회복과 서병수 고발 문제는 빠져

 지난해 12월 15일서울에서 열린 영화단체연대회의 주최 일일호프에 참석한 이용관 전 위원장이 영화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5일서울에서 열린 영화단체연대회의 주최 일일호프에 참석한 이용관 전 위원장이 영화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다. ⓒ 성하훈


우선 정작 피해의 핵심인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에 대한 명예회복 등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권이 부산영화제를 탄압하며 조준한 것은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이었다. 부산시장의 사퇴 압박과 검찰 고발, 해임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가장 큰 상처를 입었음에도, 정치적 탄압으로 재판을 받는 사람들에 대한 명예회복 문제는 피해갔다.

또 부산시에 대해 언급하면서도 서병수 부산시장에 대한 고발 문제는 밝히지 않은 채 특검의 조사만을 기다린다는 수동적 태도를 보였다는 지적이다. 피해 당사자들의 능동적 고발이 필요한 상황에서 적극적인 고발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혜준 모두를 위한 극장 이사장은 "부산영화제가 특검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하는데, 인력도 부족하고 시간도 부족한 특검은 김기춘과 박근혜의 명백한 혐의를 입증하는 데 효과적인 사안들을 선별하고 그쪽에 가용할 수 있는 역량을 쏟을 것"이라며, "집행위원회가 지나치게 여유롭고 고상하게 처신하는 듯하다"고 꼬집었다.

한 영화감독은 부산영화제 측이 정치적인 보복으로 인한 위상 추락과 내상을 입은 부분을 강조한 것에 대해 "내상 입은 영화제라고만 하면 어쩌자는 거냐"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김동호 이사장 아닌 강수연 집행위원장 명의로 입장 발표 

'명량' 포스터 보는 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14년 8월 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영화관에서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그린 영화 '명량'을 관람하기 위해 김동호 문화융성위원장, 배우 안성기 씨와 함께 입장하며 영화 포스터를 보고 있다.

▲ <명량> 포스터 보는 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14년 8월 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영화관에서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그린 영화 <명량>을 관람하기 위해 김동호 문화융성위원장, 배우 안성기와 함께 입장하며 영화 포스터를 보고 있다. ⓒ 연합뉴스


입장문 명의가 강수연 집행위원장이란 것도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정관개정을 통해 부산영화제는 부산시장이 당연직 조직위원장에서 물러나고 민간인 이사장 체제를 구축했다. 이전에는 집행위원장의 권한이 많았다면 지금은 많이 축소됐고 대신 이사장이 권한이 대폭 강화됐다.

그런데도 김동호 이사장 명의가 아닌 강수연 집행위원장 이름으로 입장을 냈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김동호 이사장이 영화제 수장으로서 아직도 권력의 눈치를 보거나 역할을 회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물론 부산영화제 예산의 상당액을 부산시에서 받다 보니 서병수 시장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나 고발은 어렵지 않겠냐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정치적 탄압의 실체를 제대로 규명하기 위해서는 피해 당사자의 의지가 요구된다는 점에서 부산영화제가 발표한 입장은 표현만 요란할 뿐 정작 알맹이가 빠졌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 밑에서 초대 문화융성위원장을 지낸 김동호 이사장의 소극적인 대응 자세에 영화계 내부에서 적잖은 우려가 나오고 있다.

부산지역의 한 영화계 인사는 "민변 등에서 준비하는 집단소송도 피해 당사자가 원고로 참여해야 한다"며 "당사자인 부산국제영화제가 남의 일인 양 제3자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 최근 특검 수사에 대한 부산국제영화제의 입장
부산국제영화제 탄압의 실체는 전부 밝혀져야 한다!

마침내 부산국제영화제 탄압의 실체가 드러났다. 최근 특검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정부 지원금을 전액 삭감하라고 지시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을 상영했다는 것이 지원금 삭감의 이유였다.

지난 2년간 부산국제영화제는 부산시와 감사원의 감사, 정부 지원금 삭감,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사퇴 압박과 검찰 고발 등 숱한 고초를 겪었는데 이 모든 일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비로서 실체가 밝혀진 것이다. 정권의 입맛에 맞게 문화계를 길들이겠다는 블랙리스트의 전모 또한 부산국제영화제 사건을 통해 단적으로 드러났다.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남긴 수첩에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다이빙벨>을 예로 들며 "문화예술계의 좌파적 책동에 전투적으로 대응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는 무조건 차단하겠다는 유신시대에나 가능한 발상이 박근혜 정부에서 일상적인 통치행위로 이뤄졌다는 사실에 영화계와 문화계는 물론 전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은 2014년 <다이빙벨> 상영 이후 문체부를 통해 "부산국제영화제 예산을 전액 삭감하라"고 지시했다. 실제로 2015년 4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글로벌 국제영화제 육성지원 사업 결정심사를 통해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지원금을 2014년 14억6천만원의 절반 수준인 8억원으로 삭감했다.

글로벌 국제영화제 육성지원 사업에 책정된 예산이 남아 있는데도 유독 부산국제영화제 지원금을 대폭 삭감한 이 결정은 정치적 보복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샀다. 당시 영진위는 정치적 보복이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이번 수사 결과를 통해 영진위의 해명은 무색해졌다.

실제로 영진위는 2015년 국제영화제 육성지원 사업에 책정된 35억원 예산 가운데 29억원만 집행하고 6억원을 불용처리했다. 이미 책정된 예산을 안 쓰는 한이 있더라도 정권에 밉보인 영화제엔 지원금을 줄인다는 강력한 의지가 엿보인 대목이다.

이렇게 주어진 예산을 다 못 쓰는 상황이 벌어지다 보니 국제영화제 육성지원금은 2015년 35억원, 2016년 32억원에서 2017년 25억원까지 줄어들었다. 영진위가 영화 진흥이 아니라 영화 통제에 몰두한 결과이다. 부산국제영화제를 포함한 한국의 국제영화제들은 해마다 줄어드는 지원금 때문에 국제영화제의 위상을 위협 받고 있다. 최순실의 각종 재단에 엄청난 돈이 몰려가는 동안 벌어진 일이다.

박근혜 정부가 총체적으로 나서서 특정 영화를 상영한 것에 대한 보복조치를 한 것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014년부터 2015년에 걸친 감사원의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감사 또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지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감사원의 집요한 표적 감사는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을 포함한 영화제 전, 현직 직원 4명에 대한 검찰 고발까지 이어졌다. 부산시 또한 이런 과정에 직접 관여했다. 행정지도점검, 집행위원장에 대한 사퇴 압박과 검찰 고발 등 부산국제영화제에 가해진 일련의 보복조치가 부산시를 통해 이뤄졌기 때문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향후 특검이 이런 모든 사태의 전모를 소상히 밝혀주길 기대한다.

지난 2년간 부산국제영화제가 겪은 일은 다시는 반복돼선 안 되는 참담한 사건이었다. 정권의 마음에 들지 않는 영화를 틀었다는 이유로 온갖 보복을 당하면서 20년간 쌓은 영화제의 명성이 크게 훼손됐고 쉽게 회복할 수 없는 깊은 내상을 입었다.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부산국제영화제 탄압의 실체는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를 위해 특검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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