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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며칠 전 시엄니께 전화가 왔다. 대뜸 "혜원아, 내일 집에 있냐?" 하고 물으신다. 산골 사는 며느리, 어디 출근하지 않고 집에 콕 박혀 있는 줄 뻔히 아시면서도 저렇게 물으시는 까닭은 단 하나.

"오늘 오후에 택배 좀 부치련다. 가래떡 선물이 들어왔거든. 양이 꽤 많다. 받으면 아마 좀 놀랄걸?"

"어머니, 안 그래도 전에 보내주신 떡 다 먹었는데, 어떻게 아셨어요? 간식으로도 밥 대신으로도 먹다 보니 금세 먹네요. 저 내일 집에 있어요. 보내주시면 잘 먹겠습니다."

"굴 얼린 것도 넣을 테니 해동해서 먹어라. 어묵도 하나 사서 같이 넣어줄까?"

"겨울이라 그런지 어묵을 자주 먹어서 집에 많이 쟁여 놨어요. 어묵은 괜찮아요, 넣지 마세요."

적당히 무거운 택배 상자 도착. 상자 뚜껑을 여니, 바로는 정체를 모르겠는 비닐봉지가 가득하다. 종합선물세트라도 앞에 둔 것처럼 마냥 설렌다.
 적당히 무거운 택배 상자 도착. 상자 뚜껑을 여니, 바로는 정체를 모르겠는 비닐봉지가 가득하다. 종합선물세트라도 앞에 둔 것처럼 마냥 설렌다.
ⓒ 조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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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봉지 가득한 음식들, 이건 '종합선물세트' 

다음 날 오후, 적당히 무거운 택배 상자 도착. 상자 뚜껑을 여니, 바로는 정체를 모르겠는 비닐봉지가 가득하다. 은근 설렌다. 종합선물세트라도 앞에 둔 것마냥. 비닐봉지가 많은 걸 보니 가래떡과 굴 말고도 분명 뭔가 더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 말씀대로 대량의 가래떡과 함께(알록달록 여러 빛깔 떡은 기본) 생선 거리가 가득하다. 예쁘게 거절했던 어묵 한 봉지도 끝내 담겨 있다.

요즘 왜 그런지 생선이 자꾸 먹고 싶었는데, 시점 참 기막히다. 다른 땐 생선을 보면 비릿한 기운을 먼저 느끼곤 했는데 이날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정말 생선이 먹고 싶긴 했나 보다(태어날 때부터 고기는 몸에서 받지 못해 아예 못 먹고, 닭고기도 당근 못 먹고. 그런 특이 체질인 내 몸에서 단백질 빈고리를 채워 주던 달걀도 요즘 양껏 못 챙겨 먹고. 게다가 겨울이고……. 나름 분석해 본, 내가 요즘 생선이 당기는 까닭?).

상자를 여니 대량의 가래떡과 함께(알록달록 여러 빛깔 떡은 기본~) 생선 거리들이 가득하다. 예쁘게 거절했던 오뎅 한 봉지도 끝내 담겨 있고.
 상자를 여니 대량의 가래떡과 함께(알록달록 여러 빛깔 떡은 기본~) 생선 거리들이 가득하다. 예쁘게 거절했던 오뎅 한 봉지도 끝내 담겨 있고.
ⓒ 조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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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받고서 전화드린다.

"어머니, 생선 엄청 많네요! 제가 요즘 생선이 막 당겼는데, 어떻게 아셨어요? 그런데요, 굴이랑 같이 있는 노란 생선은 뭐예요?"

"그거, 큰애네 부부가 결혼기념일에 제주도 여행 다녀와서 나 먹으라고 준 돔이다. 이거, 너네 줬다고 큰애한테 말하면 절대 안 된다. 프라이팬에 기름 조금 두르고 구워 먹으면 맛있을 거다."

"걱정 마세요. 말씀 안 드릴게요."

'귀한 돔인데, 어머니가 드시지, 왜 보내셨어요…….' 마음속에서 풀썩 솟구치는 이런 말, 이젠 하지 않으련다. 이미 보내신 거, 잘 먹어드리는 게 효도일 테니. 실은, 얼린 건데도 냄새가 구수하고 빛깔도 고와서 음식 욕심 잘 없는 나인데 먹어보고픈 마음이 다 일어났다.

요즘 왜 그런지 생선이 자꾸 당기던데, 시점 참 기막히다. 다른 땐 요리 앞둔 생선 재료를 보면 비릿한 기운을 먼저 느끼곤 했는데 이날은 생선을 보기만 해도 군침이 다 돈다.
 요즘 왜 그런지 생선이 자꾸 당기던데, 시점 참 기막히다. 다른 땐 요리 앞둔 생선 재료를 보면 비릿한 기운을 먼저 느끼곤 했는데 이날은 생선을 보기만 해도 군침이 다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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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보다 생선에게 눈길을 주며 행복한 상상 시작.

'얼린 고등어는 조림하고, 얼린 오징어는 볶음도 하고, 김치전도 하고. 돔은 살살 구워 먹고. 어? 근데 얼린 굴은 뭘 해 먹지? 그나저나 어머니 말씀처럼 가래떡 깜짝 놀랄 만큼 많이 보내셨네! 떡국도 해 먹고, 떡볶이도 해 먹고, 가래떡 구이도 해 먹고. 사람들 초대해서 가래떡 잔치라도 벌여 볼까나?'

상자에서 꺼낸 먹을거리들 차곡차곡 정리하는데, 울 시엄니, 꼭 산타할머니 같다. 떡 떨어진 건 어찌 아셨고, 생선 먹고 싶은 건 어찌 눈치채셨고, 무엇보다 오징어 넣고 김치전 한번 해 먹고 싶던 요 마음은 또 어찌 읽으셨는지…….

'혜원아, 내일 집에 있냐?'

시엄니, 아니 산타할머니의 정다운 전화 목소리가 다시금 들리는 듯하다. 받기만 하는 못난 자식들. 설 때 뵈면 용돈 봉투 좀이라도 두둑이 건네 드려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면서, 기쁜 마음으로 돈도 정성껏 벌어야겠다. (귀촌 전에는 적긴 해도 달마다 꼬박꼬박 용돈을 드릴 수 있었는데. 귀촌한 뒤에는 무슨 무슨 날 때만 간신히 얇은 봉투 건네 드리며 지내온 몇 년, 늘 죄송하기만 하다.) 

시엄니 말씀처럼 깜짝 놀랄 만큼 많은 가래떡이 왔다. 떡국도 해 먹고, 떡볶이도 해 먹고, 가래떡 구이도 해 먹고. 사람들 초대해서 가래떡 잔치라도 벌여야 하려나 보다.
 시엄니 말씀처럼 깜짝 놀랄 만큼 많은 가래떡이 왔다. 떡국도 해 먹고, 떡볶이도 해 먹고, 가래떡 구이도 해 먹고. 사람들 초대해서 가래떡 잔치라도 벌여야 하려나 보다.
ⓒ 조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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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사는 시간이 쌓이면서 시엄니께도 조금씩 정이 쌓여간다. 그러면서 '시'엄니가 조금씩 그냥 엄니처럼 느껴지려고 그런다. 하늘에 계신 울 엄니, 나 이렇게 시엄니랑 조금씩 친해져도 괜찮죠? 그래도 질투, 안 하실 거죠?ㅜㅜ (훈훈한 시엄니 이야기, 시작할 때는 당근 눈웃음 이모티콘으로 마무리할 줄 알았건만. 쓸데없이 하늘에 잘 계실 친정엄마를 건드려서 어쩔 수 없이 눈물 이모티콘으로 마무리……. 제목에라도 눈웃음으로 시작해서 그나마 다행. 못난 며느리에 못난 딸 같으니라고!)



태그:#시어머니, #친정엄마, #귀촌, #산타, #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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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기타 치며 노래하기를 좋아해요. 자연, 문화, 예술, 여성, 노동에 관심이 있습니다. 산골살이 작은 행복을 담은 책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를 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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